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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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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잠
작품등록일 :
2017.05.14 22:15
최근연재일 :
2017.05.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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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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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글자
11쪽

차명석

DUMMY

‘내가 잘못 본 거지?’

영건은 제 눈을 의심했다.

‘그래.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걸 거야.’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두 눈을 비벼보았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금일 경계초소 근무자 명단>

<사수 : 병장 박수철. / 부사수 : 이병 차영건.>

이젠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박수철이라는 이름 석 자에 영건은 절망했다.

‘그럴 리가 없어!’

분명 오전에 근무표를 확인했을 때만 해도 사수 자리에는 박수철이 아닌 이상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바, 박성준 상병님?”

영건은 떨리는 음성으로 본부중대 행정병의 이름을 불렀다.

“왜?”

“제가 오늘 22~24시 근무인데 제 사수 원래 이상우 병장님 아니었습니까?”

“아, 그거? 좀 전에 3중대장이 바꾸라고 했어. 어제 2중대랑 3중대 축구할 때 박수철 병장이 체력훈련 열외하려고 자기 맘대로 이상우 병장이랑 근무변경했었거든. 3중대장님이 좀 전에 그 사실 듣고 빡쳐서 박수철 병장 오늘 야간근무 집어넣으라고 했어.”

“씨발. 이거 뭐야?”

때마침 뒤에서 낯익은 음성이 들렸다.

다름 아닌 박수철이었다.

“야, 박성준. 왜 오늘 야간근무자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거냐?”

“아, 그게······.”

분노한 수철을 보며, 성준은 앞서 영건에게 말했던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아나, 뽀빠이가 그걸 어떻게 알어? 박성준 니가 뽀빠이한테 일러바쳤냐?”

“아닙니다! 제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성준은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개 같네, 진짜!”

수철의 낯빛이 벌겋게 물들었다. 당장에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활화산 같았다.

“박성준. 지금 당장 이 근무표 도로 바꿔.”

“3중대장님이 명령하신 건데 제가 무슨 힘으로 바꾸겠습니까.”

“하. 안 그래도 온종일 제설작업으로 존나게 뺑이치고 왔는데 바로 근무 투입하라고?”

수철과 성준 사이에 놓인 영건은 고래 싸움에 휘말린 새우마냥 난처해졌다.

“차영건, 네가 부사수냐?”

“네, 네. 그렇습니다.”

“근무 나갈 때 각오 단단히 해라. 보다시피 내 기분 오늘 좆같으니까.”

아, 신이시여.

“······힘내라.”

성준도 영건이 안타까웠는지 위로하듯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행정실로 돌아갔다.

영건은 생활관으로 들어가는 박수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전생에 저 인간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던 게 틀림없어.’

적어도 박수철 가문의 3대를 멸했거나, 아니면 그의 아내와 바람이라도 피워서 새 살림이라도 차렸거나.

그 정도의 극악무도한 패악이 아닌 이상, 이렇게나 모진 수모를 연이어 당할 이유가 없다!


“고오올!”

축구공이 골대를 가르는 순간, 관중석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2:0. 추가골이다.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K리그 경기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경기의 흐름은 추가골을 기록한 FC서울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버리고 말았다.

원정을 나선 수원은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FC서울과 수원 블루윙즈는 K리그에서는 유명한 라이벌 팀이다. ‘슈퍼매치’이라는 더비 명칭이 붙었을 만큼 이들 간의 경기는 K리그의 여느 팀보다도 유독 치열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원정응원 온 수원 서포터들의 표정은 몹시 좋지 않았다. 반면 서울 쪽 서포터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작년 K리그 우승팀이기도 한 FC서울의 상승세를 저지하기 위해 그렇게나 각오를 다졌건만. 명장을 필두로 한 FC서울의 날개는 좀처럼 꺾일 줄을 몰랐다.

“헤. 역시나 오늘도 서울의 승리네.”

관중석 구석진 곳에서 노트북 키보드를 놀리던 나영환이 중얼거렸다.

“작년 내내 승승장구하더니 올해도 기세가 장난이 아닌데?”

영환의 옆에 앉아있던 기석도 한 마디를 보탰다.

“차명석 감독 보면 볼수록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차명석이 처음 FC서울의 감독으로 부임할 땐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 아무리 선수 시절 날아다녔다고 해도 감독이라면 얘기가 다르니까.

실제로 전 국가대표 선수 출신 중에서 감독으로 부임한 뒤, 죽을 쓰고 경질되거나 팬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한 채 자진 사퇴했던 케이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차명석! 차명석!”

관중석에서 차 감독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만 봐도 그에 대한 신뢰도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허구한 날 순위권 바닥을 기던 팀을 부임 첫 시즌부터 우승시킨 걸 보면 감독으로서의 재능도 상당한 듯?”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단 말은 괜히 생겨난 건 아닌가싶네요.”

“선수 시절부터 확실히 남다르긴 했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레전드로 대접받을 정도면 말 다 한 거 아니냐? 감독 데뷔하기 전엔 맨유 엠버서더 제안도 받았다잖냐.”

축구계에서 엠버서더에게는 해당 클럽의 홍보 관련 대표 자격으로 행사에 참가하는 권한이 주어진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클럽을 홍보하는 엠버서더들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알 만한 클럽의 레전드들에게만 주어지는 특전. 그것만 봐도 맨유에서의 차명석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FC서울 진영에서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중년의 남성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차명석은 팀의 승리가 확실시된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FC서울의 감독, 차명석.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 차명석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남은 경기를 관전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팬들 사이에서 차도남, 이글아이 등의 별명이 생겨나기도 했다.

언제나 말끔한 정장 차림. 뚜렷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턱선 덕분에 미중년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만큼, 여성 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상당한 편이다. 정작 차명석 본인은 그런 별명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전술도 전술이지만, 선수 기강 관리도 확실하단 말이지. 선수들 좀 봐. 후반 85분에 2:0으로 앞서고 있는데 여전히 죽어라 뛰어다니잖아.”

“요즘은 차 감독을 국대 감독으로 밀자는 여론도 상당하더라고요.”

“겨우 감독 데뷔 2년 차인 사람을?”

“그깟 경력이 뭐가 중요합니까? 실력만 좋으면 그만이지.”

그렇게 대꾸하는 영환의 눈동자는 차명석에 대한 신뢰도로 가득했다.

“그런가.”

기석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지금까지 차 감독의 활약상으로만 보면 국대 감독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잖아도 요즘 국대 분위기는 연전연패로 심히 좋지 않았으니까.

“아. 경기 끝났다.”

FC서울은 2골을 유지한 채 단 1점도 실점을 내주지 않음으로써 안정적으로 승리를 가져갔다.

“서둘러. 기자회견 시작하겠다.”


찰칵! 찰칵!

사진 찍는 소리와 함께, 플레시가 쉴 새 없이 터져나왔다. 기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이는 다름 아닌 차명석이었다.

“차 감독님! 개인적으로 오늘 경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승리를 확정지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차명석이 단상에 오르기 무섭게 사방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감독 데뷔 이후로 수원 블루윙즈와의 더비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승리를 가져가셨는데요.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우리 선수들이 평소처럼 제 지시에 충실히 잘 따라주었기에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차 감독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질문에 대꾸했다. 팬들에겐 인기 많은 감독이었으나 기자들 사이에서는 까다로운 축에 속했다.

특별히 나쁜 행동을 한다기보다는 워낙 말수가 적은 편이었고,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던 탓이다.

“저, 질문 있습니다!”

기자회견이 슬슬 막을 내리려던 찰나, 한구석에 앉아있던 젊은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요?”

영환이 기자를 힐끔 보고는 기석에게 속삭였다.

“데일리 스포츠 쪽인데. 신입인가 보지.”

“말씀하세요.”

차명석이 곧 손을 든 기자를 발견하고는 턱짓했다.

“차 감독님에게는 아드님이 한 분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기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기자회견장이 히말라야 산맥처럼 얼어붙었다. 기석과 영환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신입인가본데요. 이걸 어쩌냐.”

“데일리는 신삥 교육도 안 시키나?”

순간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적이 감돌았다. 중견 기자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차 감독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몹시 싫어한다는 점.

예전에 고려일보 소속 기자가 차 감독의 사생활에 대해 질문했다가 제대로 피를 봤던 선례가 있기도 했고.

그 뒤로 차명석은 고려일보의 기자들의 질문에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차명석의 블랙리스트에 두 번째 명단이 갱신되었다.

눈치가 없는 건지, 개념이 없는 건지. 그 신입 기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눈치라곤 전혀 없는 질문을 계속 이어나갔다.

“아드님께선 축구 안 하십니까? 차 감독님 닮았으면 엄청난 재능일 텐데요?”


“진짜 살 떨리더라.”

“차 감독, 저럴 때 보면 진짜 무섭다니까요.”

기석은 조금 전에 벌어졌던 일을 다시금 상기했다.

차명석은 신참 기자의 소속을 물어보더니, 앞으로 그쪽 신문사의 질문은 일절 받지 않겠다며 선언하고는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 신참, 돌아가서 열나게 털리겠구만.”

“예전부터 차 감독이 누누이 얘기하긴 했지. 본인 이외의 사적인 질문은 일절 받지 않겠다고. 사실 그 녀석 잘못이라기보단 제대로 교육을 안 시킨 선임 기자 잘못이지.”

두 사람은 진심어린 마음으로 데일리 스포츠 소속, 신참 기자의 명운을 빌어주었다. 그 녀석, 아마도 앞으론 FC서울 기자회견장 근처에 얼씬도 못할 테니까.

“그나저나 차 감독은 왜 저렇게나 가족에 대해 민감한 겁니까?”

“듣기로는 사모님과 사별하셨다고 하더라고.”

“진짜? 그럼 아들하고 둘이 지내시겠네요?”

기석은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그것도 사실 잘 몰라. 워낙 베일에 쌓여있어서 말이지. 예전엔 차 감독 아들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었는데. 차 감독 본인이 개인적으로 축구를 지도했었다는 루머도 있었고. 사실 확실한 건 없어. 선수 시절부터 차 감독은 제 가족에 대한 질문을 일절 받지 않았거든.”

“그래요?”

“심지어 여태껏 차 감독 아들에 대해선 이름 정도만 겨우 알 정도니까. 아마 이름이 차영건이라고 했던가? 그 외엔 별로 정보가 없어.”

“그것 참 대단하네요.”

“지금쯤이면 군 입대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겠는데? 세월 참 빨라.”

“모르긴 몰라도 차 감독 아들이 축구의 길을 걸었다면 정말 대단했을 거에요.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축구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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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즐거운 주말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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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실력발휘? +5 17.05.21 11,866 179 9쪽
» 차명석 +7 17.05.20 12,067 172 11쪽
7 하얀 쓰레기 +11 17.05.19 12,023 170 9쪽
6 선임이라 쓰고 엄친아라고 읽는다 +6 17.05.18 12,410 184 12쪽
5 운명의 데스티니 +6 17.05.18 12,423 175 6쪽
4 이 빌어먹을 축구! +8 17.05.17 12,691 176 9쪽
3 발암이 분다 +4 17.05.16 13,066 193 10쪽
2 까라면 까야지 +13 17.05.15 14,279 193 11쪽
1 프롤로그 +13 17.05.15 17,922 20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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