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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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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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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4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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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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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너와 나' 이야기 -2-

DUMMY

[???년, ??월 ??일, ??시 ??분, 아르타니아 서쪽 평원, 앱솔 광장(아리아)]


초원이다. 초원 맞나? 부스럭 거리는 발자국 소리는 온데 간데 없다. 바닥은 늪지 마냥 질퍽거리기만 한다. 불쾌한 요소들. 그럼에도 역시나 무감각하다. 그렇기에 더욱이 이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목적지 없는 걸음은 확실히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이것을 의미 있는 행동으로 만들기 위해선 목적지를 어디로 선정해야 할까. 모르겠다.


이젠 내가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조차 정확히 모르겠다. 애초에 의미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을까. 그것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정말.


“엄마...”


누군가 구슬피 흐느낀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직 있어. 사방이 같은 풍경이라 조금씩 헤메인다. 다행이도 흐느낌은 멈추지 않는다. 곧 그 소리가 방향을 일러준다. 오른쪽으로 30도. 고개를 돌린다. 그런데... 한 남자 아이가 무너진 벽 앞에 위태롭게 앉아 있다. 아이에게 다가간다. 아이의 흐르는 눈물을 힘겹게 닦아낸다. 자칫 흙먼지가 아이의 눈에 들어갈까봐 두렵다.


“엄마?”


아이가 고개를 든다. 활짝 웃으면서 말이다. 나 역시 아이를 향해 웃어 준다. 내 미소를 보고 네가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비록 어디 있을지 모를 아이 엄마보단 못하겠지만 그래도 말이야. 그런데 내 얼굴이 조금 굳은 걸까, 웃는 것이 조금 힘들다. 왜지? 아이에겐 못난 미소를 보여줄 것 같다. 그런데 내 미소를 보았을 아이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어딘가 아픈 사람 마냥 눈을 덜덜 떨고 있다. 어딘가 다친 걸까?


“어디 아프니?”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역시나 어딘가가 아픈 것일까. 어디가?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면 등? 뒤통수? 아니면...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그러고는 조용히 아이의 누더기 옷에 손을 얹는다. 그런데 손을 얹자마자 아이가 흠칫하며 옆으로 물러선다. 내가 어딜 만져서 이러는 거지? 어깨? 어깨가 아픈 건가? 피가 묻은 흔적이 조금 있다. 설마 어깨에 상처가 난 건가? 만일 그게 맞다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괜찮아. 울지 말고, 무서워 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살려주세요.”


아이는 겁먹은 모양이다. 원인은? 설마 칼 때문인가? 칼을 검집 채 내려 놓는다. 그럼에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질 않는다. 다른 원인이 있는 걸까. 주변을 둘러보자 아이가 울 만한 원인이 한 가지 보이긴 한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요컨대 앞을 볼 수 없다. 내 발치에 놓여 있는, 주인 모를 팔 역시도 못봤을 거다. 아이의 눈 앞에서 차가운 팔을 치운다. 그리고 주변에 떨어진 벽돌로 대충 묻는다. 고인의 명복을 빌진 않는다. 내게 그럴 자격 따윈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자, 이제 괜찮아. 응? 그러니까 다친 곳만 조금 보면 안되겠니? 잠깐이면 되니까. 응?”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아이 울음 소리는 더욱이 커진다. 고막이 살살 떨리기 시작하고 골까지 울린다. 하지만 아이가 원망스럽진 않다. 아이에게 이런 끔찍한 살육의 잔향을 보여준 나라의 잘못이다. 아이가 잘못한 건 단 한 가지도 없다. 하지만 아이의 거부감은 이상하리만치 크다.


이젠 남은 원인조차 모르겠다. 주변에서 눈쌀을 찌푸릴만한 것은 없애버렸고 위협이 될 만한 칼자루도 치웠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를 거부하는 거야.


“얘. 잠깐이면 돼. 내가 도와주도록 노력해줄 테니까. 그러니 피하지 말고. 응?”


아이는 다가오지 않는다.


“아직 무서운 게 있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뭔지 말해줄 수 있니? 내가 없애보도록 노력할 테니까.”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손으로 가리킬 수는 있을까? 부탁해.”


아이의 덜덜 떨리는 손가락이 무릎 아래에서 천천히 올라온다. 시체를 넘어, 내 칼자루를 넘어, 내 배꼽 위로, 가슴 위로, 내 입술 위로. 그리고 그 손가락이 내 눈 앞에 멈춘다. 아이의 얼굴이 반쯤 흐릿하게 보인다. 아이의 얼굴과 손가락이 흐릿하게 겹쳐 보인다. 그리고 아이는 손가락을 내려 놓는다. 그러자 똘망한 눈에 내 얼굴이 비춰 보인다. 일전의 데자뷰처럼.


피칠갑.


굳은 미소.


흐리멍텅한 눈.


이게 누구지? 나라고?


아이의 어깨에 핏자국.


내 손을 내려다 본다. 그리고 이젠 원인을 알 것 같다. 아이가 무서워하던 이유도, 살려달라는 말도, 어깨의 핏자국도.


아이는 아픈 게 아니다. 내가 무서웠던 거다. 내가 싫어서, 내 손길을 거부한 거다. 나도 미친 사람이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아이에게 끔찍한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으면서 정작 나라를 탓했다.


“미안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몸이 뒤로 물러나고 있다. 아이는 어떻게 하려고? 이대로 두려고? 네가 그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었니?


‘사람은 이기적이야. 그래서 사람이지. 알겠냐? 아리아.’


누가 했던 말이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만 알겠다. 셰일즈가 했던 말일까? 나탈리아 언니? 세라? 슈뢰딩거씨? 버번씨? 모르겠어. 아마도 나는 그 말을 부정했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나일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실감나. 아이의 흐느낌, 고통 섞인 울부짖음, 차가운 팔. 아니, 다른 건 필요 없어. 전쟁통에 남겨진 아이를 두고, 나는 도망가고 있으니까.


“미안해. 미안해. 내가 미안해. 정말.”


아이에게 들릴 리는 없다. 왼손엔 아이의 손 대신 검집이 들려 있고 아이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미 멀어진 거다. 아이에게 들릴 리가. 아니. 애초에 초원에 왜 아이가 있던 거지? 여긴 초원...


‘멍청하긴. 아직도 네 코앞에 있는 현실조차 피하는 거야?’


이건 너의 말이다. 셰일즈. 목소리까지 생생히 귀에 전달된다. 마치 귓가에 대고 직접 말하는 것처럼.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힘들다면 일단은 네 발 밑부터 봐. 뭐든지 밑바닥부터 보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거든.’


밑바닥. 돌바닥. 그래. 초원에 이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정련된 돌길이 깔려 있을 리가 없다. 초원 바닥에서 벽돌을 줍고 누군가의 팔을 묻었다니. 착각이란 정말 놀라운 거다. 이것도 내가 사람이기에. 사람이기에. 사람이기에... 착각을...


“집어 치워.”


웃기지도 않아. 웃기지마. 빌어먹을.


“하... 하하.”


이번엔 무슨 웃음일까. 힘 없이 떨어지는 웃음? 아까처럼?


“흐.. 흐흐흐.. 흐흐흐..”


아니. 미친 거야. 그래. 이제서야 깨달았어.


제정신이 아니야.






[아마도 같은 날, ??시 ??분, 아르타니아 서쪽 평원, 앱솔, 자리안 탑 앞(아리아)]


웃음은 멈춘지 오래. 광기가 멈췄냐면 그것도 아니다. 여전히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이 앞에 달린 것인지, 뒤에 달린 것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니까. 문득 돌아갈 곳이 있는가. 그런 의문이 든다. 다시 생각해 이젠 그것조차 없다.


나와 셰일즈가 묵던 곳은 일찌감치 수색되었을 거다. 그러니 우리 물건은 대부분 남아 있지 않을 거다. 아르타니아로 돌아가는 것은 역시나 무리라는 얘기다. 만일 돌아간다고 해도 시체, 감옥살이 둘 중 하나의 상황에 처할 거다. 그렇다고 적대국에서 은둔 생활을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이들은 우리들의 옷 끝자락만 봐도 이를 갈며 달려들 것이다. 결국,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들이 이곳을 뒤질 거야. 내 시체가 없다는 것을 분명 알아챌 거고.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이 아니다. 나와 셰일즈. 우리들의 ‘생사’다. 아마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를 거다. 짐작은 하겠지. 왜냐하면 모두가 죽었으니까. 아군도, 적군도.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모두.


우리에게 승전이란 없다. 우린 전범자고 나라는 발뺌할 테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 셰일즈를 없애기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을 제물로 바친 거다. 아르타니아에 날아가야 할 소식은 승전이 아니라 패전. 우리가 죽었어야 했으니까. 아르타니아의 계획대로라면.


하지만 그건 실패했다. 나는 멀쩡하게 살아 있다. 너도 그렇다. 아르타니아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 뿐이다. 그들을 보낸다. 우리를 숙청한다. 조용히, 이 전쟁터에서 죽은 것처럼 꾸며낸다. 결국, 우리들에게 승리란 전제는 처음부터 없었다. 우리는 바보 같이 그걸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고.


아마도 그들은 이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 해가 뜨기 전에는 올 거다. 어쩌면 주변에서 쭉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뭇가지에 올라 서서 조용히 칼을 갈며. 우리들이 죽었기를 바라며. 어쩌면 자신들의 공을 위해 죽지 않았길 바라며.


행여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다음 목표를 정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 이를테면 필요한 물품들의 구비, 다음 행선지 등이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찾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셰일즈. 너를 찾아야 한다. 지금으로선 이것이 1순위 목표다.


너는 분명히 살아 있다. 으레 짐작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확신이고 사실이다. 세상에 텔레파시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아는 셰일즈 나딕 블러디아라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다 한들 네가 어디 있는지까지는 모른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건 확실하다. 너 역시 이곳에 참전했으니까. 셰일즈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주변을 돌아보니 ‘어떻게’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옷, 칼, 집, 시체 말고 무엇이 있다고. 그렇다면 가장 고전적인 방법부터 사용해야 할까. 고지대를 이용한다는. 그렇다면 첫 목표는 약 200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는 종탑이다.


그리고 어쩌면... 짧은 인생이지만 반평생을 함께 살아 온 너라면, 나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너는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최대한의 이성으로 생각해낸 것을 너도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두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네가 완전한 합리주의를 위해. 혹여나 나를 버리고 간다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짐덩이. 나 같은 짐덩이를 네가 좋다고 데리고 다닐까? 너는 냉정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이다. 심지어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그래서 무서워 셰일즈. 그래서 무서운 거야.




작가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open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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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난 또 왜 이런 거야 21.06.07 34 0 8쪽
199 소원은 개뿔이 21.06.02 29 1 7쪽
198 오늘 기도할 걸 정했어 21.05.31 27 0 9쪽
197 듣고 잊든가, 기억하든가. 21.05.26 27 0 8쪽
196 바라는 이야기 -2- 21.05.12 27 0 9쪽
195 바라는 이야기 -1- 21.05.10 33 1 16쪽
194 들어가는 이야기 -9- 21.05.05 28 0 8쪽
193 들어가는 이야기 -8- 21.05.03 32 0 13쪽
192 들어가는 이야기 -7- 21.04.30 29 0 12쪽
191 들어가는 이야기 -6- 21.04.28 33 0 12쪽
190 들어가는 이야기 -5- 21.04.26 41 0 10쪽
189 들어가는 이야기 -4- 21.04.09 35 0 10쪽
188 들어가는 이야기 -3- 21.04.07 33 0 10쪽
187 들어가는 이야기 -2- 21.04.06 38 0 8쪽
186 들어가는 이야기 -1- 21.03.31 40 1 9쪽
185 불씨 이야기 -5- 21.03.29 60 0 9쪽
184 불씨 이야기 -4- 21.03.24 52 0 10쪽
183 불씨 이야기 -3- 21.03.22 47 2 9쪽
182 '빛깔' 이야기 -에필로그- 21.03.17 40 0 8쪽
181 '빛깔' 이야기 -13- 21.03.15 37 0 12쪽
180 '빛깔' 이야기 -12- 21.03.11 45 0 12쪽
179 '빛깔' 이야기 -11- 21.03.08 35 0 12쪽
178 '빛깔' 이야기 -10- 21.03.03 33 1 10쪽
177 '빛깔' 이야기 -9- 21.02.26 49 0 11쪽
176 '빛깔' 이야기 -8- 21.02.24 3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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