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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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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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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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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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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이야기 -5-

DUMMY

[931년, 12월 28일, 15시 12분, 아르타니아, 헤인느 세인트, 30번 길, 마틴 헨리 법률 사무소(셰일즈)]


“둘 다 내 성이지. 본명이고.”


아타가 은색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본다. 대충 답하지 말라거나,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 의사를 두 글자로 일축한다.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 네 옆으로 간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허공을 본다기엔 올곧은 눈빛이었고, 그 눈을 따라서 시야를 옮기니... 반쪽짜리 시야지만 바깥에 어린 아이 둘이 뛰놀고 있는 게 보인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었을까?”


내가 묻는다. 뱉고 나서 보니 괜히 감성에 젖은 질문 같다. 정정하려고 다시 입을 여는 순간, 네가 답한다.


“아니.”


“참 깔끔한 답변이다. 차가운 목소리에.”


“셰일즈.”


“왜.”


“너, 곧 죽을 사람 같아.”


“뭔 소리야, 또. 내가 말했잖아. 아리아 만나기 전까지...”


“그런 분위기가 느껴져.”


... 능청맞은 척해도 잘 모르겠다. 나는 어딘가를 보고 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로 아리아를 보는 게 목적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휘몰아치는 때는 언제나 찾아왔다. 그건 바깥에서 담배를 필 때도, 의뢰인의 의뢰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셰일즈. 법률 사무소가 이렇게 조용한 게 말이 되나?”


할 말이 사라졌다. 그야... 최근에 왔던 모든 의뢰를 거절했다. 의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시온을 오랜만에 만난 며칠 전만 하더라도 의뢰가 들어왔었다. 그것도 거절했다.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을 못한 것 같다. 그야... 다들 법률 사무소에서 일을 해봤겠어. 심지어 이곳에 가장 많이 온 시온은 외국인이다. 호리모르는 그냥 멍청이고. 다른 두 녀석은 이번에 처음 온다.


아타는 어떻게 눈치 챘을까.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걸까. 네게 눈치를 주자, 너는... 책상 위를 보며 말한다.


“아까 봤는데, 셰일즈. 네가 처리한 건. 이미 몇 주 전 의뢰였어.”


뭐라고 말할까. 애초에 아타 녀석에게 숨긴다고 숨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아리아 다음으로 무서웠던 워든은 다름 아닌 아타다. 하지만 제일 믿는 사람도 아리아 다음으로 아타다.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존재다. 너를 어떤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너는... 이미 세상 모든 상황을 다 깨우친 사람 같다. 득도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뭔가의 경지에 올라선 사람. 워든들 모두가 비정상적으로 괴물 같은 사람들이란 걸 인정하지만, 너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우리와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이방인 같기 때문이다.


“너 같은 녀석이 카탈리랑은 왜 같이 다니는 건지 아직도 이해 못하겠어.”


아타에게 묻는다. 늘 궁금했던 거다. 아타는... 성문에 있을 때도, 우리의 등장으로 성문수비대장에서 잠시 내려갔을 때도 카탈리와 함께 다녔다. 그 녀석과 너는 성격이 정반대다. 안티테제 같은 느낌이다. 성격부터 외모, 추구하는 전투 스타일까지. 카탈리를 재빠른 곰이라고 할 수 있다면, 너는 느긋한 여우다. 극상성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모여서 다녔을까.


너는 잠시 카탈리를 돌아본다. 그런데 네가 미소를 짓는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에게 짓는 미소 같았다. 아니면 그 반대 같기도 하다. 너는 무슨 감정을 느끼는 걸까.


“카탈리는 내 은인이니까.”


은인? 뭐... 카탈리 녀석이 아타를 구해주기라도 한 걸까? 그런 것 치곤 시기적으로 말이 안 된다. 아타가 카탈리를 구해줬으면 모르겠다. 왜냐하면 아타는 이미 카탈리 녀석이 들어오기 한참 전부터 워든이었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러자 아타 녀석은 창가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한참을 가만히 있는다. 네 얼굴은 온건한 표정 그대로이나, 목선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목이 메는지 목젖 언저리가 부자연스럽게 꿈틀거린다.


“삶의 이유를 찾게 해줬거든.”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다. 궁금하지만... 네 목소리에서 왜인지 울먹임이 느껴졌다. 더 이상 물었다가 괜히 네가 울기라도 하면 카탈리에게 죽는다. 애초에... 네가 울길 바라지 않는 게 우선이긴 하다. 아타.


“셰일즈. 중요한 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 네 이야기지. 너, 원래 의수 없었지. 게다가 샤카도 최근에 다듬은 것 같고. 그런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네가... 어딘가로 떠날 거란 생각이 들거든.”


내 머릿속에 뭐라도 심은 걸까. 아타의 추측이 대게 맞아떨어져서 놀랐다. 물론 내색을 하진 않는다. 심드렁하게 하품을 하며, 녀석의 질문에 최대한 대충 답하기로 한다. 물론 거짓은 없이.


“갈 데가 있어서.”


거짓은 아니다. 필요에 의해 말을 아꼈을 뿐이다. 때문에 어떤 죄책감도 없고, 티도 나지 않을 거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더욱이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타는 자신의 헐렁이는 옷소매에 손을 넣더니 내게 정면으로 다가와 묻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게. 나는 네가 살아있다는 걸 짐작했어. 네가... 여러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다는 것도 알아. 주로 너희 둘, 아리아, 셰일즈에게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도. 그런데 너, 이번에 떠나는 곳은 그런 잡배들이 모인 곳이 아닌 것 같아. 그렇다고 먼 곳도 아닌 것 같고.”


...


“우리 앞에 네가 나타나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 거야.”


우리... 라는 건 카탈리와 너를 뜻하겠지.


“누군가를 죽일 생각은 없어. 죽을 생각도 없고.”


그렇게 답한다. 하지만 너는 납득을 전혀 못한 것 같다.


“너, 아르타니아 왕을 보러가려는 거야? 성문을 지키는 사람들을 모두 뚫고? 아무리 너라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러게. 나는 솔직히 말해서... 모두를 이기고 올라갈 자신이 없다. 아리아 정도 되는 비대칭 전력도 아니고, 그저 아리아보다 잔꾀가 많은 수준에 불과하다. 악바리로 고통 버티기나 좀 되는 정도일 수도 있다. 그보다 이 녀석은 어떻게 다 예상한 걸까. 머릿속에서 소설 쓰는 게 취미일까? 그러다가 하나 정도 얻어걸려서 얘기한 건 아닐까?


모든 걸 인정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맞아. 네 말이. 왕을 보러가는 거야. 정확히는... 왕이 있는 그 방으로 들어가려는 거야. 굳게 닫힌 문. 아르타니아 성은 외벽을 타고 오를 수 없는 구조다. 직각의 7단 케이크라고 생각하면 되는 구조인데, 계단을 제외한 다른 모든 면들은 칼자루 하나 제대로 박기 힘들 정도의 강도를 지니고 있다. 그 높은 계단마다 7개의 성문을 둔 건 괜히 하는 행동이 아니다. 하늘이라도 날아서 가지 않는 한, 올라갈 곳은 명백히 그곳뿐이고, 그곳만 온힘을 다해 지키면 함락 자체를 생각하기 힘든 구조다.


그 말은... 왕이 있는 그 방으로 가려면 7개의 성문을 지나야 하고.


아타와 카탈리, 세르게이, 마우러스, 재연, 아달레우스, 유리아... 일곱 명과 그 수하의 다른 워든, 기사들을 모두 제쳐야 하며.


“아무도 죽이지 않을 거야. 내가 죽지도 않을 거고.”


이 말도 안 되는, 아리아나 했을 법한 이상적인 생각 자체를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가면 아리아를 볼 면목이 없으니까. 아리아가 진심으로 지키고자했던 사람들을 내가 상처 입히면, 무슨 낯으로 녀석을 보겠어.


“도대체 왜 가려는 거야. 거기에 아리아씨가 있다고 생각해? 말도 안 되는 상상이야.”


“그곳에 아리아가 있다는 게 아니야. 하지만 아리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유일한 증거는 그곳에 있어.”


아타가 고개를 떨어뜨린다. 더 이상 네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네가 오면... 우린 널 막을 수밖에 없어.”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겠지.”


“애초에 아리아가 사라진 증거가 왜 그곳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증거가 있는 거야?”


... 증거.


“왕은...”


얘기해도 될까. 워든인 네게. 나에게 아타, 넌 친구다. 워든이기 이전에. 그런데 아타, 너에게 나는 친구일까. 네가 나를 보는 시선, 내가 너를 보는 시선. 나는... 이기적인 선택을 해야 할까.


“얘기해도 돼. 우린 널 막을 수밖에 없지만, 나는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 나는 널 막지 않을 거야. 내가 워든을 놓더라도.”


... 오래전, 아리아와 내가 앱솔 평원에서 전쟁을 치르던 중, 마우러스 로코시스가 내게 찾아와서 남긴 말이 있다. 에이마가 노화로 죽었다고 생각하느냐. 네가 떠나고 그의 말이 내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이런저런 흔적을 찾아다녔고, 그 끝에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르타니아가 왜 후진적인 제도를 가지면서도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지. 왕은 왜 계속해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지. 디테일한 얘기를 할 순 없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왕은 없어.”




작가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open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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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네가 조금이나마 안심하도록 21.06.09 32 0 7쪽
200 난 또 왜 이런 거야 21.06.07 34 0 8쪽
199 소원은 개뿔이 21.06.02 29 1 7쪽
198 오늘 기도할 걸 정했어 21.05.31 27 0 9쪽
197 듣고 잊든가, 기억하든가. 21.05.26 27 0 8쪽
196 바라는 이야기 -2- 21.05.12 27 0 9쪽
195 바라는 이야기 -1- 21.05.10 33 1 16쪽
194 들어가는 이야기 -9- 21.05.05 28 0 8쪽
193 들어가는 이야기 -8- 21.05.03 32 0 13쪽
192 들어가는 이야기 -7- 21.04.30 29 0 12쪽
191 들어가는 이야기 -6- 21.04.28 33 0 12쪽
190 들어가는 이야기 -5- 21.04.26 41 0 10쪽
189 들어가는 이야기 -4- 21.04.09 35 0 10쪽
188 들어가는 이야기 -3- 21.04.07 33 0 10쪽
187 들어가는 이야기 -2- 21.04.06 38 0 8쪽
186 들어가는 이야기 -1- 21.03.31 40 1 9쪽
» 불씨 이야기 -5- 21.03.29 60 0 9쪽
184 불씨 이야기 -4- 21.03.24 52 0 10쪽
183 불씨 이야기 -3- 21.03.22 46 2 9쪽
182 '빛깔' 이야기 -에필로그- 21.03.17 40 0 8쪽
181 '빛깔' 이야기 -13- 21.03.15 37 0 12쪽
180 '빛깔' 이야기 -12- 21.03.11 45 0 12쪽
179 '빛깔' 이야기 -11- 21.03.08 35 0 12쪽
178 '빛깔' 이야기 -10- 21.03.03 33 1 10쪽
177 '빛깔' 이야기 -9- 21.02.26 48 0 11쪽
176 '빛깔' 이야기 -8- 21.02.24 3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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