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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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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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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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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DUMMY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명나라 병부시랑 진신갑은 나쁜 예감은 잘 맞는다고 하는 속설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런 귀인이 계신 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사과를 겸해 이번에-.”


“흠흠, 저는 본래 개봉 사람이온데-.”


“전에 인삼을 팔러 북경에 드나든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제가 부족하여 대인께 미처 인사를-.”


“대인께 인사만 올리고자 찾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아, 이건 제물포에서 가져온-”


전에는 친왕들이며 이성왕들 그리고 대신들에게서 그에게 선물이 왔다면 이제는 어중이떠중이라고 할 이들이 슬금슬금 간을 보겠다고 하듯 하루에도 몇 번이고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염치가 있나 싶은 녀석도 몇인가 있으니 진신갑으로서는 이중으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허나 정말로 그를 열받고 복장 뒤집어 지게 하는 것은 이 방문객들을 그가 마음대로 대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결국 청나라 고위층에 진신갑이 올라 설 것을 기대하고 선을 대고자 하는데, 그런 이들을 함부로 대하면 이는 일종의 대답으로 비칠 우려가 있었다.


전에 받은 제안에 대한 완곡하면서도 여지없는 거절이라는 대답으로 말이다.


이렇다 보니 공명심이 줄은 거지 그렇다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줄어들진 않았던 진신갑에게 있어서 그건 선택할 수 없는 대응법이었다.


하여 일단은 참으면서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하고자 하나 좋게도 나쁘게도 진신갑은 인기가 있었다.


“이런 젠장, 사람이 너무 많아! 귀한 선물들을 살피기 위해 앞으로 이틀은 사람을 받지 않겠다고 일러라!”


결국 참다참다 폭발한 진신갑은 적당한 핑계 하나를 대고 객을 받지 않기로 정했다.


이걸로 이틀은 생각하며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잠시나마 휴식은 취할 수 있겠다고 여긴 진신갑은 급히 문으로 달려가는 하인의 뒷모습을 보며 후련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전에도 그러했듯, 진신갑은 아직 몰랐다.


그에게 휴식이란 이제 멀고도 먼 이야기가 되었다는 걸 말이다.



***



“저깁니다.”


제물포에서 헤어진 남경 상인이 붙여준 사내가 손가락을 들어서 한 집을 가리키자 상인 황경오라 자칭하는 좌량옥의 부관 황주는 감개무량한 얼굴이 되었다.


‘드디어 왔구나!’


남경에서 시작하여 산둥, 제물포를 거쳐 오래도록 행한 길이다.


심지어 제물포에서는 배를 구하기 여의치 않아 팔자에도 없이, 그리고 더욱 위험하게도 영변부와 의주를 거쳐서 왔다.


덕분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시일 역시 예상보다 오래 걸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제 곧 이 일도 끝이라는 생각이 드니 황주는 자꾸 눈이 촉촉해지는 기분에 몇 번이고 손으로 눈가를 매만졌다.


이윽고 어느 정도 진정한 황주는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러나 그 걸음은 딱 대문 앞까지만이었다.


“죄송합니다. 그간 들어온 선물이 너무 많아서 정리를 위해 당분간은 방문객을 받지 않습니다.”

“뭐?”

“정말 죄송하지만 오늘은 돌아가주시기 바랍니다.”


문전박대라는 말을 몸소 체험하게 된 황주는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모습에 나와서 만날 수 없음을 알렸던 하인은 딱한 얼굴로 황주를 살폈다.


‘쯧쯧, 짐꾼도 없는 걸 보니 정말 멋모르는 사람이 줄을 대려고 하였나보구만. 아니면 다들 하니 안 하면 위험할 거 같아서 찾아온 건가?’


북경에 있을 때 하인은 주인인 진신갑은 귀한 것을 준비하여 나갈 때 종종 정말 싫은 얼굴로 투덜거리던 걸 떠올렸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챙기지 않을 수 없는 사람, 정적이지만 한 배를 타야 하는 사람들을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하인은 눈앞의 객이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동질감이며 측은함이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전라라고 하여도 불쌍하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니 지금까지 찾아온 이들이 하나 같이 사람 여럿을 대동하였던 걸 생각하면 다섯도 되지 않는 사람 숫자를 보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동정하는 것과 별개로 안에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하인은 애써 마음을 굳게 먹고 일렀다.


“아쉽지만 오늘은 아니 됩니다. 괜히 소란 피우다가 경을 치지 마시고 내일모레에나 찾아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아니 나는 그게 아니라-.”


다급히 입을 열어 말하려고 하는 황주를 보며 하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잘랐다.


“급하시다고요? 다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안 됩니다요. 정히 급하면 모레 일찍 오십쇼. 제가 바로 모시겠습니다.”


하인은 이리 말한 후에 고개를 숙이며 문을 닫고자 했다.


“살펴가십-.”

“잠깐만! 나, 나는 밝은 곳에서 왔소이다!”


되갚듯이 말을 자르며 외친 황주는 제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여겼는지 사방을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은 대단찮은 실랑이라고 여겼는지 그저 시선만 한번 주고는 가던 길을 가곤 했었다.


그에 작게 안도한 황주는 빠르게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크흠, 크흠. 나는 밝은 곳에서, 처음이자 세 번째인 땅에서 왔소이다.”

‘이게 무슨 소리야?’


황주는 나름대로 재치를 발휘하여 자신을 소개하였다고 여겼지만 하인이 듣기에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했다.


혹여 정신이 나간 사람인가 싶던 하인은 바로 보낼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뭐, 그 밝은 곳으로 잘 돌아가시구려.”

“아니, 아니!”


하인이 알아듣지 못했음을 안 황주는 당황하며 눈알을 굴렸다.


이 이상 상세하게 말하면 누군가 나중에 생각하여 떠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황주는 그저 다급하게 부탁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발 안에 있는 시랑 어른께 내 말을 좀 전해주시오! 부탁합니다!”

“어허, 아무리 그래도 대인께는······지금 뭐라고 하셨소? 아니, 뭐하고 하셨습니까?”


단호하게 거절하려던 중에 하인은 황주의 말에서 지금까지 찾아온 이들 가운데 한 사람도 입에 담지 않았던 부분이 있던 것을 알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언가 상황이 변하기는 하였으나 황주로서는 무슨 일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간신히 무언가 기회가 왔는데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황주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조심스럽게 방금 한 말을 입에 담았다.


“그, 그러니까 제발 시랑 어르신께 말씀을 전하여 달라, 그렇게 청하였소이다.”

“허어.”


제가 놀랐던 표현이 들어있는 말을 다시금 들은 하인은 황주를 묘한 얼굴로 살피더니 퍼뜩 든 생각에 사방을 살폈다.


여전히 사람들이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하인은 급히 황주의 팔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어?”


당황하였지만 바라던 일이긴 하였던지라 황주는 일단 안으로 몸을 들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이들 역시 안으로 들어오자 하인은 재빨리 문을 닫고는 빗장을 걸었다.


“어디서 오신 분인지 무식한 저로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남쪽에서 오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한데, 어찌 알았소?”


자신이 기껏 짜낸 은유는 알아듣지 못한 게 분명한데 이렇듯 태도를 바꾸어 안으로 들이고 공손하게 대함은 물론이고 온 곳이 어디인지도 안다고 하니 황주로서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이에 하인은 간단하다고 하듯 그가 알아챈 이유를 알려주었다.


“여기서 시랑 대인을 시랑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나 요 며칠 다녀간 사람들은 더욱 그렇고요.”


사정은 알았지만 궁금함이 한 가지 더 들었으니, 방금 들은 ‘요 며칠 다녀간 사람들’이 누군가 하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이렇게 오늘 문전박대당하는 꼴을 당했음이 분명하니 좋게도 나쁘게도 마음에 새겨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인은 그것까지는 말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곧 대인께 전하고 오겠습니다.”

“부, 부탁하겠소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진신갑을 만나는 것이니 황주는 방금 한 생각을 저 멀리 날리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과 거기 담긴 기대에 응하듯 하인은 곧장 걸음을 옮기니 이내에 그는 황주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



하인이 사라지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이제나저제나 하던 황주는 멀리서 하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반색했다.


“안으로 모시라고 하십니다. 이리로 오시지요.”


공손하게 건네는 인사에 황주는 이제 다 끝났다, 제가 할 일이며 겪을 고난도 이걸로 마지막이라고 여기며 안도했다.


허나 하인의 안내를 따라서 진신갑과 겨우 마주한 황주는 그게 아님을 알았다.


“밝은 곳이며 처음이자 세 번째. 명나라와 남경을 뜻하는 말이지.”


그립다는 얼굴로 말한 진신갑은 이내에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그간 변변한 연락도 없던 조정에서 무슨 일로 날 보려고 이리 비밀스럽게 찾아왔나? 설마하니 이 부족한 사람에게 난리라도 피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예? 그런 것을 어찌 부탁하겠습니까.”

“허면 나를 이제는 내리고 다른 이를 세우기 위함이겠군.”


단정 지어 말한 진신갑은 딱딱한 얼굴로 그럴 줄 알았다든 듯이 말을 이었다.


“그래, 전부터 그랬지만 청나라 자칭하는 오랑캐들의 심계는 실로 음흉하면서 날카롭지. 날 그냥 묶어두고 선택지를 내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의심스러운 놈으로 박아두려고 하다니, 실로 영리하군. 이러면 그간 보낸 것도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으니 더욱 그러하고.”

“시랑 대인?”


황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들이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으니, 바로 진신갑이 그를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그러다시피 했지만 마지막에 와서도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황주는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한번, 아마도 딱 한 마디만 제대로 들으실 터.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연유는 모르지만 진신갑이 그를 적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말을 하여도 그저 변명이며 허언으로 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전장에서 상대를 만나서 전투를 벌여도 처음에 하는 말 정도는 제대로 듣기 마련이니 황주가 이후 이야기를 더 이어가고 싶다면 이다음에 내는 말이 아주 중요했다.


‘역시 이게 제일인가.’


여러 말을 떠올렸지만 적어도 진신갑의 흥미 정도는 확실하게 잡아끌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으니 황주는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입을 열었다.


“저는 조정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조정에서 오지 않았다고? 남경에서 왔다고 하였는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오?”


잠시 뜸 들이다가 묻는 말에는 분노며 적대감보다는 의아함과 호기심이 담겨 있었으니 황주는 한고비를 넘겼다는 걸 알고 속으로 크게 안도하며 말을 이었다.


“남경에서 왔고, 명나라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를 보낸 것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황상이 아니시니, 그분은 명나라 총병으로 개봉에서 청나라와 싸워 이기신 좌량옥 대인이십니다.”

“좌량옥이라.”


개봉이라는 말에 이어서 좌량옥이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진신갑은 누가 제게 황주를 보냈는지 알았다.


더불어서 적어도 최악이라고 여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도 아니 그는 한결 표정을 풀고 물었다.


“생각보다 재밌는 객이셨군. 그래, 그 재밌는 객께서는 무슨 제안을 내게 들고 오셨소?”


제안을 들고 왔느냐는 물음에 황주는 이상하게도 분노와 적대감이 사라졌음에도 진신갑에게 압박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말을 아니 할 수는 없으니 황주는 마른침을 삼켜가며 말을 이었다.


“대명을 위해 좌 대인께서 시랑 어르신의 힘을 빌리고자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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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586화 구관이 명관 +3 24.05.21 81 10 14쪽
586 585화 도박장에서 버는 사람은 도박장 주인이다 +2 24.05.20 83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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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 573화 사람은 언제고 떠나야 한다 +2 24.05.08 86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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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1 24.05.06 92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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