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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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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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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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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4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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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3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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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들어가는 이야기 -1-

DUMMY

[931년, 12월 28일, 19시 41분, 아르타니아, 헤인느 세인트 22번 길, 아론 빌딩 3층, 셰일즈의 집(셰일즈)]


아타와 카탈리는 본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이야기가 크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도 카탈리와 시온 모두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 같다. 아타와 나만 알게 된 이야기.


‘왕은 없어.’


그 말을 한 걸 후회해야 할까. 왕은 없다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설명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 설명할 때가 아니란 거겠지. 아타에게 더 많은 말을 하지도 않았다. 단지 충격 받은 그 녀석의 표정을 봤다. 워든들의 사명, 왕과 에르디우스톤을 위해 심장을 바치라는, 오글거리고 웃기지도 않는 표어. 그건 다들 웃어넘길 이야기라 생각하더라도 마음 속 뿌리깊이 잡은 생각일 거다. 아타도 카탈리도 별반 다르진 않을 거다.


자신이 심장을 바칠 정도로 모셔야 하는 사람이 세상에 없단 얘기를 들었다면... 그땐 어떤 생각이 들까. 아타는 입술을 깨물고 손가락을 비비적거렸다. 머릿속이 복잡한지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내 말이 거짓이라 의심했을 법도 하다. 근거가 없다고도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타는 내 말을 믿기 시작했... 다기 보단 왕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 같다.


적어도 이 이야기가 카탈리에게까지 들어가진 않을 거다. 그 편이 낫다. 꺼림칙한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 것보단 차라리 맘 편하게, 이 나라 최대의 역적으로 나를 맞이하는 편이 나을 거다. 그러면 카탈리도 마음이 더 편하지 않을까.


“셰일즈, 넌 네가 희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순간 내가 혼잣말이라도 했나 싶어서 입을 막는다. 내 집, 시온 녀석은 의자에 거꾸로 앉은 채, 등받이에 턱을 기대고 있다. 그러면서 녀석이 한 말이다. 내가 희생적이라고? 이게 희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나는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을 뿐이고...


“에? 왜 그래?”


시온 녀석이 연기를 하는 걸까. 진짜 이상한 사람 보는 눈빛으로 나를 흘겨본다. 뭔가 싶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다. 녀석은... 하품을 한 차례 하더니 여전히 피곤한지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아까, 로미씨한테 너무 큰 돈 썼잖아. 너는 너무 너한테 안 쓰는 것 같아.”


아... 뭐야. 저런 얘기였나? 아니, 애초에 시온 녀석이 내 이야길 듣지 못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내 속마음이... 혹여 새어나갈 일도 없고. 나는 왜 두려웠던 거지? 내 속마음을 들킬까봐? 설마 내가 이걸 희생이라고 생각한 걸까? 그러면 참 유감인데...


“희생은 무슨. 나한테 돈 쓰는 건 영 재미가 없거든. 돈이 있든 없든.”


그렇게 답하고 만다. 시계를 본다. 19시 41분. 아니, 날짜가 더 중요한가. 12월 28일. 시온이 가기까지 며칠 안 남았다. 네가 가고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아니, 이 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었지. 반대로... 너는 아세오로 돌아가서 어떻게 살아갈까.


“시온, 너는 아세오에 돌아가면 뭐 하려고.”


그러자 녀석은 내가 뭔 이상한 질문이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드디어 셰일즈가 내게 좋은 질문을 했다느니, 나도 사람 자체에 관심이 있긴 한가 보다... 라느니. 너는 손뼉을 치면서 답한다.


“그야! 그야... 그...”


하면서 무슨 그래프가 떨어지듯 네 허리도 축 늘어진다. 그러더니 이번엔 의자에서 젤리처럼 흘러내리고선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린다.


“그러게. 뭐 해야 하지.”


무심코 장난기가 들어서 말한다. 어떻게 보면 진실로 마음을 후려치는 일인데...


“너도 생각보다 대책 없이 사는구나.”


내가 이렇게 말하자 시온 녀석은... 화낼 법도 한데 그렇게 말한다.


“여자 하나 보고 인생 다 내던지는 너보단 대책이 있는 편 아닐까?”


... 이건 또 할 말이 없다. 시온의 말 중에 틀린 건 없으니까. 기분이 나쁘다고 하고 싶지도 않다. 마음을 세게 맞은 느낌이긴 한데,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니까.


“뭐... 그럴 수도 있고.”


대충 얼버무린다. 그러자 너는 뭔가 켕기는 게 있는지 느긋하게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


“너, 내가 가도 이상한 생각하면 안 돼. 나는... 네 친구... 잖아.”


하여간, 얘도 그렇고 다른 녀석들도 그렇고 내가 뭐 곧 죽을 사람처럼 보이나 보다. 몇 번이고 주변인들에게 말했지만, 난 죽을 생각이 없다. 아리아를 만나려고 인생을 배팅하는 게 이상한 생각이라면,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왜 다들...


“셰일즈. 알겠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걸까. 동정 어린 눈빛을 받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싫다. 부모가 없든 부모가 죽었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든 간에 나는 불쌍하지 않다는 마인드다. 나보다 불행한 인간들은 수도 없이 많다. 당장에 아리아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 ‘첼시’라는 아이만 봐도 그렇잖아. 게다가 시온, 너도 이로 말할 수 없을 만큼 비루한 인생을 살았다. 내가 소설이라도 잘 썼다면 하나 내주고 싶을 만큼.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런 눈빛을 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때문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눈빛을 보내는 것 자체를 경계하게 되기도 했고. 이걸 깨달은 건... 게르단가에서의 끝 무렵에 있었던 일 같은데, 좀 있다가 네게 얘기하면 될 것 같다.


일단 7시 지났는데 밥부터 먹을까. 패스티가 아무리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도 금방 배가 꺼지는 것도 사실이다. 손가락으로 주방 쪽을 가리킨다. 물론 시온이 보라고 그런 거다. 그러자 녀석이 은색 눈동자를 고양이처럼 반짝이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진짜 고양이냐.


“밥 먹을 거냐고.”


그러자 너는 뭔가 성에 차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내 말에 답은 안 해주고. 항상 네 좆대로 살아라. 그냥.”


... 그러면서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간다. 아주 문까지 쾅 닫고 말이다. 이방인인 네가 나가봤자 어딜 갈 곳은 없을 거다. 끽해야 현관 앞에서 담배나 피고 있겠지. 벽걸이에 걸어둔 코트를 챙긴다. 주머니를 뒤져본다. 담배를 넣어뒀던가? 궐련이... 생각해보니 아까 카탈리 녀석을 보내기 전에 다 폈다. 남은 거라곤 비상용으로 수납장에 쟁여놓은 싸구려 담배가 전부다. 그거라도 한 개비를 챙긴 후, 코트를 손으로 들고 나간다.


시가지일수록, 번화가일수록 건물은 생각보다 좁다. 좁고, 낡았다. 아론 빌딩도 그런 곳이다. 나무 계단은 무슨 쿠션처럼 걸어내려갈 때마다 바닥이 1cm씩 꺼지는 것 같다. 그런 긴장감에 시달리면서 이 계단을 내려가는 거다. 매일, 매순간. 이것조차 얼마 남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니 애착이 남은 걸까. 가기 전에 빌딩 주인에게 돈이라도 줘야겠단 생각이 든다.


나무 현관을 열고나오니, 네가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목도리도 방에다 두고 온 주제에 몸은 또 추운지 코트로 꽁꽁 싸매고 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무릎 사이로 파묻는다.


“추워 보인다?”


그러자 녀석은 구경났냐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홱 돌린다. 제대로 삐졌네. 녀석의 머리에 코트를 덮어준다. 정확히는 얹어준다.


“뭐하는 거야?”


“담배 피려고.”


녀석이 묻는 말에 그렇게 답한다. 고작 코트 하나가 따뜻하면 얼마나 따뜻하다고 목소리가 조금은 녹아내린 걸까. 바닥에 쌓인 눈을 매만져본다. 흙이 섞여서 거뭇한 눈. 대충 털어내고 담배를 문다. 불을 붙이고, 다시 연기를 들이마신다. 시온 녀석은... 웬일로 안 피네.


“안 펴?”


그러자 너는 고개를 젓는다. 얹어준 코트는 정리하지도 않고, 얼굴을 더 깊숙이 파묻는다... 젠장. 코트 바닥에 다 끌리잖아. 이 머저리야.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있는다. 담배는 거의 반쯤 타버렸다. 시온 녀석이 은근슬쩍 담배를 쳐다보더니, 내가 한창 피던 걸 빼앗고는 한입 깊숙이 들이마신다. 그리고 다시 내뱉고.


“뭐하냐. 그럴 거면 네 거 피면 되잖아.”


생뚱맞은 상황 때문에 어이가 없다. 젠장. 마저 피고 싶은데.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이미 바닥에서 눈과 하나가 된 네 코트 주머니, 거기에 손을 넣어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너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손에 닿는 느낌에 따라 천천히 이곳저곳 더듬어본다. 그러다가 직육면체의 딱딱한 무언가가 손에 잡힌다. 보나마나 담배갑이겠지. 천천히 그걸 꺼내고, 그 안에 든 건... 어...


“너... 무슨... 어?”


직육면체의 작은 나무 케이스. 거기엔 금박으로 셰일즈 나딕 블러디아라고 쓰여 있다. 뭔가 싶어서 열어보고 싶었지만, 네가 확 낚아채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반응을 못할 정도로 낡아버린 건지, 네가 진심으로 빠르게 움직인 건지 모르겠지만...


“뭐야, 그거.”


시온은 그걸 가슴 속 깊이 숨겼다. 새빨개진 얼굴로, 어떠한 위기감을 느낀 표정으로, 목은 흐느끼면서.




작가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openobserver


작가의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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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난 또 왜 이런 거야 21.06.07 33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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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바라는 이야기 -2- 21.05.12 27 0 9쪽
195 바라는 이야기 -1- 21.05.10 33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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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들어가는 이야기 -7- 21.04.30 29 0 12쪽
191 들어가는 이야기 -6- 21.04.28 33 0 12쪽
190 들어가는 이야기 -5- 21.04.26 41 0 10쪽
189 들어가는 이야기 -4- 21.04.09 34 0 10쪽
188 들어가는 이야기 -3- 21.04.07 32 0 10쪽
187 들어가는 이야기 -2- 21.04.06 37 0 8쪽
» 들어가는 이야기 -1- 21.03.31 4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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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불씨 이야기 -4- 21.03.24 52 0 10쪽
183 불씨 이야기 -3- 21.03.22 44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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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빛깔' 이야기 -11- 21.03.08 34 0 12쪽
178 '빛깔' 이야기 -10- 21.03.03 3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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