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29. 21번째 주사위를 던지다.
귀가 아직도 시큰거렸다.
카림은 자신의 귀에서 떨어지는 피를 손으로 대충 막으며 방에서 걸어 나왔다. 주머니에 들어간 옥새가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황제의 유언.
그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할 바보는 아니었다. 황제는 자신에게 이 나라를 맡긴 것이다. 자신이라면 뒤처리를 확실하게 하리라는 믿음으로.
그걸 제대로 보답하는 게 자신의 일이겠지.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앞으로의 일을 그리고 있었다. 붉게 물들 수도의 아침을.
“황자님, 괜찮으십니까?”
“호들갑 떨 것 없다.”
카림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부하를 손짓으로 떨쳐냈다. 지금은 귀에 상처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바로 신관을 부르겠습니다.”
“붕대정도면 충분하다. 그 보다 자네 말부터 정정해야겠군.”
카림은 씩 웃으며 말했다.
주머니에서 나온 옥새가 부하의 앞에 던져졌다. 황제의 상징. 그리고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벌벌 떨던 부하 옥새를 손에 든 채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린다.
“황자....... 아니 폐하 감축 드립니다!”
“해야 할 일이 좀 많이 생겼네. 이 정도 상처를 치료하는데 시간을 쓰기 아까울 정도로.”
“하문하십시오.”
카를은 기분 좋게 웃었다.
자신이 황제에 오르고 나서 내리는 첫 명령이다. 그리고 황제의 유언을 실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망설임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싸움에 진 개의 운명은 뻔한거지.’
그것이 순리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다.
“하늘에 태양은 하나면 족하지.”
“폐하, 그것은.”
“지금 이 시간부로 황족에 대한 정리에 들어간다. 게스팔 장군과 에니체리는 각각 제 2,4황자를 구금하고 수도를 포위하도록 하라.”
“관용 따위는 없다. 적들이 눈치 채기 전에 빠르게 처리 하도록.”
카림의 말에 신하는 감히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말의 뜻도 충분히 이해했다.
수도에 부는 피바람.
카림은 결국 자신의 붉은 시체 위에 자신의 옥좌를 놓을 것이다. 자신의 혈족과 적들의 피를 밟고서.
‘나에게 자식이란 없다.’
황제의 말이 귓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그랬다. 황제에게도 자식이 없다면, 그에게도 형제따위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황좌에 걸릴 장애물이라면 빠르게 치워버리는 것이 황제의 자세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걸음을 황제의 집무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어 자신의 가신들이 그의 뒤를 따라 길게 따라왔다. 두 손으로 힘차게 문을 열어젖히자 황제의 옥좌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생각했었다. 지금까지 이 의자 앞에선 항상 고개를 숙여야만 했었다. 고개를 바닥에 붙이고 황제의, 자신의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것이 고작이었지. 그런데, 자신이 그 목소리의 주인이 되었다.
새 주인이 황좌에 올랐다.
그리고 새 황제는 다시 한번 자신의 경치를 즐겼다. 세상 모든 사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은 자신을. 그리고 전 황제가 그토록 이 자리에 집착하도록 만든 그것을.
자신의 아버지가 정복한 나라의 반지가 보였고, 창문 뒤로 솟아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자신이 짊어져야 할 피가 보이는 것 같다.
자신의 귀에서 떨어진 피가 옥좌 위로 떨어지자 옥좌에 붉은 얼룩이 새겨졌다. 앞으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듯한 얼룩이.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앞에서 당돌한 얼굴로 대들던 그의 여동생의 얼굴을. 그리고 그 옆에서 자신만만하게 서 있던 마법사의 얼굴을. 이젠 그 얼굴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하리란 생각과 함께.
“파티마에 대한 판결을 내리겠다.”
새 황제는 옥좌에 비스듬히 앉아서 말을 내뱉었다.
“파티마는 타타르의 반역자들을 감싸고 돈 것만 해도 모자라서, 로히다와 내통까지 하려 들었다. 그 죄만 해도 충분히 죽어 마땅한 것이다.”
머리를 숙이고 있는 가신들은 답이 없었다.
“앞으로 파티마에 동조하는 자들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 시간부로 파티마는 국가의 적이며, 공식적인 지위는 모두 말살한다.”
그리고 그녀의 목엔 엄청난 양의 현상금이 걸렸다.
옥좌 밑에 새겨야 할 마지막 피.
그건 자신의 동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분 나쁜 마법사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리라.
‘손이 빗나간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상대하기 쉽다고 했던가?’
황제는 미친 듯이 웃었다.
앞으로 손이 빗나가는 걸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도 했었지. 지금에 와서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싶어진다. 이젠 어찌할 생각이냐고. 자신의 손을 빗나가게 하는 게 아직도 그리 쉬우리라고 생각하느냐고. 어떤 답을 하든간에 이번에는 쉽게 물리칠 수 있으리라.
너희는 패배했다고.
입만 산 마법사는 자신의 군대를 막지 못할 것이다. 혹여 로히다를 등 뒤에 두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지금쯤이면 자신의 군대는 수도의 후환을 모조리 제거하고 있을 테니까.
자신의 힘을 한데에 모아 타타르로 진격하는 순간, 로비안과 파티마의 운명도 결정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자신의 손은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기대되는군.”
새 황제는 웃으며 말했다.
타타르와 파티마의 운명을 결정짓는 그 순간, 자신은 대관식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자신의 이 귀의 상처도 완전히 아무리라.
아버지의 선물.
그때가 되도 이 나라는 강하게 계속 될 것이다. 카냐는 이번에도 강력한 새 황제를 얻었으니까.
카냐는 그 동안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위대한 나라는 온전히 자신에게 계승 될 테니까.
‘마음껏 발버둥 쳐보라고.’
새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자신 앞에 새 경치를 바라보면서. 그의 눈앞의 경치는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핏빛이었다.
- 작가의말
댓글이 생각보다 적었는데 그래도 힘을 내서 적어봤습니다. 2일 3일 주기로 연재로군요. 트리플 캐스팅으로 후원을!
덧) 그러나저러나 파티마와 로비안은 위기로군요.
덧2) 로비안의 말은 아마 챕터24쯤에 나왔던거 같은데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덧3)역시 댓글은 힘이됩니다. 조횟수는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지만요.
덧4)지금까지 50만6천자 연재했군요. 12만자가 1권이면 4권반정도 되네요.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