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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본 님의 서재입니다.

통 큰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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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본
작품등록일 :
2021.08.14 07:55
최근연재일 :
2022.02.11 05:58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8,072
추천수 :
206
글자수 :
604,752

작성
21.09.06 06:00
조회
85
추천
3
글자
12쪽

<20> 반태오는 내 남편입니다.

...




DUMMY

키가 큰 남자였다.

지난 번 샤모니에서 반태오와 함께 마트를 갔다가 만난 그 키가 큰 사내였다.

자신을 최 실장이라고 했던가.


“아니······.”


하동리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샤모니에서 하동리와 반태오를 관찰하던 사람들은 모두 샤모니에 있어야 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모두 사라져야 한다.


이 최 실장이란 자도 역시 그곳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어떻게 이곳에······?”


“저는 항상 부장님 곁에 있어왔습니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하동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누구시지요?”


“저는 부장님을 옆에서 보필하던 최백철입니다. 기억을 다 잃어버리셨습니까?”


“······.”


“몸은 좀 어떠십니까?”


하동리는 최백철이란 이름을 입속으로 되뇌어 보고 있었다.


최백철이란 이름은 머릿속 막혀버린 기억의 벽에 부딪칠 뿐 좀체 벽을 넘지 못했다.


“부장님의 사고를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왜, 당신이 내 사고를 막아야 하는 것이지요?”


“······.”


최백철의 눈빛이 잠시 침울해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방황했다.


하동리는 이 최백철이란 사람이 하동리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눈치로 알 수 있었다.


반태오에게도, 이 최백철을 만나면 하동리 자신의 과거를 물어봐야겠다고 말을 했었다.


그러나 묻고 싶지 않다.

이 자에게 하동리에 대해 묻고 싶지 않다.

이 자를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왜 그러는지 하동리는 모른다.

본능이라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 자와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처럼 이 자와 함께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그럼 이만······.”


하동리는 최백철을 피해 빗속으로 나섰다.

최백철이 얼른 하동리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주며 따라왔다.


“제가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불편하군요. 친절이.”


하동리는 최백철을 떨쳐내듯 바삐 빗속으로 걸어갔다.

비가 제법 내려 옷이 젖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최백철이 뛰어오듯 걸어와 우산을 하동리 머리 위에 받쳐줬다.

하동리는 최백철의 호의를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분명 최백철은 무언가 알고 있다.

이 최백철이란 자는, 하동리가 잃어버린 모든 기억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자다.

이 자에게 물어보면, 분명 자세하게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하동리는 물어보고 싶지 않다.

최백철에게 하동리의 과거에 대해 묻고 싶지 않다.

왜 그러는 것일까?


지금 이 상태가 좋은 것일까?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아니, 과거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것인가?


과거는 모두 묻어버리고 반태오와 함께 새 출발하고 싶은 것인가.

하동리 자신도 자신을 아직은 이해할 수 없다.


하동리는 더 이상 최백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다.

최백철은 호위하듯 하동리의 머리 위로 우산을 받쳐 든 채 따라왔다.


잠시 그렇게 어색한 동행을 하다가 하동리가 멈춰 섰다.


“이만 돌아 가주세요.”


하동리는 부드럽게 말했다.

최백철이 잠시 서서 하동리를 쳐다봤다.


“그럼, 이 우산이라도······.”


최백철은 하동리 손을 잡아 자신이 들고 있던 우산을 쥐어줬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최백철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몸을 돌려 빗속으로 달려갔다.


하동리는 최백철이 건네준 우산을 들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샤모니만 떠나면 하동리를 옥죄듯 주변에서 관찰하던 자들이 모두 사라질 줄 알았다.


새벽을 택해 샤모니를 빠져 나올 때 누구도 주변에 없었다.

그래서 하동리와 반태오가 샤모니를 빠져나가는 걸 아무도 모를 줄 알았다.

더욱이 두 사람이 이곳 파리에 올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도대체 어떻게 저 사람들은 두 사람이 샤모니를 빠져나와 파리에 온 것을 알았을까.


저 최백철이란 사람이 이곳에 나타났다면, 다른 사람들도 곧 모습을 보일 것이다. 다시 포위되는 것인가.


탈출한 줄 알았는데 다시 갇혀버린 듯한 생각이 들어 하동리는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답답한 상태를 풀어가려면 뭔가 알아야 한다.


알아내려면 방금 그 최백철에게 물었어야 했다.

도대체 왜 당신들은 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거냐고 물어야 했다.


그러나 하동리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하동리는 그러고 싶지 않다.

물어보고 싶지 않다. 알고 싶지 않다.

그냥 멀리 하고 싶다.


왜 이런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하는 것인가.

하동리 스스로도 답답하다.




***




집으로 돌아온 하동리는 마트에서 사온 감자를 아무렇게나 식탁에 던져놓고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거나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따져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저 갑자기 한꺼번에 기력이 다 빠져버린 탓이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식탁에 던져놓은 감자가 눈에 들어왔다.

반태오에게 김치감자전을 부쳐주려 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감자를 싱크대에 넣고 물로 씻었다.


- 딩동! 딩동!


현관에서 벨이 울렸다.

깜짝 놀랐다.

반태오도 없는데 누가 찾아온 것일까?


문을 열어줘야 하나?

누구냐고 물어봐야 할까?

그냥 이대로 사람이 없는 척 할까?


하동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 딸각!


밖에서 문을 따는 소리가 났다.

번호키를 열고 들어올 정도면, 이 집을 잘 아는 사람인가?


현관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여자구두가 보였다.


“아직 안 오셨나······.”


들어온 여자가 혼잣말을 했다.


여자가 현관에 놓여진 신발을 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여자가 깜짝 놀랐다.


“어머!”


하동리도 현관에 서 있는 여자만큼 놀라서 그 여자를 쳐다봤다.

하동리와 반태오가 샤모니에 있을 때 찾아왔던 정수련이다.


“어떻게······?”


정수련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어떻게, 라고만 운을 뗐다.


왜 여기에 있는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왜 떠나지 않았는지, 왜 반태오와 함께 있는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질문이다.


반태오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반태오의 아내 서현진과 잘 아는 친구 사이라고 했다.

하동리를 보고 현진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나 하동리와 저 여자는 친구 사이인가?


전혀 기억이 없다.

친구라면 서로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텐데.


하동리는 정수련을 보고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친구 사이였다니까 웃어야 할 텐데, 좀체 웃음이 얼굴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동리는 멍한 표정으로 정수련을 쳐다봤다.

정수련은 굳은 표정으로 거실로 들어왔다.


“후보님은 어디 가셨어요?”


후보님이라면 반태오를 말하는 것인가?


“네······.”


하동리는 어정쩡하게 답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설마······, 서현진은 아니지요?”


정수련이 사무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


하동리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자, 정수련이 웃었다.

약간 냉소적인 느낌이 드는 웃음이다.


“아, 죄송해요.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했지요? 잠시,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정수련은 식탁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좀 앉으세요. 서 있으면 서로 불편하니까요.”


하동리도 마지못해 의자를 끌어내 앉았다.


“처음에 그쪽을 봤을 때, 나도 너무 놀랐어요. 너무 닮아서요.”


“······.”


하동리는 말없이 정수련을 쳐다봤다.


정수련은 너무 딱딱하게 대한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을 펴 냉랭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보려 했다.


“너무 닮은 게 아니라, 아주 똑같아요. 지금도 그쪽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이상해요. 현진이가 앞에 있는 것 같아서요.”


‘내가 서현진이 아니고, 서현진과 닮았다고요. 그럼 나는 서현진이 아닌가요?’

하동리의 입에서 이런 질문이 쏟아져야 했다.


그러나 하동리는 묵묵히 정수련만 바라봤다.


“그렇지만 당신은 서현진이 아니에요. 당신이 서현진이면 당신은 나를 모를 리가 없어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친구였으니까요. 당신은 나를 아나요?”


정수련의 음성은 딱딱하지 않았지만, 정수련의 말은 날카롭게 하동리의 귀를 파고 들었다.


하동리는 대답없이 고개를 숙였다.


“맞아요. 당신은 서현진이 아니에요. 아니, 서현진일 리 없어요. 현진이는······ 현진이는 3개월 전에 하늘나라로 갔으니까요.”


하동리는 고개를 쳐들고 정수련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서현진이 죽었다니.

서현진이 죽었다면 자신이 죽었다는 것인데.

자신 하동리가 죽었다는 것인데.


사실 그동안 반태오의 말이나 행동에서 이상한 점들을 많이 봐왔었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반태오의 아내가 죽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요?”


“반태오의 아내 서현진은 3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고요.”


“그, 그럼. 나는 서현진이 아니란 말인가요?”


정수련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동리는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을 두리번거리며 당황해 했다.

혼란스러웠다.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 세상 밖으로 들어나 버린 어쩌면 민망한 상황이라고 할까.


“너무 매몰차고 냉정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반태오의 아내가 아닙니다.”


정수련은 이미 쏟아버린 물이라 생각했는지 매듭을 짓듯 결론을 말했다.


“반태오라니요?”


하동리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그쪽과 같이 있는 남자분 이름이 반태오라는 것도 몰랐나요?”


“······.”


남편의 이름이 반태오라고?


남편의 이름은 반태오가 아니라 박정현이다.

박정현.

반태오가 아니다.


심장이 야생말처럼 날뛰었다.

하동리는 거친 숨을 내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정수련이 몸을 일으켰다.


“물 한 잔 드릴까요?”


하동리가 대답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쪽 말을 들어보면 나는 서현진도 아니고, 또 남편 이름도 전혀 다르다는 말인데······, 내가 서현진이 아니라면 누구입니까?”


저도 모르게 하동리 입에서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나오고 말았다.


“······.”


정수련이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멍한 표정으로 하동리를 쳐다봤다.

당황하는 표정이다.


“그쪽 말대로 내가 서현진이 아니고, 나와 같이 있는 분이 내 남편이 아니고 반태오라는 분이라면······.”


하동리는 결론을 짓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하동리는 곧 눈물을 흘릴 것처럼 얼굴이 구겨졌다.


“마, 많이 놀라셨군요?”


정수련은 하동리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 톤을 낮췄다.


“내 남편 이름은 박정현입니다.”


하동리는 입술을 지그시 물고 말했다.

정수련이 지금까지 한 공격에 반격을 가하려는 듯 보였다.

정수련은 긴장한 얼굴로 하동리를 바라봤다.


“그쪽 말대로 내 이름이 서현진도 아니고, 남편 이름이 내가 알고 있는 박정현이 아닌 반태오라면, 나는 지금 내가 같이 있는 분의 아내가 아니겠지요. 그러나······.”


하동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들어 정수련을 똑바로 바라봤다.

정수련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내가 모든 기억을 잃었다 해도 내 남편의 이름과 얼굴까지 잃어버리진 않았습니다.”


하동리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정수련은 하동리가 무슨 말을 할지 숨을 참고 기다렸다.


“나와 같이 있는 분은 내 남편 박정현이 맞습니다. 내가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해도 남편 생김새마저 잊어버릴 정도는 아닙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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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삼십육계. 21.09.15 65 2 12쪽
25 <25> 뭔가에 뒷머리를 맞았다. 21.09.14 65 3 12쪽
24 <24> 하동리는 나쁜 사람일 수 있어요. 21.09.13 67 2 12쪽
23 <23> 오리엔트 호텔 출근하는 날. 21.09.09 70 3 12쪽
22 <22> 당신은 내 남편이 맞습니까? 21.09.08 80 3 12쪽
21 <21> 정치적인 목적으로. 21.09.07 84 2 12쪽
» <20> 반태오는 내 남편입니다. 21.09.06 86 3 12쪽
19 <19> 파리에 신혼여행을 왔어요? 21.09.03 82 4 12쪽
18 <18> 누구를 감시하는가. 21.09.02 85 2 12쪽
17 <17> 저, 최 실장입니다. 21.09.01 84 2 12쪽
16 <16> 통통한 근육질 사내 21.08.31 84 2 12쪽
15 <15> 누가 있는지 살펴볼게요. 21.08.30 89 3 12쪽
14 <14> 트럭이 쫓아온다. 21.08.27 94 2 12쪽
13 <13> 떠오르는 거 있어요? 21.08.26 89 2 12쪽
12 <12> 두 사람 교통사고는 같은 유형이다. 21.08.25 101 3 12쪽
11 <11> 저 자는 누구일까? 21.08.24 103 3 12쪽
10 <10> 대체 하동리는 누구일까. 21.08.23 107 3 12쪽
9 <9> 당신의 기억을 찾아주고 싶어요. 21.08.22 127 3 12쪽
8 <8> 기억을 잃어버렸다면서요. 21.08.21 141 3 12쪽
7 <7>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1.08.20 150 3 12쪽
6 <6>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21.08.19 181 3 12쪽
5 <5> 기억나지 않는다. 21.08.18 241 4 12쪽
4 <4> 당신과 함께 있을 거야. 21.08.17 318 2 12쪽
3 <3>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21.08.16 384 4 12쪽
2 <2> 당신 곁에 내가 있잖아요. 21.08.15 506 3 12쪽
1 <1> 꽈아광! 21.08.14 88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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