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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천 번은 회귀해야 마법진을 깬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도버리
작품등록일 :
2023.04.10 10:05
최근연재일 :
2023.07.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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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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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고블린 초원 (3)

DUMMY

이종환이 뽑은 검은 헌터리아에서 판매하는 천종원 장인 장검이었다. 검신에 천종원의 로고가 찍혀 있었기에 누구나 알 수 있었다.


"..."


모두가 렉이 걸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골든 타이거즈 팀은 실수로 인한 당황 때문에, 청사 팀은 여전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이 혼란을 틈타 순식간에 골든 타이거즈를 도륙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정리하면 의미가 없고.'


어차피 내가 도륙하고자 하면 언제든 도륙할 수 있다. 청사 팀과 골든 타이거즈 팀이 만전을 기하고 함께 덤벼도 마찬가지다.


'청사 팀을 교육해야지.'


내가 고블린 초원에서 청사 팀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건 PvE(플레이어 대 환경, 몬스터와의 전투)가 아니다. 그런 건 초중고 12년 동안 지겹게 배운 내용이다.

고블린 초원에 온 네 번째 이유는, 청사 팀에게 PvP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선 도발을 할 필요가 있었다.


"아카데미의 도적 학생분들, 어르신들을 참살하니 기분이 좋던가?"


대답보다 화살이 먼저 날아왔다.


슉!

캉!


내가 어렵지 않게 체인소드로 막아내자, 날 선 대답도 이어서 날아들었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사회에 환원할 때가 됐지. 전도유망한 청년들에게 자리도 내어주고. 근데 어디 대접 받던 버릇만 남아갖고, 우리들 부려먹고 등쳐먹을 생각만 만만이더만."


화살을 날린 골든 타이거즈의 도적 김재현이 대답으로 시간을 끌며 활에 다시 시위를 매겼다.

나는 김재현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말을 했어야지 사람을 죽이냐. 변명이라기엔 옹졸하다, 도적 도적놈아."

"변명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 뿐이다."

"사실을 말하는 것을 변명이라고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도록."


부족한 변명이지만 청사 팀에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 거다.

골든 타이거즈가 한마음게이트회를 죽였다.


'내가 설계한 거지만.'


한마음게이트회도 깨끗한 놈들은 아니었다.

각종 범죄와 비리로 자리에서 물러난 장년들이, 재미로 사람을 약올리다 죽이는 미친 사이코패스 집단이었다.

다만 녀석들은 게을러서, 다른 팀이 고생해서 고블린 치프틴을 죽일 때까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편.

골든 타이거즈는 그와는 조금 달랐다.

아카데미랑 아티팩트 비용 때문에 돈이 없어서 뉴비 사냥에 손대다가 아예 살인에 맛이 들린 미친 소시오패스 집단이다.

뭐 자기들에게도 나름의 사연은 있다. 전사 이종환의 형이 다른 뉴비 살인마에게 죽었는데, 아무런 복수도 하지 못하고 처벌없이 놓쳐버렸다. 이에 이런 일이 처벌할 수도 없는 평범한 일이라면, 자신도 남들에게 똑같이 저지르겠다고 흑화해버렸다... 발단이 어찌 됐건 간에 상당히 비뚤어지고 이기적인 대응이다.

그런 대응을 고를 만큼 인성이 나쁘기에 한마음게이트회도 선공으로 죽였을 테고.


'한마음게이트회가 약올리니까 성질이 뻗쳐서 죽였겠지.'


그러나 두 팀이 싸웠는데 5:0으로 지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한두 명 정도는 길동무로 데려갈 줄 알았다.


'심지어 상처조차 없네.'


기습을 잘 한 모양이다. 우리 팀원들에게 전부 맡겨 두기엔 지나치게 건강해 보였다.

상처만 조금 내어 놓기로 결심했다.


"조금만 맞자."


나는 체인소드를 길고 뭉툭한 일반적인 채찍, 둔장鈍短 형태로 만들었다.


"일단 죽여!"


츠츠츳...


마법사 김영방이 나를 향해 Lv.10 뇌전탄Electric Bolt를 시전했다.

나는 전기가 쏘아지기 직전에, 순응시험 때 우리 팀 도적 이선재에게서 루팅했던 순응단검을 뽑아 던졌다.


슉!


순응단검이 김영방의 손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뇌전탄이 번개의 속도로 쏘아졌다.


파지지직!

푹.


뇌전탄이 단검에 뚫리고, 전류를 띈 단검은 그대로 김영방이 내민 손바닥을 꿰뚫었다.


"아악!"

"우접, 다리."


탓!


이어서 크게 점프하면서, 나를 공격하려던 적의 도적과 사제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휘릭─ 파팡!

"끄악!"


도적의 화살과 사제의 저주가 엉뚱한 곳으로 쏘아지고...

채찍질에 도적의 손등뼈는 부러지고, 사제는 가슴을 맞고 뒤로 나뒹굴었다.


"이 새끼 뭐야! 왜 이렇게 빨라!"


우리를 C랭크로 알고 방심했던 전사 이종환과 하이브리드 양강원이 허둥지둥 나를 쫓아 검을 휘둘렀다.

나는 체인소드를 짧고 뭉툭한 둔단 형태로 만들어 검격을 받아냈다.


빡! 빡!

"으아악!"


둘의 공격을 흘려낸 다음 둘의 정강이를 한 대씩 후려쳤다.

아직도 머뭇대는 우리 팀을 한 번 둘러보고 말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 가만히 앉아서 당할 거야?"

"..."


무대는 준비됐다.

짧은 풀 초원의 고블린은 정리했고, 남아 있는 몬스터들도 사실 강한 고블린에 불과하다. 스펙만 갖춰지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저들도 그래서 맘 편하게 한마음게이트회를 죽인 거고.

고블린 초원이 첫 게이트로 좋은 이유가 이거다. 사람의 욕심이 실제 몬스터보다 더 괴물같다는 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저놈부터 죽여!"


흉악한 얼굴이 된 마법사 김영방이 나를 가리키며 외쳤다.

아직 청사 팀에선 나만 싸우고 있었고, 노련한 뉴비 사냥꾼답게 골든 타이거즈가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내가 나름 위험해 보이는 상황.


"으윽... 이제 나도 모름!"


이에 청사 팀도 결국 전투 태세를 취하며 대응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 초원의 꽃말은 PvP지."


고블린 초원은 꽃이 아니다만, 꽃이라면 분명히 그런 꽃말이 붙었을 거다.

청사 팀에게 스스로의 의지로 다른 헌터를 공격하는 경험을 선사해주는 것.

그리고 우리 팀의 우정.

이것이, 내가 여기서 얻어가려고 한 가장 값진 보상이었다.


"우정의 힘을 보여주마."


염상현이 적의 전위를 마킹하기 시작했기에 나는 상당히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깃털 나비를 활용해, 빠른 속도로 상대 팀의 후방으로 이동.

사제 전근효의 팔다리에 우정의 힘이 담긴 체인소드를 휘둘렀다.


서걱!


"끄악!"

"이것은 이승근의 몫."


이승근은 태백게이트회의 사제였다.

지금 전근효가 목에 걸고 있는 '엘레우시스의 밀알 펜던트'의 원래 주인으로, 여러 사기를 통해 큰 돈을 번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사기 행각을 밝히려는 사람은 모두 죽였는데, 각성 능력도 없이 그토록 살인을 많이 한 사람도 드물다.

태백게이트회 인원은 모두 이승근과 비슷한 범죄자들이었다.

윤정명은 강력범죄 브로커, 박두열은 불량품 군납 전문 방산업체, 이석환은 불법 흥신소와 살인청부업, 윤보희는 납치 및 인신매매...

그들을 죽인 골든 타이거즈는 뉴비 살인마다.


"너희야말로 고블린 초원의 진짜 몬스터들이다."


이런 빌런들을 최대한 많이 죽이는 것도 이번 회귀 회차의 목표 중 하나였다.

이번 회귀가 마지막이라면, 내가 살아갈 사회를 처음부터 고칠 기회도 이번이 마지막인데... 이런 쓰레기들을 치우지 않으면 나중에 나만 더 힘들어진다.

개 같은 새끼들이 날뛰는 세상을 보고 있으면 다시 회귀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 빨리빨리 청소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득도 좀 취하고.


'원래 청소하다가 보면 잃어버린 물건도 나오고 잊어버린 돈도 챙기고 그런 거지.'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이종환이 염상현이 격돌했다.

첫 부딪힘에서 염상현이 예상 외의 힘을 발휘하자 이종환은 놀라 말했다.


"너, C랭크가 아니구나? 믿는 구석이 있었네."


캉, 카캉!


"그래봤자 순응 끝나고 게이트 온 애새끼 주제!"

"으윽?"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스탯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종환이 염상현의 공격을 흘려내고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이종환도 B랭크의 전사인 데다가 그동안 돈 많은 뉴비들을 죽여 얻은 아티팩트로 강화했기에 스탯은 거의 비슷하다.

결정적인 차이는, 염상현은 전투 경험이 부족하고 특히 대인 전투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오랑우탄과 표범이 싸우는 것 같구나.'


오랑우탄은 악력만으로 사람의 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힘이 세지만, 싸우는 법을 모르기에 자기보다 작은 표범에게 목덜미를 물리고 만다.

염상현 오랑우탄도 헌터 교육 12년을 받았지만, 이종환 표범은 헌터 아카데미에서 4년까지 총 16년을 공부하고 틈틈이 뉴비들을 죽이는 대외활동까지 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종환 본인이 배신자일지라도 말이다.


'근데 그럼 안 되지 않나?'


나는 노력을 배신시키기로 했다.


휘릭, 쫘악!


"아아악!"


나의 압도적인 재능으로 가득 찬 채찍이 이종환의 등을 후려쳤고, 이종환이 비명과 함께 바닥에 처박혔다.

내 물리 스탯은 염상현 오랑우탄보다도 떨어지지만, 깃털 나비의 힘에다가 파동 중첩의 묘리를 담은 공격은 표범의 이빨 수준이 아니라 인간의 사냥용 총기 수준이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킨 이종환에게 다가가 명치에 있는 혈도를 존나 세게 때려서 기절시켰다.


퍽!


"꺽..."

"이것은 윤정명의 몫이다."

"허억, 허억... 용재! 재유야!"


염상현은 이종환이 쓰러지자마자 다른 팀원을 돕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말했지만 이들의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게 먼저이기 때문.

열심히 싸우는 팀원들을 바라보다가, 위험할 것 같으면 다가가서 전투를 끝내주었다.


"이것은 박두열의 몫. 이것은 이석환의 몫."

"끄르륵..."

"컥!"


예장 체인소드에 목울대를 살짝 찔린 마법사 김영방과, 둔단 체인소드에 코를 맞은 도적 김재현, 염상현의 주먹에 맞고 항복한 하이브리드 양강원까지 피거품과 코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모두 죽이지는 않고 제압했다.

우리는 골든 타이거즈의 아티팩트와 고블린 초원 내에서 얻은 생마석을 압수하고, 옷을 찢어 밧줄처럼 손발을 묶어두었다.

나는 그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누구 한 명 몫을 안 받았는데... 아, 윤보희의 몫."


짝!

"억!"


초장에 쓰러진 전사 이종환의 뺨을 때려 깨웠다.

상황을 파악한 이종환이 나를 노려보았다.


"...우리를 어떻게 할 거지?"

"헌터관리청에 넘기면 시스템을 단절하고 무기징역수로 넘기겠지."


내 말에 그들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강해지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아예 시스템에서 단절되게 생겼다.


"...차라리 죽여줘라. 그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나아."

"내가 왜? 죽일 거면 이미 죽였어.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이들의 요청은 들어주지 않을 거다.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일단 치료부터 하자고. 아, 승훈이 포션은 쓸 필요 없어. 내 소환수로 신체를 재생시켜줄 테니까."

"아, 그 소환수가 그런 용도예요? 좋네요."

"치료해줘도 되는 거임?"

"단단히 제압해놨으니까 괜찮아."

"아니... 너라면 죽일 줄 알았음."


염상현이 속삭였다.

4378팀은 태도불량하다고 죽여놓고, 골든 타이거즈는 살려둔다는 게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


"넌 내가 무슨 피에 미친 살인마로 보이냐?"

"음... 아닌가?..."

"아니야, 임마. 얘가 사람 목숨 아까운 줄 모르네."

"...그, 네가 할 소린... 아니다. 그래. 내가 잘못했음."


나는 태괘의 심연가시를 꺼냈다.

일부러 얌전하게 만든 심연가시는 그냥 늘어진 회색 실처럼 보였다.


"그리고... 죽는 게 더 나은 삶이 있을 수도 있지. 나한테 생각이 있으니 좀 기다려 봐."


고대로부터 거머리, 구더기 등은 환부를 소독하고 재생시키는 치료에 이용되어 왔다.

내 심연가시도 그렇게 쓸 수 있다.

나는 심연가시를 다섯 조각으로 끊어서 한 명씩 넣어주었다. 부상당한 장기의 피와 살점을 파먹고 기능을 대체하면서 '치료'하리라.

이들의 주요장기는 이제 내 것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놈들 목줄을 쥐어도 당장은 별 이득이 없겠으나 미래에는 도움이 될 거다.


'귀찮으면서 안전한 일은 청사 팀에게 맡기고... 귀찮으면서 위험한 일은 골든 타이거즈 팀에게 맡겨야지.'


요새를 지으려면 어쨌든 일꾼이 많이 필요했다.

염상현이 또 물었다.


"근데 고블린 치프틴은 어떡함? 걔를 죽여야 출구가 열리잖음."

"깨야지. 고블린은 몰살이다."

"우리끼리 깰 수 있을까요? 세 팀이 힘을 합해서 깨려고 한 건데..."

"우리끼리가 아니야. 한마음게이트회와 골든 타이거즈는 이 아티팩트로 우리를 도와주는 거지."


윤정명의 검, 이종환의 갑옷, 김재현의 장화, 이승근의 목걸이, 박두열의 마법서...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힘이 된다.

그리고 돈도 된다.

각각의 아티팩트가 억 단위로 거래되는 명품이었다.

물론 장물이라서 들고 나갔다간 게이트 관리소에 바로 들키겠지만, 내가 누구인가. 이 정도 아티팩트를 해체하여 보안을 해제하고 재조립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는 시간에도 고블린 샤먼들의 주술이 진행되고 있다. 게이트를 빨리 끝내는 것이 급선무다.


"여기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고블린 치프틴을 죽이고서 데리러 오겠다."

"...치료해줘서 고맙다."


무슨 마음을 품었는지 빤히 보이는 골든 타이거즈가 대답했다.

고맙다는 말로 뉴비의 마음을 방심시키고.

치료를 받은 뒤 편하게 쉬고 있다가, 고블린 치프틴을 처치하고 지친 우리를 죽이고 탈출하려는 생각이 투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고인물이었고.

치료가 끝난 다음에는 이미 늦었을 거다.


"게이트부터 마저 클리어하자."


잠깐의 휴식을 취한 청사 팀을 이끌고 긴 풀 초원으로 나섰다.



###



Lv.7 긴 풀 고블린들을 박멸하는 데에는 반나절이 넘게 걸린다.

청사 팀 위주로 전투를 진행하는 탓이었다.

나는 전투는 위험할 때만 참여하고, 마석과 재료 채취에 주력하고 있었다.


'청사 팀의 전투 경험을 위해서는 조금 느려도 이렇게 가는 게 맞다.'


어차피 전투 종료 후 마석을 나눠 흡수하면 직접 싸우지 않아도 문제없이 성장할 수 있다.


'다른 팀의 아티팩트를 장비해서 전투가 그렇게 느리지도 않아.'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면서 진행하고 있음에도, 제한시간 전까지 긴 풀 초원을 클리어할 수 있을 법했다.

염상현이 썩어도 S랭크 스탯이었기에 슬슬 고블린들을 순식간에 죽여 나갔다.

뭐, 이렇게 청사 팀에게 전투를 시키는 건... 직접 싸우기 귀찮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는 했다.


'너희도 천 번 회귀해 봐라.'


고블린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초록색만 봐도 토가 나올 거 같다.

솔직히 나 혼자였으면 그냥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쭉 직진해서 고블린 치프틴을 죽이고 그대로 클리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가.


"빨랑 좀 잡아라."

"헉... 헉... 이 정도면 빠른 거 같은데."

"느려."

"그럼 돕든지!"

"에이, 나 혼자만 잘하면 무슨 소용이야. 너희도 강해져야지."


나 혼자 레벨 업해서 강해져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잠 잘 때 지켜줄 사람도 필요하고.

발 뻗고 잘 튼튼한 집을 만들 사람도 필요하고.

맛있고 영양 가득한 밥을 해줄 사람도 있어야 하고.

옷을 만들 사람, 칼을 갈아줄 사람, 청소하고 관리해줄 사람, 전자제품 고쳐줄 사람, 재밌는 이야기를 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회귀 마법진을 파괴했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나 혼자 저걸 다 해야 할 것이다.


'결코... 그런 결말을 만들지 않겠어. 다시는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겠어.'


남을 위해 살겠다.

이토록 헌신적이고 숭고한 다짐을 하며, 우리는 긴 풀 초원을 정리하고 고블린 치프틴이 있는 정글 구역으로 진입했다.



###



고블린 초원의 정중앙, 정글 구역.

정글은 일반 몬스터가 따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보스인 Lv.15 고블린 치프틴 한 마리와, 보스를 보조하는 두 마리의 중간보스 Lv.12 고블린 샤먼이 의식을 치르고 있고, 나름 장비를 갖춘 Lv.8 정글 고블린 스물한 마리가 이들을 경호하고 있다.

정석 대로라면 각 팀이 보스 한 마리씩, 정글 고블린 일곱 마리씩 맡는 건데... 우리는 한 팀 뿐이다.

인원이 다르면 전술도 달라져야 한다.


"다 모아서 버텨. 우리가 한 덩어리니까 적도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해."

"어떻게 버팀? 보스몹 하나 정예몹 둘, 일반 몹도 21마리나 있는데? 우리는 Lv.5밖에 안 됐음."


청사 팀은 골든 타이거즈에게 뺏은 생마석과 긴 풀 초원을 독식하면서 얻은 생마석을 흡수해서 어느새 Lv.5까지 올렸다.

하지만 고블린 초원의 권장레벨이 Lv.7인 데다가 원래 15인 기준 게이트라는 걸 생각하면 여전히 부족한 레벨이기는 했다.


"내가 마법진을 만들어서 보조해 줄게. 너희가 시선을 끌면 나는 뒤쪽에서 보스부터 암살할 거야."

"아, 마법진..."


마법진을 써준다는 말에 팀원들이 수긍했다.

아까 골든 타이거즈와 싸우면서 마법진의 힘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아카데미표 검술은 노움의 뼈에 막혔고, 아카데미표 회피술은 실프의 발걸음에 따라잡혔다. 샐러맨더의 꼬리와 운디네의 눈물은 화염 포션과 얼음 마법을 강화해 적을 혼란시켰다.

여러 모로 신통방통한 만능 기술처럼 느껴질 것이다.


"언제 어디서 그렇게 마법진을 배운 거야?"

"학원에서 국비지원 받고 배웠다."

"거짓말하는 법은 더 배워야 할 것 같음."

"노력해 보마."


천 번을 회귀했지만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나다.

나는 땅바닥에 대충 동그라미들을 그리고, 재료 가방 밑바닥에 있는 부스러기를 탈탈 털어 뿌리고, 침도 뱉고, 땀 닦은 휴지도 버리고 해서 마법진을 만들었다.


"오... 이건 무슨 마법진임?"

"작은 당나귀의 마법진이야."


이 마법진의 효과는 실로 놀랍다.

우정의 힘을 강화하여 불안을 제거함으로써, 각자 몸에 2~3억 원 어치 아티팩트를 걸치고도 고블린 초원 보스 따위를 못 이기겠다며 징징대는 정신머리를 고쳐주는 효과다.


쿠르르릉...


마침 고블린 샤먼의 주술도 완료된 모양이었다.

우리 머리 위에 먹구름 다섯 조각이 생성되었다. 저것이 표식처럼 따라다니며 우리 위치를 고블린들에게 알려주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샤먼들의 바로 뒤쪽에 숨어 있었다.


"그르르르..."


고블린이라기 보단 오크 주술사 같은 차림의 고블린 치프틴이 우리 쪽을 쳐다보며 낮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카오칵, 그르르! 키아앗!"


치프틴이 고블린 어로 뭐라뭐라 하자, 샤먼을 제외한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아마도 '위대하신 이완명 님께서 이 누추한 곳에 왕림하셨도다. 칭송하라.' 정도의 말이겠지.


- 저 타락하고 미천한 것들이 성지를 침범했다! 저들의 피를 바쳐 선조들께 용서를 구하라!


...천 번 넘게 회귀하다 보니 고블린 언어도 뭔가 알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키에에에엣!"


극성 팬들처럼 달려오는 고블린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순응단검를 날렸다.


푹!


"죄송합니다. 오늘은 사인 못 해드려요."

"보스를 앞에 두고 농담을..."

"앞에 둔 건 너희지 내가 아니란다. 작전 대로 나는 뒤로 돌아갈 거거든."


창을 꼬나든 정글 고블린들이 염상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김용재가 화살을 쏘며 염상현을 엄호했고, 우재유는 빙결탄을 시전하고 형승훈은 폭발 포션을 던져 정글 고블린을 하나씩 무력화했다.

나는 예장 체인소드를 휘둘러 몇 마리 더 타격을 주고 빠져나왔다.


"흡!"


퍽!

쨍그랑, 치이익!


떼로 뛰어들던 고블린들은 염상현의 방패 밀치기에 한 덩이로 뭉쳐 밀려났다.

마법진을 만들어준다는 건 구라였지만, 내가 지정해준 위치는 방어하기에 알맞은 위치였다.

마법진에선 마법을 빼도 진陣이 남는다.

그 진형을 유지하는 것도 실력이다.

그리고 마법이 없어도 우정이 있지 않은가.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프렌드쉽 이즈 매직이다.


"저 진에서 우정을 더했으니 그것이 곧 마법진이다."


청사 팀은 잘 싸우고 있으니, 내 할일을 할 차례.


타타탓!


나는 빠르게 달려, 정글 고블린들과 두 샤먼을 제치고, 고블린 치프틴의 뒤를 지나, 고블린 치프틴의 목재 가옥으로 들어갔다.


"완명아?! 어디 감, 이완명!"


트라우마가 떠오른 탓인가?

뒤에서 염상현이 내 이름을 부르는 거 같지만 무시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도망치는 게 아니라 전술상의 거점을 먼저 점거하러 가는 것이다.


콰직!


목재 가옥으로 들어간 뒤, 나무와 덩굴로 엮은 커다란 상자를 찾아 둔단 체인소드로 부쉈다.

상자 안에서 꺼낸 것은 돌돌 말린 허리띠 같은 것.

자세히 보면 천이나 가죽이 아니라, 아주 작은 깃털을 촘촘히 이어붙여 만든 깃털 화폐Feather Currency다.


"이거지."


고블린에게 있어서는 같은 무게의 순금보다 더 값진 물건이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냥 예쁜 쓰레기일 뿐이라 딱히 가져가는 사람도 없다.


'마석 들고 갈 손도 부족한데, 이상한 끈을 가져갈 헌터가 어디 있겠어?'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꽤 좋은 재료였다.

영험한 기운이 깃든 깃털을 수십만 장 뭉쳐놓은 덩어리라니, 마법진을 쓸 때 만큼은 휴거의 파열독수리 깃털 만큼 값진 물건이다.

마침 내게는 깃털로 이루어진 소환수가 있다.


"우접, 흡수해."


슈슈슈슉!


마치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듯, 깃털 화폐가 수만 장의 깃털로 분해되어 익접에게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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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뱀파이어와 사제 (2) 23.07.18 14 0 15쪽
14 14. 뱀파이어와 사제 (1) 23.07.17 16 0 13쪽
13 13. 고블린 초원 (4) 23.07.14 16 0 19쪽
» 12. 고블린 초원 (3) 23.07.13 18 0 21쪽
11 11. 고블린 초원 (2) 23.07.12 21 0 19쪽
10 10. 고블린 초원 (1) 23.07.12 24 0 17쪽
9 9. 마을 귀환 (3) 23.07.11 29 1 18쪽
8 8. 마을 귀환 (2) 23.07.07 29 0 19쪽
7 7. 마을 귀환 (1) 23.07.07 35 0 16쪽
6 6. 순응시험 (5) 23.07.06 35 0 21쪽
5 5. 순응시험 (4) 23.07.05 39 0 19쪽
4 4. 순응시험 (3) 23.07.04 39 0 21쪽
3 3. 순응시험 (2) 23.07.02 53 0 14쪽
2 2. 순응시험 (1) 23.07.02 48 0 15쪽
1 1. 1000번 째 회귀 +1 23.07.02 7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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