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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호 님의 서재입니다.

짧은 이야기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중·단편

빽호
작품등록일 :
2019.08.05 12:12
최근연재일 :
2020.01.28 16:57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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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수 :
93,746

작성
19.11.0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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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단편] 점핑

DUMMY

한낮의 도로 위.

2개의 차선을 왔다 갔다, 휘청대며 달리고 있는 흰색 소형차에는 뭔가 문제가 있는 듯했다.


“오빠, 저 차 좀 이상하지 않아?”

“그러게, 음주운전인가?”

“이 시간에? 설마······.”

“어? 어어어? 어어어어어?”

“오빠! 브레이크! 브레이크! 꺄아아악!”


끼이이이이이이익-


수십 대의 차량이 만들어 낸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평화롭던 8차선 도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오빠······. 이거 뭐야?”

“몰라······.”

“그 차······ 어디 갔어?”

“······몰라······.”


이 아수라장의 장본인이 된 흰색 차.

갑자기 중앙분리대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던 그 흰색 차.

그 바람에 뒤따르던 모든 차량과 맞은편 차량들까지 멈춰 세운 그 흰색 소형차가 충돌 직전에 모두의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소름주의] □□사거리 순간이동 블박영상


수십 명의 목격자, 그리고 수십 개의 블랙박스.

사건의 정황이 고스란히 담긴 블랙박스 영상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흰색 소형차의 차주가 밝혀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저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차주는 평범한 회사원 남 씨로, 사건 직후 사고 장소에서 무려 100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공터에서 발견되었다.


“그날 너무 피곤해서······ 깜빡 졸다 깼는데 코앞에 중앙분리대랑 트럭이 보이더라고요. 와,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는데······.”


그는 그저 두려운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았을 뿐이라고 했다. 순간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도로가 아닌 공터였다는 것.


[밀착 취재] 점퍼 남 씨, 그의 하루를 엿보다

K사, 단종된 점핑 차종 재생산 검토 중

[신조어 사전] 점핑&점퍼

점퍼 남 씨, K사 광고모델 전격 발탁

신의 ‘은총’ vs 밝혀지지 않은 ‘과학’


남 씨는 ‘점퍼’라는 신조어로 불리며, 단박에 유명 인사로 등극했다.

그의 자동차, 그의 패션, 그의 식사까지, 그의 모든 것들이 화제가 되었다.


“진짜 부럽다! 목숨도 건지고, 스타까지 됐잖아!”

“나도 점핑 하고 싶다!”

“나도!”


사람들은 모두 남 씨를 동경했고, 자신도 점퍼가 되길 원했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아침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모 군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숨졌습니다. 유족에 따르면 평소 이 군은 ‘점퍼가 되려면 우선 위험에 처해야 한다’며······.”


어떤 사람들은 점퍼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내몰기도 했다.


“점핑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무슨 소리! 부처님의 자비다!”

“아니! □□신의 구원이다!”


종교단체들은 저마다, 점핑은 곧 자신들이 믿는 신의 권능이라고 주장했다.


“당신의 동반자, CC생명! 점핑 보험 출시! 오르지 않는 보험료, 월 3만 원! 갑작스러운 점핑으로 인한 심장질환 발생 시 최대······.”


보험사들은 앞다투어 점핑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방수소녀단의 신곡 ‘헤이! 점핑!’ 듣고 오겠습니다!”

“점핑을 소재로 한 박준호 감독의 신작, ‘점핑충’이 여전히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미디어에서는 점핑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두 번째 점핑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발생했다.


“헤이 점핑! 헤이 점핑! 너에게로 순간 이동!”


뜨거운 함성이 가득한 콘서트장.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던 걸그룹의 리더 박 양은 수만 명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점핑했다.


“간다! 간다! 넘어갑니다! 호옴런! ······어······?”

“꺄아아아아아악!”


콘서트장에서 점핑한 그녀는 수십만 명이 TV 생중계로 시청하고 있는 야구 경기장에 나타났다.

아니, 떨어졌다.


[직캠] □□구장 박 양 점핑 영상


그녀의 추락 장면이 찍힌 영상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각 포털사이트와 SNS 측에서는 서둘러 영상을 삭제 조치했지만, 개개인이 내려받은 영상까지 삭제할 수는 없었다.

또한, 수십만 시청자들의 머리에 또렷이 각인된 기억은 더더욱 삭제할 수 없었다.


[단독] 故 박 양, 점핑 전 대기실에서 의미심장 발언?

점퍼 박 씨, 故 박 양 조문 패션 구설수

사망 후에도 이어지는 악플에 유가족 법적 대응

방수소녀단 해체설, 소속사 극구 부인

신의 ‘응징’ vs 밝혀지지 않은 ‘재난’


박 양의 충격적인 점핑에 온 세계가 들썩였다.

그간 점핑 현상 자체를 부정해 오던 극소수의 사람들도, 이번에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박 양 진짜 불쌍하다! 완전 날벼락이잖아?”

“난 절대 점핑 하기 싫어!”

“나도!”


사람들은 모두 박 양을 동정했고, 부디 자신만은 점퍼가 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밤, 故 박 양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방수소녀단의 팬클럽 회장으로, 그는 검거 직후 ‘박 양을 사랑했던 자신까지 점핑 당할까 두려워 사건을 저질렀다’며······.”


어떤 사람들은 박 양을 모욕하고 부정함으로써, 점핑을 피해보고자 했다.


“점핑은 하나님의 응징이다!”

“무슨 소리! 부처님의 업화다!”

“아니! □□신의 징벌이다!”


종교단체들은 저마다, 점핑은 곧 자신들이 믿는 신의 분노라고 주장했다.


“당신의 동반자, CC생명! 더 뉴 점핑 보험 출시! 오르지 않는 보험료, 월 5만 원! 기존 점핑 보험에서는 보장되지 않던 영역까지······.”


보험사들은 앞다투어 새로운 점핑 보험을 출시했다.


“택시커택시커의 신곡 ‘점핑 엔딩’ 듣고 오겠습니다!”

“故 박 양의 점핑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블랙 점핑’이 압도적인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개봉 당일부터 시작된 티켓 예매 대란은 아직까지······.”


미디어는 여전히, 점핑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다음 점핑이 아니, 점핑들이 발생했다.


배낚시를 즐기던 비리 국회의원은 예기치 못한 태풍을 만난 직후 점핑하여, 일행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모범수로 가석방된 성폭행범은 재범행 도중에 건물 철거 현장으로 점핑하여, 깔려 죽었다.

전 재산 기부로 유명한 김밥 할머니는 빙판길에 미끄러지는 순간 점핑하여, 목숨을 건졌다.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평범한 고등학생은 안타깝게도, 고속도로 위로 점핑하여 목숨을 잃었다.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청년은 점핑 덕분에 대형 사고에서 살아남았다.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던 과학자는 실험용 냉동고 안으로 점핑하여, 얼어붙은 채 발견되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점핑을 했고, 그로 인해 목숨을 건지거나 목숨을 잃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핑이 발생하는 빈도는 점점 더 잦아졌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살고, 또 수십 명이 죽었다.


“아, 제발 지금 점핑했으면!”


사람들은 위기에 처하면 자기도 모르게 점핑을 갈구했다.


“아, 부디 지금은 점핑하지 않았으면!”


또 행복감을 느낄 때면 부디 점핑만은 하지 않길 기도했다.


[주간 베스트셀러] ‘참 쉬운 점핑 노하우’

[월간 베스트셀러] ‘점핑 없이 사는 방법’


점핑을 하는 법, 그리고 피하는 법이 수록된 책들은 아무 근거도 없었지만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점핑신을 믿으면 살고, 믿지 않으면 죽을 것입니다!”


최초의 점핑 직후 창시된 ‘점핑교’는 세계적인 대형 종교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점핑을 우러러보며, 또 두려워하며 그렇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던 점핑이 돌연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간 점핑으로 목숨을 건졌던 모든 사람들이 돌연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세상에는 점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만이 남게 되었고, 그들은 확신했다.

드디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그동안 우리의 세계를 마구 뒤흔들어 놓았던 크고 어려운 문제가, 드디어 해결된 것이라고.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그날 이후,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점핑’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

[공지] ‘리얼 피플’ 유저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리얼 피플’ 제작사 갓게임즈의 대표 G-596입니다.


최근 발생한 치명적인 오류로 인해, 즐거워야 할 게임 플레이에 큰 불편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이번 오류의 원인은 지난 업데이트 당시 추가된 소스코드와 기존 시스템의 충돌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게임 플레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특정한 조작을 가할 경우 원하는 캐릭터의 위치를 강제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아챈 일부 유저들이 이를 악용하면서, 각종 피해가 속출하였습니다.

원래 죽었어야 할 자신의 캐릭터를 살려내고, 멀쩡히 살아있는 남의 캐릭터를 죽게 만드는 등, 수많은 악용 사례가 접수된 상태입니다.

특히 해당 오류를 최초로 발견한 유저는 이 사실을 커뮤니티에 유포하여 혼란을 가중시켰고, 재미 삼아 수많은 캐릭터를 학살함으로써 게임의 형평성을 크게 훼손하였습니다.


‘리얼 피플’ 기술팀은 오류를 인지하고 즉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수정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업데이트의 규모가 컸던 만큼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저희 ‘리얼 피플’은 우주 최초의 리얼 인간 사육 게임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치명적인 오류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덧붙여, 이번 오류를 악용한 모든 유저들에 대해 ‘30일 이용 정지’ 제재를, 최초 유포자의 경우 ‘영구 이용 정지’ 제재를 적용할 예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으신 유저분들께는 ‘신규 캐릭터 생성권’ 무료 제공과 ‘금수저 패키지’ 50% 할인 혜택을 제공해드릴 예정이오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오류는 완벽하게 수정 적용되어, 이전처럼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한 상태입니다.

‘리얼 피플’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유저 여러분들께 더욱 완벽하고 즐거운 플레이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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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중편] 고유스킬 더블 (4) 20.01.15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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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점핑 19.11.08 3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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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단편] 현재씨의 오늘 19.09.16 34 1 15쪽
4 [단편] 고백 19.09.06 35 1 9쪽
3 [단편] 고민 상담 방송 19.09.03 45 1 20쪽
2 [단편] 악몽 19.08.09 53 1 11쪽
1 [단편] 헌터: 몬스터 19.08.05 110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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