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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몽객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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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몽객
작품등록일 :
2012.10.09 07:48
최근연재일 :
2013.07.15 09:11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056,519
추천수 :
5,365
글자수 :
217,158

작성
13.05.26 03:42
조회
8,035
추천
37
글자
27쪽

고도만

DUMMY

청평산. 회남의 주요 길목중 하나로 상단과 표국의 이동이 빈번한 산적들에겐 목 좋은 자리중 하나였다.

청평산을 지배하는 청평채는 녹림72채중 한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강한 세력을 자랑하며 상단과 표국이 알아서 바치는 통행세 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수 있었다. 거기에 간간히 여행객이나 유민들을 놀려먹는 재미도 쏠쏠했고 특히 여인들은 길목을 지키는 산적들에게 좋은 먹이감이었다.

“대 대박이다……”

청평채의 부채주인 패왕신력 강웅은 입을 쩍 벌린채 작은 산길을 걸어오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미려한 자태와 아름다운 몸매는 보기만 해도 아랫도리가 뻐근할정도였다. 곁에서 빌빌 거리며 쫒아오는 곁다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흐흐흐 채주 이 병신새끼가 날 내친게 전화위복으로 돌아오는구나!”

청평채에서 강웅의 입장은 끈떨어진 연 신세였다. 녹림 총 본채에서 강웅이 줄을 대던 거력패도 마첨이 술먹고 난장질을 벌리다 우연히 만난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의 미모에 혹해 추근대다 같이있던 남궁세가의 소가주에게 패해 단전이 박살나면서 재기불능으로 변하자 총본채에선 남궁세가와의 분란을 우려해 마첨의 세력을 전부 가지치듯 쳐버렸다.

그 여파는 강웅에게까지 미쳐서 마첨의 가장 큰 숙적이던 귀곡검 사우의 세력에게 줄을 대던 청평채주가 강웅이 관리하던 노른자 구역을 전부 차지하곤 가장 인적이 뜸하고 쓸모없는 소로길을 강웅에게 맡겨버린 것이었다.

이미 사라져 버린 마첨을 욕하며 술로서 세월을 보내던 강웅에게 눈앞의 여인은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저 여자를 질릴때까지 맛보고 위줄에 상납하면 다시금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수 있었다.

허리에 검을 찬 모습으로 보아하니 어디 양가집 규수가 호신용으로 검을 배운거 같았다. 그리고 저 나이의 여검객은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 정의사회구현을 꿈꾸는 나이이고 산적들은 협객행의 제물이자 스쳐 지나가는 잡배로 여겨 방심할게 뻔한게 절정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자신의 무위와 일류급인 서른명의 부하들이면 무서울게 없었다. 실제로 산동의 정검문이란 듣도보도못한 문파의 제자라는 년이 똑같은 상황에서 깝죽거렸고 지금은 산채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저 여인은 그때 그 여자와는 비교도 안될정도의 미모를 자랑했다. 먹고 탈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이것저것 따지면 산적질도 못해먹는다. 먹고 죽어도 일단은 지르고 보는게 산적의 왕도다. 부하들도 기대가 되는지 음심 가득한 표정으로 여인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있는 남자놈은 호위무사인듯 했는데 비실거리는 폼이 한 대만 때려도 저승구경갈놈이었다.

“이리오너라! 청평산의 영웅이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뻔 했다! 그 죄는 몸으로 받도록 하마! 크하하하!”

“……”

뭐랄까 신선하기 까지 했다. 가감없이 음심을 드러내는 남자들의 모습에 약란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런 잔챙이들을 상대로 잔챙이들을 상대로 손을 쓰는것도 귀찮았다.

안내인삼아 데려온 곽일산에게 시키자니 그래도 인연이라고 비전의 수련법으로 훈련시키는 과정으로 내공을 금제해 놔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금제를 풀자니 이깟 산적놈들 상대하라고 한번밖에 사용 못하는 금제를 풀어주는것도 아까웠다. 거기다 일산 혼자서 상대하기엔 산적들의 무위가 생각보다 높았다.

“산적이라고?”

약란은 중얼거리며 힐긋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일산도 이제야 절정을 맛본 초입의 경지인데 일개 산적 두목으로 보이는 놈은 절정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무위를 가지고 있고 부하들은 죄다 일류의 경지에 올라 있다.

무기명 제자이면서도 일산이 절정의 초입에 이르렀기에 꽤 기특한 놈이라 여겼는데 산적이 깨달음만 있으면 초절정에 가까운 무위를 가질수 있는 무공을 지니고 있다니. 무림이 그정도로 발전했나 싶었다.

일산은 일산대로 사문의 사조님만 아니면 당장 도망치고 싶을정도로 악마같은 약란에게 음심을 품고 낄낄거리는 산적들이 미쳤나 싶었다. 처음 약란이 무공을 가르쳐 준다 했을때는 꿈에 부풀어 올랐다. 사조님의 의발전인 제자가 되면 검궁내에서의 직위도 올라갈테고 그렇게 되면 집안인 창검문을 크게 키울수 있다는 생각에 평소 갖고 있지도 않던 야망이 부풀어 올랐으나 단 일각만에 깨끗이 지워졌다.

내공을 폐하고 근육만을 이용해 수련을 빙자한 육체적 괴롭힘은 물론 신성경에 이른 고수가 살포시 살기를 담아 지그시 바라보는것만으로도 정신이 붕괴될 지경이었다.

“당장 멈춰라 이 나쁜놈들아!”

“잉?”

갑작스런 외침소리에 산적들은 물론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약란도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쪽을 바라보았다. 능선 끄트머리에서 가물가물한 한 점이 펄쩍펄쩍 뛰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뭐여 저놈은?”

“……”

강웅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달려오는 자를 바라보았다. 안구에 내력을 집중해야 겨우 보일정도로 가물가물한 한점은 빠르게 달려오다 잠깐 멈추고 또 이동하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

“……”

“늦잖아 이 멍청아!”

한 식경정도 지나서야 겨우 절반정도를 온 작은 점은 겨우 사람의 형체로 보였고 강웅은 호기심에 기다리다 성질을 못이겨 폭팔했다.

“당장 뛰어와 이 똥물에 튀겨버릴 자식아!”

“형님. 그냥 여자만 데리고 가죠?”

“시끄러! 이때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저자식 면상은 꼭 봐야겠다!”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강웅의 부하 한명이 넌지시 의견을 꺼냈다가 강웅의 성질머리에 찔끔하며 물러섰다.

강웅은 팔짱을 낀채 한쪽발을 톡톡거리며 소리친 남자가 다가오는걸 초초하게 노려보았다. 어느새 약란에 대해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약란은 그냥 갈까 생각해 봤지만 자신을 향해 음심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남자도 신선했고 다가오는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발목을 붙잡았다. 저 멀리서 소리 쳤다는건 자신들이 보였단 소리였다. 덩치만 큰 멍청이들은 눈치 못챈듯 했으나 절정고수도 안력을 돋궈야지만 겨우 식별이 가능한 거리였다.

그 정도 거리에서 이들을 발견하고 외친 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온것처럼 똑똑히 들렸다는건 보통의 내공을 가지곤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경공을 펼치지 못해 이동하는데 한식경이 넘게 걸리니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궁금해졌다.

일산이야 그저 쉴수만 있으면 그걸로 좋았다.

“……”

“저놈이 돼지야 사람이야?”

기가 차다는듯 힘빠진 강웅의 중얼거림에 걸맞게 식별 가능한 거리까지 다가온 남자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보통사람 세명분의 천이 들어갈거같은 옆으로 퍼진 덩치에 두툼한 살집은 뒤뚱거리며 뛰는 반동에 춤추듯 출렁거렸다.

땀은 비오듯이 흘러 몸에 걸친 천이 이미 푹 젖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착 달라붙은 옷이 걸거치는지 투박한 손가락으로 옷을 몸에서 떼어내지만 잠시뿐이고 다시 착 달라붙는다. 거기다 등에 진 커다란 금속궤짝은 남자의 엉덩이에서부터 머리위 한팔 길이정도의 높이에 한팔 반 정도의 길이는 궤짝이 아니라 장롱을 지고 있는것 같았다.

강웅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꾹 눌러참은채 돼지인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저 비명소리대신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뱉을것 같은 놈을 될수있으면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버리면 자신의 기세에 눌린 여자가 겁을 먹고 고분고분 해질거란 일말의 기대마저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런 기대가 없었다면 여태껏 기다리지도 않았다.

“오느라 수고했다. 돼지새끼야.”

“크허억! 허억. 허억.”

“감히 청평산의 영웅인 이 패왕신력 강웅님을 기다리게 한 죄는 죽음으로 값아야 한다는걸 알게 해 주마.”

“크헤엑. 웨엑! 콜록, 콜록,”

“……그 커다란 물건을 들고 다닐정도면 꽤 쓸만한게 들어 있을거 같은데 좋은데 쓰도록 하지. 무게도 꽤 나가는거 같은데 그런대로 힘에 자신있나보군.”

“허억, 허억,”

“이 몸은 강호의 동도들이 패왕신력이라 별호를 지어줄 정도로 힘 하나면 누구한테도 안질 자신이 있지. 네놈도 힘좀 쓴다 하는 놈이면 내 별호 정도는……”

“크웨에엑! 아이구 죽겠다.”

빠직! 강웅은 마빡에 혈관이 튀어나올 정도로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저 돼지새낀는 고거 뛰었다고 힘든지 사람말은 듣지도 않은채 양손을 무릎에 얹고는 미친듯이 헉헉거렸다.

“얼씨구?”

급기야는 못 버티겠는지 바닥에 발라당 드러 누웠는데 등 뒤에 멘 궤짝이 쿵! 하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먼저 쓰러지고 돼지는 땅에 닿지도 않는 발을 바동거리며 끙끙거리다 간신히 어깨의 끈을 풀어 궤짝에서 벗어나곤 이제야 살겠다는듯 땅바닥에 널부러진채 하늘을 올려다 보며 높이 솟아올라 녹아 내리는 얼음처럼 중력의 법칙에 의해 끌려 내려오는 뱃살위에 두툼한 손을 올려놓고는 금세라도 죽을듯이 가쁜 숨만을 내쉬었다.

가관도 아닌 돼지새끼의 모습에 당장 조져버릴까 하다가 땀과 흙먼지로 뒤범벅이 된 더러운 살덩이에 차마 손대기가 꺼려져 강웅은 한숨을 푹 내쉰뒤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영업부터 하자. 저 새끼 짐부터 뒤져봐. 쓸만한거 나오면 그냥 보내 주자고.”

강웅의 명령에 서열상 가장 막내부터 위로 네 번째까지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서더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돼지의 근처를 빙 돌아 궤짝으로 다가갔다.

“이익! 이거 무거워서 들리지도 않는데요?”

잠시 궤짝을 들어보려던 막내 산적은 궤짝이 꿈쩍도 하지않자 질린다는듯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그 사이 여러개의 층으로 나뉜 궤짝의 문중 하나를 열어본 산적 하나가 소리쳤다.

“뭐야 이거? 먹을거잖아?”

간단하게 먹을수 있는 만두와 건포, 다과류등이 칸칸이 나뉘어진 하나의 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라 여기도 먹을거네?”

두 번째 문을 열자 갖가지 훈제된 고기류들이 가득 싾여있었다.

“……여기도?”

세 번째 문을 열자 말린 생선들과 소금에 절여진 생선들이 가득 싾여 있었다.

“설마……”

네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종류의 채소류와 향신료, 조미료들이 이름표가 적힌 자기병에 담겨 칸을 꽉 메우고 있었다.

“이 미친새끼! 두목! 이거 전부 먹을꺼밖에 없는데요?”

“……뭐?”

“우와! 이정도면 우리 조 한달치 식량정도 되는거 같은데?”

궤짝을 전부 열어본 산적들이 감탄 아닌 감탄을 터트리며 질린다는듯 돼지를 쳐다보았다.

강웅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갑자기 선녀가 나타난것까진 좋았는데 웬 돼지새끼도 튀어나오니 오늘 재수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알수없었다.

“야! 넌 뭔데 식량을 저렇게 많이 가지고…… 자지마 이 새끼야!”

기가찬 표정으로 바닥에 드러누운 돼지를 향해 말하던 강웅은 작게 코를골며 어느새 잠에빠진 돼지의 모습에 벌컥 소리질렀다.

“풋!”

약란은 정말 오래간만에 튀어나온 웃음에 스스로도 놀랐다. 한편의 경극을 보는듯 했다. 약란의 웃음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강웅은 헛기침을 하며 애써 태연한 모습으로 약란을 향해 말했다.

“험험 추한꼴을 보였구만. 저 자식은 신경쓰지말고 일단 우리사이의 볼일을 먼저……”

“드르렁!”

“죽어라 돼지 새꺄!”

자신의 말을 끊어버린 돼지의 코골이에 강웅은 볼살에 파묻힌 얼굴을 향해 권풍을 내질렀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수에 얼굴이 함몰되어 버릴정도로 강력한 내기가 담겼다.

약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강웅의 살의가 담긴 권풍을 살짝 손을 흔들어 경력을 해소했다. 요즘 산적들이 권풍을 뻥뻥 날린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했지만 자신에겐 어린애 주먹질에 불과했고 오랜만에 웃음을 준 저 뚱뚱한 남자가 죽는모습을 보기는 싫었다.

“……”

강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웅은 똑똑히 보았다 손짓 한번 만으로 자신이 내지른 권풍의 경력을 해소시킨 여인의 한수를. 아니다 다를까 얼굴을 뭉개버릴 작정으로 내지른 주먹인데 쿵! 하는 소리만 컸지 바위조차 부숴버릴 강력한 일격이 아니었다.

“헉! 뭐야?”

깜박 잠들었다 깼는지 뚱뚱한 남자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는 몸을 일단 뒤집고 양팔로 힘주어 상체를 일으키고 무릎을 끓어당겨 몸을 지지하고 한쪽 무릎을 세워 한쪽 팔로 지지대 삼아 영차! 하는 기합과 함께 비틀거리며 딴에는 벌떡 일어났다.

“참…… 지랄을 한다.”

기도 안차는듯 그 모습에 자신의 경력이 약화돼었단 사실마저 잊어버린채 강웅은 띠꺼운 표정으로 남자를 향해 말했다.

“넌 대체 정체가 뉘슈?”

강웅의 말에 뚱뚱한 남자는 감격한 표정으로 눈물마저 글썽거리며 외쳤다.

“이럴수가! 한번에 일어났다!”

“……”

“역시 사람은 하면 안되는게 없구나! 사부님의 가르침은 틀린게 없다니까!”

자신의 말을 살포시 씹어먹은채 감개무량한듯 뿌듯해 하는 남자를 향해 으드득! 한차례 부서져라 이빨을 간 강웅이 분노의 고성을 터트리려 할때 갑자기 남자의 고개가 획 강웅을 향해 돌려졌다. 눈을 마주치자 얼떨결에 입을 다문 틈을 타 남자가 강웅보다 먼저 소리쳤다.

“야 이 나쁜놈들아! 어디 할 일이 없어서 백주 대낮에 가녀린 여인을 희롱하려고 하다니!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산적도 아니고 팔다리 멀쩡하겠다. 열심히 일해서 노후를 준비해야지 벌써부터 놀기만 하면 나중에 늙어서 뼈저리게 후회한다고!”

“그렇지…… 일해야지. 말잘했다. 내가 잠시 본업을 깜빡했군.”

남자의 말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던 강웅은 남자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리더니 등 뒤로 고개만 돌려 정렬해 있는 부하들에게 흘깃 바라보곤 턱끝으로 남자를 향해 까닥이며 말했다.

“얘들아 조져버……”

강웅은 말을 끝까지 이을수 없었다. 순식간에 피가 차가워 지고 등골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돼지새끼는 신경쓸 가치도 없다. 하지만 돼지가 보호하듯 가로막고 선 오랜만에 걸린 좋은 먹잇감이라 여겼던 그 여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제서야 여인이 자신의 경력을 해소 시켰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허공에 한치가량 몸이 뜬 상태로 주위엔 셀수도 없이 많은 기검의 검끝이 당장이라도 자신의 몸을 꽤뚫어 버릴듯이 노려보고있었다.

‘제 젠장! 똥밟았다. 기검을 하나만 만들어도 초절정 고수소리를 듣는데 저정도 숫자를 만들고도 눈썹하나 꿈쩍 안하다니! 반로환동한 여고수였나?’

내공을 배출해 허공에 기의 검을 만들어 의지대로 조종하는 기검술은 무형검의 경지중 하나였다. 보통 초절정의 경지에든 고수들이 만들어낸 무형검은 화살처럼 쏘아보내는게 일반적이었다. 무형검을 이기어검술처럼 의지대로 조종할수 있는자는 강웅이 알기로 무림에서도 명문대파의 수장급들밖에 없었다.

이기어검이든 무형검이든 상대가 안된다는건 똑 같으니 저 만들어낸 기검들을 조종하든 그냥 화살처럼 쏴 버리든 막을 방법 자체가 없었다.

강웅도 어떻게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부으면 하나 정도는 막아낼 자신이 있었지만 이미 숫자에서부터 지고 들어가니 말 그대로 재수없이 똥 밟은거였다.

강웅의 잔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살기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일단 저 돼지는 논외로 치고 마찬가지로 입을 쩍 벌린채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비실이는 별 가치 없다 느껴 무시하고 돼지의 등 뒤에서 압도적인 무력시위를 한다는건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살 길이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웅은 산이 무너지는듯한 기세로 넙북 바닥에 오체투지 하며 외쳤다.

“아이고 대협!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개과천선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어울리듯 눈칫밥 먹으며 업계에서 버텨온 강웅의 부하들도 넙죽 엎드리며 약란이 아닌 남자에게 한 목소리로 용서를 외쳤다.

그 모습이 이상할만도 한데 남자는 의심도 안드는지 감격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면서 외쳤다.

“아! 역시 사부님의 말씀이 맞구나! 사부님! 사부님께서 남기신 유언대로 이 제자! 대 협객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조아리던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는 강웅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이딴 놈에게 무릎 꿇고 아부를 떨어야할 신세가 될줄은 몰랐다. 강웅은 진심으로 산적질을 그만둘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대 사부님의 유언이 뭐지?”

약란도 힘이 빠졌는지 띄어놓았던 기검을 모두 지워버린뒤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남자를 향해 물었다. 강웅은 혹시 허울만 좋은 위력시위였나 싶어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가 서늘한 약란의 시선과 마주치자 찔끔하며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좋은 질문이오! 사부님께선 이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오! 제자야! 이제 세상으로 나가 대협객의 길을 걸어가라! 너의 말 한마디를 무시할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단다! 라고 말이오! 그래서 난 사부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협객의 길을 걷기로 맹세했고 그 첫걸음이 바로 소저를 구하게 되는 것이었다오!”

‘지랄한다……’

낯간지럽고 어색한 말투에 닭살이 돋으면서 엎드려 있던 산적들이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대체 저런놈을 밖으로 내보낸 사부란 작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보아하니 칼좀 잡고 떠돌던 삼류 낭인이 은퇴할 즈음 뒷수발들 순진한놈 하나 꼬셔서 제자 삼은거 같았다. 자신들이 절세의 신공을 전수받은줄 알고 깝죽거리다 깨지곤 징징거리는 모습을 많이 봐왔으니 딱 줄거리가 잡혔다.

그래도 그렇지…… 저 몸매는 너무했다. 칼밥먹고 살겠다는 놈이 관리 안된 몸매를 가지는건 죽어도 할말이 없는 거였다.

남자는 히죽 웃으며 딴에는 멋들어지게 한다지만 남들이 보기엔 꼴불견인 포권을 취하며 약란을 향해 말했다.

“인사가 늦었소이다. 소생은 고씨성에 도만이란 이름을 가진 고도만이라고 하오.”

“……주약란이다.”

약란은 자신이 이름을 밝힐필요가 있을까 찰나지간 고민했지만 이미 세상은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린지 오래였기에 상관없다 여겼다.

“아! 전 창검문의 소문주 곽일산……”

“이놈들! 이제는 죄를 뉘우치고 똑바로 살아야 한다! 개과천선해서 새 사람이 되라고!”

깨끗이 씹어버리는 고도만의 태도에 일산은 포권을 취하던 모습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충격을 먹은듯한 모습에 약란도 살짝 불쌍해질 정도였다. 그런 곽일산은 무시한채 협객이라도 된것마냥 일장훈계를 늘어놓는 고도만의 외침에 산적들은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건성으로 예예 거렸다. 필사적으로 빌고 싶은 마음도 안생기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그때 약란의 눈초리가 살짝 올라가며 고개가 약간 기울어지자 본능적인 위험신호를 감지한 강웅이 도만을 향해 감사의 마음을 담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연신 절을했다.

“아이고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먹고 살려니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집에는 병든 노모와 배곯는 자식놈들이 제가 돌아오기만을……”

“뭐라고!”

갑작스런 도만의 외침에 강웅은 자신이 뭔가 잘못한게 있나싶어 찔끔한 표정으로 도만의 눈치를 살피며 내뱉은 말을 하나 하나 곱씹어 봤지만 도무지 도만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말이 있었는지 찾을수가 없었다.

얼굴을 새 빨갛게 물들이고 온몸으로 분노를 표현하듯 살점들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불끈 쥔 두 주먹을 따라 굵은 땀방울이 비오듯 떨어졌다.

그 모습에 이유를 모르는 강웅만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뒤에 있던 약란도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차가운 시선으로 강웅을 압박했다.

병든 노모와 자식들, 그리고 다음에 두고보자는 전형적인 산적들의 대사였다. 거기에 트집이 잡힐만한건 없는데 저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분노를 표하는 이유를 알수가 없었다.

이유를 알수없는 부담감 가득한 정적이 흐르고 새소리마저 사라진 조용한 산길에서 도만이 몇 번이고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뻐금거리다 다물며 고민하는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도만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이다 한숨을 푹 내쉬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배가…… 고프면 안되지……”

“……”

뭔소린가 싶어 다들 멍청하게 바라보는데 도만은 축늘어진 힘빠진 모습으로 바닥에 놓인 궤짝을 향해 다가가더니 주섬주섬 음식들을 꺼내는데 간간히 음식이 아닌 책자나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도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저 많은게 어떻게 들어갔나 싶을정도로 꺼내놓은 산더미 같은 음식을 멍하니 바라볼때 도만이 자식을 버리는 부모의 심정처럼 떨리는 음성으로 울먹이며 강웅을 향해 말했다.

“굶으면 안되…… 이거 먹어라……”

“……아 예. 가 감사합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강웅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침울한 표정으로 궤짝을 세운 도만이 땅에 널부러진 음식이 아닌 물건들을 주섬 주섬 궤짝 안으로 쑤셔 넣는데 마지막으로 집어든 물건이 미끄러지며 엎드려 있는 강웅의 눈 앞에 툭 떨어졌고 강웅은 자신도 모르게 와락 책을 움켜잡고는 경악성을 터트렸다.

“허억!”

“응?”

갑작스런 외침에 도만이 의아한듯 고개를 돌려 강웅을 바라보았고 도만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멍하니 있던 약란도 강웅의 시선을 따라 책자를 확인하곤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이…… 이건!”

“움? 이거 알아?”

강웅은 믿을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리며 자신이 쥐고 있는 보물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대체 저 돼지새끼가 어떻게 저걸 가지고 있는지. 아니 정말 자신이 생각하는 그 물건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화산의 자하신공……”

강웅의 말에 부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재앙의 혼란기때 실전된 화산의 비급. 자하신공이 뜬금없이 돼지새끼의손에 들려있다니. 믿을수 없는 일이었다. 도만은 강웅이 물건을 알아보는듯 하자 활짝 웃으며 반갑다는듯이 강웅에게로 다가갔다.

“오! 다행이다! 사부님이 원 주인한테 돌려 주라고 그런건데 난 누구껀지 몰랐거든. 혹시 이건 누구껀지 알아?”

강웅이 궤짝에서 꺼내 눈앞에 내미는 물건을 하나 하나 확인하며 강웅은 홀린듯 중얼거렸다.

“아미의 난피풍검, 청성의 대라신공, 헉! 이건 당문의 폭우이화침! 이거는 제갈세가의 천변만화진 주해서! 황보세가의 벽력신공!”

물건을 확인할 때 마다 탄성을 터트리던 강웅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며 울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강웅의 목소리를 듣던 부하들의 안색도 점점 질려갔다.

“종남의 태을 분광검, 남궁세가의 제왕검형, 곤륜의 운룡대구식, 소 소림의 연대구품, 달마삼검, 대 대환단까지……”

“이건?”

“무 무당의 태극혜검에 태 태청신단, 천마신교의 천마군림보, 배교의 환마록, 혈교의 불사혈신대법, 검궁의 개천폐검……”

강웅의 입에서 검궁의 비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약란의 인상이 찌푸려 졌다. 개천페검은 열린 하늘을 닫는다는 뜻의 검궁주만이 배울수 있는 절예였다.

“와! 대단하다! 난 누구껀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

고도만이 순수하게 감탄사를 터트리며 놀라워했지만 강웅은 놀라움을 넘어서 두려울 지경이었다. 만약 진짜라는 가정하에 저 돼지놈이 들고있는 물건중 단 하나만 세상에 풀리면 혈겁이 일어날 정도로 엄청난 보물중에 보물이었다. 각 문파의 비전절기는 물론 무인이라면 누구나 다 바라는 내공을 증가지키는 신단까지 가지고 있으니 걸어다니는 보물창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구나 궤짝안의 물건중 반의 반도 꺼내지 않았던걸 생각해 보면……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보물도 감당할 만큼 봐야 욕심이라도 품을텐데 이거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앗!”

약란이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고도만이 들고있던 검궁의 비급을 낚아채자 도만은 놀란듯 소리치더니 곤란하단 표정으로 약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소저. 사부님이 그건 다른사람한테 절대로 보여주지 말라고 그랬는데……”

“……”

“허험…… 저기 낭자.”

어울리지 않는 헛기침까지 하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하지 못한채 약란에게 비급을 돌려달라고 매달리는 동안 강웅은 갈등해야만 했다. 손만 뻗으면 취할수 있는 보물이 눈앞에 있고 수는 우리가 더 많다. 눈 딱감고 해 치워? 말아?

탁! 지은죄가 있어서인지 귓가에 크게 울려퍼지는 책 덮는 소리에 강웅은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고 약란이 도만에게 비급을 넘겨주자 도만은 헤헤 웃으며 비급을 궤짝 안에 집어넣었다.

“진짜 개천폐검이군.”

검궁의 궁주였던 약란이 궁주만이 수련할수있는 개천폐검을 모를 리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글자 하나 하나까지 확인해 봤으나 모든 글귀가 정확했다. 제자를 두지 않은 자신이 가장 쓸만한 후배에게 궁구직을 넘겨줄때 보탬이 되라고 적어놓은 주석이 없는걸로 봐선 사본인듯 했다.

“헉! 진짜 개천폐검입니까? 실전됐다는 검궁의 절기인 그 개쳔폐검?”

곽일산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치자 약란은 싸늘한 표정으로 일산을 노려보았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군.”

“응? 진짠지 가짠지 소저는 어떻게 아는거요?”

도만이 의아한듯 묻자 약란은 도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부가 그 물건들을 원 주인한테 돌려주라고 했다고?”

“그렇소이다 소저.”

약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던 도만이 헛기침을 하곤 근엄한 태도를 취하며 말했다.

“그럼 가자.”

“음? 어디로 간단 말이오 소저?”

“그 물건의 주인들은 내가 다 알고 있다. 그중 제일 가까운곳에 있는 주인이 검궁이다.”

“진짜?”

“그렇다.”

“그럼 빨리 가지!”

도만이 낑낑거리며 궤짝을 등에 둘러메자 아쉬운지 강웅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 저기……”

“응?”

“……조심해서 가십시오.”

어떻게 콩고물이라도 얻을수 있을까 말을 꺼내려던 강웅은 꿈도 꾸지 말라는듯한 약란의 서늘한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숙일수밖에 없었다.

“험험!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 그리고…… 구 굶지 말고.”

고도만이 나름 훈계섞인 일갈을 내 뱉고는 약란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약란이 움직이자 바짝 쫄아버린 산적들이 냉큼 고개를 조아렸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빼꼼히 고개를 치켜든 강웅은 음식에 얼마나 미련이 남는지 한걸음 걷다 돌아보고 두걸음 걷다 돌아보는 도만의 모습에 안먹어! 가져가 새꺄! 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같이 돌아보는 약란의 눈빛에 찍소리도 할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도만과 약란의 모습이 일산과 함께 능선에서 사라지자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힘빠지고 허탈한 표정이으로 대장인 강웅의 눈치만 살폈다.

모욕도 아니다. 굴욕도 아니다. 그저 똥밟았다 생각하고 재수없는 하루였다 여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이 알수없는 억울함과 울화통이 울적하게 만들었다. 눈을 감으면 보물들이 아른거렸다.

“술 꼬불쳐온 놈들 갖고와라. 밥이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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