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29. 21번째 주사위를 던지다.
2.
별을 떼어냈음.
고작 한 줄의 편지.
하지만 그 한 줄은 로비안의 심장을 마구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이제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고작 1년 만에 지크프리트의 위업에 손을 대는 일을 성공시키다니.
‘아마 지크프리트는 무덤에서 부들대고 있을지도.’
로비안은 속으로 통쾌하게 웃었다. 뭐 로비안도 지크프리트 덕분에 대제에 무덤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왔으니 비긴 걸로 해도 좋을까. 이제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해도 될 것이다.
화르륵.
로비안은 촛불에 편지를 던져 넣었다. 양피지가 검은 연기를 내며 깔끔하게 사라졌다.
이제 이쪽에도 대등하게 싸울만한 무기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이쪽도 목숨을 걸며 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 일이지만.
언제는 안전하게 싸운 적이 있던가?
21번째 주사위는 벌써 던져졌다. 그리고 적어도 1은 아닌게 분명했다. 로비안은 정신을 붙잡으며 생각했다. 지금 만큼 주사위의 눈이 6이 되길 간절하게 바란 적이 없었다.
그는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았고, 막연히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던진 주사위만큼은 지금까지의 것과 다르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 주사위에 걸린 건 그의 목숨만이 아니라는 것을. 파티마, 아버지, 동생, 그리고 자신을 믿어주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이 주사위에 걸려있다.
로비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자신의 일을 할 차례다. 별나라에선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끝내줬다. 그럼 이쪽도 밥값을 해야겠지.
다르넨의 서재는 평소와 다르게 어지러웠다.
수십권의 책들이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고, 꺼내놓은 종이들엔 메모들이 빼곡했다. 순간 너무 이질적인 모습이라 다른 방에 잘못 들어왔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오셨습니까?”
인사를 하는 다르넨의 목소리가 흔들거렸다.
“예, 죄송하게도 제가 방해를 한 모양이군요.”
“아닙니다. 안 그래도 마르시온경을 만나러 가던 참이었습니다.”
다르넨의 권유에 로비안은 자리에 앉았다. 평소라면 차부터 꺼내와 대접부터 했겠지만 다르넨에겐 그런 여유가 없어 보였다. 차 대신 눈앞에 놓인 건 산더미처럼 쌓인 보고서였다.
별 생각 없이 읽고 있던 로비안의 눈썹이 높게 올라갔다. 자신이 생각했던 서류가 아니었던 탓이다.
“상업 보고서군요?”
“사실 저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다르넨의 시선이 굵게 친 밑줄들에 머물렀다.
“얼마 전부터 카냐 수도에 이상한 움직임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철과 마정석의 양이 급격하게 줄었군요.”
“흥미롭지요. 실제로 저희도 얼마 전부터 카냐로부터 철광석 수급이 어려워 로히다를 통하고 있었으니까요. 들리는 바로는 지방에서 철광석의 값이 2할 이상 뛰었다고 합니다.”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다.
로비안은 다르넨의 보고서를 읽으면서 턱을 긁적였다. 이 정도의 변화는 분명 그냥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다.
대체 왜?
물론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갈 리가 없는 로비안은 안 돌아가는 머리만 혹사하며 끙끙댔다. 아마 다르넨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머리에서 김이라도 올라왔을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엔 둘 중 하납니다. 공급이나 유통을 막는 변수가 생기는 거지요.”
“그런데 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군요.”
“네, 놀라우리만치 깔끔하지요.”
분명 연기는 올라오고 있다.
다르넨은 설명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할만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요 철광석과 마정석 광산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고, 반란같은 유통에 영향을 주는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르넨은 말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게 아니라는 게 확실합니다. 누가 인위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고 있는 거지요.”
“말이 안 되는 군요.”
로비안의 지적에 다르넨이 만족한 얼굴로 웃는다.
“마르시온경, 제게도 지혜를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철광석과 마정석은 국가 중요 자원입니다. 영지와 나라에 힘에 가장 큰 힘을 미치는 것들이니까요. 당연히 국가에서 강력한 통제를 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요.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지요. 대체 왜, 누가 이런 일을 벌이고 있으며.......”
“황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로비안과 다르넨의 입에서 동시에 말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심각해졌다. 아마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로비안은 황제의 모습을 떠올렸다.
황제는 분명 파티마에게도 기회를 주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가 아는 황제는 이런 식으로 갑자기 판을 뒤집을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전 이 일을 생각하면서 몇 가지 심증을 굳혔습니다.”
“......”
“조만간 카냐의 수도에서 아주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어쩌면 한 달이 될 수도 있겠지만.”
“군사를 움직여야 할 시점이 온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습니다.”
다르넨은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조만간 카림은 자신의 군사를 움직일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카림이 움직이는 것만 하더라도 결론은 뻔히 나왔으니까. 그리고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수도에선 아마 두 개 중 하나가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어느 쪽이 되어도 우리에게 좋을 건 없는 이야기지만.”
“그나마 나은 쪽을 듣고 싶군요.”
“황제가 후계자를 카림으로 완전히 못 박았을 경웁니다. 물론 전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봅니다만... 가능성은 존재하지요.”
“다른 경우는요?”
이게 그나마 나은 이야기라니 다음 가능성은 듣고 싶지 않을 정도다. 한숨을 내쉬는 로비안을 뒤로 하고 다르넨의 입이 떨어졌다.
“황제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입니다. 아마 예상이 맞다면..... 황제는 이번 달을 넘기지 못할 겁니다.”
- 작가의말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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