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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본 님의 서재입니다.

통 큰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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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본
작품등록일 :
2021.08.14 07:55
최근연재일 :
2022.02.11 05:58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8,058
추천수 :
206
글자수 :
604,752

작성
21.09.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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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추천
2
글자
12쪽

<24> 하동리는 나쁜 사람일 수 있어요.

...




DUMMY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예의가 바른 나라로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사모님께서 그 일본의 예의를 보여주시면 어떠실지요?”


여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모욕적인 말을 해서 많이 기분이 나빴지만 우리나라의 명예를 위해서 참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화해하시고 인연을 맺으면 또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탈리아에 가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고요. 하하하.”


“예, 그렇게 해야지요.”


“저쪽 이탈리아 분은 사모님보다는 더 나이가 있는 것 같은데, 먼저 사과하시는 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먼저요?”


여자가 눈을 크게 뜨면서 표정이 바뀌었다.

반태오의 어깨 위로 찬바람이 지나갔다.

다 된 일이 어그러지는 것은 아닐까?


여자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잠시 허둥댔다.


반태오는 여자가 세운 자존심을 누그러뜨리기를 바라며 여자를 계속 응시했다.


눈길을 거두지 않고 계속 쳐다보자 여자는 포기했는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제안을 받아드릴 것처럼 보였다.


“그럼 같이 좀······.”


일본 여자가 마지못한 듯 몸을 일으켰다.


여자를 데리고 이탈리아 여자가 있는 방으로 갔다.

두 여자는 서로 눈길도 주지 않고 다른 데만 쳐다봤다.


“저를 봐서라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시는 게 어떠실까요?”


반태오는 여자 둘을 번가라 보면 간곡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여자를 번가라 보다가 눈길을 일본 여자에게 고정했다.

일본 여자가 먼저 사과하기를 바라는 뜻이다.


“미,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여자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가만히 있던 이탈리아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일본 여자를 쳐다보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만 두 사람은 더 이상 언쟁하지 않았다.


반태오는 두 여자를 남겨놓고 각자의 가족에게 갔다.

여자들에게 가족을 설득하게 할 수 없다.


반태오는 이탈리아 남자에게 여자들이 서로 화해한 과정을 이야기하고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합의할 것을 부탁했다.


“아내가 마음을 풀었다면 나라고 못 풀 것 없지요. 그렇게 합시다.”


다시, 식당에 가 있는 일본 남자에게 가서 역시 이탈리아 남자에게 했던 말을 했다.

일본 남자도 흔쾌히 반태오의 청을 받아들였다.


안내 방에 두 나라의 가족이 모였다.

서로 악수하는 것으로 화해가 이뤄졌다.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 호텔에서 점심 식사권을 무료로 드리겠습니다.”


반태오는 관리이사 라파르에게 미리 이야기해 무료 식사권을 주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라파르는 좋은 제안이며 호텔의 홍보를 위한 전략이라며 받아드렸다.


“첫날 출근하자마자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셨습니다, 그려. 하하하.”


비앙이 라파르에게 보고를 들었는지, 반태오의 사무실로 찾아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 직업이 원래 이렇게 화해시키고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하게 하는 것이었는데요, 뭐.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은데, 앞으로 제 밥값은 할 것 같아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하.”



***



오후에 소송 건 등을 담당하는 직원과 미팅을 하고 막 방으로 들어왔는데, 누군가 방을 노크하더니 들어왔다.


“출근을 축하드려요.”


정수련이다.


170 가까운 키에 이목구비가 서양인처럼 뚜렷해서 언제나 자신감이 넘쳐나는 외모를 가진 여자.

누구나 지나치면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미모의 여자.


“출근을 축하한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네요. 호호호.”


정수련이 손에 들고 온 테이크아웃 커피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맞아. 수련 씨가 여기 묵고 있다는 걸 깜박했군. 어서 와.”


“오시자마자 실력 발휘를 하셨다면서요?”


“어? 어. 그냥 뭐······. 흠흠흠.”


“커피 드세요.”


“어······.”


정수련을 보자, 하동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제 정수련이 하동리를 찾아갔다고 했다.

정수련은 하동리에게, 반태오는 하동리의 진짜 남편이 아니라고 했다.

또 하동리는 반태오의 아내가 아니라고 했다.

반태오의 이름도 말했다고 했다.


“뭐,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반태오 표정에서 무언가 읽었는지 정수련이 반태오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어제 집에 왔다면서?”


정수련은 대답 없이 반태오를 응시했다.


“왜 그랬어?”


“뭘요?”


도발하는 눈으로 정수련이 반태오를 쳐다봤다.


“꼭 그런 이야기를 했어야 했어?”


반태오는 저도 모르게 표정이 거북 등처럼 딱딱해졌다.


“언젠가 그 분도 알아야 할 이야기 아닌가요?”


“그 이야기를 왜 수련 씨가 하느냐, 그거야?”


“제가 하면 안 되기라도 하나요?”


정수련은 높이 쳐든 턱을 숙이지 않고 똑바로 반태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


“이야기를 해도 내가 했어야 했어. 수련 씨가 아니라.”


“왜죠?”


“그 사람과 관계를 만든 사람도 나고, 이야기를 만들어간 사람도 나야. 그렇다면 내가 당연히 풀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수련 씨가 나서서······.”


“어떻게 풀어가려고 했는데요? 계속 거짓말을 하려고 했나요? 왜요?”


반태오는 정수련처럼 고개를 뻣뻣이 들고 정수련에게 맞대응할 수 없다.

정수련 말대로 반태오는 하동리에게 거짓된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


하동리의 남편도 아니면서 남편처럼 행동하고 있으니까.

진실 앞에서 거짓은 언제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거짓말을 하든, 뭐를 하든, 내가 풀어가야 할 문제야!”


반태오 목소리가 천장 위로 급히 솟구쳤다.


“거짓말을 한다고요?”


정수련은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


“······.”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서현진은 죽었어요. 벌써 3개월 전에요. 그 여자는 서현진이 아니에요. 그 여자는 서현진이 될 수 없어요. 서현진에게 좋은 건 뭔 줄 알아요? 서현진이 원하는 게 뭔 줄 알아요?”


“······.”


“현진이를 빨리 잊어주는 거예요. 잊어줘서 보내는 거예요. 마음속에서요. 그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거예요. 현진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과요.”


‘전혀 다른 사람이 바로 정수련 당신인가?’

반태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려 했다.

반태오는 말을 잃은 듯 고개를 돌렸다.


“제가 왜 여기까지 와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수련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서현진을 그렇게 갑자기 떠나보낸 뒤 정수련은 반태오 옆에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


휘청거리며 넘어지려는 반태오를 옆에서 붙잡아주고 지탱하도록 힘을 써준 사람이 정수련이다.


반태오의 마음 한 조각이 정수련에게 가 있음을 반태오도 부인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라면 반태오는 정수련에게 마음을 기댔을 지도 모른다.


반태오는 정수련을 쳐다봤다.


“그 여자가 현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수련 씨에게 뭐라고 했어?”


“누가요? 그 사람이요?”


반태오는 대답 없이 정수련을 쳐다봤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나와 같이 있는 분은 내 남편 박정현이 맞습니다. 내가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해도 남편 생김새마저 잊어버릴 정도는 아닙니다.’


하동리가 단호하게 정수련에게 말했던 게 생각났다.

정수련 가슴 안으로 먹구름이 몰려왔다.


“뭐라고 말을 했기에 그렇지?”


“직접 물어보세요.”


정수련 표정이 곧 울 것처럼 우울해져 보였다.

하동리가 정수련의 마음에 드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그 사람의 남편이라고 말하던가?’


너무 모질게 정수련을 몰아붙이는 것 같아 차마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저는 혹시 나쁜 일에 휘말릴까봐 걱정이 되어서 그래요.”


정수련이 심호흡을 하고는 어두웠던 표정에서 빠져 나와 얼굴을 평범하게 한 후 말했다.


“무슨 나쁜 일에?”


“그 여자는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이에요. 제가 알아봤는데, 한국국적도 아니었어요. 범죄 단체에 속해 있거나 범죄에 휘말려 도망친 여자일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 사람과 엮이면 이미지에도 안 좋잖아요.”


“수련 씨가 걱정하는 거 나도 잘 알아······.”


“제 마음 알아요?”


반태오는 말없이 정수련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반태오가 아침에 출근한 후 하동리는 집을 치웠다.


어제 밤까지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자 말끔하게 개었다.

조금씩 가을 느낌이 느껴졌다.


여느 부부가 사는 평범한 가정집처럼 남편이 출근하자, 설거지를 하고 침실을 정리하고, 집안을 청소하는 평범한 일상을 하동리는 실행했다.


그냥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골치만 아팠다.

가만히 앉아서 골똘히 생각한다고 해서 과거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괜히 답답하기만 하고 더 괴로웠다.


차라리 기억을 되찾으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낚시를 던져놓고 기다리듯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것 자체가 힘들겠지만 지금으로써는 다른 방법이 없다.

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다보면, 언젠가 기억이 찾아오리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상에 충실하기로 했다.

베란다도 물을 뿌려가며 청소하고 화장실 바닥도 브러시로 박박 문질러가며 곰팡이를 제거했다.


오후가 되었을 때, 하동리는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역시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다리도 다 나아서 충분히 움직일 만 했다.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는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


샤모니에서부터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찾아왔다.

호의적인 사람이 찾아왔다.

악의적인 사람도 찾아올지 모른다.


하동리는 밖으로 나가서 움직이는 것은 낚시 밥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억을 되찾기 위한 낚시밥.


설령 악의적인 자가 찾아와도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휴대폰 들고 나가는 걸 잊지 않았다.


주변을 거닐다가 작은 공원이 보여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늘이 맑아선지 나이든 사람들이 한가롭게 산책하는 게 보였다.


나뭇잎들이 하나둘 색을 바꿔가고 있었다.


하동리는 몸을 가볍게 흔들기도 하고 다리와 팔을 쭉 뻗어 스트레칭을 하면서 걸었다.


한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운동을 한 뒤 센 강과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운동 나오셨군요?”


의자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봤다. 어제 마트 앞에서 만났던 그 사내다.

호의적인 사내, 최백철.


벌써 세 번째다.

샤모니에서 한 번, 어제 두 번, 오늘 세 번.


하동리는 최백철을 빤히 쳐다봤다.


185가 넘는 키에 단단한 어깨와 가슴을 가졌고, 달걀형 얼굴에 가느다란 눈이 예리하게 보였지만 어딘지 순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인상이다.


이 남자는 내 곁에 늘 있었다고 했는데,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반태오에게 말했던 것처럼, 좋은 일을 하동리에게 가져다주는 자가 아니기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날씨가 참 좋습니다.”


최백철의 표정이 여유로워보였다.


샤모니에서 처음 봤을 때, 최백철은 몹시 조급해보였다.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날 것처럼 다급해서 서둘렀다.

자신과 같이 가야 한다고, 이곳에 있으면 당장 하동리에게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하동리를 다그쳤다.


그랬던 그가 왜 이렇게 태평하게 접근하는 것일까.


“어제 우산은 고마웠어요. 만날 줄 알았다면 가지고 나왔을 텐데······.”


“아, 예. 나중에 주셔도 됩니다. 흠흠흠. 이곳을 잘 모르시지요? 제가 좀 안내해드릴까요? 이곳은 사랑과 예술의 도시 파리입니다. 하하하.”


최백철이 팔을 활짝 벌리고 웃으며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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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삼십육계. 21.09.15 65 2 12쪽
25 <25> 뭔가에 뒷머리를 맞았다. 21.09.14 65 3 12쪽
» <24> 하동리는 나쁜 사람일 수 있어요. 21.09.13 67 2 12쪽
23 <23> 오리엔트 호텔 출근하는 날. 21.09.09 70 3 12쪽
22 <22> 당신은 내 남편이 맞습니까? 21.09.08 80 3 12쪽
21 <21> 정치적인 목적으로. 21.09.07 83 2 12쪽
20 <20> 반태오는 내 남편입니다. 21.09.06 85 3 12쪽
19 <19> 파리에 신혼여행을 왔어요? 21.09.03 82 4 12쪽
18 <18> 누구를 감시하는가. 21.09.02 85 2 12쪽
17 <17> 저, 최 실장입니다. 21.09.01 84 2 12쪽
16 <16> 통통한 근육질 사내 21.08.31 84 2 12쪽
15 <15> 누가 있는지 살펴볼게요. 21.08.30 89 3 12쪽
14 <14> 트럭이 쫓아온다. 21.08.27 94 2 12쪽
13 <13> 떠오르는 거 있어요? 21.08.26 88 2 12쪽
12 <12> 두 사람 교통사고는 같은 유형이다. 21.08.25 101 3 12쪽
11 <11> 저 자는 누구일까? 21.08.24 103 3 12쪽
10 <10> 대체 하동리는 누구일까. 21.08.23 107 3 12쪽
9 <9> 당신의 기억을 찾아주고 싶어요. 21.08.22 126 3 12쪽
8 <8> 기억을 잃어버렸다면서요. 21.08.21 141 3 12쪽
7 <7>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1.08.20 150 3 12쪽
6 <6>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21.08.19 181 3 12쪽
5 <5> 기억나지 않는다. 21.08.18 241 4 12쪽
4 <4> 당신과 함께 있을 거야. 21.08.17 318 2 12쪽
3 <3>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21.08.16 384 4 12쪽
2 <2> 당신 곁에 내가 있잖아요. 21.08.15 506 3 12쪽
1 <1> 꽈아광! 21.08.14 88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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