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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호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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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호
작품등록일 :
2019.08.05 12:12
최근연재일 :
2020.01.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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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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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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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고유스킬 더블 (8)

DUMMY

줄루는 화가 난 건지 아니면 겁을 먹은 건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손잡이에서 칼날까지 온통 새카만 장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킬 사용······.”


낮게 읊조리는 줄루.

그와 동시에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줄루의 검과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오스카가 미리 경고했던 줄루의 고유 스킬.

‘침식’이 분명했다.



“원래 저희 아버지의 스킬이었던······ ‘침식’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능력입니다. 그 연기에 아주 조금이라도 닿는 날엔······.”


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대상의 모든 생명력을 앗아간다는 무시무시한 스킬.

생명을 지닌 존재라면 누구나,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스킬이었다.


“아버지는 ‘침식’만큼은 결코 악인에게 넘어가선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침식은 오스카의 집안에서 대를 이어 전승되어 온 스킬이라고 했다.

처음 리치타운에 나타났을 때부터, 이미 침식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었던 줄루.

오스카의 아버지는 줄루에게 모든 포인트와 능력치를 넘겨 주고 나서도, 이 스킬만은 넘겨주지 않으려 버텼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온 줄루는 집요하게 아버지를 협박했고, 결국······.”


안 봐도 드라마였다.

자애로운 마스터였던 그는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킬을 넘겨 주고야 만 것.


하필이면 저런 악당 중의 악당에게.



“흐흐······ 어느 것 하나······ 네 것이라곤 없는 이 낯선 땅에서······ 죽어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안정해 보였던 줄루.

하지만 그의 스킬은 그 불안함마저 침식해 버린 듯,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남혁은 심호흡을 하며 도끼를 꺼내 들었다.

장검을 상대하기에 최적의 무기는 아니었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저 연기에 닿으면 끝장이다······.’


남혁은 속으로 되뇌며 줄루를 노려보았다.

역시 남혁을 노려보는 줄루.


디오와 오스카는 멀찌감치 떨어져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디오는 어느 틈에 오스카의 어깨에서 내려와 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흐아압!”


짧은 대치가 끝나고, 먼저 달려 나오는 줄루.


남의 노력을 빼앗아 힘을 얻었다고는 해도, 역시 최상위 랭커 다운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죽어어엇!”


살기 어린 눈빛.

얼핏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듯 보였지만, 사실 줄루의 검술 실력은 예상 밖이었다.


채앵-


줄루의 검은 나비처럼 가볍게 호선을 그린 후, 태산처럼 묵직하게 내려 꽂혔다.


예상보다 뛰어난 줄루의 실력에 살짝 당황했지만, 무리 없이 검을 받아내는 남혁.

오크 로드의 도끼날이 무지막지하게 큰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이씨······. 실전 경험 없이 랭크만 믿고 깝죽거리는 양아치 새낀 줄 알았는데······.”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남혁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숨쉬기 운동을 즐기던 취업 준비생이었고, 줄루는 어찌 되었든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지금껏 살아남은 인물이었으니까.


챙- 채앵-


그렇다고 줄루가 유리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남혁에겐 짧지만 누구보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며칠간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고유 스킬 ‘더블’로 달성한, 총합 300에 달하는 랭크까지.


채챙- 챙-


줄루는 휘두르고 남혁은 받아내는, 다소 지루한 대치가 한동안 이어졌다.


남혁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섣불리 공격을 감행하다가 연기에 조금이라도 닿는 날엔 끝장이었으니까.


‘장기전으로 가면 내가 유리하다.’


오스카의 말대로라면 줄루의 종합 능력치는 200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남혁의 종합 능력치는 300.


이대로 계속 시간을 끈다면, 먼저 허점을 드러내는 건 분명 줄루일 것이었다.


“으아아아아!”


아니나 다를까.

점점 자신이 불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괴성을 질러대는 줄루였다.


챙- 채앵-


슬슬 결판을 낼 때가 되었다고 느낀 남혁이 공격의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거세게 몰아치던 공격이 주춤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빈틈을 보이는 줄루.


‘지금이다!’


놓칠 수 없는 기회.

남혁은 바닥을 박차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일순간 방향을 튼 줄루는 디오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 어어? 어어어어어? 아저씨!”


승산이 희박한 전투 방식을 고수하기보단, 차라리 타깃을 변경하기로 마음먹은 줄루.

비열하지만 현재 그의 상황에서는 최선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만약 디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남혁도 냉정함을 유지하긴 힘들 테니까.

그리고 어차피 질 싸움이라면, 길동무라도 데려가는 편이 나을 테니까.



“꺄아아아아아! 아저씨이!”


하필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디오.


원래라면 오스카와 함께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어야 할 디오였지만.

남혁의 전투가 길어지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왔던 것.


하여간 끝까지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었다.


“거기 서! 줄루!”


황급히 줄루를 뒤쫓는 남혁.

남혁의 민첩 능력치가 훨씬 높기에 따라잡는 건 충분히 가능했지만, 문제는 이미 줄루와 디오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이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오스카도 황급히 달려오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공포로 판단력이 마비되기라도 한 것인지, 제자리에 굳은 채 비명만 질러대는 디오.


“흐아아아압!”


어느새 디오 근처에 도착한 줄루의 검이 머리 위로 큰 호선을 그리는 순간.

남혁은 모든 정신을 발끝에 집중한 채,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텁-


“아······ 아저씨!”

“허억······ 나······ 남혁 님!”


새파랗게 질린 디오와 오스카.

멈춰 선 줄루의 검.

그리고.


“돌겠네······.”


줄루의 손목을 꽉 움켜쥔 남혁의 왼손.

줄루의 온몸을 휘감고 있던 자욱한 연기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

남혁의 왼손 끝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네놈은 이제 끝이다!”


줄루의 검이 디오를 내려치려던 찰나의 순간.

폭발적인 도약으로 겨우 제때 도착한 남혁은 일말의 주저함 없이 손을 뻗은 것이었다.


육교 위에서 아이를 향해 달려 나갔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시발······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남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도끼를 쥔 오른손을 휘둘렀다.


스겅-

챙그랑-


팔꿈치에서부터 말끔하게 잘려나간 줄루의 팔은, 검을 쥔 상태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어떻게든 거미줄을 풀어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10명의 랭커들은, 자신들의 수장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와 함께 돌처럼 굳어 버렸다.



“아저씨······.”


남혁의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글썽대는 디오.


“남혁 님!”


오스카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줄루에게 거미줄을 쏟아부은 후 급히 남혁에게 달려왔다.



[스킬 ‘침식’이 감지되었습니다.]


“하아······ 다 왔는데······.”


탈출구를 눈앞에 두고 이런 결말이라니.

남혁은 진심으로 억울하고 분했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고 마는 남혁.


“아저씨······.”

“꼬맹아······ 혹시 네 매뉴얼에 지금 이 상황을 반전시킬 해결책 같은 건······ 없겠지?”

“······.”


대답 대신 눈물만 흘리는 디오.


“오스카, 나······ 얼마나 남은 거야?”

“일단 침식이 시작되면······. 기껏해야······ 1분 정도 밖에는······.”


[스킬 ‘침식’이 진행됩니다.]


“1분이라······ 하아······.”

“······ 아저씨······.”

“차라리 육교에서 죽었어야 했어.”

“남혁 님······.”

“개고생만 하다가 이게 뭐야······.”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8일간의 기억들.

남혁은 분노가 솟구쳤다.


“아니 시발!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아저씨······.”

“남혁 님······.”

“아니, 자꾸 아련하게 부르지만 말고! 뭔가 대책을 생각해 봐! 나 이대로 죽게 놔둘 거야?”


흥분하여 마구 뱉어내는 남혁.

디오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아저씨······ 흑······ 근데요······.”

“왜! 뭐!”

“1분······ 지난 것 같은데······.”

“······ 뭐?”


때마침 들려오는 알림음.


[‘관리자의 가호’로 모든 충격이 상쇄됩니다.]


깜짝 놀라 왼손을 살펴보는 남혁.

검은 연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

그 대신, 남혁의 손바닥에서는 나팔 형태의 문양이 은은하게 빛나다 사라지고 있었다.


[스킬 ‘침식’이 완전히 무력화되었습니다.]


재차 들려오는 알림음.


“······!”


남혁은 그제서야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줄루의 잘린 팔을 주워들었다.


“야, 줄루.”

“이 자식······ 크흑······ 대체 어떻게······.”

“말했잖아. 난 운이 좋다고.”


온몸이 거미줄로 범벅이 된 채, 고통스러운 듯 숨을 몰아쉬고 있는 줄루의 꼴은 처참했다.


남혁은 생글생글 웃으며, 줄루의 코앞에서 잘린 팔을 흔들었다.


“이거, 다시 붙이고 싶지?”

“크흑······.”

“네가 가진 거, 전부 다 오스카한테 넘겨.”

“아저씨······ 지금 좀 악마 같은 거 알죠?”

“넌 닥쳐.”




#

줄루에 이어 10명의 랭커들까지.

남혁의 지휘 아래,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오스카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야, 장난하냐? 너 종합 능력치 120 넘는 거 벌써 다 들었거든?”


과시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들은 평소 자신들의 능력치는 물론 보유한 스킬까지 떠벌리고 다녔기에, 얄팍한 거짓말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드디어 해방이다!”

“줄루가 무너졌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하던 일을 전부 내팽개치고, 거리를 뛰어다니며 환호했다.


“줄루의 부하들을 잡아라!”

“저쪽에 있다!”

“하나도 놓치지 마라!”


줄루와 랭커들, 그리고 그 아래에 붙어 기생하던 조무래기들까지.

주민들을 핍박하던 모든 이들은, 주민들의 손에 의해 지하 감옥에 갇혔다.


“남혁 님······ 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혁 님은 저의······ 아니, 이 세계의 구세주이십니다!”

“됐어. 애초에 널 도와주려던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무사히 탈출하려고 했을 뿐인데 뭐.”

“아닙니다. 남혁 님이 아니었다면······.”


눈물을 글썽이는 오스카.

남혁은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이제 네가 마스터인가?”

“네. 당분간은 제가 마을을 이끌 생각입니다. 마을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만요.”

“네가 제일 강한데, 그냥 쭉 하지 왜?”

“그래서는 줄루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민들 스스로가 선택하게 해야죠.”


오스카는 줄루와 일당들에게서 빼앗은, 아니 되찾은 모든 것들도 주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줄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 함께 힘을 기를 생각입니다.”

“그래. 힘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어수룩해 보였던 첫인상과 달리, 제법 믿음직해 보이는 오스카였다.


“남혁 님은 이제······ 떠나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아, 그전에.”


주위를 둘러보는 남혁.

골목 어귀에 쪼그려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디오는, 남혁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야, 꼬맹이. 나랑 얘기 좀 하자.”

“네······ 아저씨.”



<계속>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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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중편] 고유스킬 더블 (에필로그) 20.01.28 20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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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편] 고유스킬 더블 (8) 20.01.28 19 0 12쪽
15 [중편] 고유스킬 더블 (7) 20.01.21 20 0 13쪽
14 [중편] 고유스킬 더블 (6) 20.01.21 22 0 12쪽
13 [중편] 고유스킬 더블 (5) 20.01.15 26 0 11쪽
12 [중편] 고유스킬 더블 (4) 20.01.15 25 0 12쪽
11 [중편] 고유스킬 더블 (3) 20.01.15 27 0 12쪽
10 [중편] 고유스킬 더블 (2) 20.01.10 27 0 14쪽
9 [중편] 고유스킬 더블 (1) 20.01.10 27 0 7쪽
8 [단편] 엑스트라 +2 19.11.14 38 2 11쪽
7 [단편] 점핑 19.11.08 30 0 10쪽
6 [단편] 스카우트 19.10.21 30 1 10쪽
5 [단편] 현재씨의 오늘 19.09.16 34 1 15쪽
4 [단편] 고백 19.09.06 35 1 9쪽
3 [단편] 고민 상담 방송 19.09.03 43 1 20쪽
2 [단편] 악몽 19.08.09 51 1 11쪽
1 [단편] 헌터: 몬스터 19.08.05 109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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