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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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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5.12.0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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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임명! 왕궁기사단장!

DUMMY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갔다. 윈더민 성을 수복하고 왕좌를 지켜냈지만 나의 기분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점점 우울해졌다. 사람들은 내가 반란군에게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보다는, 누군가 나의 권위를 의심하고 그에 도전했다는 데 더 큰 의의를 두었다.

이 같은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들은 바로 능구렁이 같은 왕성의회였다.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예전처럼 고분고분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노드와 렌이 성을 점령했을 당시엔 그들에게 아양을 떨었을 인간들.... 가끔씩 이렇게 환멸스러운 자들과 같이 일해야 한다는 게 못 견디도록 역겹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작위의회, 영주들은 하루가 멀다 하다하고 지원군을 요청했다. 정말로 병력이 필요한 건지, 아니면 내 세력을 약화시키면서 그들의 세력을 더 늘리려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보내주는 게 정답인지 실수인지 모르겠다. 답이 안 나오는 고민을 계속 하는 건 정말 짜증스러웠다.


더 이상 왕이고 싶지 않다.


왕좌를 지키는 건 재미없고 괴로운 일 뿐이었다. 모두들 내가 싸우는 법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매일 싸우고 있었다. 여자가 과연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까 하는 편견과 말이다.

새로 뽑힌 성장이 내 방을 들어올 때마다 아빠가 생각났다. 이 때문에 매일 상처받고 울고 우울해졌다. 그와 나의 인연이 어긋난 까닭은 내가 바르테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고아원을 열었다. 이는 왕이 된 후 처음으로 내가 추진한 정책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제 윈더민의 모든 고아들이 의식주에 대한 걱정 없이 교육을 받게 되었다. 메담의 친구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나도 이 일이 내가 왕이 된 보람을 느끼게 해줄, 일종의 보상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혜택을 거부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테드였다.

“왜 너는 고아원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거야?”

“....일단 진정해, 휘렌델. 다 설명할게.”

테드는 대답하기 전에 다소 격앙된 나의 감정부터 진정시켜 주었다.

“아직까지 사람들이 고아들을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아.”

“나도 알아.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거야.”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제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테고, 그 아이들이 자라면 고아에 대한 인식을 바꿔 가겠지. 하지만 그중에 나 같은 장애인이, 하늘의 벌을 받은 아이가 섞여 있으면 부정적인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야.”

테드는 자신의 입으로 직접 스스로를 ‘하늘의 벌을 받은 아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다른 고아들에게 폐를 끼치는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히려 듣고 있는 내 가슴이 더 미어질 것 같다. 그는 담담한 표정만 지을 뿐, 조금도 슬프거나 억울해하지 않았다.

“왕도 사람들의 생각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잖아.”

그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겠다는 나를 말리며 테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다. 아무리 왕이라 해도 사람들의 인식까지 내가 제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어떻게든 테드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가급적 사적인 일에는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테드 에게 만큼은 돈이든 뭐든 필요로 하는 걸 다 줄 생각이었다.

“그러면 너는 그 동굴에 남을 거야?”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어. 거기라면 모든 게 다 익숙해서 눈이 안 보여도 나 혼자서 잘 살아 갈 수 있어. 그런데 내가 거기 있으면 애들이 종종 찾아올 것 같아. ....어쩌면 나 때문에 고아원에 가지 않고 거기 눌러앉으려 할지도 몰라.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애들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짐이 될 수는 없지.”

테드는 끝까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 하나 배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벨루거 대장을 따라가려 해.”

“벨루거를?”

그러고 보니 테드는 벨루거에게 각별히 고마워하고 있었지? 어쩌면 테드를 위해서는 그것이 가장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토마스도 잠깐 에콰빌리타스에서 지냈을 때, 고아라고 차별받는 일은 없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의 결정을 환영할 수만은 없었다. 이 즈음 벨루거는 에콰빌리타스의 이주를 계획하고 있었다. 갑자기 세력이 불어난 까닭에 더 이상 윈더민에서 숨어 지내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이제 테드를 만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걱정하지 마, 휘렌델. 영영 헤어지는 건 아니야. 나는 꼭 다시 돌아올 거야. 우리 애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직접 만나봐야 하니까.”

테드는 내가 왜 침울해하고 있는지 눈치 채고는 굳게 약속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내 기분을 풀어주려 해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기껏 고아원을 만들었는데, 고아들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인 테드가 그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다니.... 이것은 테드와 헤어지게 된 슬픔과 더불어 나를 우울하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냥 네가 왕 해.”

우울함이 극에 달한 날, 나는 메담을 찾아가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훗날 벨루거가 전해준 아빠의 유품 중에는 메담이 바르테인의 혈통임을 말해주는 증거도 포함되어 있었다. 검은 강철로 된 목걸이가 아니어도 그의 왕위 계승권을 입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메담은 펄쩍 뛸 듯이 놀라며 되물었다.

“내가 왕이 된 건 더 이상 바르테인 남자가 없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네가 있잖아? 여자인 내가 왕이라고 분위기가 뒤숭숭해. 아무래도 네가 왕이 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그건 내가 왕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거야. 알트론 선왕도 적자 혈통이 아니라고 별 소리를 다 들었었잖아? 그런데 나는 그 알트론 선왕의 사생아라고.”

“같지 않아. 넌 노드를 이긴 최강의 기사잖아? 그런 너한테 누가 까불겠어? 열 받게 구는 놈이 있으면 확 패버리면 되는데.”

“.....넌 못 패?”

비겁한 자식. 얼마 전 웨버가 하도 깐족거리기에 어퍼컷을 날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걸 끄집어내다니....

“이해가 안 되네. 너는 왕이 되고 싶지 않은 거야?”

“되고 싶지 않아!”

메담은 굳은 얼굴로 완강히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의 난.... 너무 감정적이야. 지극히 사적인 감정에 얽매여 있어. 왕이 되어도 그걸 우선할 것 같아. 그래서 성장님에게도 거부의사를 밝혔던 거야.”

..... 아빠는 이미 떠났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성장님’하면 그 분을 떠올리고 있다. 새로운 성장이 뽑혔는데도 말이다. 무심코 아빠 얘기를 꺼낸 것에 잠시 눈치를 보던 메담은 이내 확고한 태도로 그의 뜻을 밝혔다.

“나는 절대 왕이 되지 않을 거야!”

“그래.... 어쩔 수 없네.”

그가 이렇게 나오리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짐짓 더 실망한 표정을 지어 그를 더욱 미안하게 만들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부탁은 거부할 수 없도록 미리 밑작업을 하는 것이다.

“대신 나와 결혼해줘.”

얼마나 놀랐는지 메담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한 4~5초 정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숨도 쉬지 않았다. 조금 화나는데.... 이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인가?“

“원래 나는 하워드와 약혼했었잖아? 따지고 보면 너도 숙부의 아들이고 하워드와 한 혈통이니까...”

나는 그에게 우리가 결혼해야 하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하며 이해시켰다. 나의 진짜 목적은 결혼이 성사되면 녀석에게 바르테인의 통치를 은근슬쩍 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설명을 모두 들은 메담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러면 넌 하워드와의 정약 때문에 나와 결혼하려는 거야?”

메담이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는 평민으로 자라왔기에 정혼의 개념이 낯선 모양이다. 아니 낯선 정도가 아니라 거부감이 있나보다. 그는 아까 절대 왕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할 때처럼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러는 거 싫어. 결혼이라는 건 원래 사랑해서 하는 거란 말야.”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보통 그 정도 미안하게 만들었으면 으레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던데.... 그 만큼 나와 결혼하기가 싫었다는 건가? 이로써 이 녀석에게는 차이는 게 두 번째다. 처음에 제멋대로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했을 때에도 나에게 딱지를 놨었지.

나는 더 우울해졌다. 그래도 이 시점에서 내가 이성으로 좋아하는 사람에 가장 가까운 게 메담이었는데.... 이렇게 무참히 소녀의 순정이 짓밟히고 말았다.

“미안해, 메리. 그것들만 아니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줄게.”

“무슨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러자 메담은 가책에 젖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바르테인의 제 7대 국왕 휘렌델 바르테인은 메담 스피어 경을 윈더민 성의 왕궁기사단장에 임명하는 바입니다.”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나는 가만히 무릎을 꿇고 있는 메담에게 다가가, 취임식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투구를 씌워주었다.

‘메리. 그런데 왜 투구가 분홍색이지?’

속삭여 묻는 메담의 목소리에는 적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왜? 이쁘잖아?’

투구 속에서 빛나는 메담의 눈이 나를 원망스럽게 노려보고 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일부러 더 환하게 생글생글 웃어주었다.

‘미리 말해 두겠지만 갑옷도 분홍색이야. 다 갖춰 입으면 한 떨기 꽃처럼 아름다울 거야.’

‘크윽.....!’

메담의 분한 탄식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분이 덜 풀렸지만 그럭저럭 앙갚음을 했네.

왕위에 오른 지 반년을 훌쩍 넘긴 어느 가을날. 마침내 나는 왕궁기사단장을 갖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메담 스피어. 기존의 최강자였던 노드를 부상당한 몸으로 꺾은, 명실상부한 최강의 기사이자 나의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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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2부 연재를 재개하자마자 비보를 전해드려야할 것 같네요 ㅠ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옷가지와 세면도구만 겨우 챙겨 가게 되어서,

소설 쓰는데 가장 중요한 컴퓨터를 가져갈 수 없게 되었네요 ㅠ

이럴 땐 노트북이 없는게 참 아쉽습니다;;

글을 쓸 수 없게 되어 저도 참 답답합니다.

주말에 피시방 가서 쓸 수도 없고...

컴퓨터를 옮기던가, 아니면 노트북을 새로 장만하던가

둘 중의 하나가 선결되기 전에는 연재를 할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유독 이번 작품을 할 때는 휴재할 일이 많아서 죄송했는데

또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다니... 면목 없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연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짐 싸느라 바쁜 와중에도 2부 1편을 올리는건,

1부가 끝난 시점에서 휴재가 길어지면,

혹시 제가 연중한 것으로 오해하실까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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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대면 +10 16.01.02 1,415 26 8쪽
171 봄을 기다린 사람들 +10 15.12.29 1,777 28 9쪽
170 원정 준비 +10 15.12.24 1,539 34 9쪽
169 마법사의 경호기사 +8 15.12.21 1,629 27 8쪽
168 최강의 정령검 +12 15.12.18 1,365 32 9쪽
167 트라우마 +10 15.12.16 1,635 32 8쪽
166 소외 +12 15.12.14 1,714 32 8쪽
165 기사단장의 검이 선택한 주인 +20 15.12.12 1,646 35 7쪽
» 임명! 왕궁기사단장! +16 15.12.02 1,752 35 10쪽
163 그와 나 -1부 完- +16 15.12.01 1,609 39 9쪽
162 그녀와 나 +20 15.11.30 1,850 45 19쪽
161 바이우스의 일지 -10- +8 15.11.28 1,715 36 9쪽
160 바이우스의 일지 -9- +4 15.11.27 1,919 32 13쪽
159 바이우스의 일지 -8- +4 15.11.25 1,691 24 14쪽
158 바이우스의 일지 -7- +8 15.11.24 1,618 26 14쪽
157 바이우스의 일지 -6- +10 15.11.22 1,403 31 10쪽
156 바이우스의 일지 -5- +12 15.11.21 1,686 30 12쪽
155 바이우스의 일지 -4- +10 15.11.19 1,669 28 11쪽
154 바이우스의 일지 -3- +8 15.11.18 1,781 33 14쪽
153 바이우스의 일지 -2- +9 15.11.16 1,955 29 9쪽
152 바이우스의 일지 -1- +12 15.11.14 1,726 37 13쪽
151 정령검 해방 +10 15.11.13 1,473 42 13쪽
150 완전 공명 +16 15.11.12 1,577 38 10쪽
149 표적 +12 15.11.11 1,518 44 10쪽
148 제 3의 군대 +24 15.11.09 1,685 4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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