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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본 님의 서재입니다.

통 큰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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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본
작품등록일 :
2021.08.14 07:55
최근연재일 :
2022.02.11 05:58
연재수 :
115 회
조회수 :
8,060
추천수 :
206
글자수 :
604,752

작성
21.08.26 06:00
조회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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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3> 떠오르는 거 있어요?

...




DUMMY

두 사람은 그 뒤로 며칠 외출을 자제했다.

필요한 식료품을 구입하려 가는 것 이외에는 산책도 숙소 주변을 거니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동리의 재촉으로 한 달은 깁스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무시하고, 3주 만에 깁스를 풀기로 했다.


두 사람은 병원에 갔다.

담당의사는 환자가 견딜 수 있다면 빨리 푸는 것을 굳이 막을 필요는 없다고 하면서도 대신 다리에 무리를 주면 안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반태오, 하동리는 병원에 온 김에 정신과 의사를 면담하였다.

의사는 하동리를 진찰하였다.


“환자 분이 기억을 잃은 것은 사고로 인한 후유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큰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지요. 전반적인 뇌 검사 결과 어떤 손상이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주로 심리적 요인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고 하지요. 뇌 자체의 손상에서 기인하는 역행성이나 순행성보다는 비교적 회복이 빠른 편입니다.”


“곧 기억이 돌아올 수 있단 말인가요? 얼마나······?”

“꼭 얼마나 걸린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개인마다 다르지요. 어떤 분은 하루만에 회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또 어떤 분은 몇 개월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면이나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기억을 빨리 회복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저절로 회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기억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신적 안정을 위해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막아주면 기억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은 병원을 나왔다.

하동리는 당장 정상적으로 걸을 수는 없었으므로 목발에 의지해 걸음을 옮겼다.


“어때요? 괜찮겠어요?”

“으음······, 견딜만해요. 휠체어에 타고 있는 건 감옥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흠흠흠. 지금 상황이 한가하게 의자나 다름없는 휠체어에 앉아서 휴식을 취할 때가 아닌 거 같아요.”

“한가한 것은 아니지요. 아픈데요.”


반태오는 하동리의 다리가 걱정되어서 말했다.


“계속 당신에게 휠체어를 밀어달라면서 의지할 수도 없고요. 그리고 우리들이 직면한 문제가 너무 심각하잖아요.”

“그, 그러긴 해요.”



***



숙소로 돌아온 두 사람은 잠시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 후 움직이기로 했다.


“어떤 일부터 해볼까요?”

“사고 장소에도 가보고, 내 사고 차를 렌트했다는 스위스 제네바에도 가봤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제네바가 멀까요?”


“그리 멀진 않아요. 차로 1시간 반쯤 걸릴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일단 렌트카 회사에 가서 파손된 차 처리도 하고, 차를 빌려서 한번 가보자고요.”

“아무래도 현장에 가보면 기억이 떠오를 가능성이 좀 있겠지요?”

“아마······ 그, 그럴 수 있을 거예요.”


하동리가 기억을 되찾는 것을 반태오는 바라고 있는 것일까?

반태오는 망설인다.

지금처럼 기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가 좋을 수도 있다.


반태오는 하동리 몰래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하동리가 기억을 되찾아야 한다.


하동리가 기억을 되찾아 서현진이 아닌 하동리가 되었을 때, 정말 하동리가 누구인지 알아서 그때 진짜 하동리의 마음을 얻어 보고 싶다.


하동리는 기억을 잃었지만, 상당히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일처리를 할 줄 아는 여자란 느낌이 들었다.

혹시 하동리도 반태오처럼 변호사 일을 하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반태오가 승용차를 렌트했던 영업소를 찾아갔다.


경찰서에서 발급받은 교통사고처리서류를 보여주자, 이미 경찰에서 연락을 받고 협조를 해주면서 사고 상황을 알았다며 차량은 보험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반태오는 다시 승용차를 렌트했다.


반태오와 하동리는 승용차를 몰고 반태오가 사고가 났던 지점으로 달려갔다.

몽블랑으로 둘러싸인 산악도시의 도로를 타고 올라가자 저 아래로 깊은 협곡이 보였고 산 위에서는 패러글라이딩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날씨는 청명했고 몇 점 구름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한없이 평화로웠지만, 두 사람 마음은 안개로 가득 차 있다.


“경치가 참 좋아요. 그렇지요?”


하동리가 설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저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에요.”

“나도 그래요. 그냥, 우리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저 산들을 바라보며 살까요?”


하동리는 설산으로 향했던 눈을 거둬 반태오를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하동리도 반태오와 같은 마음인가.


반태오가 그냥 해보는 말이라는 걸 하동리도 알 것이다.

하동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인 뒤 다시 설산으로 눈을 돌렸다.


3, 40여분을 산길을 달린 뒤 사고 지점으로 추정되는 도로에 도착했다.


사고 당시 끊겨져 나간 펜스는 아직 복구가 안 된 상태로 임시로 가림 막을 해놓았다.


“여기인 것 같아요.”


반태오는 차를 세우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펜스 아래를 살폈다.


“당신이 사고가 난 곳도 여기 어디쯤 될 텐데, 찾아보자고요.”


하동리의 사고지점이 두 사람에게는 필요했다.

반태오 보다는 하동리에게 더 필요한 지점이다.

그 지점을 보면 당시 하동리의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속도를 줄여 천천히 도로를 달리면서 펜스를 살폈다.

얼마 안 가서 반태오의 사고지점처럼 펜스가 끊어지고 임시 가림 막으로 도로와 절벽을 막아놓은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 같아요.”


하동리가 심각한 눈으로 끊겨나간 펜스와 주변 도로를 바라봤다.

반태오는 말없이 하동리를 지켜봤다.

하동리가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려는 것이다.


하동리는 차에서 내렸다.

반태오는 좌석에 앉아 있었다.

하동리는 목발을 짚고 천천히 끊겨진 펜스 쪽으로 절룩거리며 걸어갔다.


곡선으로 휘어진 도로를 한참 쳐다봤다.

펜스 쪽으로 더 다가가 펜스 아래를 쳐다봤다.


반태오도 차에서 내려 하동리가 서 있는 곳으로 갔다.

펜스 아래는 하동리의 차가 굴러 떨어져 내려간 흔적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흙은 할퀴어진 듯 파여 있고, 작은 나무와 풀들은 짓뭉개져 꺾여 있었다.


하동리는 한참을 정지된 화면처럼 서서 아래를 쳐다봤다.

어떤 기억이 떠오르는 것일까.


반태오는 하동리의 뒤에서 하동리가 마음 집중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가만히 서 있었다.


“저 아래로 내려 가볼까요?”

“당신 다리로는 아직 무리예요.”

“아니요. 괜찮아요.”


하동리는 절실할 것이다.

하동리는 반태오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목발을 짚고 펜스 아래로 발을 내 디뎠다.


“잠깐만요! 내가 도와줄게요.”


반태오는 얼른 하동리에게 다가가 하동리의 몸을 부축해줬다.

반태오는 하동리를 부축하여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나뭇가지를 붙잡기도 하고 돌을 붙잡기도 하고, 때론 주저앉다 시피하며 숲 아래로 내려갔다.

손과 옷에 흙이 묻었지만 하동리는 개의치 않았다.

하동리는 그만큼 급박하다고 할까.


얼마나 내려갔을까.

저 아래 하동리가 타고 왔던 하얀색 르노승용차가 숲속에 처박혀 있다.


“저 차인가요?”

“예, 맞아요. 이 주위에 내가 타고 왔던 차도 있을 거예요.”


반태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르노승용차 위쪽에 반태오가 타고 왔던 차가 사고 당시의 처참한 흔적 그대로 숲속에 처박혀 있다.


찌그러진 깡통처럼 뭉개진 차를 보자, 사고 당시의 상황이 반태오를 엄습했다.

몸서리가 처지면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날 운이 없었으면 그대로 황천으로 갈 뻔했다.


반태오는 하동리에게 눈을 돌렸다.

하동리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이 타고 왔던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고 당시가 기억이 나는 것일까.


“뭐 기억나는 게 있어요?”


반태오가 질문을 했지만 하동리는 여전히 바위나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고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차를 바라만 보고 있다.


“정말 내가 저 차에 타고 있었나요? ······저 차에 내가 타고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처져요.”


두려움으로 가득 채운 눈으로 차를 바라보며 웅얼거리듯 하동리가 말했다.


“가서 살펴보지 않을래요?”

“그, 그래야겠지요?”


하동리는 조심스럽게 차로 다가갔다.

반태오도 옆에서 하동리를 부축했다.


차 내부는 반태오가 처음 발견해 하동리를 구할 당시와 같았다.

차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다.


반태오는 차 안으로 몸을 넣어 조수석 쪽 사물함을 열었다.

역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사물함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는지 아니면 사고 후에 누군가 가져갔는지 알 수 없었다.


반태오가 처음 하동리를 발견했을 때, 열어보려 했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해 열어보지 못한 사물함이었다.


하동리는 차 옆에 서서 반태오가 차 안을 수색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고 있는 모양이다.

하동리는 이마에 손을 짚고 눈을 감았다.

반태오는 옆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내가 차를 운전하는 모습이 떠올라요······.”


느닷없이, 하동리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그래요?”


반태오가 얼른 하동리 곁으로 다가와 하동리를 부축했다.


“갑자기 트럭이 앞에서 달려드는 장면을 봤어요.”


하동리는 조금씩 기억을 회복하고 있다.

하동리는 머리를 숙인 채 잠시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었다.


“뭐, 더 떠오르는 거 있어요?”


하동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당신이 아니었으면 이곳에서 아마 그대로······. 고마워요.”


반태오는 대답대신 주저앉아 있는 하동리를 가볍게 안았다.


“모든 기억을 잃었어도 당신이 나를 기억해주는 것만도 어디에요. 만약 나마저도 기억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반태오는 잠시 하동리를 안고 있다가 부축하여 몸을 일으켰다.


“스위스로 가보자고요.”


반태오는 하동리를 거의 업다시피 하여 언덕 도로로 올라갔다.


“허억 허억······ 그날 당신을 구출할 때가 생각나네요.”

“고맙고 미안해요.”

“그런 소리 말아요. 당연한 일을 한 것인데. 내가 당신을 구해야지 누가 구하겠어요.”



***



반태오는 내비게이션을 켜서 하동리가 렌트한 스위스 제네바의 차 렌트 회사를 찾아갔다.


“여기 기억나요?”


회사 입구로 진입하면서 반태오가 물었다.

하동리는 대답 없이 두리번거렸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사무실로 들어가 차량번호를 말하고, 샤모니 경찰서에서 발급한 서류를 제출했다.


“예, 프랑스 경찰에서 연락을 받았고 문서를 받았습니다. 차량은 보험처리가 될 것입니다.”


안내직원이 사무적으로 말했다.


“혹시 이 여성분을 기억 하시나요?”


반태오가 직원에게 물었다.

하동리가 이곳에서 차를 렌트했다면 기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직원이 하동리를 잠시 쳐다봤다.


“아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직원이 취급했을 수도 있겠네요.”

“렌트했던 사고 차량을 담당했던 직원이 따로 있습니까?”

“잠시만요.”


직원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누군가를 불렀다.

약간 뚱뚱한 남자가 나왔다.


“이 분이 그 차량을 담당했던 직원이에요.”


남자가 하동리와 반태오를 쳐다봤다.


“그 차를 이 여자분이 렌트하였나요?”


남자가 하동리를 유심히 쳐다봤다.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 여자분이 아니에요.”


“그, 그럼 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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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삼십육계. 21.09.15 65 2 12쪽
25 <25> 뭔가에 뒷머리를 맞았다. 21.09.14 65 3 12쪽
24 <24> 하동리는 나쁜 사람일 수 있어요. 21.09.13 67 2 12쪽
23 <23> 오리엔트 호텔 출근하는 날. 21.09.09 70 3 12쪽
22 <22> 당신은 내 남편이 맞습니까? 21.09.08 80 3 12쪽
21 <21> 정치적인 목적으로. 21.09.07 84 2 12쪽
20 <20> 반태오는 내 남편입니다. 21.09.06 85 3 12쪽
19 <19> 파리에 신혼여행을 왔어요? 21.09.03 82 4 12쪽
18 <18> 누구를 감시하는가. 21.09.02 85 2 12쪽
17 <17> 저, 최 실장입니다. 21.09.01 84 2 12쪽
16 <16> 통통한 근육질 사내 21.08.31 84 2 12쪽
15 <15> 누가 있는지 살펴볼게요. 21.08.30 89 3 12쪽
14 <14> 트럭이 쫓아온다. 21.08.27 94 2 12쪽
» <13> 떠오르는 거 있어요? 21.08.26 89 2 12쪽
12 <12> 두 사람 교통사고는 같은 유형이다. 21.08.25 101 3 12쪽
11 <11> 저 자는 누구일까? 21.08.24 103 3 12쪽
10 <10> 대체 하동리는 누구일까. 21.08.23 107 3 12쪽
9 <9> 당신의 기억을 찾아주고 싶어요. 21.08.22 126 3 12쪽
8 <8> 기억을 잃어버렸다면서요. 21.08.21 141 3 12쪽
7 <7>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1.08.20 150 3 12쪽
6 <6>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21.08.19 181 3 12쪽
5 <5> 기억나지 않는다. 21.08.18 241 4 12쪽
4 <4> 당신과 함께 있을 거야. 21.08.17 318 2 12쪽
3 <3>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21.08.16 384 4 12쪽
2 <2> 당신 곁에 내가 있잖아요. 21.08.15 506 3 12쪽
1 <1> 꽈아광! 21.08.14 88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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