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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호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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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호
작품등록일 :
2019.08.05 12:12
최근연재일 :
2020.01.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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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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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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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중편] 고유스킬 더블 (7)

DUMMY

다음 날.

이제 막 해가 떠오른 이른 새벽.


일행은 어느새 리치타운 인근의 숲속을 달리고 있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알겠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 남혁.


“물론입니다! 남혁 님.”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오스카의 몸놀림이 어제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10분에 한 번꼴로, 남혁이 멈춰 서서 한참이나 기다려 줘야 했던 오스카가 아니었다.

오스카는 전혀 지친 기색 없이, 남혁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걱정 마요, 아저씨! 나만 믿으라니까요?”


한편, 언제나처럼 입만 산 디오.

남혁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 쪽을 돌아보았다.


“넌 입단속이나 잘해.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나불대지 말고.”

“치이······.”


웅장한 리치타운의 성곽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걸음을 늦추는 남혁.


“자······ 준비해. 이제 곧······.”



탁탁- 타다닥-


남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접근해 왔다.


힘깨나 쓰게 생긴 10명의 건장한 사내들.

오스카가 말했던 줄루의 수하들, 10인의 랭커가 분명했다.


“당신이 남혁 님이십니까?”


빙글빙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묻는 키 큰 사내는, 아마도 이 무리의 리더인 듯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남혁.

그리고 그런 남혁을 아래 위로 훑어보는 사내.


남혁은 왠지 안심한 듯한 사내의 표정에 살짝 욱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마스터께서 모셔 오라고 하셔서 말이죠.”

“굳이 마중까지 나올 필요는 없는데.”

“남혁 님은 특별한 손님이니까요.”




#

줄루와 남혁이 처음 대면했던 홀.

넓은 홀도, 높은 왕좌도, 쥐꼬리 같은 줄루의 수염도 이틀 전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같지는 않았다.


“여기선 손님 대접을 이런 식으로 하나?”


홀 중앙에 홀로 선 남혁은 두꺼운 밧줄로 꽁꽁 묶인 양손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남혁의 좌우로 5명씩 늘어선 랭커들은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하듯 실실 웃고 있었다.


“그건 손님에 따라 다르지. 흐흐흐.”


줄루는 왕좌에서 일어나 오스카 앞에 섰다.


“오스카의 길 안내는 제법이지? 너희 요 이틀간 꽤 정이 든 것 같은데 말이야. 흐흐”


역시 양손을 꽁꽁 묶인 오스카는 왕좌 아래에서 무릎을 꿇은 채, 모든 걸 체념한 듯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반면 그 옆의 디오는 모든 걸 불태워 버릴 기세로, 줄루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요 녀석은······.”

“너 같은 건! 우리 아저씨가ㅡ”

“너의 소중한 동행이라고 했던가? 흐흐흐.”

“나쁜 자식! 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노력도 없이 야비한 수작만 부리는 너 따위는 우리 아저씨한테 상대도 안 돼! 너 같은 건ㅡ”


묶인 채로도 기세 좋게 떠들어 대는 디오.


남혁은 생각했다.

디오만큼은 손을 묶는 게 아니라 입을 막는 편이, 양쪽 모두에게 더 좋았을 거라고.


“나한테 원하는 게 뭐지?”


줄루는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빙긋 웃으며 다시 왕좌에 올라가 앉았다.


“네가 가진 모든 것.”

“포인트?”

“그래. 그리고 네가 가진 모든 아이템과 스킬, 능력치까지 전부 다.”

“역시.”

“호오······? 예상했다는 말투로군?”


그 말대로였다.

줄루가 원하는 게 뭔지,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남혁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 홀에서 줄루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그래. 넌 딱 생긴 대로 노는 캐릭터니까. 예상을 못 하는 게 바보지.”


그리고 남혁은 그 예감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이미 디오에게 확인한 바 있었다.

이 빌어먹을 세계의 시스템에 대해.


“이 세계에서 개인이 가진 포인트는 얼마든지 타인에게 줄 수 있지.”

“이세계인 치곤 상황 파악이 빠른데?”

“아이템은 물론, 스킬과 능력치 역시 마찬가지.”

“흐흐흐. 그래,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참 어이없는 시스템이었다.

포인트나 아이템은 그렇다 치고, 이미 개인에게 적용된 스킬과 능력치까지 줄 수 있다니.

물론 능력치의 경우 실제 투자된 포인트만큼만 환산되어 전달된다는 나름의 기준은 있었지만.


“근데 말이야. 내가 아는 게 하나 더 있거든.”

“호오······?”

“내 스스로의 의지로 넘겨주지 않는 이상, 넌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

“만에 하나, 네가 날 죽인다고 해도 말이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포인트를 쟁탈하려는 살육전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은 마련되어 있었다.


남혁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줄루는 이내 입을 씰룩대며 실소를 터트렸다.


“볼수록 재미있는 녀석이로군. 흐흐흐흐흐.”

“······.”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래서 이 몸이 굳이 귀찮음을 무릅쓰고 이렇게 준비를 한 거잖아?”

“뭘 준비했다는 거지?”

“너의 ‘의지’를 불태워 줄 인질 말이야.”


줄루는 약이라도 올리듯, 양손을 정중하게 들어 높은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디오와 오스카를 가리켜 보였다.


“자아, 이 녀석들을 살리고 싶다면 네가 가진 모든 걸 넘겨라.”


무표정하게 디오와 오스카를 바라보는 남혁.

오스카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고, 디오는 여전히 줄루를 노려보며 구시렁대고 있었다.


“싫다면?”

“흐흐······ 역시 말만으로는 부족한가 보군.”


비열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손짓하는 줄루.

그 손짓에 랭커 중 한 명이 검을 뽑아 들었다.


남혁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줄루.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얼마든지.”

“넌 아직도 쟤들이 나약한 인질로 보여?”

“······?”


뜻밖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는 줄루.


“그게 무슨ㅡ”


남혁은 줄루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싱긋 웃으며 양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투둑-


맥없이 끊어져 버린 밧줄.


“스킬 사용!”


[스킬 ‘대지의 파도’를 사용합니다.]

[스킬 위력은 사용자의 근력에 비례합니다.]

[사용자의 근력이 100 이상입니다.]

[스킬 위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남혁은 자유로워진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랭커들이 늘어서 있는 양쪽 바닥을 향해, 한 손씩 힘껏 내려쳤다.


지금보다 낮은 근력으로 사용했을 때에도, 오크의 대군단을 보기 좋게 뒤흔들어 놓았던 스킬.

바닥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랭커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위력은 대지진을 방불케 하는 수준.

마치 바다가 반으로 갈라진 듯, 남혁이 선 자리를 기준으로 좌우가 미친 듯 요동쳤다.

다들 한 가닥씩 하는 랭커들이었지만,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


“마스터!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마스터! 어떻게 좀 해보십시오!”

“마스터!”

“마스터!”


줄루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시종일관 미소가 그치지 않던 여유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허옇게 질려있는 줄루.

쩍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게 분명했다.


남혁은 틈을 주지 않고 외쳤다.


“디오! 오스카!”


오스카는 어느 틈에 자신의 줄을 끊고, 디오의 손에 묶인 줄을 풀어주고 있었다.


“네! 남혁 님!”

“아저씨!”


줄을 푼 오스카는 디오를 안아 들고 남혁의 곁으로 달려왔다.


“지금부터가 중요한 거 알지?”

“물론입니다!”

“걱정 마요, 아저씨!”


전에 없던 진지한 표정의 디오와 오스카.

남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번뜩이는 눈빛으로 줄루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발길을 옮기는 남혁을 뒤로하고, 오스카는 디오를 어깨에 올려놓으며 외쳤다.


“스킬 사용!”


상상을 초월하는 대지의 파도의 위력 앞에서 랭커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오합지졸처럼 뒤엉켜 있었다.


결연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오스카.


푸슛- 푸슛-


D독거미의 고유 스킬 ‘거미줄’이었다.


오스카는 좌우로 나뉜 랭커들의 가운데에서 양쪽으로 거미줄을 쏘아댔다.


푸슛- 푸슈슛-


두 손바닥에서 줄기차게 뻗어 나가는 거미줄.

이미 대지의 파도로 엉망진창이 된 랭커들을 거미줄로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오스카 오빠! 이쪽도요!”

“그래!”


디오의 매뉴얼에 따르면, A급 거미줄의 강도는 강철을 능가하는 수준.

물론 불에는 약한 것이 흠이었지만, 어지간한 근력으로는 결코 끊어낼 수 없는 강도였다.

그럼에도, 오랜 불운으로 인해 누구보다 조심성이 강한 남혁은 만전에 만전을 기했다.


“오스카 오빠, 아직이에요! 좀 더요!”

“알았어!”


남혁은 오스카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단순히 손발만 묶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숨구멍만 남겨둔 채 거미줄로 칭칭 감아 버리라고.

그야말로 거미의 먹이처럼.



랭커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와중에, 어느새 줄루의 앞에 선 남혁.


“이······ 쓰레기 같은 것들이 감히······.”

“어이구, 많이 놀랐어?”

“이것들이······.”

“왜? 남의 포인트로 강해질 수 있는 게 너뿐인 줄 알았어?”


줄루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는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대고 있었다.

남혁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네가 정말로 내 걸 뺏고 싶었다면, 넌 이틀 전 이 자리에서 날 보내주지 말았어야 했어. 적어도 그때까진 네가 더 강했을 테니까.”

“헛소리! 이세계인 주제에······ 고작 이틀 사이에 날 능가했다고?”


남혁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나는 운이 좀 좋거든.”




#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오크와의 전투 직후.


우걱우걱- 쩝쩝-


“아저씨, 천천히 먹어요······.”


치열한 전투를 치른 남혁.

에너지 소모가 컸던 만큼 남혁은 볼 주머니에 남은 늑대고기를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후우······ 이제 좀 살겠네.”

“아저씨······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까 좀 찐 것 같은데요?”


배를 채운 남혁은 깐족대는 디오의 말을 무시한 채,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아······ 이제, 작전 타임이야. 제군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대는 둘.


“내 예상대로라면, 아마 지금쯤 줄루는 랭커들을 죄다 모아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남혁이 직접 본 줄루라는 인물의 첫 인상.

음흉하기 짝이 없는 눈빛과 미소.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스카에게 전해 들은 그의 과거 행적들까지.


이 모든 조각들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했다.


“너희를 인질로 잡고, 날 협박하겠지.”


이미 남의 힘을 빼앗아 본 전력이 있는 줄루.

아무런 노력 없이, 쉽고 편하게 힘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내였다.


“목적이야 뭐, 당연히 내가 가진 포인트와 능력일 테고.”


그런 사내인 만큼.

오랜만에 굴러 들어온 포인트 덩어리인 남혁을 곱게 보내줄 리 없었다.


“그 자식은 아마 날 얕보고 있을 거야. 뭐,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긴 하지.”

“아저씨······ 너무 잘난 척하신다······.”

“크흠. 아무튼! 지금부터가 본론이야.”



[개체 ‘오스카’에게 자산을 전송합니다.]

[120000포인트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스킬 ‘거미줄(A)’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유 포인트 : 454840P]


“남혁······ 님······?”

“오스카. 네 역할이 중요해.”

“······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줄루는 널 이용하기 딱 좋은 인질로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자고.”

“하나부터 열까지······ 어떻게 보답을 해야······”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는 오스카를 보니, 괜히 민망해지는 남혁이었다.


“됐으니까 얼른 능력치나 높여.”

“네! 알겠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저는요?”

“넌 입 닫고, 오스카한테 찰싹 붙어만 있어!”

“히잉······.”


‘침묵’ 능력치가 있었다면 모를까.

아무리 포인트가 남아도는 남혁이라도, 디오에게 낭비할 건 없었다.


오스카가 신중하게 포인트를 투자하는 동안, 남혁 역시 남은 포인트를 쏟아부었다.


[148300포인트를 체력에 투자합니다.]

[체력 Rank.60 -> 체력 Rank.100]

[148300포인트를 근력에 투자합니다.]

[근력 Rank.60 -> 근력 Rank.100]

[148300포인트를 민첩에 투자합니다.]

[민첩 Rank.60 -> 민첩 Rank.100]

[보유 포인트 : 9940P]


“자······ 그럼 가 볼까? 탈출하러!”

“네, 아저씨!”

“네, 남혁 님!”


<계속>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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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중편] 고유스킬 더블 (에필로그) 20.01.28 20 0 3쪽
17 [중편] 고유스킬 더블 (9) 20.01.28 21 0 11쪽
16 [중편] 고유스킬 더블 (8) 20.01.28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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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중편] 고유스킬 더블 (6) 20.01.21 22 0 12쪽
13 [중편] 고유스킬 더블 (5) 20.01.15 27 0 11쪽
12 [중편] 고유스킬 더블 (4) 20.01.15 25 0 12쪽
11 [중편] 고유스킬 더블 (3) 20.01.15 27 0 12쪽
10 [중편] 고유스킬 더블 (2) 20.01.10 27 0 14쪽
9 [중편] 고유스킬 더블 (1) 20.01.10 27 0 7쪽
8 [단편] 엑스트라 +2 19.11.14 38 2 11쪽
7 [단편] 점핑 19.11.08 31 0 10쪽
6 [단편] 스카우트 19.10.21 30 1 10쪽
5 [단편] 현재씨의 오늘 19.09.16 34 1 15쪽
4 [단편] 고백 19.09.06 35 1 9쪽
3 [단편] 고민 상담 방송 19.09.03 45 1 20쪽
2 [단편] 악몽 19.08.09 53 1 11쪽
1 [단편] 헌터: 몬스터 19.08.05 111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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