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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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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최근연재일 :
2021.07.05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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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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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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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너와 나' 이야기 -1-

DUMMY

[???년, ??월 ??일, ??시 ??분, 앱솔 평원(아리아)]


밤이 깊어요.


“너도 그럴 거라고 믿어. 내 말이 맞지?”


들릴 리도 없는 바람을 하늘 멀리 날려본들 네게 닿을 일은 없다. 어떤 소설은 얘기한다. ‘같은 하늘 아래 있으니까 ‘너’와 ‘나’가 이어져 있다. 그렇기에 살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말도 안 돼.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은 분명 맞는 표현이다. 하늘은 넓으니까. 그래서 별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 거니까. 그러면 내가 밟은 땅은? 너와 같을까? 웃기는 소리. 네가 보이지 않아.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아. 나는 그걸 알아. 현실적으로 생각해.


좋지 않은 결과가 눈에 선하다. 그리고 슬프게도 예상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지난 9년간 그래왔다.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정신에 도움이 될 지는 몰라도, 현실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자그마치 9년이 된 것이다. 내 기억이 시작된 시점이 8년 전이라는 걸 생각하면, 나는 처음부터 정말 재미 없는 여자였던 거다.


그 생각이 365일 그랬냐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사람은 바뀌기 마련이다. 나는 17살이고 8년 전의 나는 9살이다. 청소년기는 사람이 천사가 되기도, 악마가 되기도 하는 시기다. 나에게 있어서만이 아닌 사람에게 있어서, 변화는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변화 했었다. 그리고 또 변화 했다. 어제도 변화 했다. 매일 빛의 소멸과 생성을 겪는 별처럼.


“제. 발.”


내 앞에 앉은 이는 눈썹을 다 가리는 금빛 장발, 여자인 줄 알았으나 일단은 남자다. 남자와 여자, 남녀 사이에서 울려퍼지는 신음은 교성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 사람과 내가 사랑을 나누며 그런 소리를 낼 거라면 아마도 나와 당신은 침대 위. 하다 못해 어둠이 암습한 골목 어귀에 있을 것이다. 최소한을 말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나와 이름조차 모르는 이 사람은 역시나 어딘지도 모를 땅 위에 서 있다.


“제. 발.”


나름 수려한 외모를 지닌 사람이다. 반들반들했을 얼굴에 근육질은 아니지만 적당히 보기 좋은 체격까지.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터전에선 꽤나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분명 그랬을 거다. 외모지상주의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반인에게 있어 ‘괜찮은 외모’라는 것은 기억에 남을 만한 것도, 자신의 기억 속에 단편적으로 남을만한 사람도 아니라는 뜻이다. 당신의 고향에 살던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나는 전혀 아니었다.


당신이 입은 옷은 길게 늘어진 가죽 코트다. 왜 이런 것을 입고 이곳까지 왔는지는 모른다. 다만 무언가 막아줄 거라 생각하고 가죽 재질의 코트를 입고 온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손가락으로 딱밤을 때려도 경중을 떠나 아픈 것은 사실이다. 하물며 칼에 찔린다면 어떻겠는가. 그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피가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끔찍한 고통이 몰고 오는 결과는 결국 무릎을 꿇는다는 것 뿐이다. 힘이 완전히 빠져나가는 기분보단 힘을 넣을 수조차 없는, 증기관의 한 곳에 구멍이 뚫려서 제대로 구실을 못 하는, 그런 거다.


칼자루가 꼽힌 채로 자리에서 일어난 후, 상대에게 달려가기까지 한다는 영웅 소설을 본 적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건 허구다. 밥을 먹고 달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얼마 뒤에 끔찍한 복통이 밀려오고 뛰기는 커녕 걷기도 힘들어지는 그 느낌. 그 느낌보다 몇 십배는 심각한 것이 바로 그런 고통이다. 내가 느낀 적이 있냐면 비슷한 경험은 한 적 있다. 그런 경험을 확실히 해본 것은 셰일즈, 너였다. 지금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한명 더 있다면, 그것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이 사람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코트다. 가죽 코트. 분명 굉장히 질긴 재질이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입기엔 적당한 옷이다. 어쩌면 당연히 입고 와야 될 옷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중간까진 입고 왔었으니까. 하지만 입어도 그렇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고통은 1%만 입더라도 고통이다. 독백했듯이 머리를 한방 툭 치는 것도 썩 느끼진 못하더라도 엄연한 고통이다. 가죽 코트가 칼자루를 어느 정도 막아준다는 것이 기정 사실일지라도 결국 가죽코트는 돌 덩어리가 아니다. 철판도 아니다. 결국 칼은 코트를 뚫고 들어오기 마련이고, 그것은 누군가의 피부에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상처는 고통을 피어오르게 한다. 결국, 의미는 없는 것이다. 어차피 무엇을 입건 죽을 건데. 추운 겨울도 아니고, 더운 여름도 아니고, 초원인 이곳엔 별다른 위험 요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말하자면 알몸으로 이곳을 돌아다니는 편이 칼자루가 휘날리는 마당에 이런 어중간한 차림보단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알아. 말도 안 되는 말인 거.


“많이 고통스러워보여요.”


당신은 한층 더 절망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고개까지 푹 떨궜다. 이젠 고개조차 들 힘도 사라진 것일까? 절망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좌절의 시간은 한참 전에 오고도 남았을 테니까.


당신은 말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그 모습이 눈치채기 힘들 정도라 솔직히 반신반의했지만,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 맞을 거다. 당신도 대답을 해야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거다. 대답을 하느냐 마느냐. 그에 따라 당신이 고통을 겪어야하는 시간이 줄어들 테니까. 당신도,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고향은 제리아스 맞나요?”


이번 질문에 당신은 대답하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한 차례 쿨럭이더니 조용히 각혈한다. 당신은 흘러나온 피와 함께 자신의 손으로 내 칼을 움켜 쥔다. 투명한 검신을 타고 차가운 선혈이 방울을 이룬다. 때론 그 방울, 방울이 이어지며 물줄기를 이루었다. 그것이 곧 그의 코트 소맷자락을 적신다. 가죽은 싸구려였는지 붉게 물든다.


“다른 지역인가요?”


이번 질문에도 당신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칼자루가 흔들리는 것을 보니, 당신은 남은 힘을 다 해서 날을 움켜쥐는 모양이다. 손에서 홍수처럼 흘러나오는 피를 볼 때, 당신의 죽음은 한 없이 빠르게 다가온다.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어차피 죽을 거라면, 고통 없이 빨리 죽는 것이 낫다는 사고일까. 아니. 사실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가장 떠오르는 생각은 없으십니까?”


갑자기 당신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꺼져가는 불씨에 비하면, 마치 섬광 같았던 행동이라 놀랍다. 그리고 당신은 씨익 웃으며 양 손을 놓는다. 그 다음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입을 연다.


“제...발... 죽여줘...”


당신의 몸이 30도 쯤 뒤틀려보인다. 당신뿐만이 아니라 세상이 그랬다. 내 고개가 한 30도 가량 기운 모양이다. 내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그런 것인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사고 능력이 점점 결여되는 것만 같다.


“제...발...”


당신이 애원한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짧은 문장만 내뱉던 당신이 지금, 말을 하고 있다.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이다. 썩 좋지 않은 기분이다. 요컨대, 당신이 나에게 바라는 행동은 자기 의지의 전가이다. 쉽게 말하면 칼을 비틀어 뽑아달라는 거다. 자살과 다를 바가 없는 것.


하지만 마음이 흔들리지 않느냐 하면, 그것 역시 아니다. 당신의 얼굴을 보노라면 당신의 복부에 칼을 꼽고 이런 질문을 하는 나. 그래. 내가 새삼 미쳤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니까.


당신의 표정은 자주 본 적 없는 표정. 분명 한번... 아니, 아니야. 여러번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처음엔 고통을 표방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고통은 여러가지 악감정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기 마련이야. 좌절, 절망, 그리고 원망까지. 당신의 얼굴 표정이 내게 말해주고 있어. 당신은 고통을 느끼고, 죽음이란 미래에 좌절했고,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어. 그리고 그 원인인 나를 원망해.


“마지막 질문이에요.”


당신의 얼굴이 밝아진다. 나도 당신을 향해 웃어준다. 소리까지 내진 않고 따뜻한 미소로. 그러자 당신의 얼굴이 변색한다. 혐오의 얼굴로. 그러면서도 미쳐버린 건지 실 없이 웃는다. 조용히 당신과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한다.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그의 눈에 비치는 내 얼굴이 눈에 띄어서다. 당신과 대비 되는 웃음을 보기 위해.


그래, 나는 잘 웃고 있어.


“죽음을 원하나요?”


마지막 질문 끝에 당신이 소리지른다. 그 소음 속에 고통이 섞여 들어가 듣기가 거북했다. 이른바 싫은 소리다. 그리고 그는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끝도 없이. 마치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할 작정이라는 듯. 죽음의 문턱에서 당신은 미쳐버린다.


가속기를 킨다. 그러자 작은 진동과 함께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금방 꺼져버린다. 수명이 다 한 것일까. 이젠 순수하게 내 힘을 써야 할 때가 온 모양이다. 칼을 비틀어 뽑는다. 그의 몸 속, 빈 공간을 메꾸던 퍼즐이 빠져나간다. 댐은 무너져 내린다. 물이 범람하듯, 홍수까지 몰려오듯 그의 복부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당신은 고통스런 모습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다. 나는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확실한 건 내 부츠에 당신의 흔적이 남아서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기뻐해야 할 것은 당신이 이곳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란 거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기쁘진 않다. 사실 기쁘단 느낌 자체가 없다. 아무 느낌도 없다. 아무런 생각도 없다. 사람의 몸에 칼을 박아 넣고, 태연하게 질문하면서, 수많은 독백을 했다. 그것이 내가 한 행동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전혀 자각할 수 없다.


결국, 작은 전쟁의 끝까지 살아 남았다. 하지만 느낀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크고 작은 전쟁을 경험한 노인들이 말하길 전쟁 후유증이란 것이 그리도 무섭단다. 매일 밤마다 악몽의 구더기가 자신의 발목을 죄어오며 곧 그것이 숨통을 조여온다고 한다. 게다가 칼자루만 봐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고 심지어는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모르겠다. 끓어오르는 투기감도. 떠오르는 사람도. 심지어는 셰일즈, 너도. 전쟁 중에 떠오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생존본능조차 잊혀진 것 같다. 그저 맹목적인 움직임만이 남는다. 손은 내 손이 아니고 발은 내 발이 아니다. 뇌는 얼어 붙고 표정은 굳은 석고상이 된다. 그리고 심장에선 피 대신 시뻘건 녹물이 흐른다.


기계였던 거야. 살인 기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거야.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당연한 거지.


그렇게 생각하니 힘 없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늘로 날아가기보단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웃음이다. 생각의 갈피를 잃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방향조차 잡을 수 없다는 것.

걷자.

걸어.

그냥 걸어 아리아.

뒤돌아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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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난 또 왜 이런 거야 21.06.07 34 0 8쪽
199 소원은 개뿔이 21.06.02 29 1 7쪽
198 오늘 기도할 걸 정했어 21.05.31 27 0 9쪽
197 듣고 잊든가, 기억하든가. 21.05.26 27 0 8쪽
196 바라는 이야기 -2- 21.05.12 27 0 9쪽
195 바라는 이야기 -1- 21.05.10 33 1 16쪽
194 들어가는 이야기 -9- 21.05.05 28 0 8쪽
193 들어가는 이야기 -8- 21.05.03 32 0 13쪽
192 들어가는 이야기 -7- 21.04.30 29 0 12쪽
191 들어가는 이야기 -6- 21.04.28 33 0 12쪽
190 들어가는 이야기 -5- 21.04.26 41 0 10쪽
189 들어가는 이야기 -4- 21.04.09 35 0 10쪽
188 들어가는 이야기 -3- 21.04.07 33 0 10쪽
187 들어가는 이야기 -2- 21.04.06 38 0 8쪽
186 들어가는 이야기 -1- 21.03.31 40 1 9쪽
185 불씨 이야기 -5- 21.03.29 59 0 9쪽
184 불씨 이야기 -4- 21.03.24 52 0 10쪽
183 불씨 이야기 -3- 21.03.22 46 2 9쪽
182 '빛깔' 이야기 -에필로그- 21.03.17 40 0 8쪽
181 '빛깔' 이야기 -13- 21.03.15 37 0 12쪽
180 '빛깔' 이야기 -12- 21.03.11 45 0 12쪽
179 '빛깔' 이야기 -11- 21.03.08 35 0 12쪽
178 '빛깔' 이야기 -10- 21.03.03 33 1 10쪽
177 '빛깔' 이야기 -9- 21.02.26 48 0 11쪽
176 '빛깔' 이야기 -8- 21.02.24 3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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