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갱본 님의 서재입니다.

통 큰 만남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대체역사

갱본
작품등록일 :
2021.08.14 07:55
최근연재일 :
2022.02.11 05:58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8,061
추천수 :
206
글자수 :
604,752

작성
21.08.22 06:00
조회
126
추천
3
글자
12쪽

<9> 당신의 기억을 찾아주고 싶어요.

...




DUMMY

“지금, 내가 느껴져요?”


하동리는 은근한 목소리로 반태오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동리의 긴 손가락과 새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손바닥의 느낌이 반태오의 손으로 전해왔다.


반태오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동리의 손은, 놓치고 싶지 않은 아내의 손이다.

반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살아 있으면 됐잖아요. 당신도 나도요. 안 그래요?”


하동리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퍼졌다.

반태오도 화답하듯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반태오는 몸을 일으켜 하동리를 가볍게 안았다.

하동리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



여자의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어떤 일을 하는 지 관계없다.

설령 나에게 사기를 친다 해도 속아주고 싶다.

무엇이든 달라하면 주고 싶다.

모든 것을 주고 싶다.

이 여자는 내 사랑하는 아내 서현진이니까.


문득, 아니, 이 여자를 그 숲속에서 만났을 때부터였는지 모른다.

이 여자와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


이 여자가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듯 자신 반태오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이 평화로운 곳에서 내 아내 서현진인 이 여자와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샘처럼 솟아나는 걸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모든 기억을 소진시켜버리고, 이 여자도 영원히 기억을 되찾지 않고 이렇게 살면 안 될까.


숲속에서 이 여자를 만나서 지금까지 보내는 모든 시간과 공간들이 마치 꿈인 것 같다.

꿈이라면, 꿈이라면 깨어나고 싶지 않다. 영원히 꿈속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그게 가능한 일일까.

곧 여자의 다리와 가슴의 뼈가 아물 듯 여자의 기억은 돌아올 것이다.


아니,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가 되면 여자는 내가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여자는 내 곁을 떠나려 할 텐데.

여자가 곁을 떠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자가 떠나지 못하게 해야 하나?

여자가 떠나지 못하도록 해야 하나?


여자가 처음 나를 봤을 때 했던 말을 유추해보면, 여자의 남편은 지금 여자의 곁에 없는 것 같다.

내 곁에 내 아내였던 서현진이 없는 것처럼.


여자의 진짜 남편도 내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 사람이 아닐까?

처음, 여자가 나를 봤을 때 보여주었던 표정이나 행동, 말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여자를 보내고 싶지 않다.

이 여자를 잡아야 한다.

이 여자를 내 곁에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자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여자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왜 그곳에서 사고를 당했는지 알아야 한다.


여자를 분명하게 알아야 대처할 수 있다.

나 또한 여자에게 나 자신을 솔직하게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여자의 진정한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여자는 나를 자신의 남편으로 착각하고 있다.

나를 자신의 남편으로가 아닌 인간 반태오로 봐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나 또한 이 여자를 내 아내 서현진이 아닌 이 여자의 진짜를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아내 서현진이 아닌 이 여자의 진짜를.


하나하나씩 알아가 보자.

조금씩 조금씩만.

어쨌든, 지금은 이 여자가 내 사랑하는 아내 서현진이라서 좋다.



***



“잠깐 쓰레기 좀 버리고 올게요.”


반태오는 이것저것 쓰레기를 담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지정된 곳에 쓰레기를 버린 뒤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 번호를 누른 뒤 기다렸다.

전화를 받았다.


“알로우? 반태오입니다.”

(오우, 반태오 후보님. 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내가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뭔가 우리가 서로 통하는 데가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바로 전화를 주셨네요. 하하하. 몽블랑 구경은 하셨습니까? 요즘이 가장 날씨가 포근해서 산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지요.)


비앙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아, 예. 쉬엄쉬엄 즐기고 있습니다. 허허허. 다름이 아니고 뭐 좀 부탁을 드리려고 전화를 했습니다.”

(아, 그래요? 뭐든 말씀하시지요, 후보님. 안 되는 거 말고 다 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사람의 인적사항을 좀 알아봤으면 하는데요.”

(사람요? 프랑스 사람인가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외모는 아시아인이고 한국말을 아주 잘해요. 그렇지만 국적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어요. 프랑스 국적일 수도 있고요.”


(아, 그래요? 그럼 혹시 사진을 갖고 계십니까? 사진이 있으면 한번 알아볼 수 있는데요.)

“예, 그러면 제가 사진을 찍어서 문자메시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예, 알아보는 데까지 최대한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시면 좀 놀라실 수도 있습니다. 미리 좀 말씀을 드리려고요.”

(놀······라 다니요? 왜요?)

“좀······ 말씀 드리기가 그렇습니다.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비앙은 아내 서현진을 잘 알고 있다.

비앙은 5년 전 한국 프랑스대사관에서 영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영사로 근무하면서 교통사고를 냈는데, 반태오가 나서서 피해자와 비앙 사이를 오고가며 중재하여 골치 아픈 문제를 원만하게 잘 해결해준 일이 있다.


그 일로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형님 동생처럼 지내고 있다.

비앙은 공직에서 은퇴한 뒤 파리에 있는 오리엔트 호텔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반태오가 프랑스에 오게 된 것도 비앙의 적극적인 추천 내지 강권에 가까운 초청으로 오게 된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도 말씀 드리려다가 말았지만, 통화한 김에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무슨······?”


(생각하시기가 좀 그러시겠지만······, 이쪽 프랑스 관가에서도 후보님 사모님 사고에 대해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들으시기 좀 껄끄러우시겠지만 사고가 좀 석연치 않다고들 말들을 합니다. 할 수 있다면 재조사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떤가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아······, 이거 전화로 좀 너무 주제 넘는 말을 한 게 아닌가 싶군요.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야 하는데요. 전화통화를 하니까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군요.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항상 마음 써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사건은 이미 종결된 사건이고, 또 가해자가 이미 처벌도 다 받았고요. 뭐 그래서······.”

(내가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하도 주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해서요. 이쪽 공기를 좀 전하는 것뿐입니다. 후보님, 잊지 마십시오. 내가 후보님 팬이라는 거. 하하하.)


“예, 고맙습니다.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아, 아까 부탁하신 건 잘 알아봐드리겠습니다.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아, 잠깐만요.)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비앙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하나만 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건 말씀이 아니라 부탁인데요.)

“부탁이요? 부탁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드려야지요. 하하하. 말씀하세요.”


(다른 게 아니라, 파리에 오시면 우리 호텔 법률 담당을 맡아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잘 아시지만, 우리 호텔이 아시아계 분들이 많이 출입하는 곳이라서, 아무래도 아시아적 정서가 있는 분이 법률 담당을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어떠신가요?)

“아······, 예. 당장은 좀 그렇지만 파리에 가면 진지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

(예, 그럼. 파리에서 뵙겠습니다. 곧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반태오는 전화를 끊었다.

비앙이 한 말을 되새김해봤다.

비앙은 아내 서현진의 교통사고를 말했다.


비앙도 아내의 사고를 다시 언급하는 게 반태오에게 실례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걸 언급한 것을 보면 비앙이 접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 사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반태오가 비앙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미 그 사건은 종결되었다.

가해 운전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처벌까지 받았다.

사고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일 아니겠는가.


비앙은 또 호텔 법률 담당을 권했다.

고마운 일이다.

무작정 시간을 보내고 있느니 무슨 일이라도 하면서 보내는 게 마음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파리로 돌아가면 고려 해볼 일이다.



***



반태오는 다시 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신호가 가고 전화를 받았다.


(아, 선배님. 그동안 어디 계셨어요? 일주일이나 아무 연락이 없으시고요.)


프랑스 한국대사관에 법무협력관으로 파견되어 와 있는 강종화 검사다.

반태오의 대학교 후배다.


“어, 그렇게 되었어. 여기는 샤모니야. 알프스 구경 좀 하려고 내려왔어.”

(아, 그래요. 잘 하셨어요. 바람 좀 쏘이시면서 기분전환 좀 하셔야지요.)


“다른 게 아니고, 뭘 좀 부탁 하려고.”

(예, 말씀하세요. 선배님 부탁이라면 뭐.)

“사람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까 싶어서.”


(사람요? 한국 사람이에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 혹시, 한국 사람인지 알아봐줄 수 있을까?”

(출입국관리국이나 한국 경찰에 의뢰하면 확인이 가능할 거예요.)


“내가 지문을 보내주면 될까?”

(예, 그렇게 해주세요. 지문 사진을 찍어서 저한테 보내주세요. 바로 알아봐드릴게요. 근데······ 어떤 사람인데 신원을 확인하려는 거예요?)

“음······, 좀 알아봤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 나쁜 일은 아니고. 내가 바로 지문 사진을 보내줄 게.”


반태오는 전화를 끊고 집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 있었어요?”


하동리가 걱정 섞인 표정으로 쳐다봤다.


“왜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다고 했는데, 너무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서요. 걱정되어서요.”


반태오는 마음이 짠해졌다.

저 여자도 나를 많이 좋아하고 생각하고 있구나.

반태오는 하동리에게 다가가 하동리를 가볍게 안았다가 놓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절대 당신을 혼자 놓아두고 가지 않을 테니까요. 흠흠흠. 전화 좀 하고 왔어요.”

“전화요?”

“당신의 기억을 찾아주고 싶어요.”

“기억을요?”


반태오를 바라보는 하동리의 눈빛이 묘하게 흔들렸다.


“왜요? 기억을 찾고 싶지 않아요?”

“그건 아닌데······.”


하동리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무슨 다른 걱정이 있어요?”


하동리는 답을 하지 않고 여러 감정이 섞인 눈으로 반태오를 바라만 봤다.

반태오는 재촉하지 않고 하동리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어쩐지 내가 나를 알게 되면 힘들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당신도 힘들어질 것 같고요.”

“왜 그런 생각이 들지요?”

“뭐라고 딱히 말을 하기가 그런데, 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당신은 그냥 이 상태가 좋아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이 상태가?”


사실 반태오도 지금의 현재가 좋다.

기억을 되찾지 않는 지금 이 상태의 이 여자가.

기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


“그런 건 아닌데······.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반태오는 하동리에게 어떤 식의 답을 줘야할지 잠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지금 이 상태가 좋아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한 마음은 그래요.”


반태오는 하동리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동리는 천천히 손을 뻗어 반태오의 뺨을 어루만졌다.


반태오는 무슨 결심을 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을 속일 수는 없어요!”




...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통 큰 만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26> 삼십육계. 21.09.15 65 2 12쪽
25 <25> 뭔가에 뒷머리를 맞았다. 21.09.14 65 3 12쪽
24 <24> 하동리는 나쁜 사람일 수 있어요. 21.09.13 67 2 12쪽
23 <23> 오리엔트 호텔 출근하는 날. 21.09.09 70 3 12쪽
22 <22> 당신은 내 남편이 맞습니까? 21.09.08 80 3 12쪽
21 <21> 정치적인 목적으로. 21.09.07 84 2 12쪽
20 <20> 반태오는 내 남편입니다. 21.09.06 85 3 12쪽
19 <19> 파리에 신혼여행을 왔어요? 21.09.03 82 4 12쪽
18 <18> 누구를 감시하는가. 21.09.02 85 2 12쪽
17 <17> 저, 최 실장입니다. 21.09.01 84 2 12쪽
16 <16> 통통한 근육질 사내 21.08.31 84 2 12쪽
15 <15> 누가 있는지 살펴볼게요. 21.08.30 89 3 12쪽
14 <14> 트럭이 쫓아온다. 21.08.27 94 2 12쪽
13 <13> 떠오르는 거 있어요? 21.08.26 89 2 12쪽
12 <12> 두 사람 교통사고는 같은 유형이다. 21.08.25 101 3 12쪽
11 <11> 저 자는 누구일까? 21.08.24 103 3 12쪽
10 <10> 대체 하동리는 누구일까. 21.08.23 107 3 12쪽
» <9> 당신의 기억을 찾아주고 싶어요. 21.08.22 127 3 12쪽
8 <8> 기억을 잃어버렸다면서요. 21.08.21 141 3 12쪽
7 <7>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1.08.20 150 3 12쪽
6 <6>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21.08.19 181 3 12쪽
5 <5> 기억나지 않는다. 21.08.18 241 4 12쪽
4 <4> 당신과 함께 있을 거야. 21.08.17 318 2 12쪽
3 <3>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21.08.16 384 4 12쪽
2 <2> 당신 곁에 내가 있잖아요. 21.08.15 506 3 12쪽
1 <1> 꽈아광! 21.08.14 884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