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정령검
티프의 제안은 나에게 솔깃하게 들렸다. 우선 ‘내 군대’를 그에게 줄 필요가 없다는 점부터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지금의 바르테인은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렌과 노드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의 권위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역시 여자가 왕이 되는 건 무리였구나.’ 이것이 대다수의 귀족들이 그 반란에 대해 내리는 평가였다. 그래서 왕성의회가 나에게 반항하는 것이다.
한편 밖으로는 다른 나라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었다. 한낱 부족 공동체에 불과한 붉은 바위족에게 어베레드 성을 빼앗기고 왕까지 잃은 것도 모자라 연패까지 당했으니 바르테인이 만만해 보이나 보다. 그 전에 선왕 알트론이 총력을 들이 붓고도 에네버를 무너뜨리지 못한 전적까지 있다. 이제 바르테인은 최강국으로서의 체면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강철거인의 정원 위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세워졌고, 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현재 바르테인은 숱한 나라들이 무너진 과정을 따라가고 있었다. 내가 영주들에게 지원군을 보내는 걸 꺼려하는 건 이 때문이었다. 보통 나라가 망할 때는 영주들이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마련이니까. 그 중에 누군가가 바르테인을 집어삼킬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의 선조 윌리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티프가 말한 대로 내가 직접 군대를 이끌어 어베레드 성을 탈환한다면 바르테인의 내외적 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여자인 내가 왕이 된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한편, 최강국의 면모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왕님께서 붉은 바위족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있으시다면 말입니다.”
티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 마디를 보탠다. 그러나 이때 이미 내 머릿속은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동안 나를 괴롭혀 왔던 고민이 한꺼번에 해결된 것이다!
이길 자신이야 물론 있었다. 나의 약혼자였던 하워드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들. 건국이후 바르테인이 영토를 빼앗긴 최초의 사건. 여러 가지 중대한 사안들이 걸려 있는 까닭에 붉은 바위족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파악해 두었는데, 그들의 군세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노드와 헤니건이 대동한 병력만으로도 붉은 바위족의 수를 능가할 정도다. 싸울 수 있는 병력이 아닌, 노인과 아이, 여자까지 합한 총인구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니건과 노드가 패한 건 그들의 기만전략에 제대로 당했기 때문이다. 2차 구원군은 먹을 것 하나 없는 성에 갇혀 포위당했다. 정면승부를 벌였다면 결코 패배할 싸움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붉은 바위족에 뛰어난 전략가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다. 내게는 ‘무리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에콰빌리타스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정확히 찾아냈었다.
현시대 최강의 기사로 인정받았던 노드를 꺾은 자가 있다 들었지만, 목숨까지 거두지는 못한 만큼 아무래도 실력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쪽에도 노드를 압도한 메담이 있다. 그나저나 메담 저 녀석 참 잘 싸우네....
내전 중에 너무 깊숙한 곳에 들어갔다가 노드와 앤디에게 당할 뻔 했던 건.... 솔직히 내가 경솔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아빠를 구해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들지 않을 테고 불리한 아군을 독려하기 위해 최전방까지 나설 필요도 없을 테니 나는 군주답게 안전한 곳에 물러나있을 것이다.
일단 마음의 결정을 내린 나는 곧바로 티프에게 의사를 밝혔다.
“경의 현명한 조언에 감사해요. 한 번 검토해볼만한 의견인 것 같군요. 우선 이 자리에서는 아덴트의 위기를 윈더민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거라는 것부터 확실히 약속을 드리죠. 지원군을 보내든, 경의 의견대로 원정군을 편성하여 붉은 바위족을 토벌하든 왕성의회와 의견을 조율한 후 빠른 시일 내에 조치를 취할게요.”
“여왕님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아덴트의 주민들도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겁니다.”
티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후 수호 기사에게 잠시 맡겨 두었던, 사자의 얼굴이 달려 있는 검을 되돌려 받은 후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때 마침 메담과 일로스의 결투도 끝이 났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메담의 승리였다.
-휘렌델 방금 전에 저 검을 보았나?-
칸딘의 격렬한 감정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그는 단지 놀란 것이 아니라 경이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와 공유하는 건 여기까지였다. 인간의 오감을 가진 나는 그가 이렇게 경악하고 있는 이유까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 검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말도 안 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칸딘이 부르짖었다. 동시에 반대편 허리춤에 꽂힌 천하장사도 그 말에 동의하듯 부르르 떨린다. 크루거는 죽기 전에 이 검을 나에게 양도했고, 그래서 나는 두 자루의 정령검을 차고 다니는 중이었다. 칸딘의 말로는 천하장사도 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한 마디도 나눠본 적이 없었다.
“저 검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 누가 만든 거지?”
마침내 천하장사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듣는 순간이었다. 나는 비로소 티프의 검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대체 저 검이 얼마나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는데?-
-메담의 정령검보다도 더 강하다....-
칸딘의 대답은 분위기에 휩쓸려 한껏 부풀었던 기대에 약간 못 미치는 것이었다. 메담의 정령검이 윈더민에 있는 정령검들 중 으뜸인 건 대강 눈치 채고 있었지만, 세상은 넓고, 그보다 더 강한 마력을 지닌 정령검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메담의 정령검은 특별하다. 그보다 더 강한 정령검은 있을 수 없다. 아니, 있어선 안 된다!-
.....아니었나 보구나. 그런데 왜 꿈안개보다 더 강한 정령검이 있어선 안 된다는 걸까?
-하지만 저 검이 있잖아? 이미 너희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저 검이 증명한 거 아냐?-
-메담의 정령검보다 더 강한 정령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령검 중에서는 있어선 안 돼. 왜냐하면 정령검이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그 제작과정을 생각해 보면 절대 메담의 정령검을 능가할 수는 없는 거야. 같을 수는 있어도 말야.-
아무래도 꿈안개가 정령검들 중에선 굉장히 특별한 존재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그 크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고, 그 변신할 수 있는 것 때문에 다른 정령검보다 구속감이 덜하다고 했었지. 그런 특징도 그의 특별함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그보다, 대체 정령검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내가 얼마나 궁금해 하는지 눈치 챘으면서도 칸딘은 그 과정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 의사를 존중해주기 위해 나도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티프의 정령검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 검을 만든 자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칸딘이 이런 결론을 내릴 정도로 말이다.
-그러면 엘프가 저 검을 만들었다는 거야? 아니면 드래곤....?-
그들이 정령을 검에 집어넣는다는 발상부터가 굉장히 엉뚱한 것이지만, 인간보다 더 마법에 능숙한 종족이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바로 엘프와 드래곤이었다.
-아냐, 휘렌델. 엘프와 드래곤의 방식으로는 절대로 정령검을 만들 수 없어. 정령검을 쓸 수 있는 것도, 만들 수 있는 것도 오직 인간뿐이다.-
-그러면 꿈안개를 만든 마법사보다 저 사자대가리 검을 만든 마법사의 마력이 더 강했던 거 아냐?-
-....제작자의 마력이 정령검의 마력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메담의 정령검이 최강인 까닭도 바로 그 부분 때문이다.-
하지만 칸딘은 제작자의 마력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정령검의 제작과정을 공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데 인간이 만든 검이라면 메담의 검을 능가할 수 없다. 즉 방금 전 그 검을 만든 자는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마도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겠지. 너희가 신이라고 말하는 존재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칸딘과 천하장사와 비슷한 수준의 충격을 받았다. 신이 만든 정령검이라니.... 저 사자 대가리 검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나? 그보다, 아덴트의 데로저 가문이 정령검을 보유했다는 말부터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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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시저 : 사자 대가리 검이라니....!! 나에겐 시저란 이름이 있는데...!
예니토 : 휘렌델이 그 본명을 끝까지 몰랐으면 좋겠네....
시저 :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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