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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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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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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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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화 : 상어(Agent Shark) (4-5)

DUMMY

“... 갑니다.”


날숨을 길게 뽑은 정은정이 칼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온 몸에 힘을 뺀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무방비에 가까운 형태.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전투를 포기했다는 느낌까지 줄 정도였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긴장이 갑작스럽게 날아갔다.


“...?!”


정은정의 어머니가 당황함에 동공을 크게 연 때였다. 고개를 하늘로 향한 정은정이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숨을 길게 내쉰 후, 정면을 바라본 그 순간.


결투가 끝났다.


* * * *


결투가 끝난 후, 1984년 2월 1일 수요일 09시 31분.

대전 중구, 충청지역 의기력자(볼리셔니스트) 공동체 「미림(美林)」 소속의 모(某) 검도장.


사람들이 상황을 깨닫기까지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엄청난 충격파가 폭발하듯 넘치면서 다들 시야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앉아 있다가 넘어진 사람도 있었다. 관전자 모두가 표막을 펼치고 있었기에 어지간한 충격에는 흔들리지 않았는데, 그걸 넘어설 정도였다.


“......”


스틸 사진 같은 장면이었다.


정은정의 칼은 정확히 어머니의 목 뒤를 노리고 있었다. 피부를 살짝 누르며 아슬아슬하게 멈춘 상태. 목 뒤에서 칼날의 느낌을 받은 그녀는 양 손을 들고 있었고, 앞으로는 바스라지고 있는 정은정의 잔상이 존재했다.


허둥지둥하던 심판이 그나마 빨리 상황을 파악하였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뒤에 서서 목에 칼을 들이민 형태. 승패는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했다.


승부가 났다.


“그만-!”


심판의 외침과 함께 정은정이 칼을 서서히 물렸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칼날을 날리고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얼굴에는 당황함을 넘어 경악이 비치고 있었다.


“너...”


가쁜 숨을 몰아쉬던 정은정이 입을 열었다. 약간의 안도와 승리의 고취감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하루에 몇 번 쓰기는 어렵긴 하죠...”


정은정은 크로스카운터를 파해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아예 발상을 바꿔, 그 기술 자체를 무효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아무리 표막으로 강화되었다고는 해도 인간의 반응속도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렇다면 그 속도를 뛰어넘어 공격하는 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발상이었다.


이는 수 싸움을 즐기지 않고 순수하게 피지컬로 윽박지르길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원리는 간단했다. 먼저 표막에 엄청난 에너지를 축적한다. 그리고 그것을 일거에 터트려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를 얻는다. 두 단계로 이루어진 심플한 기술이었지만, 보통의 볼리셔니스트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 ‘표막에 대량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행위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또한 ‘일거에 에너지를 터트린 표막을 통제’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표막폭주(表膜暴走, Barrier Charge)라...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기술이구나.”

“오늘은 쉴래요. 다 했어요.”

“......”


깔끔한 승부였다. 그리고 무던히 돌아서는 정은정의 뒤로, 심판의 우렁찬 소리가 퍼져나갔다.


“승(勝)! 정은정!”


그녀는 잠깐 뒤를 돌아보고는 아까 개어둔 점퍼를 향해 걸어갔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였다. 그녀는 차분하게 걸으며 머리의 고무줄을 끊듯이 당겨 풀었다.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도장을 횡단한 정은정이 바닥에 놓아둔 칼과 점퍼를 집어 들었다. 그 자리에는 결투용으로 썼던 칼자루(Hilt)를 내려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약간 더운 듯, 티셔츠의 목 부분을 잡아 몇 번 펄럭였다. 그리고 점퍼를 고쳐 입고 자신의 칼을 허리춤의 홀스터에 고정시켰다. 적막한 도장 내에는 옷 부스럭거리는 소리만이 흐르고 있었다.


5분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끝났다. 정은정은 엄청난 임팩트를 보이며 전대의 최강자를 상대로 승리를 따냈다. 그것도 핸디캡 대전이라고 여겨질 환경에서. 관전자들은 충격에 빠져 말없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때 정은정이 좌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수 십 개의 눈은 여전히 자신을 향한 상태.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흔들림 없이, 큰 소리로 두 사람의 이름을 외쳤다.


“... 이성진! 민혜림!”


예상치 못한 이름이 나왔다. 마치 빛이 방향을 바꾸듯, 정은정이라는 일점에 집중했던 시선이 두 개의 점을 향해 분산되었다. 동시에 앉아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의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머리는 뒤쪽으로 빗어 넘겨 말끔한 모습이었다. 충분히 호인(好人)으로 불릴만한 인상이었다. 여유 넘치는 표정과 가시지 않는 웃음이 그 인상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집중된 시선은 좀 부담인 듯, 짙은 눈썹 사이로 긴장이 흘렀다.


여자는 남자보다는 어려 보였다. 많이 봐도 20대 초반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묶은 머리와 옅은 화장에도 감출 수 없는 귀여움이 있었다. 작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키와 체구까지. 거기에 약간 내려간 눈꼬리와 서글서글한 눈망울은 확실한 포인트였다. 그러나 외모 말고도 그녀가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예지가Prophet였기 때문이었다.


“가자!!!”


포효에 가까운 짧은 말이었다. 이성진과 민혜림이 좌중 사이에서 나와 정은정을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도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맥락을 파악했다. 그것은 도장 반대편에 서 있던 정은정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발걸음을 옮기는 세 사람 뒤로 그녀가 손을 뻗었다. 흡사 설명을 요구하며 정은정을 잡는 듯 한 모습이었다.


“저... 정은정!! 정은정!!”

“......”


그녀는 잠깐 멈춰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사라지는 정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물론 소문이야 이전부터 있었다. 정은정의 말에 동조한 사람이 있고 또 그녀가 나갈 때 같이 나갈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하지만 그 대상이 No.2의 이성진과 차기 예지가 민혜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예지가는 뼈아픈 손실이었다. 낮은 발생확률(볼리셔니스트 100명 중 2~3명 수준)도 그렇지만 그 촉망받는 능력 때문이기도 했다.


‘당했다...!’


예지가는 그 능력 때문에 파(派)에 관계없이 인기 있는 볼리셔니스트이기도 했다. 마법사간 전투나 기업의 경영이나 본질은 다르지 않았기에. 그렇기에 다른 마법사와 달리 충분히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그녀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커뮤니티를 버리고 정은정을 따라 나섰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경악과 분노를 넘어 형언하기 힘든 감정들이 도장 내부에 흘렀다. 그들의 떠남에 어떤 의미를 둬야할지 모르는 사람들도, 당당하기까지 한 정은정의 모습에서 무언가 크게 어긋난 것은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정은정은 결투에서 이겼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다. 또한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자와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부딪히는 의지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은, 볼리셔니스트가 추구하는 최고의 길이 아니었던가.


황망한 표정의 좌중을 뒤로한 채, 정은정을 선두로 세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갔다. 후끈했던 도장 내부와 달리 복도는 여전히 찬 기운이 가득했다. 서늘한 바람이 몰려오자 세 사람의 표정도 풀렸다. 살얼음을 걸어 나온 느낌이었으리라.


“아야야...”


밖으로 나와 문을 닫은 직후였다. 정은정이 무릎을 굽히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성진과 민혜림이 놀라며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얕게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꽤 타격이 있었네...”


민혜림의 물음에 정은정이 허리를 매만지며 자세를 다시 세웠다. 완전히 막았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흘리지 못한 타격이 있었다. 오랫동안 겪어보지 못한 상대를 「나무」 수준으로 생각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하긴 아무리 「나무」들이 강력했다고는 해도, 검술의 정교함이나 변화무쌍함은 그녀의 어머니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초반에 흔들렸던 이유 역시 칼날 하나 차이로 파고드는 어머니의 공격에 당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후...”


정은정은 잠시 가만히 서서 고통을 잠재웠다. 그리고 이성진과 민혜림을 한 번 둘러본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뒷정리 하고 대전역에서 보자.”

“네. 이따 봐요.”

“그래.”


1984년 2월 1일, 세 사람의 볼리셔니스트가 충청지역 커뮤니티 「미림(美林)」에서 파문되었다. 곧바로 서울로 올라간 그들은 신축 건물 부지를 찾고 있던 한강진과 합류한다.


그렇게 9국에서의 행보가 시작되었다.


-5-


결투로부터 약 4년 뒤, 1987년 12월 2일 수요일 15시 12분.

대전시 서구 인근, 「거림산업(주)」 건물 5층, 사장실.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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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3화 : 상어(Agent Shark) (5-3) 20.03.18 82 1 11쪽
44 3화 : 상어(Agent Shark) (5-2) +2 20.03.16 72 1 10쪽
43 3화 : 상어(Agent Shark) (5-1) 20.03.16 69 1 11쪽
» 3화 : 상어(Agent Shark) (4-5) 20.03.15 68 1 9쪽
41 3화 : 상어(Agent Shark) (4-4) +2 20.03.14 78 1 13쪽
40 3화 : 상어(Agent Shark) (4-3) 20.03.13 78 1 11쪽
39 3화 : 상어(Agent Shark) (4-2) 20.03.12 83 1 11쪽
38 3화 : 상어(Agent Shark) (4-1) 20.03.11 71 1 9쪽
37 3화 : 상어(Agent Shark) (3-5) 20.03.10 73 1 9쪽
36 3화 : 상어(Agent Shark) (3-4) +2 20.03.09 78 2 11쪽
35 3화 : 상어(Agent Shark) (3-3) +2 20.03.08 92 2 10쪽
34 3화 : 상어(Agent Shark) (3-2) 20.03.07 88 1 10쪽
33 3화 : 상어(Agent Shark) (3-1) 20.03.06 83 1 9쪽
32 3화 : 상어(Agent Shark) (2-3) 20.03.05 84 1 9쪽
31 3화 : 상어(Agent Shark) (2-2) 20.03.03 86 1 9쪽
30 3화 : 상어(Agent Shark) (2-1) 20.03.02 85 1 11쪽
29 3화 : 상어(Agent Shark) (1-3) 20.03.01 90 1 15쪽
28 3화 : 상어(Agent Shark) (1-2) +2 20.02.29 103 1 10쪽
27 3화 : 상어(Agent Shark) (1-1) 20.02.28 107 1 12쪽
26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5-3) 20.02.27 100 1 14쪽
25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5-2) 20.02.27 87 2 12쪽
24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5-1) 20.02.24 106 1 12쪽
23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4-4) 20.02.23 94 1 13쪽
22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4-3) 20.02.22 120 1 16쪽
21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4-2) 20.02.21 11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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