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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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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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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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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화 사방의 괴로움

DUMMY

456화 사방의 괴로움


“자, 장군! 말들이 더는 달리지 못합니다!”


장수가 외치는 말에 총병 좌량옥은 못마땅한 얼굴로 속도를 늦추었다.


“속도를 늦추되 멈추지 마라! 저 앞에 있는 강을 넘은 후에 쉴 것이다!”


좌량옥의 명령에 말들은 조금 더 고생을 하게 되었으니, 강을 건넌 후에는 이들을 태운 말 가운데 반절은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게 되었다.


이는 타고 온 병사들이라고 하여 다를 건 없었는데, 그런 그들의 귀에 반갑기 그지 없는 말이 들려왔다.


“여기서 이틀을 기다린 후에 남경을 돌아간다!”


개봉 근처에 있던,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멀찍이 있던 진지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좌량옥이며 그가 이끄는 병사들은 전원 말을 타고 움직였다.


그러다가 청나라 군사들이 보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뺐던 그들은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못하다가 이제야 처음으로 쉬게 된 셈이었다.


그 휴식이 잠깐이라고 하여도 기쁠 터인데 이틀은 쉬어간다니 적잖은 안심이 되었다.


더불어서 좌량옥이 한 말은 다시 말해 이틀은 청나라 놈들도 그들을 따라잡기 어려울 거라는 말이었으니 그런 면에서도 크게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병사들과 달리 좌량옥은 내심 불안했는데, 사실 그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시일은 하루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휴우. 그렇다고 그놈을 두고 갈 수는 없으니.’


좌량옥이 두고 갈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부관 황주였다.


그에게 무슨 대단한 친밀감을 느끼거나 책임감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를 두고 갔다가 나중에 뒤늦게 살아서 돌아와면 남경에서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 함께한 병사들이야 적당히 입막음할 수 있고, 두고 온 병사도 되지 못한 놈들 역시 고려할 가치는 없었다.


하지만 부관 황주는 좌량옥과 함께 다니며 이런저런 상황을 살폈고, 이 일을 하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사실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둔갑하기 십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좌량옥으로서 황주는 당분간 안고 가야 할 사람이었다.


‘이틀이다. 내 목숨 걸어가며 기다렸으니, 이 이상은 기다리지 않아도 날 원망하지 말게.’


속으로 중얼거려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긍정한 좌량옥은 그렇게 하루를 강변에서 보냈다.


그에게는 매우 다행스럽게도, 날이 밝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황주가 이끄는 별동대가 강을 따라 걸어와서 합류했다.


“오오, 무사했군그래.”

“저들을 피하여 돌아오느라 늦었습니다.”


제방을 부수러 갈 때처럼, 아니 그보다 더 멀리 돌고 돌아서 온 황주는 좌량옥이며 병사들을 본 후 저도 모르게 안색을 흐렸다.


“이것이 전부입니까?”

“안타깝지만 그러하네.”

“대패군요.”


출발할 때에 비하면 규모가 십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얻은 수확은 없다시피 하다고 여긴 황주는 이 일을 패배하고 목숨만 건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좌량옥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대패라니, 무승부지.”

“예?”


무승부라는 말에 황주는 크게 당황했다.


도무지 어디에서 그렇게 주장할 여지가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인께는 송구하나 이 일은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얻어도 무승부라는 말은 얻기 어려워 보입니다.”

“단순히 병사 잃은 것만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건 아니지. 전쟁은 그보다 더 복잡한 승부라고.”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황주의 얼굴을 보며 좌량옥은 은근하게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황 아우, 잘 듣게나. 우리가 수만에 달하는 병사를 잃었네. 하지만 대신 개봉을 얻었지 않나.”

“예? 그, 그게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 얻었다고 하는 건 좀 그런가? 그러면 뺏었다고 하지.”


엎어치나 메치나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말에 황주는 입을 벌리고 당황했다.


물론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겨서 했다는 건 그도 동의하는 바지만, 이번 일을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좌량옥이 너무나도 기이하게 보였다.


“우리는 낙양과 개봉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지만, 시일이 늦어서 실패했네. 그 일을 만회하기 위해 적들에게서 개봉을 빼앗았고, 그 대가로 병력을 좀 잃었어. 하여 하나는 내주고 하나는 내주지 않았으니 무승부라고.”


좌량옥이 이르는 기적의 셈법에 황주는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러한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좌량옥은 곧 아쉽다는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쉬운 승리 정도로 포장하고 싶었는데, 그래서야 빌미를 주니까 어쩔 수 없지.”


아무리 그래도 이 말까지는 가만히 듣고 있지 못하겠던 황주는 곧장 좌량옥의 말을 반박했다.


“아쉬운 승리라니,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병사가 태반은 죽거나 사로잡혔을 건데 말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자고로 전쟁이라는 건 서로를 얼마나 죽이는지 겨루는 게 아니야. 그게 크게 작용하지만, 그보다는 원하는 걸 누가 어떻게 얻었는가가 중요하지.”


완전히 그른 말은 아닌 거 같지만 좌량옥이 하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딘가 궤변처럼 들린다고 느낀 황주는 고민했다.


그런 황주를 향해서 좌량옥은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얼마나 죽고 죽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낙양과 개봉이지.”

“하, 하지만······.”

“정직하게 이야기해서 실패했다고 하고 평생 한직을 전전하고 싶은 생각이라면 말리지는 않겠네. 아니, 한직이면 다행이겠군. 우리 황 아우 말대로면 우리는 패배한 셈이니 응당 그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좌량옥이 하는 말에 황주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걸 쉬이 알아챈 좌량옥은 은근하게 속삭였다.


“아, 그리고 이게 패배면 응당 개봉을 그 지경으로 만든 책임도 함께 져야 하지. 결국 이긴 게 아니라 진 것이니, 면피할 방도가 없지 않은가.”


크게 갈등하던 황주는 이 말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좌 장군께서 이르신 대로 이 일은 아쉬운 무승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대명은 그 처지가 좋지 않아 작은 승리가 아쉽지요. 조정에서도 적어도 기회 한 번 정도는 더 주실 겁니다.”


이는 좌량옥을 향해서 한 말이나 동시에 황주 자신이 스스로에게 이르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황주가 누구를 향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좌량옥에게 있어서 이미 두고 온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어찌 되든 좋았다.


“역시 황 아우야. 남경에서도, 아니 이후에도 서로 잘해보자고.”


좌량옥은 그렇게 말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듯 슬쩍 말을 덧붙였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남경 조정을 잘 아는데, 그치들도 솔직히 이번 일에 기대는 안 했을 거야. 그런데 고작 유민 수만으로 개봉을 무력화했다니, 정말 승리라고 주장해도 좋다니까?”

“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아, 물론 알고 있네. 그런 말이 자극할 뿐이라는 건 알아. 근데 주장은 하지 않아도 그런 생각으로 있게.”


선심 쓰듯 말한 좌량옥은 아마도 지금까지 가운데 가장 진심을 담았다고 할 말을 입에서 냈다.


“안 그러면 살아남기 힘들 거야.”



***



“그게 정말입니까?”


분노를 밑거름 삼아서 대승을 거둔 것은 좋았다.


하지만 전후 처리 과정에서 성친왕 아이신기오로 요토는 생각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머리다운 머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것도 병사들 가운데서 뽑아 올린 이들이 전부입니다.”


의정대신 타타라 잉굴다이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는지 대답하면서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요토는 잠시 찌푸린 얼굴로 생각하더니 답을 도출해 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도망쳤군. 다 버렸어.”

“만에 하나 그들이 기만책을 썼다고 볼 여지가 없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덕분에 개봉이 만신창이니까요.”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시오?”


요토가 묻는 말에 잉굴다이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일단 말씀은 드린 겁니다. 솔직히 그렇게 했다면 저는 대명이라는 말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인정할 겁니다.”


제가 한 말을 부정한 잉굴다이는 곧 그 근거를 입에 담았다.


“근방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길 거점은 낙양과 개봉인데, 개봉은 이미 만신창이입니다. 그리고 개봉을 노렸다면 어디에 숨건 우리 눈을 피할 수 없고, 설령 숨었다고 한들 접근하는 동안 우리에게 발각되지 않을 리가 없지요. 낙양을 노린다? 서정군은 우리보다 더 강하니 걱정하는 게 더 우습지 않겠습니까.”


잉굴다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요토는 얼추 정리가 된 사방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이만한 숫자를 잡졸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내버리다니, 참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지.”

“세상에 벌레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렇다고 벌레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진 않습니다. 또한 초원에 가장 많은 건 풀이지만 아무도 풀을 지배자로 여기진 않지요.”

“아, 명언이 따로 없군그래.”


싱숭생숭한 마음이 잉굴다이의 말을 듣는 순간 멀리 달아나는 걸 느낀 요토는 수많은 포로들을 보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조금 어이가 없긴 한데, 이거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좋은 일?”

“북경은 물론이고 향후 점령하는 곳들에도 이 일을 알리면 제법 재밌을 거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과연 그렇겠습니다.”


결과만 따져도 승자는 그들이니 말할 것도 없고, 그 과정 역시 향후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가장 잘 이용하려면 북경이 나을 거 같소, 아니면 심양이 나을 거 같소?”


요토가 묻는 말에 잉굴다이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심양으로 하시지요. 마지막에 물자를 보내겠다고 예친왕께서 이르신 서신 말미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황상께서 부르시니 심양으로 잠시 갈 것이라고요.”

“그래? 그럼 심양으로 보내야겠군.”



***



요토와 잉굴다이가 보낸 서신을 받은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의 첫 말은 이것이었다.


“사방에서 지랄이구나.”


각기 다른 이유긴 하나 도르곤이 보기에 이게 딱 청나라가 처한 상황이며 그가 처한 상황을 표현하기에 알맞았다.


서쪽에서는 강렬하게 저항하여 원정을 무산하더니 동쪽에서는 뜬금없이 위임 통치가 시작되었다.


남쪽에서는 이자성이 돌아서며 슬그머니 제물을 바치기에 좋다고 얻었더니 다른 놈들이 설치며 다소 빛이 바래게 되었다.


여기에 북경을 기준으로 잡으면 북쪽이라고 할 심양 황궁에서도 도르곤을 괴롭게 하는 일이 있어서 찾아오기까지 하였으니, 도르곤이 보기에는 정녕 사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 같이 방향성을 가리지 않고 지랄 맞았다.


“그래도 이쪽은 이만하면 아주 나쁘진 않아. 산둥 정도는 되려나.”


요토와 잉굴다이가 보낸 서신에 담긴 내용은 앞으로 청나라가 내려가는 일에 한층 더 정당성을 부여해 줄 것이고, 여기에 더해 백성들을 상대로 이 일을 전하면 민심을 다스리는 일에도 도움을 받을 터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북경이며 그 근방 땅은 물론이고 이번 일이 일어난 개봉과 그 근처 하남 땅은 명나라 땅이었고 거기에 살던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청나라보다는 명나라에 소속되었다고 여기는 이들이 태반이다.


때문에 아무리 잘해준다고 한들 청나라가 압제자며 침략자라는 시선을 바꾸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잘 포장하기에 따라서는 그들에게 붙은 안 좋은 딱지를 떼어버릴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개봉에서 녹영들이 살아남았고, 그리고 거기에 남은 백성들도 있다고 했지. 그들을 북경으로 불러들이고 치하와 위무를 하면······.’

“전하, 황궁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생각에 골몰하던 도르곤은 바깥에서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황궁에서 사람이 왔다는데 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도르곤은 애써 참으며 바깥을 향해서 물었다.


“어느 쪽에서냐?”

“황태후께서 보내셨다고 합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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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 478화 화복 +3 24.01.30 202 16 12쪽
478 477화 황충 떼 +5 24.01.26 220 15 13쪽
477 476화 나쁜 예감 +3 24.01.25 219 15 13쪽
476 475화 궁한 사람들 +4 24.01.24 217 18 12쪽
475 474화 조선의 의무 +3 24.01.23 253 14 15쪽
474 473화 경자유전 +6 24.01.22 210 15 12쪽
473 472화 땅의 주인 +3 24.01.21 210 16 14쪽
472 471화 불문불권 +4 24.01.20 231 16 13쪽
471 470화 법 없이 사는 사람들 +3 24.01.19 230 14 16쪽
470 469화 고뿔과 등창 +2 24.01.18 211 15 11쪽
469 468화 그녀의 이름은 +2 24.01.17 231 17 12쪽
468 467화 가장 달콤한 말 +3 24.01.16 226 14 13쪽
467 466화 때로는 남보다 못한 사이 +2 24.01.15 232 15 12쪽
466 465화 쇼군의 가족 +3 24.01.14 239 17 12쪽
465 464화 옛 왕조 +5 24.01.13 240 14 14쪽
464 463화 쌍방의 관계 +2 24.01.12 228 13 13쪽
463 462화 태종대왕의 훌륭함 +4 24.01.11 249 15 15쪽
462 461화 멀리 보아야 유연하다 +4 24.01.10 219 14 11쪽
461 460화 귀한 피 +2 24.01.09 221 13 13쪽
460 459화 우위에 서는 수단 +3 24.01.08 229 16 12쪽
459 458화 죽은 사람의 소원 +3 24.01.07 238 12 11쪽
458 457화 인륜지대사 +5 24.01.06 249 15 12쪽
» 456화 사방의 괴로움 +4 24.01.05 231 12 12쪽
456 455화 황하의 분노 +2 24.01.04 214 15 12쪽
455 454화 거북이와 겁쟁이 +3 24.01.03 214 13 13쪽
454 453화 사람을 움직이는 힘 +3 24.01.02 214 14 13쪽
453 452화 보신을 위한 지혜 +7 24.01.01 231 17 12쪽
452 451화 공백 +8 23.12.31 237 18 12쪽
451 450화 기대 +3 23.12.30 239 17 12쪽
450 449화 쥐기 위해서는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5 23.12.29 230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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