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31. 던져진 주사위
1.
그리고 다시 현재.
카림은 옥좌 위에 앉아 자신 눈앞에 놓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 때는 꽉 차 있던 대신들의 자리들이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물론 그리 큰 문제들은 아니었다. 얼마든지 채울 수 있는 자리들이었으니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직 한자리뿐이었다.
‘쉴레이만.’
카림은 이를 갈았다. 파티마를 지지하는 것을 알았지만 눈 감아 주려고 했었다.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신하 중 하나였고, 대체 할 수 없는 실력자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그 자만은 어떻게든 품에 안고 가려고 했었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인내심은 산산조각 났다.
“이게 마드라사의 입장인가.”
“.......”
새 황제의 말에 신하들은 대답이 없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얼굴들이 주변의 풍경을 비출 듯 창백하게 질렸다.
“참 바보 같은 인간이야.”
다른 마도사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건만. 그는 혀를 차며 비웃듯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는 확신했다. 쉴레이만의 운명은 끝났다고.
카림은 대륙의 별의 운명을 그렇게 결정했다.
그 늙은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건 간에 뒤집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드라사를 향해 움직이려던 손가락이 잠시 멈추었다.
‘연기가.’
옥좌 위의 경치가 흐릿해 지는 것이 보였다. 뿌연 연기가 수도 곳곳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갈 곳을 잃은 황제의 손가락이 허무하게 흔들렸다.
“폐하.”
대신 하나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불길한 예감 속에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누구 짓인가? 쉴레이만?”
“그것이.”
“누구 짓이냐고 묻질 않는가!”
황제의 목소리가 천장 위에서 메아리쳤다.
“한 사람이 아닙니다.”
“.......”
“마드라사 전체가 움직였습니다.”
황제의 몸이 휘청거렸다. 머리 위에서 떨어진 황제의 관이 계단을 타고 떨어졌다. 그리고 황제의 눈이 떨어진 관 위에서 한동안 계속 머물렀다.
흐릿했던 시야가 조금씩 다시 돌아온다.
카림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쉴레이만이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멍청한 짓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체 왜?’
마드라사는 강한 전력이지만 결코 수도에 머무르고 있는 전 병력을 제압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마도사는 무적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켜주는 병사들이 없다면 민간인이나 다름없고. 자신도 알고 있는 걸 닳고 닳은 그 녀석이 모를 리가 없다.
쉴레이만은 똑똑한 늙은이다.
이런 무리한 작전이 실패할 것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제자 수백 명을 한꺼번에 동원해 일을 벌인다? 그것도 황제 암살같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면서 까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대현자가 생각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단순한 실행이다. 수도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켜 황궁을 마비시킨 후 황제를 암살한다. 이 따위 계획을 쉴레이만이 벌이고 있다고?
절대 아니다.
쉴레이만은 그렇게 멍청한 놈이 아니다. 필시 저것 말고도 다른 계획이 있다. 황제의 암살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리스크도 너무 높다. 마드라사의 마도사들이 그런 계획에 동의 할리도 만무하고.
“폐하, 군대를 보내 진압할까요?”
“.......”
손을 휘젓던 황제의 눈이 커졌다.
“마드라사 외에 따로 반란을 일으킨 병단들이 있나?”
“오직 마드라사 뿐입니다.”
“놈은 황궁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니야.”
카림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키는 병단도 없이 황궁을 노린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얘기다. 그렇다는 건 저 눈앞의 연기들은 모두 위장이라는 얘기가 된다.
대체 무엇을 위해?
황제를 노리는 게 아니라면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굴까? 카림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군사 대신? 예니체리? 그도 아니면 재정 책임자?
“아!”
카림의 입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있었다.
쉴레이만이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취해야 하는 한 사람의 인물. 그리고 이런 식의 위장을 취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삼엄한 경호를 받고 있는 인물.
카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악을 썼다.
“지금 당장 별궁에 병력을 보내라. 절대 그 여자는 황도를 벗어나선 안된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한다.
카림은 이를 갈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훨씬 일이 커지고 있다. 더 일이 커지기 전에 여기서 싹을 잘라야 한다.
반드시!
무라드는 처음 로비안을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고집불통에 자존심만 높던 자신을 구어 삶던 청년의 얼굴이 떠오른다. 결코 좋아하게 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있군.’
대현자의 수제자라는 자존심은 진작 박살났다. 그리고 그 빈 구멍을 새로운 감정이 대신 채웠다. 배움에 대한 갈망, 그리고 새롭게 따라잡을 목표 또한.
“새로운 카냐.”
침을 뱉듯 무심히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자신을 믿어주고 꿈을 보여준 새로운 카냐의 꿈. 그 순간 이후로 그는 단 한번도 파티마의 자질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해내리라.
마도사는 깊숙이 로브를 눌러썼다. 지금쯤이면 마드라사의 다른 마도사들은 황도를 빠져나가 파티마에게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시간을 벌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 일을 성공시켜야만 한다.
‘지금 황도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사람.’
아름다운 얼굴의 초상화가 무라드의 손짓에 깔끔하게 태워 없어졌다. 그리고 그 얼굴은 무라드의 머릿속에 도장이 찍히듯 완벽하게 새겨졌다.
실패하지 않는다.
그는 이를 꽉 깨물며 다짐했다.
-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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