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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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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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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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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427화 하늘의 뜻을 받고 덕을 세우고자 하는 자

DUMMY

427화 하늘의 뜻을 받고 덕을 세우고자 하는 자


“산둥, 산둥인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각각 보내온 서신을 읽은 나는 깊이 고민했다.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전한 내용을 살피고 향후를 그리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서 정할 일이 아니다.


“왕은 결정하고 책임을 진다. 하지만 그것이 독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먼저 사방에 귀를 열어 듣고 논함이 옳다. 도승지는 들으라.”

“예, 전하.”


대기하고 있던 도승지 이경증이 곧바로 대답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명령을 내렸다.


“신료들을 소집하고 이 일을 알려라. 오늘 논하는 자리를 열겠다.”

“상께서 이르신 대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경증이 공손히 대답하고 물러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머릿속에서 어떠한 말들이 나올지 생각했다.


소현세자와 같은 말이 나올 것인지, 아니면 봉림대군과 같은 말이 나올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양자 모두 강성한 목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당장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사람이 보낸 서신에도 자신들이 생각한 것이 조선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중을 생각하며 이 말에는 저 대응, 저 말에는 이 대응을 생각하던 내게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모두 모였나이다.”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기대와 불안을 품고 나섰다.


그리고 내가 목도한 현실은 의외로 팽팽한 대립이었다.



***



“이미 승정원을 통하여 모두 들었으리라 여기나, 혹시나 살펴 말하겠소. 이번에 산해관 사람들을 명나라에서 맞이하고자 하는데, 그 경계가 애매하여 자칫하면 명나라와 청나라가 잠시 쉴 틈도 얻지 못할까 싶어 우리가 중재하여 경계 정하는 일을 하였소. 그런데 양국이 산둥을 두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더니, 명에서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였소이다.”


임금이 이르는 말에 신료들은 대소를 가리지 않고 숨을 죽였다.


이미 승정원에서 사람을 보내어 사정 전하였으나 그때는 이게 무슨 흰소리인가 싶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성상이 직접 이리 입에서 말하여 주니 사람들은 이 생각지 못한 기회, 혹은 위기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르길, 산둥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기에는 사방이 너무 어지러우니 도적들을 잠잠히 한 후에 양국이 결착을 내어 소유권 주장하기로 하였소. 그동안은 조선에서 대신 산둥 맡아주기를 청하였는데, 이 일은 전례가 없다고 할 정도로 기이하다 할 일이오. 하여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의견을 듣고자 하오. 이에는 세자와 대군 역시 뜻이 갈려 의견이 분분하였으니 그대들은 기탄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시오.”


임금이 말을 마치고 손짓으로 말을 종용하니, 이제 신하들이 입을 열 차례가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저마다 눈치를 보는 듯싶더니 곧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신 호조판서 이명이 아뢰옵니다. 이 일을 받아들이는 것은 조선에게 있어서 좋은 것이 되지 못하니, 물리치심이 옳습니다.”


몇 년 전에 졸한 이경직을 대신하여 호조판서 자리 앉은 이명이 자못 진지하게 나서서 말하니 뭇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그들을 대변하듯 임금이 그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산둥은 작은 땅이 아니며, 그 땅은 이미 오랜 전쟁과 민란으로 소출이며 다스림이 변변치 않습니다. 그런 땅을 조선에서 덜컥 얻으면 당장 구휼하고 살피는데 적잖은 소용과 인력이 들것이니, 그러한 비용 증가는 근간에 아국이 아무리 교역하는 일을 주도하여 득을 보고 있다고 하나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몇 년만 지내면 나아지지 않겠는가?”


임금이 다시 물으니 이명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쳤다.


‘만약 이루어지면 호조의 일이 그치지 않겠지.’


단순히 그나 호조가 고생하여 끝날 일이었다면 이리 먼저 나서서 반대하는 말을 내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이 일은 사실상 예정된 파탄을 향해서 갈 게 불 보듯 뻔했다.


“재물 드는 일에서 그친다면 그 땅은 크고 비옥하니 그럴 것입니다. 허나 아무리 비옥하다고 한들 한양에서 그 땅 살피는 일에 어려움이 생기면 결국은 명이고 청이고 산둥을 휘두르려고 할 것이며, 그 휘두름은 관민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잠시 말을 쉰 이명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곤 다시 입을 움직였다.


“이 휘두름에는 이곳은 산둥이 아니라 다른 땅이니 청나라 소관이다, 명나라 소관이다 하는 일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청나라에서 죄짓고 산둥 숨고 명나라에서 죄짓고 산둥 숨는 일이 그치니 않을 것입니다. 상황이 이리 돌아가면 반드시 다스림이 따라가지 못하여 관직 사양하는 이가 나올 것이니, 나중에 가면 산둥에 가는 일 자체가 기피되어 그 큰 땅이 방치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명이 할 말을 다 이르니 좌중은 잠시 그의 말을 곱씹듯 침묵에 잠겼다.


이런 분위기가 생기니 이명은 제가 혹여 말을 너무 서둘렀나 싶어서 찔끔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침묵은 금세 깨어졌다.


“신 예조판서 김상헌 아뢰옵니다. 소신도 이 일에는 나서서 얻지 않음이 낫다고 여깁니다.”

“그대도 호판과 같은 생각이다?”

“이유는 다르나 결론은 같습니다.”


김상헌이 하는 말에 이번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사람들 시선 느낀 김상헌 향해 임금이 입을 열었다


“다른 이유는 어떠한 이유인가?”

“이 일은 언뜻 분쟁을 피하기 위해 명나라가 양보하여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함입니다. 헌데 이를 한 걸음 떨어져서 보는 이들에게는 그리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김상헌은 이렇게 말한 후에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후에 똑똑히 알아두라고 하듯 말을 덧붙였다.


“두 나라가 다투는 사이에 끼어들어 세 치 혀로 남의 땅을 빼앗았다고 여길 것이옵니다.”

“명나라가 먼저 제안한 일이 어찌 그렇게 된단 말입니까?”


당황하여 묻는 목소리에 김상헌이 고개 돌려 보니 거기에는 외조 참의 심기원이 있었다.


그는 김상헌이 노려보는 것도 개의치 않는 기색을 보이더니 곧 임금을 향하여 앞선 이들과 달리 주장하였다.


“전하, 이 일은 열성조의 보살핌이 있어서 생긴 크나큰 복이자 기회입니다. 호판 대감이 이른 것은 분명 우려할 법하나, 이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크기는 비록 산둥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나 이미 아국에서 일본 땅 빌려서 비슷한 일을 하여보았으니 어렵다고 여기긴 어렵습니다.”


심기원은 여기까지 말한 후에 슬쩍 고개 돌려 김상헌을 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또한 오얏나무 아래서 끈을 고치지 말라 하였으나 이 일은 오얏나무 주인이 직접 올라서 열매를 따서 건네는 것에 가깝습니다. 어디에 오해할 일이 있으며 곡해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소신 역시 외조 참의의 말에 동의합니다.”


심기원 홀로 나서서 하는 말로 그치지 않고 누군가 나서서 말을 보하니, 그는 영의정 홍서봉이었다.


“소신이 감히 상께 말씀드리건대, 조선은 능히 이 일을 맡을 능력이 있다고 여깁니다. 이제 명나라에서 예전 우의 생각하여 빼앗김을 면하고자 맡기는 것이니, 거절할 이유도 도리도 없습니다.”


홍서봉이 나서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옳은가 싶던 기류가 단박에 뒤집혔다.


다들 입에서 소리는 내지 않아도 얼굴에서 그러한 기색을 보이니 홍서봉은 다시 입을 열었다.


“또한 산둥이 있다면 전보다 더욱 교역 장려하고 오가는 일이 편하여질 것이니, 조선은 한층 더 발돋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가 나아갈 기회를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 일부러 버리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각각 주장하고자 하는 말이 연이어 오가니 곧이어 갑론을박하는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협잡으로 보이는 일입니다! 명나라에는 곤궁함 이용하여 산둥 얻어낸 것으로, 청나라에는 기회 이용하여 득을 취한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청나라는 몰라도 명나라는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제시한 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제안하였다고 하여 그것이 정하게 통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태조대왕 시절을 생각하여 보십쇼! 전조는 없어져야 할 악으로 부패한 지 오래였으나, 당시 백성들은 그저 배은망덕하다고 여겼습니다!”


“산둥은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복구하는 일에 한세월이니, 그것이 끝나 이제 득을 보고자 하면 저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돌려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과연 그럴까요? 금과 송의 대치는 장장 이백 년을 이어갔습니다. 그만하면 몇 년 노고가 금세 돌아올 것입니다. 거기에 이백 년 통치하면 그때는 마땅히 산둥은 조선 땅이라고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산둥을 다스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 땅 크기며 사람 따지면 사실상 조선에 삼남 이상의 땅이 갑자기 생기는 셈입니다! 그런 걸 감당하다니, 과연 조선이 조선으로 남아있을지 우려스럽습니다!”

“조선말을 하여 조선의 예법과 유학을 지키면 조선이니, 그 출신이 한인이건 삼한 출신이든 상관없는 일이외다!”

“하, 그렇게 되면 종국에는 삼한이라는 자부심은 흐지부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기자께서 도래하신 이래 유학을 더 먼저 세웠다는 자부심이 사라진다, 이 말입니다!”


“산둥을 얻고 말고로 따짐은 다 글렀소이다. 이 일의 본질은 중재하겠다고 나선 나라에서 모든 이득을 취함에 있으니, 그렇게 되면 지금은 물론이고 후대에 두고두고 조선을 욕할 것입니다. 저 나라는 소와 같이 보이더니 실은 흉악한 범이었다, 세 치 혀로 모든 것을 앗아가는 나라라고 말입니다!”

“그만. 모두 진정하시오.”


고성이 막 오가던 중에 나직이 울리는 음성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열기 넘치던 자리에 침묵이 감돌기 시작하나 그 열기는 여전하니, 사람들 한번 둘러본 임금은 마지막으로 말한 이에게 물었다.


“대제학 이식은 들으시오.”

“예, 전하.”

“그대가 한 말, 그 말이 이 일의 본질이라고 하는 말은 실로 내 마음을 울렸소. 산둥을 얻는 것이 좋은가 나쁜가, 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본질이 아니라는 말 말이외다.”

“이 부족한 소신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시니 실로 감읍할 따름입니다.”


이식에게 말한 임금은 사람들을 다시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공공히 말하겠소. 내가 보기에 우리 조선은 응당 산둥을 얻으면 다스릴 자신이 있으며, 그만한 힘이 있소. 이미 일본에서 빌린 땅으로 경영하며 먼 땅을 다스림이며 그곳에 사람 보내어 힘쓰고 다스리는 것이 어렵지 않음을 알았으니 그보다 더 가까운 산둥은 더욱 쉽겠지. 하물며 지금도 산둥을 오가는 배가 적지 않으니, 어려움을 없을 것이오.”


산둥, 얻으면 다스릴 수는 있다.


이렇게 공언하는 임금에 말에 대다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소수에 해당하는 자들은 그렇지 않았으니, 특히나 이 일이 시행되면 고생깨나 할 게 뻔한 호조판서 이명과 이조판서 정온이 그러했다.


“또한 그 땅을 얻으면 당장은 고난하여 어려우나 나중은 분명히 득이 될 것이니, 삼남 이상으로 큰 땅이며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니 우리는 물산과 사람이 풍부하게 되겠지.”


임금이 여기까지 말한 것을 들은 순간 산둥 얻는 것을 찬동했던 이들의 얼굴에 밝은 기색이 비쳤다.


산둥을 얻기로 결정하였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다.


“허나 방금 대제학이 일렀듯, 이 일은 산둥이 좋고 나쁨이며 득이 되고 아니 됨이 아니오. 우리는 명나라와 청나라 양국을 중재하고자 나섰건만, 이렇게 일이 결론지어지면 결국 양국은 남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은 우리 조선이 쥐게 되오. 이는 옳은 일이 아니오.”


임금이 고개 흔들며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시선으로 사방 살피니 영의정 홍서봉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것은 당사자가 원한 것이니 옳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감히 말하건대, 요순의 일이 이에 비견될 법하다고 여깁니다.”

“요순의 일은 요임금이 온전히 순임금을 바랐기에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이오. 허나 이 일에는 요임금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니, 아름다운 일로 남기 어려울 것이외다.”


당사자의 한쪽인 명나라는 분명 양보하였으나, 다른 한쪽인 청나라는 그런 말을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이 점을 상기하게 하니 신료들은 그제야 산둥을 받아들이는 순간 청나라와는 다소 의가 상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였다.


“아마 경들 가운데 누군가는 이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 산둥 얻고 일본이며 유구와 손잡아 새로이 떠오르자고.”


임금이 이르는 말에 이번 일에 말을 내지 않고 상황을 그저 살피기만 하던 첨지사 김자점이 뜨끔한 얼굴이 되었다.


실제로 그는 이 논쟁 오가는 걸 보며 산둥에 군사 보내어 간섭하는 것을 고려하던 참이었다.


또한 필요하다면 지금 명나라며 청나라 가는 사람들을 조선에서 직접 쓰는 것도 고려하여 보았으니 임금의 말은 그의 정곡을 찌른 셈이었다.


“삼국 가운데 하나. 멋진 말이오. 그리고 승자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 허나 전조가 그렇게 되었으나 끝내는 승자라고 하기 어려웠으며, 결국 승자는 다른 이였으니 이 일에는 꺼림이 있소. 또한 나는 조선이 땅을 탐내어서가 아니라 덕과 문명함을 탐내고 내세워 천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소.”


덕과 문명함을 내세워서 천하 중심이 되겠다.


이 말에 신료들은 지난 정축하성 이래 공공연한 자리에서는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임금의 속내를 편린이나마 맛보게 되었다.


“산둥을 욕심내는 것은 천한 욕망이 아니오. 조선을 위한, 그리고 조선의 대의를 위한 고귀함이라고 생각하오. 허나 나는 그보다 더 고귀한 것을, 옛 주나라와 같음 그 이상을 바라오.”


임금이 하는 말에 신료들은 저마다 말을 곱씹으며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이들을 보며 임금은 마저 말을 이었다.


“산둥의 소유권은 주장하지 않겠소. 허나 관리는 맡을 것이니, 우리 조선은 관리만 하며 산둥에서 나올 세에도 손대지 않을 것이오. 대신 물을 것이니, 산둥의 세를 명나라와 청나라 가운데 어느 쪽이 가질 것인지 묻고 우리에게 관리하는 대가로 무엇을 줄 것인지 물을 것이오.”


이렇게 말한 임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두 눈을 감고 남은 말을 입에 담았다.


“하늘의 뜻을 받고 덕을 세우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천하 만민을 도움이 당연하니, 나는 편한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을 갈 것이오.”



***



해버렸다.


결국 이 말을 겉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전에 소현세자에게 드러낸 이후 몇 년이 지났는지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아직 준비가 되었는지, 정말 내 뜻에 온전히 그리고 기꺼이 따를지는 잘 모른다.


다만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은 걱정이며 우려가 아니라 그저 내가 품은 것을 오래도록 기다리고 기다려서 내었다는 편안함이 있을 뿐이었다.


“성상께서 품은 것이 그토록 웅대한 줄은 지금 처음 알았으니, 소신은 진정 상과 함께 이 시대에 있는 것을 큰 복으로 여깁니다.”


내 귀에 한 사람이 말하는 것이 들리니, 이제까지 한마디 하지 않고 그저 고민에 몰두하던 우의정 최명길이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영의정 홍서봉도 입을 열었다.


“성상께서 이르심대로 산둥에 대한 욕심이 더 중요한 것을 놓치게 하였으니, 유학자로서 부끄럽습니다. 땅을 얻음은 분명 중한 일이나, 땅이 모든 것은 아니니 우선함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덕입니다.”

“언제고 들었던 이야기 가운데 사농공상 가운데 사람 살며 가장 필요한 것은 농공상과 같이 먹고 살 수단이나 가장 앞서 사, 정신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러니 그것을 버리게 하는 수단은 실로 삿되다고 하겠습니다.”


대제학 이식이 이어서 말을 보태니 다른 신료들 역시 고개를 숙여 따르겠다는 표시를 보였다.


“이미 이른 방책에 그른 것이 없다고 하면 이 뜻을 세자에게 보내어 시행하게 하겠소. 세부적인 방책에 대해 논할 것이 있다면 직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올리시오.”


내 말에 사람들이 따라준다.


내가 한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내게 힘을 주었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내 그대들의 모든 의견을 수렴하여 전할 것이오.”


그로부터 사흘 후, 조정 신료들과 내 열정을 가득 담은 서신이 심양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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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462화 태종대왕의 훌륭함 +4 24.01.11 243 15 15쪽
462 461화 멀리 보아야 유연하다 +4 24.01.10 215 14 11쪽
461 460화 귀한 피 +2 24.01.09 217 12 13쪽
460 459화 우위에 서는 수단 +3 24.01.08 226 16 12쪽
459 458화 죽은 사람의 소원 +3 24.01.07 234 11 11쪽
458 457화 인륜지대사 +5 24.01.06 243 15 12쪽
457 456화 사방의 괴로움 +4 24.01.05 225 12 12쪽
456 455화 황하의 분노 +2 24.01.04 209 15 12쪽
455 454화 거북이와 겁쟁이 +3 24.01.03 211 13 13쪽
454 453화 사람을 움직이는 힘 +3 24.01.02 210 14 13쪽
453 452화 보신을 위한 지혜 +7 24.01.01 226 17 12쪽
452 451화 공백 +8 23.12.31 233 18 12쪽
451 450화 기대 +3 23.12.30 233 17 12쪽
450 449화 쥐기 위해서는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5 23.12.29 224 15 12쪽
449 448화 호의의 뒷면 +1 23.12.28 219 19 13쪽
448 447화 사람은 지나간 일을 쉽게 여긴다 +2 23.12.27 247 16 12쪽
447 446화 사신도래 +1 23.12.26 246 19 13쪽
446 445화 영원 +5 23.12.25 218 19 15쪽
445 444화 성문 공방 +4 23.12.24 226 16 13쪽
444 443화 물러날 수 없는 자리 +3 23.12.23 220 15 13쪽
443 442화 상잔 +2 23.12.22 225 17 13쪽
442 441화 동관풍운 +4 23.12.21 251 17 12쪽
441 440화 막역지우 +2 23.12.20 239 18 14쪽
440 439화 욕심을 부려야 할 때도 있다 +3 23.12.19 259 16 13쪽
439 438화 갈림길 +3 23.12.18 233 15 12쪽
438 437화 도적인가 이웃인가 +5 23.12.17 247 18 13쪽
437 436화 천하는 쉬지 않는다 +2 23.12.16 253 16 12쪽
436 435화 사대부의 나라 +4 23.12.15 283 18 14쪽
435 434화 새로운 이웃 +3 23.12.14 250 19 12쪽
434 433화 노신과 황제 +4 23.12.13 251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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