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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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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5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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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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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화 : 상어(Agent Shark) (4-3)

DUMMY

거림산업은 대한민국 충청지역 볼리셔니스트 커뮤니티인 「미림(美林)」의 모(母) 기업이었다. 원래는 지역 유통업을 통해 성장한 기업이었다. 그러나 방금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제조업으로 업역(業域)을 넓혀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다 왔구나.”


다시 한 번 종소리가 나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앞으로 쭉 뻗은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떤 방 앞으로 난초 화분 몇 개가 쭉 늘어선 것이 눈에 보였다. 아마도 사장실이겠지.


“......”


긴장한 표정의 정은정 과장이었다. 아버지를 따라가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아버지는 난초가 늘어선 방 앞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두 분 사이가 좋은 건 알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한 모양이었다.

잠시 뒤 젊은 여성이 문을 열었다. 비서인 듯 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며 말했다.


“이사님 오셨군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런데 옆에 분은 누구신지...”


비서가 대답을 원하는 시선을 보내자, 아버지가 말을 꺼내려 한 순간이었다. 이때 정은정 과장이 먼저 선수를 쳤다.


“큰 딸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두 사람을 비서실 안쪽으로 안내하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정은정 과장은 문에 붙은 사장실이라는 명판을 입을 모으며 바라보았다.


‘사장...’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명패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저 번쩍번쩍한 명판과, 지금 자신이 있는 커다란 건물은 현대 볼리셔니스트 커뮤니티들이 가지는 문제점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문제가 정말로 문제인지에 대한 인식이었다. 기업이 중흥하는 것이 문제일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정은정 과장은 생각했다. 그 이면에 있는 커뮤니티의 구조 변화는,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는 과정이라고.


잠시 뒤 비서가 나와 사장실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정은정 과장은 그녀의 아버지 뒤에서 따라 들어갔다. 문을 지나자 널찍한 방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아직 정리가 채 안 된 듯, 서류가 쌓여 어수선한 책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책상 위에는 「사장 반채림」이라는 이름이 적힌 금속제의 명패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 책상 옆에서 정장 차림의 여성이 정은정 과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눈에도 그녀의 어머니임을 알 수 있는 외모였다. 하지만 수수한 차림의 정은정 과장보다는 훨씬 더 세련됨과 화려함이 드러났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와, 도회적이고 지적인 느낌의 화장은 정은정 과장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풍겼다.


커가는 기업의 오너로써 좌중을 압도하는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만큼 나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마 대충 봤다면 언니 동생 정도의 나이차로 보일 정도였다.


“......”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모습.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모습. 정은정 과장은 근 4년 전, 커뮤니티에서 떠날 때를 떠올렸다. 폭풍과도 같았던... 그날의 결투(duel)를.


* * * *


지금부터 약 4년 전, 1984년 2월 1일 수요일 09시 27분.

대전 중구, 충청지역 의기력자(볼리셔니스트) 공동체 「미림(美林)」 소속의 모(某) 검도장.


꽤 넓은 도장이었다.


나무로 된 마루가 쫙 깔린 바닥과 구석구석 쌓여있는 운동 도구들. 그리고 한쪽에 잘 정리되어 있는 죽도 등의 무구(武具)는 이곳이 검도장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대략 20~30명 정도의,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두꺼운 수련복을 입고 한쪽 구석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와중에 한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이렇게 해야겠어?”

“그럼 방법이 있어?”


정은정 과장의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뭔가를 말리는 아버지와, 고집을 피우는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애타는 말투로 부인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내가 당신 실력 모르는 건 아냐. 헌데 이건...”

“내가 질 거라고?”

“걔가 2년 동안 어떻게 살아온 지 잘 알잖아!”

“그렇기에 더 질 수 없어. 그리고 차라리 이 편이 나아. 어차피 걔 고집, 꺾기는 글렀으니까.”


어머니의 말이 끝난 때였다. 갑자기 검도장 한쪽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은정이었다.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표정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안광(眼光)은 마치 이글거리듯 명확히 정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술렁이던 검도장이 일순 조용해졌다.


그녀는 자르지도 묶지도 않아 길게 펄럭이는 머리를 나부끼며, 한발한발 검도장 안쪽으로 들어왔다. 의상도 수련복이 아닌 얇은 항공 점퍼에 흰색 면티, 청바지 차림이었다. 왼손에는 진회색 칼자루(Hilt)를 든 상태였다. 그걸 본 어머니의 표정이 험악해졌지만, 정은정은 아무런 동요 없이 검도장 중간까지 들어왔다.


그녀의 어머니가 한동안 정은정을 노려보다가 쏘아 붙이듯 말했다.


“결투야. 칼은 뭘 쓰는지 알지?”

“네.”

“받아.”


어머니가 손에 들고 있던 칼자루(Hilt) 하나를 그녀에게 던졌다. 도장 반을 횡단하여 날아온 도신이 정은정의 손에 잡혔다. 보통 1대 1의 「결투duel」에서 사용하는, 살상력은 별로 없지만 수련용보다는 파괴력이 높은 칼이었다.


일반적으로 칼의 파괴력은 레이어를 변화하는 것으로 조정이 가능했다. 법칙 절단 레이어는 그대로 둔 채 인체 절단용 레이어를 줄이거나 늘이는 식이었다. 레이어를 극단적으로 줄인 후 여러 개를 배치하면, 타격이 분산되어 인체에 가해지는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들고 있는 칼은 그보다는 절단력이 강한 물건이었다. 실검과 비교하면 딱딱한 목검 정도는 될 터였다. 이 정도면 고수들 싸움에서는 충분한 살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


도장 안의 모든 시선이 두 사람 사이로 날아들었다. 아버지도 이제는 포기한 듯, 고개를 저으며 뒤쪽으로 물러났다.


정은정은 점퍼를 벗은 후 대충 개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처음 가져왔던 진회색 칼자루를 올려두었다. 잔 상처부터 찌그러짐까지 보이는, 사용감이 가득한 물건이었다.


살 떨리는 정적이 가득 찬 도장이었다. 아마 공동체(커뮤니티) 운영 방향 대립으로는 처음으로 일어난 결투이리라. 커뮤니티의 두 축을 기업과 볼리셔니스트로 본다면, 어머니는 기업파(派)의 정점이었다. 반면 정은정은 볼리셔니스트파(派)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었다.


사실 예전부터 기업파(派)의 대두는 하나의 추세로써 자리 잡은 상태였다. 특히 최근 들어 그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존재 자체의 근간인 볼리셔니스트파(派)의 목소리 역시 작지는 않았다. 사회가 복잡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볼리셔니스트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전만능주의의 대두와 함께 볼리셔니스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장애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표막과 칼의 사용은 법칙 사용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 단계로써, 규칙적으로 일정시간의 수련을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칼과 표막 수련은 볼리셔니스트 정체성을 상징하는 행동이기도 했다.


문제는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상향됨에 따라 개인이 수련에 시간을 투자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전문 사냥꾼의 출현으로 돈으로 볼리셔니스트를 ‘살 수 있게’ 됨으로써 정체성 유지의 필요성이 점차 낮아지는 데에 있었다.


최근에는 극단적으로 볼리셔니스트 능력을 일종의 ‘몸에 일어난 이변’ 정도로 보자는 시선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극소수이긴 했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1983년 여름, 볼리셔니스트 수련 시간 단축을 놓고 내부적으로 극심한 충돌이 일어났다. 특히 1982년 유럽에서 귀국한 정은정을 중심으로 한 반발이 심했다. 그녀는 유럽에서 볼리셔니스트 범죄 집단의 준동과 그 폐해를 직접 목격한 당사자로, 전반적인 역량 약화를 불러올 수련 시간 단축에 크게 반대했다. 적어도 자체적인 「제재」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하지만 기업파(派)의 반대는 완강했다. 더구나 수련시간의 감소는 수련 대상인 볼리셔니스트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본인들이 원한다는 데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위협은 멀고 물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상황 앞에서는 어떤 말도 공염불에 불과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즈음하여 벌어졌던 「‘83 교류전(交流戰)」도 문제로 다가왔다. 이는 강(江)이 출범하고 전국단위로는 사상 처음 열린 커뮤니티 간 볼리셔니스트 대회였는데, 전반적인 질적 하락만 확인한 채 어수선한 분위기로 끝나고 만다.


볼리셔니스트파(派)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대회였음에도 지리멸렬한 모습만 보여줬던 것이었다. 특히 주최측이 보여준 혼란스러움은 여전히 커뮤니티간 통합이 멀었음을 보여주었다.(다만 이때 교류전에서 알았던 사람들 중 몇몇이 9국 2차 영입 인원이 됨)


“......”


이러한 상황에서 정은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먹고 살기 위한 돈이 우선인 세상이 너무나도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다가왔음을 알았다. 볼리셔니스트가 볼리셔니스트가 아닌 사회의 한 사람으로써 살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여름 이후 그녀는 큰 실망과 함께 반년 가까이를 방황하게 된다. 그 기간 동안 자신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무투파(武鬪派)의 정점으로써 오래된 냄새가 나는 역할을 맡게 된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또 하나를 깨닫는다. 이제 향후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다는 것도.


결국 중대 결심을 할 때가 왔다. 바로 커뮤니티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떠난 이후는 아무런 계획이 없던 상태였다. 그저 막연한 반발심에 대책도 없이 결심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강진을 만나게 된다. 당시 그는 9국 창립을 준비하며 볼리셔니스트를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세속 권력 혐오에 따라 그를 밀어냈지만, 진정성을 보이는 한강진의 설득에 차츰 넘어가고 만다.


마침내 자신과 이상이 비슷했던 이성진과 민혜림을 데리고 커뮤니티를 빠져나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아무런 페널티 없이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조직을 나가는 데에는 그만한 희생이 필요했다.


바로 ‘파문’이었다.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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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3화 : 상어(Agent Shark) (5-2) +2 20.03.16 72 1 10쪽
43 3화 : 상어(Agent Shark) (5-1) 20.03.16 69 1 11쪽
42 3화 : 상어(Agent Shark) (4-5) 20.03.15 68 1 9쪽
41 3화 : 상어(Agent Shark) (4-4) +2 20.03.14 78 1 13쪽
» 3화 : 상어(Agent Shark) (4-3) 20.03.13 79 1 11쪽
39 3화 : 상어(Agent Shark) (4-2) 20.03.12 83 1 11쪽
38 3화 : 상어(Agent Shark) (4-1) 20.03.11 72 1 9쪽
37 3화 : 상어(Agent Shark) (3-5) 20.03.10 73 1 9쪽
36 3화 : 상어(Agent Shark) (3-4) +2 20.03.09 78 2 11쪽
35 3화 : 상어(Agent Shark) (3-3) +2 20.03.08 92 2 10쪽
34 3화 : 상어(Agent Shark) (3-2) 20.03.07 88 1 10쪽
33 3화 : 상어(Agent Shark) (3-1) 20.03.06 83 1 9쪽
32 3화 : 상어(Agent Shark) (2-3) 20.03.05 84 1 9쪽
31 3화 : 상어(Agent Shark) (2-2) 20.03.03 86 1 9쪽
30 3화 : 상어(Agent Shark) (2-1) 20.03.02 85 1 11쪽
29 3화 : 상어(Agent Shark) (1-3) 20.03.01 90 1 15쪽
28 3화 : 상어(Agent Shark) (1-2) +2 20.02.29 103 1 10쪽
27 3화 : 상어(Agent Shark) (1-1) 20.02.28 107 1 12쪽
26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5-3) 20.02.27 100 1 14쪽
25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5-2) 20.02.27 87 2 12쪽
24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5-1) 20.02.24 106 1 12쪽
23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4-4) 20.02.23 94 1 13쪽
22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4-3) 20.02.22 120 1 16쪽
21 2화 : 봉산리 전투(Operation Venus) (4-2) 20.02.21 11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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