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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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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6.10.1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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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추천
22
글자
9쪽

드래곤의 위용

DUMMY

“이걸 좀 맡아주게.”

하이아온은 팔 부분이 변하기 전에 들고 있던 초록색 지팡이를 나에게 던졌다. 받고 보니 그 지팡이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었다. 나무로 만든 게 아니라 풀의 줄기로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지팡이의 색이 초록색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풀이 지팡이로 쓸 수 있을 정도의 크기와 강도를 지닐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때의 나는 변신을 마친 드래곤을 보느라 지팡이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드래곤이다. 진짜 드래곤이다!!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는 비늘들. 그 거대한 위용에 완전히 압도당한 나는 넋을 잃고 그 파란 드래곤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나는 순식간에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물론 내 앞에 거대한 드래곤이 떡 버티고 있는데, 그 드래곤이 인간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하이아온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이 드래곤을 알고 있었다. 정령왕의 기억에 등장했던 드래곤이 바로 이 드래곤이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숱하게 본 그림자 매 역시 이 사실을 깨달았는지 이글거리는 눈으로 드래곤을 노려본다. 왜냐하면 정령왕을 바마렛사의 영역에 보관하자고 파크에게 제안했던 인물이 바로 이 드래곤이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 악마들을 이 세계로 이끈, 악마들의 신 파크와 이 드래곤은 제법 가까운 사이 같았다.

“자네가 어쩌다 악마에게 들켰는지 의아했는데.... 나를 부른 건 이들 때문이군?”

그리고 샤나프린과도 친해 보였다. 샤나프린은 드래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 두 사람과 함께 빠져나가야 합니다.”

하이아온은 샤나프린의 대답을 듣자마자 우리 중에 가장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 악마 둘과 맞붙어 있는 그림자 매쪽을 향해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이성이 마비된 점유자들도 이 거대한 존재에게 본능적으로 위압감을 느꼈는지 그림자 매를 제쳐두고 드래곤에게 덤벼들었다. 악마들은 신장이 3미터가 넘는 거인이었다. 그러나 몸길이가 30미터가 넘는 드래곤 앞에 있으니 그들의 저항은 더 없이 초라해 보였다.

“비켜라, 이 놈들아!”

하이아온이 입을 쩍 벌리자 마치 거대한 동굴이 열리는 것 같다. 드래곤은 순식간에 한 놈을 물어뜯고 다른 한 놈은 거대한 발톱이 돋은 앞발로 찢어 발겼다. 아니, 그렇게 하려 했다. 그 박력 때문에 순간적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착각했는데, 다시 보니 하이아온의 공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

악마의 발톱이 드래곤의 옆구리에 꽂혔다. 거대한 몸집을 생각하면 조금 깊게 난 생채기에 불과하겠지만 하이아온이 고통을 참는 것이 느껴진다. 다른 악마도 하이아온에게 발톱을 박으려 했지만 샤나프린의 화살에 팔을 맞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첫 공격이 빗나간 후 하이아온은 악마들과 더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을 지나친 후 곧장 그림자 매의 앞까지 날아갔다.

“자, 빨리 타거라.”

하이아온이 땅 위에 목을 길게 늘어뜨리며 그림자 매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림자 매는 드래곤을 노려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림자 매가 자신에게 왜 분노하고 있는지 알 턱이 없는 드래곤은 단지 그가 겁을 먹었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 해치지 않을 테니 어서 타거라.”

우물쭈물하는 사이 점유자 둘이 또 다시 덤벼든다. 하이아온은 꼬리를 휘둘러 그들의 접근을 견제했다. 마치 귀찮은 파리를 쫓듯, 맞추는 건 아예 포기한 공격이었다.

“그는 나의 친구입니다. 믿어도 되니 어서 타세요!”

샤나프린 또한 화살을 날려 하이아온을 보조하면서 그림자 매를 재촉한다. 하지만 하이아온과 친구라는 점 때문에 샤나프린까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우리가 만난 지 아직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아직 이 엘프를 신뢰하기는 이르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하이아온. 게차무스가 오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혼란은 사라지고 명쾌한 결론에 도달했다. 샤나프린은 제임스 코벳의 친구였고, 제임스 코벳은 좋은 사람이었다. 이 엘프는 나의 아군일 가능성이 있지만 게차무스가 나의 적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게차무스가 온다는 말에 마음이 급해졌는지 하이아온은 그림자 매를 억지로 물어 태우려 했다. 그러자 그림자 매는 검을 들어 반격하려 했다.

“그냥 타!”

그림자 매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주저 없이 흑요석 검을 내린 후 하이아온의 등에 훌쩍 올라탔다. 그러자 푸른 드래곤은 방향을 바꾸어 나와 샤나프린 쪽으로 날아왔다. 이 때는 샤나프린이 아까 거꾸러뜨린 악마들도 몰려와 비행경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이아온은 쏜살 같이 날아 이제 거의 십 여기에 가까운 악마들의 추격을 여유롭게 따돌렸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여왕님.”

샤나프린은 이 말과 함께 나의 왼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나를 들고 그 자리에서 10여 미터 정도를 훌쩍 뛰어올라 하이아온의 등에 올라탔다. 태울 사람을 모두 태운 하이아온은 그대로 수직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악마들 중 가장 높이 뛰는 녀석도 닿을 수 없는 고도에 이르렀다.

“저기 게차무스가 있습니다. 큰일 날 뻔 했군요.”

샤나프린의 말을 듣고 돌아보니 정말로 저 멀리서 게차무스가 분한 얼굴로 우리를 올려보고 있었다.

“저 녀석이 그렇게 대단한가?”

그림자 매가 묻자 샤나프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악마들 중 아르만시아 다음으로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가급적 부딪치지 않는 게 좋죠.”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지휘관 정도 되는 위치인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대단한 녀석이었구나. 하긴, 놈의 낫이 만들어낸 충격파를 막는 것만으로도 칸딘이 사경을 헤맬 정도였으니....

“그런데 지금 저 녀석은 뭘 하려는 거지?”

그림자 매의 말에 우리는 황급히 게차무스 쪽을 돌아보았다. 이럴 수가! 놈은 이쪽으로 충격파를 날리고 있었다! 칸딘이 목숨 걸고 받아냈을 때처럼 여유롭게 던지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힘껏 낫을 휘두른 충격파였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칸딘이 두려워하는 것이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딘은 또 다시 방패를 전개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지팡이!”

하이아온이 다급하게 외친다. 그러면서 충격파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등을 돌렸다. 그 말뜻을 이해한 나는 주저 없이 충격파 쪽으로 초록색 지팡이를 내밀었다. 후회가 밀려온 건 행동을 취한 직후였다. 대체 내가 뭐한 거지? 칸딘의 마법 방패조차 가까스로 막아낸 악마의 공격을, 고작 풀로 만든 지팡이로.... 어? 이게 뭐야? 지팡이에 닿은 순간 충격파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놀란 나의 물음에 하이아온이 화답한다.

“명아주 지팡이는 마법을 그대로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

그 말에 나는 풀로 만든, 손질도 제대로 안 된 조잡한 지팡이를 다시 본다. 그 엄청난 힘을 받아내고도 지팡이에는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왠지 그 안에 담긴 힘이 약동하는 것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최후의 공격마저 무위로 돌아간 게차무스는 더욱 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이제 하이아온은 충격파도 닿지 않을 높이에 도달해 있었다.

“빠져나왔네.”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나 그림자 매의 의견은 나와 달랐다.

“뭔가 이상해. 저 게차무스라는 녀석.... 아직 포기한 얼굴이 아니야.”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건 잠시 후였다. 문득 샤나프린이 한 쪽을 쳐다보며 경고한다.

“조심하십시오. 점유자 하나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불현 듯 깨달았다. 점유자 중에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샤나프린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부터 일로스가 날아오고 있었다. 게차무스의 손에서 나를 구해주었던 바로 그 일로스였다.

“크르르....!”

그러나 그는 내가 알고 있던 그 일로스와 조금 달랐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점유자들 중 그만은 유일하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지금 날아오는 악마에게는 아무런 지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검은 짐승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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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명아주 지팡이는 루시엘에서도 등장했지만, 그것이 명아주로 만들어졌다는 것까지는 밝혀지지 않았었죠.

원래 명아주 지팡이는 잔뿌리를 제거하고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갈색을 띠게 되지만, 극 중에서는 가공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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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47 Brav
    작성일
    16.10.15 03:35
    No. 1

    명아주였군요. 읽는 내내 대나무나 용설란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6.10.16 22:44
    No. 2

    보통 명아주 지팡이는 초록색이 아니니까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운동좀하자
    작성일
    16.10.15 04:37
    No. 3

    드래곤이... 약해빠지다니... 충격!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6.10.16 22:45
    No. 4

    그래서 샤나프린이 지원군이 아니라 '말'이라고 표현했던 거죠;;
    하이아온에게 조금 미안해지네요 ^^;
    그러나 하이아온이 약한 건 아닙니다.
    다만 악마들과 상성이 안 맞을 뿐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6.10.15 09:35
    No. 5

    한국적인 소재 좋네요ㅎㅎ
    하이아온이 인간일 때 입은 옷도 한복인 것 같던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6.10.16 22:49
    No. 6

    한복 맞습니다 ㅎㅎ
    등장할 예정이었다 취소된 두 캐릭터는 아예 쥬신인이라는 설정이었죠 ㅠㅠ
    한국적인 색채를 보다 많이 가미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행여 독자분들의 몰입에 방해될까봐 자제하고 있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흑염룡
    작성일
    16.10.15 12:32
    No. 7

    음... 장수하면 임금이 줬다는게 명아주 지팡이였던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6.10.16 22:53
    No. 8

    맞습니다. 상식이 풍부하시네요 ^^;
    그런데 사실 명아주 지팡이 자체는 만들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소설에 명아주 지팡이를 등장시킨 것도 평범하고 흔한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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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상실 +6 16.10.21 1,075 25 10쪽
» 드래곤의 위용 +8 16.10.15 1,229 22 9쪽
261 +10 16.10.13 1,110 2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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