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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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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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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9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11.21 22:15
조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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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8장 로앙의 이름 (3)

DUMMY

“맡겠다고 하심은?”

“로앙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께서도 그렇게 여기셨으니 저희 가운데 셋이 로앙이었던 게 아닐까요.”


아레타의 말에 클레하스는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이미 나간 이들 말고 남은 이들 다수는 본래 저들 중에서도 구별 지어지고 차별을 받던 자들이다.’


수호자로 선택된 이들은 구별된 자들이었고, 그렇지 않은 이 역시 수호자가 되기 전에 겉돌기 시작했음을 익히 알고 있던 클레하스다.


그러니 이해하는 한편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들어보아도 될까요.”

“어떻게라. 간단합니다.”


이쪽을 한껏 불안한 눈으로 살피는 견습 로앙 기사를 보며 아레타는 빙긋 웃었다.


“데리고 와서 선택하게 해야죠. 어떤 로앙으로 남을지, 계속해서 신전 기사로 남을지 말입니다.”



***



“허락하겠습니다. 그들을 일이 끝날 때까지 방치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선택할 여지가 있다는 점은 강고한 자가 말한 대로입니다.”


결정 내리기 힘든 상황에 클레하스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대신관장을 찾았다.


기도 중이던 그는 클레하스의 간략한 설명을 듣고 시원스레 허가를 내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버려진 자들이 되어버린 기구한 이들입니다. 오히려 잘 알려주고 바른길로 이끌어주어야 할 이들입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는 수호자의 공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성도에 다시 한번 저들이 온다고?”


대신관장의 물음에 클레하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적은 피해만으로 이긴 것은 다행이지만 그건 저들이 이쪽보다 확실하게 우위에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기만책을 사용해서 목적을 달성한 덕이 컸다.


만약 그들이 그러지 않았다면, 전력으로 소모를 강요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을 것이다.


그렇게 성벽에서 열심히 싸웠음에도 귀족 거리와 대신전에 저들이 침입하는 걸 용납한 걸 떠올리면 결전이 있을 날까지 수호자들을 쉬이 움직이는 건 좋은 생각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의 걱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조금 늦추자는 거죠.”

“늦춘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자고 당장 마음먹은 일만이 이루어질 뿐입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틀린 것 하나 없는 대신관장의 말에 클레하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안이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는지 얼굴에 어두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클레하스를 보며 대신관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넸다.


“지금이라면 전과 달리 그들이 레이한드로 성채를 떠나려고 하는 순간, 아니 그곳에서 하는 백색 교단의 일이라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 대신관장님.”



***



대신관장의 허락도 있으니 일을 금방 진행되었다.


강철 신전병들 역시 다시 움직이는 일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성도에서 벌어진 일에 끼지 못했다는 생각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이런 일이 생기니 다들 의욕 있게 달려들었다.


“대장님, 식량 보고입니다.”

“이리로.”


강철 신전병 이발트의 말에 호붼은 손을 내밀었다. 이윽고 간략한 보고 내용을 모두 훑어본 호붼은 이발트와 관련된 일을 하나 들었던 걸 기억하며 물었다.


“이발트.”

“예.”

“그, 같은 고향 출신인 신전병이 있다고 들었던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옛 영주 출신이라는 사람 말이야.”

“그렇습니다.”

“혹시 다녀온 후에 만나보았나?”


질문이 점점 이상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발트는 일단 의문을 누르고 대답했다.


“아니요.”

“그러면 이번에 가기 전에 한번 만나고 가는 걸 추천하지.”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있었고, 있을 예정이라고 들었네. 자세한 건 직접 들어보게.”

“알겠습니다.”


사정은 모르지만 호붼은 상관으로서 제법 친절하고 배려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리 말하니 무슨 일인지 잘은 몰라도 한번 들려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발트의 생각에 쐐기를 박듯이 호붼이 말을 덧붙였다.


“그는 지금 대신전 부속 치료실에 있으니 거기로 가봐.”

“......예?”



***



“멀쩡하잖아?”

“병문안 온 놈의 말하는 모습 좀 보소. 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들으면 호통을 칠 거다.”

“아, 죄송합니다.”


치료실에 온 이발트는 너무 생각 없이 말을 내었음을 깨닫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급히 병문안용으로 산 사과를 옆에 내려둔 이발트는 근처에 있는 작은 의자를 끌어다가 앉고서 전 영주이자 현 불꽃 신전병인 그리독의 전신을 살폈다.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보이는데.”

“너 방금 전에 사과하고 바로 그런 말이나 하냐? 안부 인사는 어디에 갔어?”

“아, 죄송합니......어라?”


다시 한번 사과를 입에 담고 고개를 숙이던 이발트는 그리독이 전과 다른 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 부드럽네?’


때때로 다가가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날카롭고 사나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던 그리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스스럼없이 농을 건네고 타박하면서도 그 날카로움이 느껴지지 않아싿.


마치 사람이 달라진 거 같은 모습에 이발트는 문득 오래전에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를 알아서라고 했었지.’


죽을 날을 알게 된 사람은 후회를 남기지 않을 생각으로 변한다. 그 방향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말이다.


지금의 그리독은 예전에 들은 것에 흡사하단 생각이 드니 걱정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무슨 일이 있기는. 싸우고 다쳤다. 그리고 운 좋게 목숨을 구했지.”

“그게 다입니까?”


이발트가 재차 물으니 그리독은 옆에 내려둔 사과를 하나 가져다가 한입 베어 물고는 질문을 돌려주었다.


“제법 달달하니 좋은 사과로군. 어떤 대답을 원해서 그렇게 묻는 거지?”

“......그건 딱히 없습니다. 하지만 혹여 말을 남길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좋겠네요.”

“남길 사람? 하, 그런 건 없다. 너도 알지 않나? 내게 있는 건 저택과 그곳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땅 약간이 다다. 더 큰 권리가 있었지만 잘난 선조가 모두 포기하고 대신전에 넘겼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하나 그 말 안쪽에는 아무래도 좋다는 감정과 후련하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나?’

“......그래도 너에게는 말해두는 게 좋겠지. 혹여 내가 죽고 저택에 돌아갈 수 없게 되면 대신 전해줘.”


대신 전해달라는 말에 이발트는 허리를 세우고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 개자식은 죽었으니 집사는 편히 잠들어달라고 말이야.”


그 개자식.


그의 말에 이발트의 머릿속에서 지금 이곳을 기준으로 점차 과거를 향해 기억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기억은 이곳으로 오게 된 시작, 고향인 마하난 평원과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시작된 경위부터 어떻게 끝났는지 되새긴 이발트는 그리독의 변화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라. 그런 걸 받아도 되는 일인지, 내가 그래도 되는 놈인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저는 축하하고 기뻐할 겁니다. 테펠리움, 그 망할 놈 덕분에 죽거나 고생한 건 집사님만이 아니니까요.”


이발트의 말에 그제야 그를 오래전에 벌였던 일을 위해 고용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군.’


생각하니 아직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동시에 그날이 곧 일 년이 되어감을 떠올린 그리독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래, 기뻐하겠지.”

“예? 물론이죠.”


그리독의 말은 이발트의 말과 어긋난 부분이 있었다. 이발트는 이를 몰랐고 그리독은 알았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당장은 이거면 충분했다.



***



덜컹


“여, 용케도 살아서 돌아왔구나?”


조합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리발과 렉스를 향해 스틸롱이 사람 좋게 농을 던졌다. 그에 리발은 딱딱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물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인 거 같은데. 듣자 하니 무슨 의용병처럼 마수들을 상대로 싸웠다면서.”

“그랬지.”

“무슨 생각이야?”

“이 생활 접을 생각.”

“......뭐?”


스틸롱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니 리발이 얼빠진 얼굴로 제 귀를 매만졌다. 좀처럼 믿기 힘들다는 반응에 스틸롱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딱 좋아. 앞으로 우리는 뒤에서 벗어나되 여전히 남을 거야. 그리고 확실히 말해, 많은 일을 접을 거고.”

“이해하기 힘든데.”

“적당히 물이 흐려지지 않게 남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더는 과한 일을 하지 않는다. 앞잡이라고 불러도 좋아. 이제 지겹거든.”

“......”


스틸롱이 품고 있는 걸 마구 내뱉으니 리발은 할 말을 잃고 무어라 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며 근처에 앉아서 긴 담뱃대를 물고 있던 여성 간부, 레실리아가 길게 연기를 뿜으며 말을 보탰다.


“그 정도는 보장되어야지 이 일에 뛰어들 생각이 드는 법이지. 당장 목숨을 구하는 게 우선이라면 우리와 같은 하잘것없는 인생은 본래 그냥 내뺐다가 슬그머니 돌아오는 게 정상이라고.”

“이야, 그건 그렇죠.”


눈치 없이 렉스가 맞장구를 쳤으나 리발은 그를 타박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제길, 그런 건 언제나 위험하다고. 이런 건 보통 일이 끝나면 그냥 서로 모른 척하는 게 최선인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덕분에 네가 오매불망 바라던 정보도 들어왔으니까.”

“이 녀석이 바라던 정보?”


스틸롱의 말에 어찌 되었든 때려치고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말을 꺼낼 기회를 노리던 자르달이 호기심을 보였다.


이 업계에서 뼈가 굵은 이들은 모두 리발이 어떤 비밀이 있고 어떤 정보를 찾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보는 거의 없고 있어도 뜬소문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함부러 식언하지 않는 스틸롱이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니 절로 호기심이 들었다.


“......정말이냐?”

“물론, 이번 건 대신전 측에서 공유해준 정보라고.”


백색 교단이라는 놈들이 단서를 쥐고 있다고 여겼는데 이번에는 대신전이다.


자신이 그동안 전혀 모르던 곳에 더해서 피하던 곳에서 나온 정보라는 말에 리발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기분을 헤아리지 못한 건지 아니면 헤아릴 생각을 하지 않은 건지 스틸롱은 작은 위로 하나 건네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이반한 기사단, 그들이 모두 너와 비슷하다고 하더군.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지.”


이반한 기사단.


그 말에 리발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로앙 기사단에 정보가 있다?”

“정확히는 로앙 중에서도 내부에 비밀스러운 파벌이 있었다고 하더군. 진정한 로앙과 껍데기 로앙이라고 구분했던 모양이야. 뭐, 껍데기는 멸칭이고 평범하게 내직과 외직으로 구분했던 모양이지만.”


그 구분은 정보에 조금만 밝은 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리발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하.”


여러 감정을 담아서 소리를 낸 리발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실례하지.”

“다음에 보길 빌어야 할까, 아니면 반대를 빌어야 할까?”

“좋을 대로 해.”


떠난 뒤의 일 따위, 그에게 알 바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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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8장 로앙의 이름 (4) 22.11.28 62 3 12쪽
» 8장 로앙의 이름 (3) 22.11.21 61 3 12쪽
95 8장 로앙의 이름 (2) 22.11.14 59 3 11쪽
94 8장 로앙의 이름 (1) 22.11.07 65 3 11쪽
93 7장 성도 격전 (15) 22.10.31 67 3 14쪽
92 7장 성도 격전 (14) 22.10.24 59 3 12쪽
91 7장 성도 격전 (13) 22.10.17 62 3 12쪽
90 7장 성도 격전 (12) 22.10.10 63 3 11쪽
89 7장 성도 격전 (11) 22.10.03 63 3 12쪽
88 7장 성도 격전 (10) 22.09.26 64 3 11쪽
87 7장 성도 격전 (9) 22.09.19 68 3 12쪽
86 7장 성도 격전 (8) 22.09.12 70 3 12쪽
85 7장 성도 격전 (7) 22.09.05 71 3 12쪽
84 7장 성도 격전 (6) 22.08.29 74 3 12쪽
83 7장 성도 격전 (5) 22.08.22 63 3 12쪽
82 7장 성도 격전 (4) 22.08.15 66 3 12쪽
81 7장 성도 격전 (3) 22.08.08 61 3 12쪽
80 7장 성도 격전 (2) 22.08.01 69 3 12쪽
79 7장 성도 격전 (1) 22.07.25 68 2 13쪽
78 6장 두 번째 기회 (10) 22.07.18 67 3 13쪽
77 6장 두 번째 기회 (9) 22.07.11 60 3 13쪽
76 6장 두 번째 기회 (8) 22.07.04 61 3 13쪽
75 6장 두 번째 기회 (7) 22.06.27 60 3 11쪽
74 6장 두 번째 기회 (6) 22.06.20 54 3 11쪽
73 6장 두 번째 기회 (5) 22.06.13 49 3 12쪽
72 6장 두 번째 기회 (4) 22.06.06 48 3 12쪽
71 6장 두 번째 기회 (3) 22.06.03 53 3 11쪽
70 6장 두 번째 기회 (2) 22.06.02 47 3 12쪽
69 6장 두 번째 기회 (1) 22.05.31 6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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