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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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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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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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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4,031

작성
24.04.2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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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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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63화 누구나 가진 것은

DUMMY

563화 누구나 가진 것은


“저기 오는군.”


의정부 주부 정연은 멀리서 다가오는 명나라 감찰관 일행을 발견하고는 의관을 다시 한번 살폈다.


‘좋아.’


스스로 합격점을 내린 정연은 의연한 자세로 다가오는 이들을 맞이하고자 자세를 바로 했다.


이윽고 명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정연은 공손하지만 비굴하지 않고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조선에서 온 주부 정연입니다. 산둥 아문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고자 기다렸습니다.”

“명나라 총병 좌량옥이라고 하오. 만나서 반갑소이다.”

“대리국 사람 시마즈 히사요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각각의 언어로 이야기 하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다들 제법 능력 있는 이들이며 역관이 여럿 대동하고 있기에 소통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한쪽은 명나라 사람에 다른 한쪽은 대리국 사람이라. 청나라에서 보낸다고 하는 구성에 얼추 맞추었나 보군.’


청나라에서 오는 일행 구성이 어떠한지 이미 아문이 있는 유방을 떠나기 전에 들은 바가 있던 정연이다.


하여 그는 나름대로 생각하여 판단하였으나 그 판단은 굳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정연은 다른 것을 입에 담았다.


“원로에 고생하셨을 터, 안내하는 일은 일단 환영한 후에 하고자 합니다. 하여 작은 자리를 마련하였으니 두 분께서는 이리로 오시지요.”

“우리에게만, 입니까?”


히사요시는 물음과 동시에 뒤를 살피니 정연은 그가 아랫사람을 잘 챙기는 이라고 여겼고, 아주 틀린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그 내심이 이제부터 강행하여야 하니 그전에라도 좋은 것을 먹고 기운을 북돋아서 잘 따라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분들께도 작게나마 환영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좋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험하니 든든히 먹이길 바라던 참입니다.”

“예?”


갈 길이 험하다는 말에 정연은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이 앞의 길이 그렇게 험하던가?’


이곳부터 아문이 있는 유방까지 길이 쭉 뻗은 대로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험한 길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단순하게 따지자면 편한 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니 정연은 이들이 대체 어디로 갈 생각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대인들께 송구하나 한마디 여쭙고자 합니다.”

“말씀하시오.”


좌량옥이 나서서 대답하니 정연은 그를 향해서 물었다.


“혹 대인들께서는 아문이 있는 방향이 아니라 다른 곳을 둘러보고 싶으신지요?”


이미 이들이 오는 길이 예상과 달리 느릿하고 이리저리 둘러봄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점차 일정에 맞지 않게 되니 저마다 상황을 파악하고 연락을 보낸 덕이었다.


하여 혹시 이번에도 그럴 생각인가 하여 물었는데 정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그 일이라면 이미 충분히 하였소이다. 다만 필요에 의해서 하였다고는 하지만 시일이 적잖이 늦었으니 이제 만회할 생각이오.”

“만회라고 하심은······.”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살피는 정연에게 대답한 것은 좌량옥이 아니라 히사요시였다.


“오늘 하루 잘 먹고 푹 쉬고 난 후에는 남은 길을 강행할 것이니, 그 속도는 보통 행하는 거리의 배로 잡고 있소이다.”

“그, 그렇습니까.”


이제야 이들이 하는 말을 이해한 정연이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정연 본인도 함께 그 강행군에 어울리게 될 터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치겠네.’


이들이 빨리 오기를 바라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영 달갑지 않았던 정연이나 이들을 안내하겠다고 와서는 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한 일이라 피할 길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강행으로 인해 뒤처지는 이가 있을 것이오. 내 아랫것들에게 그런 일이 있으면 일단 이곳으로 돌아와 대기하라고 할 생각이니 조선에서는 부디 이러한 일을 도와주셨으면 하오.”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무, 물론입니다.”


하지만 제게 닥칠 힘든 미래를 피할 구실이 될 부탁까진 되지 못하였기에 정연은 대답하면서 저도 모르게 말을 떨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좌량옥이며 히사요시는 그런 모습에 개의치 않았다.


“어려울 텐데 이쪽 사정을 봐주어서 감사하는 바요.”

“명나라와 대리국은 이 은혜를 잊지 않겠소이다.”


좌량옥과 히사요시가 연이어 전하는 감사에 정연은 강행하는 일을 물릴 수 없게 되었음을 크게 느끼며 생각했다.


‘하아. 이 일을 아문에 서둘러 보내야겠구나.’


당장 오늘부터 고생할 일이 깜깜하니 정연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참, 안 주부가 부럽구만그래.’



***



“첨정 나으리, 막 연락이 왔습니다.”


의정부 주부 임관일이 이르는 말에 산둥 아문 첨정 송시열은 일을 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누가 보낸 연락인가?”

“정 주부가 보낸 연락입니다.”

“흐음.”


임관일이 하는 말을 들은 송시열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허면 명나라 쪽이군.”

“그렇습니다.”


대답과 함께 임관일이 서신을 내미니 송시열은 받아서 그 내용을 살폈다.


빠르게 내용을 살핀 그는 서신을 내려놓으며 나직이 말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제하고 말하면 늦지는 않을 거란 소리구려.”

대단치 않은 듯이 이야기 하나 송시열과 제법 마주한 날이 지난 덕에 임관일은 그가 안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일정 조율에 적잖이 신경을 쓰시는 듯한데 너무 과하게 신경을 기울이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보이나?”


임관일에게 물은 송시열은 대답도 듣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게 보이긴 하겠군그래. 하지만 이건 과한 게 아닐세.”

“하루나 이틀 늦거나 빠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송시열에 걱정을 드러내어 하는 말에 임관일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만한 오차 정도는 가까이에서 온다고 한들 사정에 따라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물며 남경이며 심양이고 가리지 않고 산둥과 거리가 있다.


지도에서 보면 대단치 않게 보일지도 모르나 그렇게 하여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지도에서 한양이 동래와 가깝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오고 가는 일에 며칠이고 오차가 생기는 건 임관일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다.


허나 송시열은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양쪽이 산둥 아문에 도착하는 시간을 동일한 날짜로 맞추려고 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명나라 쪽에는 정연이 맞이하러 간 것과 마찬가지로 청나라 쪽에는 의정부 주부 안복삼이 나가 있었다.


다만 양쪽이 맡은 일은 조금 달랐다.


정연은 명나라가 시일에 맞추어 늦지 않게 오는 것을 돕도록 명령을 받았고 안복삼은 반대로 청나라가 최대한 늦게 오도록 명령을 받았다.


“보통이라면 자네 말이 옳겠지. 하지만 산둥은 명나라 땅이며, 청나라 땅이야.”

“······들으면 들을수록 괴이한 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임관일 본인도 의정부 소속으로 산둥까지 왔으니 참으로 기이하다 소리 들을 처지였다.


허나 이에 비하면 세상 무엇이든 평범하겠다고 여기며 고개를 흔드니 그의 귀에 송시열의 웃음 섞인 대답이 들려왔다.


“하하, 그렇지. 그건 나도 동감일세.”


가벼이 웃으며 대답한 송시열은 웃음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방금 내가 산둥을 명나라 땅이고, 청나라 땅이라고 했네. 그러면 또 뭐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은가?”

“조선 땅은 아니다?”

“그것도 맞기는 하지.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바와는 조금 다르네.”


다르다고 한 송시열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에 고개를 흔들고 말을 살짝 바꾸었다.


“아니, 아니지.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르겠군.”

“비슷하다?”


의아함을 담아서 묻는 말에 송시열은 더 재지 않고 말해주었다.


“산둥은 누구의 땅도 아니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네.”

“방금 두 나라의 소유라고 첨정 나으리가 하신 걸 들었는데 말입니다.”

“모두가 소유한 것은 모두의 것이지만 동시에 누구의 것도 아니지. 자네는 길 가다가 과일을 따서 먹었다고 그 나무에 소유권을 주장하나?”

“욕심 많은 이는 그렇게 하겠지요.”


송시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들은 임관일이나 괜스레 바로 수긍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일어 퉁명스레 대꾸했다.


이에 송시열은 임관일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욕심 많은 이는 그렇겠지. 허면 이건 어떤가? 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비추는 햇빛은 자네며 나도 누리는 혜택이며 우리가 쓰는 것들이네. 헌데 거기에도 주인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던가?”

“······적어도 저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임관일이 시인하는 말에 송시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욕심을 부리는 이가 어딘가에 없지는 않을 걸세. 하지만 어지간한 일이 없고야 인정하는 이는 없을 거고, 솔직히 그런 일이 있다면 말세나 다름이 없겠지.”


말을 하면서 송시열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유학이, 인의학이 갈 길이기도 하지.’

“산둥이 어느 나라 땅도 아님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도착하는 것을 조절하는 것과 어찌 연결됩니까?”


임관일의 물음에 상념에서 깨어난 송시열은 남은 말을 그에게 해주었다.


“지금은 양쪽에서 주장하고 있기에 주인이 없는 셈인데, 양자는 물러섬을 보이지 않고 포기할 생각도 전혀 없네. 헌데 주먹다짐할 방도는 당분간 없으니, 당연히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해야 하지.”

“그렇지요.”

“보통 이런 경우 사람들은 제삼자를 찾아가지. 그게 관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동네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일 수도 있지.”

“과연.”


여기까지 들은 임관일은 송시열이 무엇을 우려하는지 확실하게 알았다.


“때로는 전혀 모르는 행객도 그 대상이 되는 법이지요. 오히려 그런 이를 선호하는 사람도 더러 있으니, 명나라와 청나라에게 있어서 조선이 딱 그러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대가 말한 그대로일세. 물론 다른 나라도 있기는 하나, 조선에 비하기에는 다들 어딘가 조금씩 미진하지. 유구국이며 명나라 세 번국은 나라가 강성함에 멀고 각각 어딘가에 가세한 형국일세. 일본은 그 국력이 제법 성세하다고 하나 마찬가지로 이제는 청나라에 조금 더 가까운 나라가 되었지.”

“양인들은 나라가 멀고 이재를 탐하는 경향이 강하니 판단이 공정하다고 누구도 말하지 않을 거고요.”


새삼스럽지만 작금 천하 사세가 참으로 흥미롭다고 여긴 임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이거 참, 고작 조금 낫게 대우함도 신경 써야 하다니 이처럼 곤란하고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부심이 드는 일이기도 해.”


진지하게 말한 송시열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찾아올 두 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모두가 존중하는 나라. 실로 아름다운 말이 아닌가.”

“허나 그건 달리 말하면 모두가 존중하지 않는다는 식이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돌연한 임관일의 물음에 송시열은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누구나 가진 것은 누구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모두가 존중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은 하늘의 비와 햇빛처럼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간다는 뜻이기도 하니 그도 참으로 좋고 아름답다고 하겠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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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3 ageha19
    작성일
    24.04.25 23:13
    No. 1

    그래도 송시열이 어느정도 수상함을 눈치챈 것 같은데... '하늘의 비와 햇빛과 같은'이라고 하니, 뭔가 도가 쪽 같은 느낌이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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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 574화 아직 돌아갈 수 없는 사람 +2 24.05.09 63 12 13쪽
574 573화 사람은 언제고 떠나야 한다 +2 24.05.08 71 9 13쪽
573 572화 움직이기 위한 조건 +2 24.05.07 82 11 12쪽
572 571화 부르지 않는 호칭 +1 24.05.06 81 10 12쪽
571 570화 화를 부르는 선의 +3 24.05.05 78 11 13쪽
570 569화 사소함에 숨겨진 진실 +1 24.05.04 84 11 13쪽
569 568화 가운데 나라 +4 24.05.03 84 11 15쪽
568 567화 성공은 열기를 지핀다 +3 24.05.02 85 12 13쪽
567 566화 잡을 수 없는 기회 +2 24.04.28 95 12 13쪽
566 565화 갖다 붙이기 +2 24.04.27 93 12 11쪽
565 564화 배움의 완성 +3 24.04.26 89 12 12쪽
» 563화 누구나 가진 것은 +1 24.04.25 91 13 12쪽
563 562화 외지 +3 24.04.24 80 9 12쪽
562 561화 말이 품은 가치 +2 24.04.23 91 10 12쪽
561 560화 달콤한 독 +3 24.04.21 90 9 12쪽
560 559화 한번 엮인 인연은 끊기 어렵다 +1 24.04.20 88 10 12쪽
559 558화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말한다 +4 24.04.19 90 11 11쪽
558 557화 번왕의 조건 +3 24.04.18 97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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