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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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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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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4,601

작성
24.04.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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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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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2쪽

553화 선택할 자유

DUMMY

553화 선택할 자유


“산둥 감찰?”

“예, 그렇습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는 유구국 왕제 쇼시쓰를 향해 대답한 유구국 사람 기소는 내심 생각했다.


‘제길, 이건 잘해도 본전인 일이잖아. 아니, 잘해도 본전이 아닐 수도 있는 거 같은데.’


기소는 매사를 이득과 손해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이득과 손해는 꼭 물질적인 것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그저 재보에 눈이 먼 소인배보다는 온갖 보이지 않는 것들, 가령 명예니 선의니 하는 것에도 가치를 매겨 저울질할 줄 아는 대도나 거상이라고 함이 오히려 그에게는 어울렸다.


다만 이런 부류가 그렇듯 결국 가치를 매긴다고 한들 최종적인 결과, 자신에게 떨어질 이득이 마뜩잖으면 그리 좋다고 여기지 않는 법이니 지금 기소가 딱 그러했다.


‘이건 잘못하면 덤터기쓴다. 유구국에 누군가 한쪽이 작은 이의만 제기해도 내 앞길이······’


입술이 자꾸 바짝 마르는 감각에 기소는 안색을 흐렸다.


“안색이 좋지 않은데, 무슨 문제라도 있소?”


그런 기소에게 쇼시쓰가 의아함을 담아서 물으니 기소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일이 심히 부담스러운 일이라 그렇습니다.”

“부담? 그냥 산둥에 가서 둘러보면 되는 일이 아니오?”


이제는 제법 성숙한 태를 내는 쇼시쓰의 물음에 기소는 내심 불편하게 여겼다.


‘왕제께서 슬슬 나서고 싶으신 모양인데, 그러면 생각도 좀 같이 하시는 게 좋습니다.’


속으로 멋대로 재단하여 평한 기소는 그 평가를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 감추며 입을 열었다.


“감찰을 한다고 하나 세세한 것은 실무자들이 할 터이니 분명 그것도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가는 게 아니라 다녀온 다음에 있습니다.”

“다녀온 다음? 끝난 후에 일이 있다니, 이해하기 어렵군.”

“정확히는 감찰이라는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가에 따라 후일이 달라진다고 하여야 합니다. 저하, 지금 이건 청나라와 조선이 힘겨루기를 하고자 하는 겁니다.”


청나라와 조선이 힘겨루기를 한다는 말에 쇼시쓰는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 동그란 눈에는 의심이 가득하니 그 의심은 곧 말이 되어서 입밖으로 나왔다.


“대체 왜? 두 나라가 서로 싫어하나?”

“속내를 열어보지 않는 한 알기가 어려우니 그것도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두 나라는 지금 제각각 바라는 방향이, 원하는 목표가 다릅니다.”


산둥 위임이 어찌 시작되었는지만 알아도 이는 명백했다.


청나라는 여기서 더 나아가기를 원하고, 조선은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


부딪침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는 명백하게 부딪칠 수밖에 없다.


적어도 기소가 보기에는 그랬고, 그 일이 일어나는 건 어느 순간 어떤 계기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 일은 그가 보기에 딱 좋은 계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두 나라 사이에 있는 건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니 사양해야 합니다.’


바람은 물러나서 관전하는 것이나 그조차도 쉽지 않음을 잘 아는 기소는 작은 책임조차 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말을 삼켰다.


쇼시쓰도 기소가 삼킨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기소가 바라 마지않는 말을 쇼시쓰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산둥 말인데, 전에 명나라와 협정하여 조선에 위임한 땅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이 말에 기소는 이 일이 청나라와 조선만이 아니라 명나라도 얽힐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 이득과 손해라는 저울 사이에서 균형을 잡던 추가 단박에 손해로 기울어졌다.


‘제길, 이거 잘못 걸리면 된통 뒤집어쓰겠구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조금 더 강하게 확실하게 주장하려던 찰나 쇼시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드디어, 드디어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군.”

“······예?”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기소는 당황한 얼굴로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런 기소에게 쇼시쓰는 오히려 왜 모르냐는 얼굴로 물었다.


“이번 일은 유구가 그런 강국들이 모인 자리에서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었고 말에도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자리요. 이것이 기회가 아니면 무엇이 기회란 말인가?”

“위, 위험합니다!”

“어디서 들으니 둘은 같은 걸 달리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더군.”


눈을 반짝이며 대꾸한 쇼시쓰는 이미 뜻을 정하였으니, 그것을 본 기소는 자리도 잊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나마 쇼시쓰가 생각에 골몰한 틈에 재빨리 얼굴을 내려 보이지 않게 하였으나 그 얼굴에 깃든 짜증이며 화는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길, 어릴 때 좀 더 잡아두어야 했나.’


심양에 올 적만 하여도 쇼시쓰는 자신에게 딱히 관여하지 않았고, 그가 말하는 주장하는 걸 반대하는 일도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일이니, 이미 나이가 찬 쇼시쓰에게 압박한 후에 어르고 달래는 것은 먹히지 않는 수단이 되었다.


만약 이곳이 유구국이었다면,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면 사츠마라는 뒷배에게 부탁하여 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깝다면 넌지시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좋았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그 무엇도 효용이 없었다.


이미 청나라 품 안에 있는 쇼시쓰가 보기에 사츠마는 그저 가소롭기만 할 터였다.


당장 기소부터도 그렇게 생각하여 줄을 바꾸어 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가.


하여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았다.


그저 말로서 이르는 것이 다였으니, 기소는 그 미덥지 못한 수단을 지푸라기 삼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쇠함을 벗어나고자 망에 이르게 하는 일을 하고자 함은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나라는 그런 식으로 다스리는 게 아닙니다.”


나라를 거래 대상이며 밑천으로 보는 기소가 할 말인가 싶기는 하나 그는 당당했다.


이에 쇼시쓰는 물끄러미 그를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어떻게 거절하라는 거요?”

“그, 그건······.”


순수하게 의문을 담아서 묻는 말에 기소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쇼시쓰의 물음으로 인해 잊고 있던, 아니 더욱 정확히는 눈을 돌리고 있던 사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거절이라는 건 유구가 아닌 청나라나 조선과 같은 나라가 취할 수 있는 ‘자유’였다.


그러나 유구는 그렇지 못하였으니, 기소는 몇 번이고 입을 오물거렸으나 결국 나오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상 청나라의 권유는 말이 권유지 강제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거절이라니, 정말 할 수 있다면 어지간히 담이 좋거나 현명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면 머리에 아예 든 게 없던가 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쇼시쓰와 기소는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다른 길이 혹여 있나 싶었는데, 아닌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이 일은 기회로 삼음이 마땅하겠지요. 그리 알고 준비해 주세요.”

“······예, 저하.”



***



기소가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인 그 시각.


여기 현실을 곱씹으며 쓴웃음을 짓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었다.


“허, 제대로 당했구나.”


낭패한 음성으로 탄식하며 중얼거린 도르곤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당했어. 조선에 이렇게 선수를 당함도 모자라 계획의 기초부터 아예 어그러질 줄이야.”


계획이란 본래 세운 순간부터 어그러짐을 전제로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근간부터 뒤틀린 계획을 보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니 지금 도르곤의 처지가 딱 그러했다.


말은 잠시 멈추나 손가락으로 두들기는 행동은 변하지 않았으니 도르곤은 그렇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바깥에서 사람이 하나 찾아와 고했다.


“예친왕 전하, 정친왕 전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여라.”


어느새 낭패한 감정은 자취를 감추고 냉정함만이 남았으니 도르곤은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서는 정친왕 아이신기오로 지르가랑을 바라보았다.


“경사한 일이 지난 직후에 이리 청하다니, 세간의 눈이라는 게 예친왕께는 별일이 아닌 모양이군?”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그렇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한 지르가랑은 장난 어린 얼굴을 지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둥 감찰 일 때문이군.”

“그래.”


부정하지 않고 수긍한 도르곤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알겠지만, 본래 계획은 이성왕들을 감찰로 내세우는 게 핵심이다. 아니, 이었지.”


도르곤이 하는 말을 들은 지르가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부분을 입에 담았다.


“수군을 이용해서 순나라에서 남경으로 향하는 물자 흐름을 막고 반대는 그냥 둔다. 그리고 여차하면 산둥으로 도망하여 감찰 중이라고 핑계로 당장의 충돌을 면한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하고 좋은 방법이었지.”


단순하면서도 언제고 반드시 명나라에서 터질 수밖에 없으며 그 터지는 방향은 조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방식이기도 했다.


산둥은 기본적으로 명과 청 양국이 합의한 일종의 완충지대다.


그런 곳에 감찰을 한답시고 병사를 이끌던 이들이, 하물며 명나라에서 등을 돌린 이성왕들이 오간다고 하면 그들이 보기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불편한 기색을 보일 것이고, 그다음에는 조선에게 산둥 위임을 이유로 어떻게 하라고 청할 것이다.


예전 습성을 잊지 않고 고압적으로 굴면 더욱 좋고 말이다.


어느 쪽이든 일단 조선은 그 뜻을 받아들여서 청나라에 권고할 터였다.


그러한 행위는 그만하여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조선에 대하여 손을 대기 어려운 것처럼 조선도 딱 거기까지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도르곤이며 지르가랑은 앞에서는 알았다고 할지언정 계속하여 분란거리를 이성왕을 통하여 사주할 것이니 결국 명나라의 인내심이 바닥나면 산둥을 중점으로 다시금 전쟁을 일어날 터였다.


그렇게만 되면 명나라와 전쟁 중이라는, 천명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다시 깨우치고 자잘한 국지전이 계속 이어질 터였다.


또한 국지전이 이어지면 당연히 언제고 한번 일어나서 상대를 아주 밀어내고자 하는 생각이 들 터, 그때 한번 제대로 승리 혹은 큰 우세를 가져올 수만 있으면 그때부터는 시간도 청나라의 편이 된다.


이 과정 가운데 조선의 중재라는 게 다소 힘을 잃어 그들의 존재감과 발언권이 청나라 내에서 감소한다면 더욱 좋고 말이다.


헌데 이 계획은 세워지기만 하고 발안도 되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일전에 황명을 빌려서 섭정친왕회가 공표한 인사 때문이었다.


“하, 들으니 일본 출신 버일러와 유구국 사람이 드나들었다지? 조선의 대군에게 아주 제대로 당했어.”


강화도에서 그를 사로잡고 살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자신을 이렇게 크게 한 방 먹일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도르곤은 실소를 흘렸다.


그런 도르곤을 가만히 보던 지르가랑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물었다.


“분명 초안은 실패했다. 헌데 그게 나쁜 일인가?”

“뭐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당황하며 물음도 잠시, 도르곤은 지르가랑의 눈을 바라보고 진심으로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동시에 이번 산둥 감찰로 인해 바뀐 것들을 머리에 새긴 도르곤은 차디찬 눈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군. 우리 일은 틀어졌다. 하지만 네놈은 이득을 본 셈이 되었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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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4 ageha19
    작성일
    24.04.14 21:15
    No. 1

    도르곤의 명나라 경략 구실은 실패했지만, 그 대신 지르가랑은 일본인 수족들을 얻어 세력을 키운 셈이군요. 아울러 이 일을 중재한 조선은 그 공신력을 다시금 키웠고...

    그나저나 기소가 왜 봉림대군한테 경멸당했나 했더니, 그 특유의 보신주의가 지나쳐서 자기네 처지를 잊고 있었던 것 때문이었군요. 쇼시쓰 말대로, 현명하지도 못하고 반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면 현재의 유구에게는 거절이라는 선택 자체가 불가능한데...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천년고목
    작성일
    24.04.14 22:33
    No. 2

    잘 보고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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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585화 도박장에서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2 24.05.20 91 14 12쪽
585 584화 칼을 뽑았다면 +6 24.05.19 82 14 13쪽
584 583화 말의 무게 +1 24.05.18 85 15 12쪽
583 582화 의무는 누구의 것인가 +1 24.05.17 83 12 12쪽
582 581화 본으로 삼을 나라 +4 24.05.16 82 13 12쪽
581 580화 너무나 큰 승리 +3 24.05.15 86 15 12쪽
580 579화 수적질 +2 24.05.14 79 12 13쪽
579 578화 모두가 거래한다 +2 24.05.13 92 12 12쪽
578 577화 감춰진 칼 +2 24.05.12 83 13 12쪽
577 576화 순서가 바뀌면 이야기가 바뀐다 +3 24.05.11 88 14 12쪽
576 575화 필요에 의한 존재 +2 24.05.10 83 9 14쪽
575 574화 아직 돌아갈 수 없는 사람 +2 24.05.09 81 15 13쪽
574 573화 사람은 언제고 떠나야 한다 +2 24.05.08 90 12 13쪽
573 572화 움직이기 위한 조건 +2 24.05.07 97 13 12쪽
572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1 24.05.06 96 12 12쪽
571 570화 화를 부르는 선의 +3 24.05.05 92 13 13쪽
570 569화 사소함에 숨겨진 진실 +1 24.05.04 97 13 13쪽
569 568화 가운데 나라 +4 24.05.03 97 13 15쪽
568 567화 성공은 열기를 지핀다 +3 24.05.02 102 14 13쪽
567 566화 잡을 수 없는 기회 +3 24.04.28 112 14 13쪽
566 565화 갖다 붙이기 +2 24.04.27 108 14 11쪽
565 564화 배움의 완성 +3 24.04.26 111 14 12쪽
564 563화 누구나 가진 것은 +1 24.04.25 110 15 12쪽
563 562화 외지 +3 24.04.24 99 10 12쪽
562 561화 말이 품은 가치 +2 24.04.23 112 12 12쪽
561 560화 달콤한 독 +3 24.04.21 108 10 12쪽
560 559화 한번 엮인 인연은 끊기 어렵다 +1 24.04.20 109 12 12쪽
559 558화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말한다 +4 24.04.19 108 13 11쪽
558 557화 번왕의 조건 +3 24.04.18 127 13 12쪽
557 556화 죽은 말 +2 24.04.17 124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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