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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도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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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빽티스트
작품등록일 :
2017.01.31 18:26
최근연재일 :
2017.04.2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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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0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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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폭풍전야(5)

2017년 정유년 2월 1일 00:00시 연재 시작 합니다.




DUMMY

#1


눈물 폭풍이 상용의 빈소를 거쳐 지나간 지금. 이곳은 적막이 흐르고 있다. 제길과 숙해라는 두 존재가 있음에도 둘 사이엔 어떠한 대화도 오고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 커다란 벽이 가로 막고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상용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 박힌 두 사람 중 제길이 먼저 망치를 들고 나섰다. 침묵을 깨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꼬르륵”


하지만 그의 말보다 앞선 몸. 사태 파악 못하고 주책없이 뱃속 자명종 소리가 선빵을 쳐 버렸다.


“밥 먹을까?”


역시 말보단 행동(뱃소리도 행동일까?)이 먼저다. 예상치 못하게 터져 버린 뱃소리에 둘 사이를 가로 막고 서 있던 냉전의 벽. 그것이 베를린 장벽 무너지듯 순식간에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잘됐다. 나도 배고팠는데... 내가 딱히 육개장을 좋아하진 않는데 이상하게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음식은 구미를 당기더라고...”


두 사람은 통했다. 제길 못지않게 숙해도 배가 고파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거 올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상 차려야 되나 싶네...”


“머 어차피 장례비용에 포함 되어 있는 걸 텐데...먹자...먹고 죽은 귀신이 떼 깔도 좋데잖아.”


“그래 그럼. 근데 숙해야 그 떼 깔 좋다는 말이 이 지금 상황이랑 맞긴 한 거냐?”


“아 몰라. 언젠가 죽을 때 떼 깔 좋으면 됐지...”


창호지 위에 깔리는 음식들. 육개장, 떡, 홍어무침, 편육 등 어느 장례식 음식과 다를 것 없는 것들이 차례로 올려 졌고 두 사람은 어느새 먹깨비에 빙의된 채 그것들을 게눈 감추듯이 해치우고 말았다.


“으 잘 먹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지 뭐야...”


“진짜? 이게 그럼 첫 끼였어? 뭐하다가?”


“뭐긴... 신 교수님 사건 때문에 그렇지. 하...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교수라는 말에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는 제길. 상용을 이 꼴로 만드는데 기이한 신 호광 교수를 생각하니 순간 열이 뻗쳤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숙해를 바라보며 물었다.


“알고 있었지?”


“뭘...”


“뭐긴 뭐야. 너 그 교수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왜 적극적으로 상용이형에게 해명하지 않았어? 형이 너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었는지 알았잖아.”


“해명? 내가 딱히 해명할 일이 있어? 내가 뭘 했는데? 됐어 그만하고 마저 밥이나 먹어.”


숙해는 제길의 질문을 회피하며 눈동자도 상으로 내리깐 채 숟가락을 들었다.


“야 정숙해!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 새끼땜에 사람이 죽었어. 그것도 네 남친이...그런데 뭐? 밥이나 먹자고?”


목소리가 커지는 제길. 금방이라도 밥상을 엎어 버릴 기세를 숙해에게 내 뿜었다.

하지만 이대로 수긍할 숙해가 아니다. 그 기운을 정면으로 받은 숙해 역시 숟가락을 상 위에 세게 내려놓고는 제길에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응수했다.


“두 번 말 안한다. 밥이나 쳐 묵으라고.”


냉정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숙해의 기운.


“어? 그...그래...”


자신도 모르게 깨갱하고 꼬리를 내려 버리는 제길 이었다.학창시절부터 친구였던 제길이 그녀의 성격을 모를일 없었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숙해는 그렇게 분노를 담은 눈빛을 내뿜고 나서야 다시 밥그릇으로 시선을 돌렸고 제길도 그 분위기가 어색한지 다시 젓가락질을 이어 갔다.


그리고 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두 사람.


겨우 바꿔놓은 분위기가 식사 전 보다 더 냉한 상태로 변했다. 그 상황이 무안하고 답답했던 제길은 먹지도 않는 홍어 무침 위에서 젓가락을 깨작거렸고 그것으론 부족했는지 회피의 수단으로 핸드폰을 선택했다. 손에 쥔 젓가락을 내려두고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폰을 꺼내 인터넷 서치창을 연다.


“어? 뭐야? 광인병? 이게 뭐지? 광견병도 아니고 광인병?”


최근 급격하게 퍼져 나간 조류독감으로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던 AI가 두 단계 아래로 내려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단어는 광견병, 그리고 이런 단어도 있었나 싶게 생소한 광인병이었다.


“헐 뭐야 사람이 사람을 물었다고? 진짜 세상이 미쳐 돌아가네.”


들고 있던 폰을 자신의 얼굴에 더 가까이 들이밀며 관련 기사들을 읽기 시작하는 제길. 그는 순간 눈에 밟힌 어떤 기사를 발견하고는 숙해의 면전 앞에 핸드폰을 드밀었다.


“우리 학원 기사다!!! 신 호광 교수 맞지?”


인터넷 언론사인 오 나의 뉴스 기사 내용은 이랬다. p학원 인기 공무원시험 강사 s씨가 자신의 제자 p군에게 강제 성추행을 가하다 중요 부위를 물어 뜯겼고 중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래 이어지는 내용이 제길의 호기심에 불씨를 당겼다.


“p군은 동작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달려들어 살을 물어뜯으려 하며 정신착란 증상을 보여 유치장에 수감 중이다. 현재 그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만 교수 포함 3명에 이르고 있고 그들은 가까운 병원에 이송되어 응급조치를 받고 있다. 와! 이 자식 진짜 또라이네. 그렇게 안 봤는데...완전 순진하게 생겼잖아? 피부도 아이처럼 뽀얗고...계집애처럼 비실대고...”


“뭐? 계집애? 그런 발언은 좀 조심하지?”


“아...미안. 듣는 계집애 기분 나쁘게 내가 말을 좀 막 했네. 맞다. 너 여성인권 신장에 대해 예민하다는 사실 깜빡했다. 미안...”


“계집애라고 하지 말랬지? 왜 여성이라는 좋은 표현을 두고 비속어를 쓰는데!”


“아니 암튼...그게 중요한건 아니잖아. 어? 그러고 보니 어제 내가 계집...아니 그 놈 봤을 때 안색이 토요일하고는 많이 달랐던 것 같기도 하고. 잠깐만!”


제길은 숙해의 눈치를 보다 폰으로 시선을 돌려 기사를 들여다보고는 점점 표정을 일그러뜨리는가 싶더니 말을 이어간다.


“맞아. 그 녀석 눈이 시뻘겋게 충혈 돼 있었어...상용이 형처럼 말 야...그럼 혹시 형도 광견병 증상이었던 건가? 숙해야 만약... 그러니까 만약에 말 야. 이게 단순한 질병이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됐고, 그만하자. 너 또 소설 쓰려고 그러지? 하여간 누가 고 제길 아니랄까봐 또 공상하고 앉아있다. 너 옛날부터 소설 쓰는 거 되게 좋아 했잖아. 고등학교 때 쓴 소설 그 제목 뭐였지. 자살절벽이었나? 암튼 그거 애들한테 나눠 주면서 읽어 보라고...재미있었던 걸로 기억되긴 하네.”


“지금 옛날이야기나 할 때가 아냐...그러니까. 내 말은...”


“님아 차라리 소설을 쓰세요. 공무원 시험 그만 두고 내가 책 내면 사줄게...”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정숙해 넌 좀 사람이 이야기 하면...”


그 때였다. 옆 빈소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비명소리. 그것은 누군가 고통의 상황에 빠져 울부짖는 소리였다. 두 사람은 소리가 들려 온 쪽으로 급하게 고개를 틀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빈소 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한 남자. 그는 입가에 시뻘건 액체를 가득 묻힌 채 장례식장 입구 쪽으로 급하게 빠져나갔다.


“뭐야 저 사람은?”


밥을 먹다말고 옆 빈소의 소란에 반응한 두 남녀는 옆에 상갓집으로 부리나케 달렸다.


“으...”


그 곳에 도달해 눈으로 보게 된 장면은 두 사람의 미간을 급격하게 찌그러뜨렸다. 검은색 상복위로 드러난 피부가 찢겨져 나간 그녀는 목에서 나온 피로 옷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상용의 빈소만큼이나 사람이 없는 옆 빈소. 제길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 중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몰라요. 나도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으 도대체...갑자기 조문객 중 한 사람이 달려들더니... 아 진짜 어떡해! 저기요. 의사 좀 불러줘요 네?”


제길은 순간 고개를 돌리다 바닥에 누워 괴로워하고 있는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고 점점 초점을 잃어 갔다. 아마도 찢겨 나간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몸속으로 돌지 못해서 패닉이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조금 전 인터넷을 통해 접했던 기사와 실시간 검색어 상황이 머리를 스쳐갔다.


‘광인병? 진짜 이거 무슨 일 나는 거 아냐?’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동시에 그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자리에 서서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뭐해? 고 제길! 빨리 의사 불러 오지 않고?”


옆에서 당황한 얼굴로 제길 에게 소리치는 숙해. 몹시 흥분해 있었다. 그녀의 화는 사회에서 상대적인 약자인 여성을 공격하고 사라진 행인에 대한 분노감과 현재의 상황을 통해 느낀 공포심에서 오는 자기 방어였다. 일단은 숙해의 놀란 마음을 진정 시킬 필요가 있다 판단된 제길은 그녀 앞에 마주서 그의 양 어깨를 꼭 붙들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숙해야 잘 들어. 일단 넌 집에 가있어.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일 수 도 있겠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상용이 형 장례식은 어떻게든 마무리 할 때니까. 넌 일단 집에들어 가서 웬만하면 나오지 마.”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걸크러쉬적 요소로 동성에게도 인기가 많던 숙해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제길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놀고 있네. 내가 왜.”


#2


AI조류 독감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던 대한민국. 그 때문인지 실시간 검색어로 급상승했던 광인병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는 듯 했다. 그 단적인 예로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를 맞이하는 종로 보신각 타종 행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그 행사를 빛냈다는 점이다. 정부 차원에서 어떠한 조치나 제제가 취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들은 광인병은 배제한 채 급속도록 번져 나가는 조류독감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다음 날 새해 아침 광(인)견병은 검색어에서 사라졌고, 그 대신 조류 독감 바로 밑에서 상위 랭킹을 차지하고 있는 검색어는 독감증상과 S몬스터 출시 임박에 대한 것들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여전히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는 노량진 빽 도사로 통하는 남근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볼일을 마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9호선 노량진 3번 출구로 나와 동작 경찰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 요즘 몸이 무겁고 컨디션이 안 좋은 게...’


찌뿌둥한 몸 탓에 기지개를 켜다 문득 든 시야에 들어 온 건물 2층 헌혈의 집. 그것이 순식간에 남근의 마음을 빼앗았다.


‘그래 새해맞이 이벤트 가볼까? 새해의 시작이니 만큼 나도 헌 피 주고 새 피로 몸 좀 정화해야 겠다...’



2층 문을 열고 헌혈의 집안으로 들어서자 피를 관리하고 있는 몇 몇 간호사와 두 세 명의 헌혈 지원자가 남근과 같은 마음으로 피를 뽑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카운터 앞으로 다가선다.


“전혈 가능하신가요? 요새 피가 많이 부족해서...”


남근의 손가락 끝에 날카로운 금속을 가져대 피검사를 하며 피가 부족하다 말하는 간호사. 그런데 그녀의 관상. 어쩐지 어딘가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저기 혹시 우리가 본적이 있나요?”


“아뇨 전혀요. 저는 그 쪽이 되게 낯선데요...”


남근이 자신에게 작업이라도 걸고 있다고 느낀 걸까? 그녀는 단 호박을 책상에 떡하니 꺼내 놓으며 단칼에 남근의 구애를 자른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쪽 얼굴이...”


피곤에 쪄들어 눈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새빨갛게 충혈 된 눈.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기분 나쁜 냄새까지 풍기고 있는 간호사.


“영화 교환권 필요 하시다고 했죠? 그럼 전혈로 할게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남자의 오른 팔에 주사 바늘을 꽂으려는 간호사다. 심하게 떨리고 있는 손에 자칫 잘못하다간 저 바늘이 심장에 꽂힐 수도 있겠다는 공포심을 느끼는 남근은 그녀를 진정 시키고자 농담을 건넨다.


“나 지금 떨고 있니?”


하지만 그녀는 대놓고 그를 씹으며 주사바늘이 들린 손을 남근의 팔에 가져다 댄다. 그 바늘이 그의 팔뚝에 근접해질수록 그녀의 손 떨림도 그 강도를 더해간다.


“저...저기요. 잠시 만요. 죄송한데 다른 간호사님한테 부탁해도 될까요? 뭔가 제가 되게 불안해서요. 그쪽에게 바늘 맞다가 골로 갈 것 같은 게...”


단호박을 꺼내놓고 대놓고 그를 씹던 간호사.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저 못 믿어요? 나 말고 누구? 제가 이 헌혈의 집 왕고에요. 바늘을 찔렀어도 저 년보다 몇 번은 더 찔렀고 남자를 꼬셨어도 저 년 보다 몇 번은 더 꼬셨다 이거야. 그런데 왜!!! 뭐가 문젠데...왜...”


그 짧은 순간 폭발적인 연기력을 발휘한다. 아마도 그녀는 간호사가 되기 전 연기자가 꿈이었나보다. 단 몇 마디사이에 수차례 감정을 변화 시키는 고급 연기를 선 보인다.


“죄...죄송해요. 제가 잠시 흥분을 했네요. 요새 잠이 좀 부족해서...”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연기는 평상시 본인의 모습으로 자연스레 돌아오기. 순식간에 평온을 되찾은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늘을 꽂는다.


푹~


다행히 이성을 되찾은 그녀가 빠르게 주사바늘을 남근의 핏줄에 꽂아 넣었고 튜브를 통해 피가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남근이 우려했던 사태는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평소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기우라고 한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지와 같은...


하지만 남근은 그럼에도 그녀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뭐지...저 여자 얼굴...분명히 봤는데...사주 손님이었나...가만...가만...’


그리고 그 순간. 남근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장면은 유성 슈퍼마켓에서 본 생닭을 쳐먹던 괴수의 여인이었다.


‘산송장! 맞아 슈퍼에서 봤던 그 면상이랑 똑같다...’


좋지 못한 타이밍이다. 주사바늘이 꽂힌 팔은 피가 새어 나가고 있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 방어든 공격이든 어떤 타이밍도 쉽사리 나오기 힘든 자세다.


‘만약 이대로 저 여자가 미친 짓이라도 하는 날엔...안 돼!’


도저히 안 되겠다. 불안감이 전신을 감돈다. 그리고 그의 불안감은 바늘로부터 자유로운 왼팔을 하늘 높이 뻗게 만든다.


“저기요. 간호사님 제가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와야 될 것 같아요.”


그의 부름에 간호사가 움직인다. 분명히 남근이 부른 간호사는 얼굴 상태가 멀쩡한 다른 이였지만 또 다시 그 부름에 반응한 건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그녀. 남근의 오른 팔에 주사바늘을 꽂아 넣은 간호사다. 그녀는 또 다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남근에게 다가온다.


“왜? 왜 그래요?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도대체 내가 싫은 이유가 뭐야. 찬희 씨.”


급기야 그녀는 엉뚱한 이름을 거론하며 새빨갛게 충혈 된 도끼눈에 살기를 더했다.


“아니 그게...저는 찬희가 아니라 남근인데요. 그리고 제가 댁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저기 다른 간호사!!! 빨리 좀 와서 이 분 좀 말려 봐!”


살기를 느낀 남근은 헌혈의 집이 떠나갈 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때문에 그 안에서 헌혈을 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남근과 히스테리 끝판 왕인 그녀에게로 향한다.


“빨리 요 좀 이사람 좀 이상해...”


하지만 사람들은 도리어 남근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그의 바람과 달리 그의 침실 앞으로 다가온 건 안색이 좋지 않은 간호사다.


“뭐가 문젠데?”


산송장 같은 모습의 그녀가 바늘이 고정 테이프 쪽으로 손을 가져다 대고는 순식간에 그것을 잡아 뽑았다.


“으아악!”


남근의 비명소리와 함께 천장까지 튀어버린 그의 피. 그 반동으로 피 주머니는 바닥으로 떨어져 터져 버렸고 바닥은 시뻘건 피로 도배 되었다. 사람들도 그제 서야 당황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순식간에 작은 헌혈의 집 안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정기 씨. 내가 어디가 어때서? 나 아직 싱싱해. 저 어린 것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그런데 왜 찬희 씨는 나를 노땅 취급하고 할미꽃에 비유하는 거야? 무슨 말이라도 해봐. 성민 씨. 흑흑...”


과거 그녀의 남자친구들의 이름인가 보다. 그렇게 대화 안에 몇 사람의 남자를 언급하던 그녀,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며 피가 쏟아진 바닥에 주저 앉았다.


“아니 그게...그러니까 저는 정기 씨도 찬희 씨도 아니라 백 남근 씨라니까요. 아 좀...제발 팔 좀 지혈해 줘요. 네?”


사람들은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엔 다른 간호사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 중 누구하나 남근에게 다가와 지혈을 하지 못했다. 피는 계속 흐른다. 정신은 몽롱해지고 힘은 빠진다.


이대로 가다간 안 되겠다 판단이 선 다. 살기위한 본능적 움직임이다. 그는 빠르게 침대에서 내려 왔다. 그리고는 간호사들이 있는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때.


“크아아아!”


조금 전까지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던 간호사. 그녀가 갑자기 돌변했다. 상체를 뻣뻣하게 일으켜 세우더니 그대로 피가 흐르는 남근의 오른 팔로 달려든다.


퍽~


발차기였다. 거기엔 자비는 없었다. 달려드는 간호사에게 날린 남근의 발차기 말 이다. 그 발길질을 얻어맞은 간호사는 가벼운 몸 탓이었는지 꽤나 먼 거리를 날았고 그대로 침대 밑에 쳐 박혀 버렸다.


“아...이 발차기는 정당 방위였어요...정! 당.. 방위! 봤잖아요? 저 여자가 저를 물려고 하는 거...”


남근은 행여나 폭력신고라도 할까 여전히 얼음처럼 굳어 있는 사람들에게 부연 설명을 더하며 눈앞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 한 통과 헌혈 사은품으로 주는 자양강장제 S몬스터를 하나 챙겼다. 그리곤 입구로 빠르게 이동하고는


“앞으로 살면서 헌혈한 일은 다시는 없을 것 같다는 것. 즐피하세요.”


헌혈의 집을 나선 남근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유독 한 사람, 남근만이 그 현장을 빠르게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밖은 위험하다. 밖은 위험해!”


그는 내달리며 소리 쳤고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그의 앞길을 터 주었다. 마치 그 모습은 성경 속 한 장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으로 가던 중 만난 홍해. 그 홍해를 가른 기적과 흡사한 것이었다. 물론 다른 것이 있다면 그 것은 붉은 바닷물이고 이것은 사람의 피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길을 터 준 이유는 단순했다.


옷이 더렵혀지고 싶지 않아서...


작가의말

자 이제 본격적인 좀비의 세상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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