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유로비트의 서재입니다.

내 각성의 주문이 이상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완결

유로비트
작품등록일 :
2023.02.04 13:57
최근연재일 :
2023.07.09 12:54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23,296
추천수 :
472
글자수 :
944,177

작성
23.05.07 07:50
조회
76
추천
2
글자
14쪽

95. 주문의 주인

DUMMY

설단은 다시 종이를 가져가더니 뭐라고 쓱쓱 써 내려갔다.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뭐... 건강 신경 쓰세요.”


넘어가려던 베르가 ‘아’하고 뭔가 생각해 냈다.


“그... ‘주’를 따르던 사람들... 안 죽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설단의 표정이 ‘왜?’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페이가 그러는데... 각성계에는 불멸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라던데요?”


갑자기 설단이 재빨리 종이에 뭘 쓱쓱 써서 보여줬다.


‘그럼 악마는?’


“그것도 아마 안 죽었을 거라더군요. 간섭력만 빼앗겼을 거라던데요.”


설단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런 거라면 나한테 묻지 그랬어? 나도 알고 있던 건데.”


옆에 있던 머콘이 말했다.


“그러면... 그럼 지금까지 목숨 걸고 발버둥 쳤던 게 너무 우스워지는 거 아닌가요...?”


각성계에 맞서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 각성계에 들어가서 악마를 상대하던 그때를 기억하는 베르 입장에서는 좀 어이가 없긴 했다.


“각성자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던 게 상대에게는 그냥 잠깐 주저앉은 정도라니...”


“그 정도는 아니고.”


머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각성계에는 현실계처럼 시간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보니... 공과를 쌓는 게 쉽지는 않아. 한번 공과를 잃어버리면 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지.”


“나락으로 떨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데요?”


“신이 되기 위한 존재들이 그 존재가 미미해지면 어떻게 되겠어.”


문득 의문이 들었다.


“... 그럼 저도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인가요?”


적어도 알베르트는 각성계의 왕이었고, 베르테르는 각성계의 왕을 이어받았다. 자신도 각성계의 일부라고 볼 수 있는 걸까?


“그건...”


머콘은 대답하지 못했다.


“죽지 않는다는 건... 스스로 죽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겠죠?”


베르는 그제야 자신에게 주어진 제약을 깨달았다. 한 번은 죽음을 ‘선택’해서 도망쳤던 이에게 그 선택지를 없애버렸다는 것을.


그때 커다란 손이 베르의 어깨를 잡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설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가를 말하려던 그는 자신의 목상태를 깨닫고 다시 종이에 뭔가를 썼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사실 그게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이었다. 지금의 베르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았다. 싸워야 했던 악마는 없는데 페이와 함께 알베르트의 힘을 얻었다.


그래비티로 활동하는 것도 싫지 않았다.


설단이 다시 글을 슥슥 썼다.


‘발버둥 치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는 거고.’


사실 자신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이미 잃어버렸다.


베르, 아니 진현우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 그게 목적이었다.


“... 이제는 뭘 위해서 발버둥 쳐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요.”


딱!


“아야!”


고개를 들어보니 이춘봉이 혀를 차고 있었다.


“젊은 놈이 잘하는 짓이다. 한다는 소리가 그렇게 기운 빠진 소리 밖에 안 나와?”


“... 언제 오신 거예요?”


“잠깐 바람 좀 쐬고 온 것뿐이다. 뭐 묏자리라도 보러 갔다 온 줄 아냐?”


박만운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자리가 부담이라면 자리를 생각하지 말고 너 자신만 생각해도 된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으냐?”


“저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왜? 가족들이 다 안 좋게 되었으니 너도 따라가게?”


“...”


사실 베르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분명히 자신의 성향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정도로 가족을 아꼈는데 왜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걸까?


이춘봉이 자리에 앉았다.


“단이한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꽤 오래전에 로테의 친구였다. 뭐 안타깝게도 네 녀석이 죽은 이후에 친해진 친구들이지만.”


설대표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게 지금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이유가 될 순 없지. 지금 이 삶은 내가 결정한 것이다. 나는 각성자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스트루프를 앞에 놓고 내가 버티고 버텨서 지금에 이르렀지.”


이춘봉은 베르를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검을 좋아한다. 총과 최첨단 무기들이 있는 이런 시대에 나는 아마 쓸모없는 위험한 인간이었을 수도 있지.”


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어쩌면 수많은 악마를 베어왔다는 것은 사람을 베어온 것과 크게 차이가 없을 수도 있었다.


“이제 와서 부정해 본들 내가 걸어온 길은 변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자기기만이겠지. 그런데 자기기만이면 어떠냐?”


이춘봉이 웃었다.


“나는 어차피 타인을 굳이 살피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많지 않아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누가 뭐라 할 일이 거의 없지.”


“그건...”


“불쌍한 취급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래서 더 뚜렷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특별한 제약이 없으니까.”


베르는 입을 다물었다.


“베르야. 네가 누구에게 무엇을 건네받고 짊어졌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거야. 누구에게서 받은 걸로 네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건네받은 것이 도저히 짐작도 가지 않는 것이라서 그렇게 쉽게 안 되는 데요...


“그럼 하나씩 부딪혀 봐라. 이번에 공연을 해본 것처럼 말이다.”


“그건 내가 도와주지.”


로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각성계를 갔다 올 때가 된 것 같아.”


-----------------------------------


로테와 둘이서 어딘가를 간다는 게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게 이전에 벤더 일파의 수장이었던 리마라는 이야기죠?”


“말고도 좀 더 만나게 될걸.”


로테는 베르를 힐끗 쳐다봤다.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솔직히 네가 페이를 꺼내서 보내주기만 해도 기겁할 사람들도 많으니까.”


“알베르트의 악명 같은 건가요?”


“아니. 알베르트는 악명 같은 걸 떨칠 타입은 아니었어.”


베르는 마지막이 아니라 초창기에 꿈에 나오던 알베르트의 모습을 떠올리면 악명이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중2병 수준이었는데...”


“뭐가?”


“아. 알베르트의 자신감? 자존감? 뭐 그런 게 거의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라 만난 상대가 어이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로테는 그걸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 각성 주문이라면서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지?”


“...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로테의 동생들도 전부 다 외워야 했거든요?”


베르는 자신의 주문을 떠올리자 움찔했지만 나름의 변명을 했다.


“그 주문은 누가 만든 거야?”


“만든 사람은 모르고... 바넘이 알려줬어요. 각성명이랑 함께.”


“... 각성 명이면 전생의 이름 말인가?”


“... 그렇죠?”


“그렇다는 얘기는...”


로테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왜 그러죠?”


“모든 각성명에 맞춰서 정해진 주문이 있다는 것은 특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겠지. 그런데 바넘을 통해서 그걸 전달했다면... 누가 이런 세팅을 맞춘 거지?”


“알베르트 아니었어요?”


“알베르트는 바넘을 몰라.”


“그럼...”


‘로테밖에 없잖아요’라는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당사자가 앞에 있으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걸 외우면 각성 능력이 풀려나는 거였지?”


“네.”


“스트루프를 뚫고 원래의 기억을 불러올리지 않아도 말이야.”


“네.”


로테의 질문이 멈추고 로테는 다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각주만 세팅해 놓은 게 아니었나? 신이 그쪽으로 세팅을 했으면 나한테도 손을...”


로테는 자신의 상태를 생각해 보니 신이 딱히 손을 쓰지 않아도 이미 동생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망가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로 당한 건가...”


“네? 뭐가요?”


로테는 이걸 베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망설였다.


“... 신이 세팅했으면 저한테 페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주문 같은 걸 주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주문이 나를 컨트롤하는 건 아니야.]


“깜짝이야...”


로테가 베르를 쳐다봤다.


“아. 페이가 말을 걸어서...”


“그거 말이야. 알베르트도 페이랑 뭔가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거든?”


“엥? 진짜요? 그럼 의사소통을 어떻게 했는데요?”


“아마 페이가 왼팔에 자리 잡기 전이 었겠지.”


[맞아.]


“... 그럼 나랑은 어떻게 대화하는 건데?”


[주문의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


그 주문에 뭐가 있다고?


[아무나 너와 똑같은 주문을 외운다고 능력이 생기진 않잖아? 이건 누군가가 너에게 무언가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설정해 놓은 게 맞아.]


“알베르트는 아무 말 없었고... 베르테르는 모르는 것 같았는데... 그럼 누가?”


[무슨 소리야. 이 주문은 ‘진현우’ 너를 위한 거겠지.]


“어?”


[베르 너에게 붙어있는 베르테르와 알베르트는 주문이 따로 필요 없어. 주문이 필요한 건 진현우 너 하나다. 이 주문을 만든 사람은 진현우 네가 알베르트의 힘을 이어 나를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지.]


멍하니 듣고 있으니 로테가 기다리다가 말을 걸었다.


“뭐라고 했길래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 각성의 주문은 진현우를 위한 거고 베르테르나 알베르트를 위한 게 아니라고 하네요.”


“그렇겠군. 그럼 알베르트가 자신이 치고 나오기 위해서 준비한 건가?”


그러고 보면 각성상태일 때 알베르트가 나오기 더 편하긴 했는데... 각성 같은 거 안 했을 때도 몽유병처럼 나오지 않았나?


[알베르트는 아니다. 다른 존재가 개입한 거겠지.]


“... 그럼 신 밖에 없잖아.”


개입할 다른 존재는 계약의 다른 당사자뿐이었다.


“나를 각성시키면 본인한테 유리할 게 있나?”


“... 알베르트는 아니라고 했나 보군.”


그러고 보면 베르는 자신의 안에 알베르트와 베르테르가 있다고 하는데 이상하리만큼 진현우로서의 자아가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었다.


“지금 제가 진현우로 있을 수 있는 게 혹시 각성 주문의 영향은 아닐까요?”


“... 그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군.”


페스와 티그가 생각났다.


티그는 자신의 과거에 힘들어했고, 페스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리고 알베르트와 베르테르의 기억을 짊어진 현우가 그 무게를 버텨내는 것을 대댠하다고 평가했다.


“일단 이제 각성계로 들어가면 바로 근처에서 각성계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가 보기로 하자. 알베르트에게는 익숙한 곳이지만 너에게는 어떨지 모르겠군.”


로테와 베르의 앞에 자연스럽게 공간의 일렁임이 생겨났고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들어갔다.


-----------------------------------


“각성계의 왕이시여.”


상대방이 부르는 호칭부터 이미 베르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각성계의 귀환을 환영하오.”


“... 감사합니다.”


베르의 짧은 대답일 뿐이었지만 상대방이 눈을 빛냈다.


“적어도 알베르트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 구려.”


“떠보는 짓을 할 생각인가?”


로테가 상대의 말을 잘랐다.


“그런 것은 아니니 무례를 용서하시오. 하지만 우리가 대화를 하는 데 누군지도 모르고 대화를 한다면 우스운 일 아니겠소?”


“... 저도 당신이 누군지 모르는데요?”


상대가 움찔했다.


“실례했군. 나는 벤더 일파를 끌고 있는 리마라고 하오.”


사실 베르는 리마를 멀리서 본 적이 있어서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저희 벤더 일파의 사람들이죠.”


“아닌 사람도 하나 보이는데?”


로테의 시선 끝에 그을음이 앉아있었다.


“일단 우리도 벤더와 뜻이 크게 어긋나지 않으니 같이 합석해도 괜찮겠지요?”


“적어도 벤더에서는 묵인했다는 뜻인 거지?”


리마는 떨떠름하게 인정했다.


“우리 벤더는 뜻이 같다면 그렇게 막혀있는 집단은 아니오.”


“뭐 그렇다면야.”


로테는 수긍하고 자리에 앉았다. 로테는 베르를 옆자리에 앉혔다.


“예전 생각이 나는군요. 왕과 왕비가 나란히 앉아서 저희를 맞아 주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 약간은 의심이 가는 건가?”


“설마요.”


로테는 베르를 흘끗 봤다. 베르가 페이를 꺼내는 것으로 충분할까?


“... 좋아. 예의를 표하겠다.”


그 순간 베르는 옆에서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돌아봤다.


빠져들어갈 것 같은 검은 눈, 금발의 천사가 거기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각성의 주문이 이상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9 98. 워너비 아이돌 23.05.10 74 2 15쪽
98 97. 완벽의 기준 23.05.09 77 2 13쪽
97 96. 왕이 되는 순간 23.05.08 74 2 13쪽
» 95. 주문의 주인 23.05.07 77 2 14쪽
95 94. 조건 불만족 23.05.06 82 2 15쪽
94 93. 멸망의 조건 23.05.05 88 2 14쪽
93 92. 현실 적응 23.05.04 82 3 12쪽
92 91. 공과 업 23.05.03 89 2 13쪽
91 90. 비선형 역학 23.05.02 86 2 14쪽
90 89. 대답할 수 없는 질문 23.05.01 85 2 14쪽
89 88. 괴리 23.04.30 89 2 13쪽
88 87. 인과 23.04.29 80 2 13쪽
87 86. 운명의 이끌림 23.04.28 91 3 14쪽
86 85.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23.04.27 96 2 13쪽
85 84. 기억의 조각 23.04.26 99 3 13쪽
84 83. 셋 중의 하나 23.04.25 99 2 13쪽
83 82. 왕의 기억(3) 23.04.24 95 2 14쪽
82 81. 왕의 기억(2) 23.04.23 98 2 12쪽
81 80. 왕의 기억(1) 23.04.22 99 2 14쪽
80 79. 거래의 성립 +1 23.04.21 91 2 12쪽
79 78. 전쟁의 핵심 23.04.20 95 3 13쪽
78 77. 선전포고 23.04.19 100 3 13쪽
77 76. 돌고 돌아 제자리? 23.04.18 99 3 14쪽
76 75. 맹약의 대상자들 23.04.17 101 3 14쪽
75 74. 리셋 23.04.16 106 3 14쪽
74 73. 각성자 아이돌 23.04.15 109 3 14쪽
73 72. 인질 23.04.14 103 3 14쪽
72 71. 왕의 유산 +1 23.04.13 108 4 14쪽
71 70. 함정인가? 23.04.12 105 3 14쪽
70 69. 각성자 게임 23.04.11 105 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