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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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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잠
작품등록일 :
2017.05.14 22:15
최근연재일 :
2017.05.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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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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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까라면 까야지

DUMMY

“너 축구 좀 하냐?”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에 막 배치되었을 때, 내게 날아온 첫 질문은 그러했다.

왜 하필 축구지?

제일 마음에 안 드는 질문이다.

그 질문을 던진 그 녀석이 만약 절친한 친구였더라면 곧장 ‘축구싶냐?’고 응수해줬을 텐데.

하지만 힘없는 이등병 나부랭이인 내게 허락된 대답은 오직 세 가지뿐이다.

예. 아닙니다. 그리고 관등성명.

사회에서는 별 관심 없었던 군대에 관한 이야기들이 몸으로 직접 체감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이등병.

줄여서 이병을 ‘이름만 외치는 병신’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그게 뭐냐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땐 미처 몰랐다.

그런 병신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언젠간 내가 그 병신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튼 축구를 싫어하다 못해 혐오했던 나는 내게 허락된 세 가지 답변 중 보기 2번, ‘아닙니다.’를 고르는 수밖에 없었다.

대답은 그렇게 했으나 나는 내심 걱정했다.

‘새끼야, 군대에서 못하는 게 어딨어? 까라면 까야지.’ 따위의 질책이 들어올까봐.

군대에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막말로 대대장이 산을 파서 옮기라면 옮기는 시늉이라도 해야하는 곳이 바로 군대 아닌가?

‘그러냐?’

그런데 선임은 의외로 아쉬워하기만 할 뿐, 날 갈구거나 하진 않았다.

그 선임에게 필요한 사람은 축구를 함께 할 녀석이 아니라, 축구를 잘하는 녀석이었던 모양이었다.

‘군대에서는 힘쓰는 일과 축구, 그리고 센스. 이 세 가지만 잘해도 평타 이상은 간다. 그런데 말이다.’

억지로 축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내게 선임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우리 부대는 좀 달라. 축구 하나만 잘해도 군생활 졸라 풀리거든.’

당시에는 그 선임의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빨리 환복하고 나갈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박수철 병장의 말에, 일일업무와 식사를 마친 제3생활관, 헬기 3중대는 신속하게 입고 있던 군복을 벗어던졌다.

“차영건이! 얼른 창고 가서 축구공 챙겨오고, 오는 길에 얼음물도 가져온나.”

“알겠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환복을 마친 영건은 박수철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운동화를 갈아신고 생활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축구공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시피, 지금부터 영건을 기다리고 있는 건 빌어먹을 축구활동시간이다.

‘늦게 입대한 게 죄지.’

영건은 입맛이 썼다.

생활관 왕고참인 박수철의 나이는 스물 둘. 자신과 동갑이다.

그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왜 허구한 날 친척 형이 군대는 일찍 가는 게 장땡이라며 노래를 불러댔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나이는 사회에서나 인정해 주는 거다. 군대에서의 벼슬은 나이가 아니라 짬밥. 그러니 고참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심지어 제3생활관엔 영건보다 어린 선임들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나이 따위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이곳에서 온갖 잔심부름은 죄다 생활관 막내인 영건의 몫이었다.

그는 후다닥 축구공을 챙긴 뒤 휴게실로 향했다.

‘어?’

휴게실에 배치된 공용냉장고의 냉동실 문을 열어제끼는 순간, 그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좆 됐다.’

냉동실에는 서너 개의 물통이 놓인 채였다.

얼음물이 꽝꽝 얼어붙은 물통 각각엔 해당 중대의 소유임을 알리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영건이 속한 3생활관의 물통이 온데 간데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간 거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고작 물통 하나 잃어버렸다고 가슴이 철렁해질 줄이야. 군대가 아니고서야 이런 기분을 맛보기도 힘들 거다.

‘분명 어젯밤에 물 채워서 냉동실에 넣어놨는데?’

순간적으로 그의 두뇌가 풀가동되었다. 그것은 생존본능에 의한 것이었다.

‘미치겠네. 물통에 무슨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젯밤의 기억은 선명하게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냉장고를 뒤져봤으나 그 어디에도 물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침상 위에 걸터앉은 수철이 영건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먹잇감을 포착한 매의 눈빛이다.

수철을 비롯한 다른 선임들은 모두 환복을 마치고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후임 하나 때문에 고참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다. 이게 뭘 의미하느냐하면 한 마디로 좆 된 상황이라는 뜻이다.

“죄송합니다.”

수철의 시선이 영건의 두 손으로 향했다.

마땅히 가져왔어야할 물건이 보이질 않자, 그렇잖아도 매섭던 그의 눈매가 한층 더 표독스럽게 변했다.

“물통은?”

“그게······ 다른 생활관에서 실수로 가져가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타 생활관에 들렀는데 이미 다들 집합하러 나간 상태라서 돌려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박수철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영건의 심정도 썩 좋진 않았다. 이건 100퍼센트 갈굼감이었으니까.

“하······.”

수철이 눈을 감고 이마를 짚었다. 보아하니 가까스로 화를 꾹꾹 눌러담는 듯했다.

“차영건. 내가 너더러 낙동강을 건너서 북으로 침투하라고 했냐, 아님 간첩을 때려잡아오라고 했냐? 고작 물통 하나 간수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죄송합니다.”

영건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았다.

자기 실수로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타 생활관에서 멋대로 가져가버렸는데 뭘 어쩌라는 건가? 그렇다고 24시간 냉동실 앞에서 경계근무를 설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영건은 굳이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저 앵무새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군대에서는, 특히 박수철 저 자식에게 변명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잠든 사자의 코털을 잡아당기는 격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 오래다.

“잘 좀 하자. 영건아. 엉?”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군생활 끝나냐?”

“아닙니다.”

“표정이 왜 그따구야? 기분 나빠?”

“아닙니다.”

속으로 욕을 삼키며 영건은 고개를 숙였다.

영건을 갈구는데 몰입한 저 박수철이라는 인간의 별명은 막내킬러다.

조그만 흠이라도 잘못 잡혔다간 무자비한 갈굼이 시작되곤 했는데, 뭐라고 대답하건 귀신같이 꼬투리를 잡아서는 사람 속을 뒤집어놓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에휴. 말해서 뭐하겠냐? 내 입만 아프지. 가자.”

차라리 계속 화를 내라.

저렇게 한심한 녀석 대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수철의 저 표정이 개인적으로 더 싫었다.

개자식. 무슨 벌레 보듯이 쳐다보잖아.

“영건아. 기운 내. 네 잘못 아니니까.”

그런 영건의 기분을 알아차렸는지, 곁에 있던 선임 하나가 그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영건의 맞선임, 정지환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렇듯 군대에 꼭 나쁜 새끼들만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나쁜 새끼들의 존재감이 워낙 독보적일 뿐이지.

바깥으로 나가자, 이미 도열해있는 타 생활관 병사들이 보였다.

“어이~ 김 병장~”

선두에 서서 걸어가던 수철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박 병장님 오셨는가?”

수철과 인사한 사내는 헬기 2중대의 김 병장이었다. 그는 수철의 동기로, 수철과 함께 이 대대를 주름잡고 있는 실세다.

대대 왕고.

간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말년병장들이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바로 그 병장 말이다.

수철이 딴 짓을 하는 와중에도 뒷 열에 선 영건은 쉴 새 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잃어버린 물통을 찾기 위함이었다.

범인은 분명 이 안에 있다.

“참. 이거.”

김 병장이 수철을 향해 무언가를 내밀었다. 다름 아닌 3생활관의 이름표가 붙은 물통이었다.

“우리 막내가 모르고 너네 생활관 물통을 가져와버렸지 뭐냐. 쏘리.”

“그럴 수도 있지, 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수철이었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영건의 입장에서는 치가 떨릴 수밖에 없었다.

‘개새끼. 물통 하나 가지고 개지랄 할 때는 언제고.’

“그런데 중대장님들은?”

영건이 분을 삭이는 와중에도 수철과 김 병장은 물 만난 고기처럼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중이었다.

“곧 나오실 거다. 그나저나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걸? 오늘은 봐주지 않을 테니까.”

김 병장이 엄지로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얼씨구. 3중대가 호구로 보이냐? 이 박수철님이 계시는데?”

“쿡.”

그 말을 듣는 영건의 입장에서는 실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 같아선 ‘박수철님이 계시니까 호구로 보이는 겁니다.’ 라고 팩트폭격을 날리고 싶었다.

“누가 비웃었냐?”

곁에 있던 맞선임조차도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웃음소리였건만, 수철은 귀신같이 그것을 알아듣고는 희번득 눈을 치켜떴다.

‘꼭 이런 건 잘 쳐듣는다니까.’

영건은 황급히 입술을 깨물며 필사적으로 웃음기를 삼켰다.

“그러다 애들 잡겠다, 인마.”

김 병장이 그런 수철의 어깨를 툭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잡긴 뭘 잡어? 내가 무슨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개새끼, 소새끼한 것도 아닌데 뭘. 야, 우리 때만 해도······.”

나왔다.

박수철의 레퍼토리.

‘우리 때만 해도······.’ 로 시작되는 그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하도 들어서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다.

자신의 이등병 시절에 비하면 요즘 내무생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둥, 자기 때는 이것보다 훨씬 심했다는 둥, 뭐 그런 얘기다.

과거 그의 고참에게 특급 에이스로 불리며 독보적인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했다는 식의 이야기.

영건이 부대 내에서 이것저것 주워들은 썰에 의하면 수철이 자랑처럼 내뱉는 영웅담의 90% 이상은 뻥카다.

‘듣기로는 특급 에이스가 아니라 갈굼을 독차지했던 에이스라고 하던데.’

영건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 짬을 먹을대로 쳐먹은 지금, 그 맺혔던 한풀이를 하는 모양이다. 다름 아닌 막내들에게.

“야. 집합 5분 전이다. 얼른 나가자.”

지긋지긋한 연설을 한창 토해내던 수철의 입을 김 병장이 가로막았다. 이 자리에서 수철의 입을 봉할 수 있는 용사는 오직 그뿐이다.

“좋아. 그럼 슬슬 가볼까? 우리들의 무대로.”

영건에게서 공을 빼앗아 든 수철이 씩 웃었다.

별들, 아니 병······.

······신들의 축제가 이제 곧 장대한 서막을 올리려 한다.




추천 꾹~ 선작 꾹~ 댓글 뙇~ 해주시면 힘이 납니다. ㅎㅎ


작가의말

본 글은 과거 제 현역 시절의 군대를 참고했습니다.

요즘 군대와는 다소 차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ㅎㅎ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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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선임이라 쓰고 엄친아라고 읽는다 +6 17.05.18 12,410 184 12쪽
5 운명의 데스티니 +6 17.05.18 12,423 175 6쪽
4 이 빌어먹을 축구! +8 17.05.17 12,691 176 9쪽
3 발암이 분다 +4 17.05.16 13,066 193 10쪽
» 까라면 까야지 +13 17.05.15 14,279 193 11쪽
1 프롤로그 +13 17.05.15 17,922 20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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