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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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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6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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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화 : 상어(Agent Shark) (5-1)

DUMMY

-5-


결투로부터 약 4년 뒤, 1987년 12월 2일 수요일 15시 12분.

대전시 서구 인근, 「거림산업(주)」 건물 5층, 사장실.


결투가 끝난 이후 다시 본 적 없는 두 사람이었다. 마치 4년에 가까운 시간이 증발한 것 같았다. 두 쌍의 눈은 결투의 연장선과도 같은 들끓음을, 지금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

“......”


분위기를 파악한 아버지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양 손을 들어 서로의 시선을 차단하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들 해요. 둘 다.”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려던 눈빛에 약간의 한기가 들었다. 끓었다 식는 물에서 증기가 많이 보이듯, 눈에서도 연기가 올라오는 듯 했다. 아마 아버지가 중간에 나서지 않았다면 누구 하나 칼을 뽑았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


그러나 눈빛은 더 이상 식지 않았고 대화도 없었다. 마치 맹수 두 마리가 서로의 허점을 찾기 위해 노려보는 것과 비슷했다. 서로 슬금슬금 옆걸음을 치는 것이 참으로 볼만했다. 아버지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버럭 큰 소리를 질렀다.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공기가 급속히 차가워졌다. 그리고 그제야 두 사람의 눈빛이 돌아왔다. 평소에는 온화하여 화를 거의 내지 않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한 번 터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이번에 내가 새로운 법칙을 연구 중인데 말이야...”

“!!”

“!!”


제일 무서운 것은 이거였다.


법칙 연구가라는 직업은 의지도달공간 내에서 사용하는 법칙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을 말했다. 보통은 마법사가 사용하는 여러 법칙을 만들거나 개선하는 일을 했는데, 개중에는 별난 것들도 있었다. 특히 의료계열 법칙처럼 인체에 직접 작용하는 것들 중에 재미있는 법칙이 많았다.


예를 들어, 「특정 단어에 반응하는 웃음 발현 법칙」이라던가, 「극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하지만 몸을 긁는 것에 대한 공포감도 유발하여 긁지 못하게 하는 법칙」이라던가, 「다리 관절에 작용하여 하루 종일 트램펄린을 뛰고 내려온 후 받는 느낌을 겪게 하는 법칙」 등등이 존재했다.


(위에 것 모두 정은정의 아버지가 만든 법칙이었다)


“뭐 하나 해볼까? 「파충류나 양서류가 강아지처럼 귀엽게 보이는 법칙」이라던가, 「하늘이 핑크빛으로, 구름이 무지갯빛으로 보이게 하는 법칙」 정도는 괜찮을 거 같은데. 요새 인지구조에 직접 작용하는 걸 연구하고 있거든...”


양손을 들고 씨익 웃는 아버지의 표정에, 두 사람의 표정이 급격히 울상으로 변했다. 옛날부터 신규 법칙의 테스트베드(?)로 줄곧 굴려지던 두 사람이기도 했기에, 아버지의 저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뇨, 아뇨! 그만 할게요!”

“미안해요! 그러니까 당신도 그만해요!”


놀란 두 사람이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된 걸 깨달은 아버지가 손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점퍼를 여미며, 평상시의 그로 돌아왔다.


“알았어요. 다들 눈빛 좀 죽여요. 특히 은정이 너까지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네... 죄송해요.”

“네 엄마야 졌으니 이해한다만 넌 이겼잖니. 좀 대범하게 굴어야지.”

“......”


누구를 이해하고 누구에게 잔소리를 하는 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은정의 어머니가 어금니를 깨문 걸로 봐서는 의도가 충분히 전달된 듯 했다.


“아무튼, 진정해요. 당신도 오래간만에 본 딸 앞에서 그러고 싶어요? 파문은 파문이고 가족은 가족!”


아버지의 짧은 설교에 어머니도 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아주 긴 한숨을 내쉰 그녀는,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입을 열었다.


“오래간만이야. 은정아.”

“네. 엄마.”

“좀 전은 내가... 미안해. 요새 사업이 바빠져서 조금 날카로워졌나보다.”

“... 아니에요. 저도 죄송해요. 잘 지내셨어요?”

“뭐 항상 그렇지. 일단 앉으렴.”


한쪽을 향한 그녀의 손끝에는 회의용 탁자와 여러 개의 의자가 있었다. 역시 새 것으로 보이는 물건이었다. 정은정 과장과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서로를 마주보고 탁자에 앉았다. 이때 비서가 따뜻한 차를 세 잔 타왔다. 달달한 모과향이 올라왔다. 그녀의 어머니가 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어쩐 일이니? 놀러온 건 아닌 거 같고.”

“겸사겸사 들렸어요. 너무 얼굴 못 뵌 거 같기도 해서...”


아버지가 분위기를 조금 풀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의 대화는 헤어짐의 충격과 근 4년의 공백을 고려하면 그럭저럭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 일은 괜찮고?”

“네.”

“적성에는 맞아?”

“네.”

“다행이구나.”


정은정 과장이 굳이 단답형의 대답을 하려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서인지, 대화가 길어지지 않았다. 이때 그녀의 어머니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참, 오늘 처음 와 본 거지? 회사 건물.”

“네. 깜짝 놀랐어요. 언제 이렇게 큰 거예요?”

“네가 나가고 나서 사세가 많이 커졌단다... 아, 나쁜 뜻은 아니야.”


말끝에 당황이 묻어났다. 정은정 과장은 어머니에게서 여전함을 느끼며 조금은 안도했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인 건 어머니나 자신이나 똑같은 점이었다. 심각한 분위기가 계속 될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아버지의 말씀처럼 세상 모든 것을 걷어놓더라도 가장 아래에 있는 것은 아직 여전했다. 가족이라는 끈은.


“자주 못 와서 죄송해요.”

“아냐. 우리야 사실...”


말끝이 이어갈 단어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갑자기 실타래가 엉키며 멈춘 느낌이었다.


바닥에 깔린 감정은 여전함을 확인했다. 그러나 최근의 세월이 쌓아올린 복잡다단한 감정은 별개의 문제였다. 문득문득 보이는 어머니의 저 표정은 그 복잡함의 산물이리라. 더구나 회오리치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건 자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때 어머니의 말을 완성하듯이, 정은정 과장이 단어를 이어나갔다.


“자주 찾아오기 어렵긴 하지만... 가끔 올게요. 안부도 여쭐 겸.”

“그래, 그래.”


여전히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며 그녀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정은정 과장은 보일 듯 말 듯 웃으며, 옆에 놓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제 업무에 들어갈 차례였다.


“사실 오늘 말씀드릴 게 있어 온 것도 있어요.”

“어떤 거?”

“일단... 명함부터 드릴게요.”


정은정 과장이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깊숙한 곳에 있던 명함 두 장을 빼내 아버지와 어머니 앞으로 전달했다. 명함을 받아든 아버지와 어머니의 동공이 동시에 크게 커졌다. 어머니는 혀를 내두르며 명함을 책상 위에 놓았다.


“말도 없더니 무서운 곳에 들어갔구나. 그런데 혜림이랑 성진이도... 같이 있어?”

“... 네.”

“다 건강하고?”

“네.”


파문 이후의 세월을 짧게 함축한 어머니의 물음이었다. 이때 두 사람의 얼굴 위로 엄청나게 많은 감정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정은정 과장은 어머니의 압축력에 감탄 아닌 감탄을 하면서도, 어떤 표정을 지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 하는 곳이니?”

“... 의지선을 지키고 있어요.”

“지킨다라. 쉬워 보이지는 않구나.”


사실 자신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 지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하긴 집에 가지도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머니는 뭔가의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말없이 명함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정은정 과장이 결심을 했다. 이제는 ‘일’ 얘기를 할 차례였다.


“오늘은... 강(江)에 전달 해주십사 하는 게 있어 왔어요. 제재 대상 의기력자 관련입니다.”

“제재?!”

“네. 이걸 봐주세요.”


정은정 과장이 가져온 자료는 두 가지였다. 먼저 오스트리아 빈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의 조사 자료 중 필요 부분을 발췌한 것과, 안기부 해외조사실에서 가지고 있던 상어에 관한 자료 중 외부반출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해외조사실 자료는 원래 오늘까지 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관을 서둘러서인지 오전에 9국에 도착했다. 자료가 일찍 온 건 좋았지만, 정은정 과장의 마음은 좋지 못했다. 덕분에 내일 당일치기를 생각했던 계획이 무산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컬러 복사된 자료를 신기한 표정으로 살펴보다가, 자료를 한 두 장 넘겨보았다. 그러다 아는 단어를 보고 표정을 찡그렸다.


“오스트리아?”

“네. 간략히 말씀드리면 저번 달 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볼리셔... 의기력자인 북한 테러리스트가 보통사람인 오스트리아 정보당국 요원을 살해했습니다. 그것도 4명을.”

“북한?”

“네. 상어라고 불리는 남자 볼리셔니스트입니다. 그는 이번 사건을 통해 볼리... 아니, 의기력자로-”

“괜찮아. 편한 단어로 얘기해도.”


단어에서 대화의 끊어짐이 반복되자 어머니가 손을 들며 말했다. 사실 볼리셔니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부모님을 위한 정은정 과장의 노력이었지만, 입에 붙은 버릇을 금방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이렇듯 9국에서 사용하는 볼리셔니스트 관련 용어는 은근히 영어단어가 많았다. 이는 9국 창설 당시 조직 구성과 목적 등을 미국 SOSS(Special Operation Support Service, 특수작전지원부)에서 대부분 벤치마킹했기 때문이었다.


최초에는 우리말로 다 번역해서 쓰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고 혹 있을 지도 모를 교류 등을 고려하여 입에 붙은 단어는 영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었다.


“네. 이번 사건을 통해 볼리셔니스트로 밝혀졌습니다. 증거는 자상에서 드러난 칼의 사용 흔적이에요. 그리고 추가적으로, 상어는 「마법사의 나무」 잔당으로 보입니다.”

“!!”


집중하여 자료를 보던 어머니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갔다. 이는 옆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사의 나무라...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말이구나.”

“네.”

“전멸시킨 거 아니었어?”

“분명 세력을 완전히 제거한 건 사실입니다. 83년 이후 그들이 보였다는 얘기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시신훼손 방법에서 그들 특유의 방법이 드러났습니다. 물론 100% 확신할 수는 없어요. 모방사례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 사진이니?”

“네.”


어머니가 가리킨 사진은 T 형태의 등 쪽 자상을 찍은 것이었다. 그녀는 거리를 두고 사진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다 살짝 짓궂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흐음... 우리 「하얀 마녀White Witch」께서 머리 좀 아프시겠는데.”

“...!!”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항상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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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3화 : 상어(Agent Shark) (5-4) +2 20.03.19 67 1 10쪽
45 3화 : 상어(Agent Shark) (5-3) 20.03.18 83 1 11쪽
44 3화 : 상어(Agent Shark) (5-2) +2 20.03.16 73 1 10쪽
» 3화 : 상어(Agent Shark) (5-1) 20.03.16 70 1 11쪽
42 3화 : 상어(Agent Shark) (4-5) 20.03.15 69 1 9쪽
41 3화 : 상어(Agent Shark) (4-4) +2 20.03.14 79 1 13쪽
40 3화 : 상어(Agent Shark) (4-3) 20.03.13 79 1 11쪽
39 3화 : 상어(Agent Shark) (4-2) 20.03.12 83 1 11쪽
38 3화 : 상어(Agent Shark) (4-1) 20.03.11 73 1 9쪽
37 3화 : 상어(Agent Shark) (3-5) 20.03.10 75 1 9쪽
36 3화 : 상어(Agent Shark) (3-4) +2 20.03.09 79 2 11쪽
35 3화 : 상어(Agent Shark) (3-3) +2 20.03.08 94 2 10쪽
34 3화 : 상어(Agent Shark) (3-2) 20.03.07 93 1 10쪽
33 3화 : 상어(Agent Shark) (3-1) 20.03.06 86 1 9쪽
32 3화 : 상어(Agent Shark) (2-3) 20.03.05 85 1 9쪽
31 3화 : 상어(Agent Shark) (2-2) 20.03.03 86 1 9쪽
30 3화 : 상어(Agent Shark) (2-1) 20.03.02 86 1 11쪽
29 3화 : 상어(Agent Shark) (1-3) 20.03.01 91 1 15쪽
28 3화 : 상어(Agent Shark) (1-2) +2 20.02.29 103 1 10쪽
27 3화 : 상어(Agent Shark) (1-1) 20.02.28 108 1 12쪽
26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5-3) 20.02.27 101 1 14쪽
25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5-2) 20.02.27 88 2 12쪽
24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5-1) 20.02.24 106 1 12쪽
23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4-4) 20.02.23 98 1 13쪽
22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4-3) 20.02.22 123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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