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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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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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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5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10.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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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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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7장 성도 격전 (13)

DUMMY

거래하자는 말에 거짓이 없다는 듯, 테펠리움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연신 눈알을 굴리는 게 당장이라도 틈이 생기면 도망칠 생각인 게 훤히 보였다.


‘우습군.’


이런 녀석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신뢰하고 재산을 들여서 뜻대로 움직여주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후회란 무언가 벌어지고 나서 하는 법이기에 늦었다.


“거래는 없다. 죽어.”


그리독은 잔잔한 목소리로 테펠리움에게 겨눈 창에 일렁이는 불길을 모아 그대로 내리찍었다.


이걸로 끝이다, 이제 집사의 일을 조금이나자 갚았고 생각한 순간 창이 무언가에 막혀셔 떨리는 게 보였다.


가만히 보니 그건 테펠리움의 손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불길이 둘러진 창을 잡고도 고통스러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타닥

화르륵


처음에는 놀랐으나 이내에 손과 달리 불길에 버티지 못한 겉옷이 타며 드러난 광경에 그리독은 일부나마 상황을 이해했다.


“......호오. 지금 보니 예전과 조금 다르군?”

“마, 마음대로 지껄여.”


열기에 버티기 힘든지 테펠리움은 땀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불길에 타들어 가는 손으로 창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 손은 사람의 팔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되 사람의 팔이 아니었다.


단순히 피부색이 다르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살과 피 그리고 뼈로 이루어진 사람의 팔이 아니라고 하듯 그저 검은 덩어리가 팔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불길에 팔이 조금씩 타들어 가며 그 팔이 조금씩 흩어져 간다. 그 모습은 마치 모닥불이나 횃불에 안개가 사그라드는 것과 비슷했다.


“신기한 구경이지만 나는 더 놀아줄 생각이 없어. 그만 포기하고 죽어.”


화르륵


생명을 근원으로 하는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빠르게 속에서 태울 것이 줄어가는 것을 느꼈으나 그리독은 개의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나 그의 성전은 여기가 종착점이었다. 이후는 그저 여력이 남으면 갈 곳에 불과했다.


“뜨, 뜨거워.”

“집사보다 고통스럽길 바라지.”


이제 거의 흩어져서 그 형체만 남고 팔 뒤로 훤히 보이는 걸 보니 이제 그 팔은 더는 그리독의 창을 막기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는 테펠리움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흐흐흐, 하하하하! 이렇게 되는 거라고? 내 끝이?”

“끝은 언제나 갑작스러운 법이지. 네가 내가 가르쳐주었듯 말이다.”


푸시시식


테펠리움의 팔이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듯이 지금까지와 다르게 빠르게 타들어 가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잠시 자신의 것이지만 자신의 것이 아닌 팔을 물끄러미 본 테펠리움은 악을 담아서 다른 손을 품에 넣었다.


“그래, 내 목숨은 주마! 허나 너도 여기까지다!”


챙캉


무엇을 하려는건가 싶어서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어 목을 뚫으려는 순간, 테펠리움이 마하난의 비보를 꺼내서 바닥에 내리쳤다.


“커헉!”

“유리 조각으로 저항할 생각이었나?”


비보가 깨지는 순간 검은 팔이 힘을 다해 허공으로 그 모습을 잃고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더는 막히지 않게 된 그리독의 창은 열기를 머금고 그대로 테펠리움의 목을 꿰뚫었는데, 놀랍게도 테펠리움은 바로 죽지 않았다.


“흐흐, 길동무로, 커헉, 삼......”


풀썩


불길로 목이 타들어 가면서도 말하던 테펠리움이었으나 그마저도 한계에 도달한 듯 말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끝이 났음을 알리듯 그가 비보를 내리친 손이 힘을 잃고 떨어졌다.


이윽고 미동도 하지 않게 된 그를 보며 그리독은 후련함을 느꼈다.


“끝났구나.”


복수의 끝.


그 감각을 느끼며 그리독은 창을 내렸다.


그의 말에 어울리듯 주변에 그를 피해서 다른 이들을 습격하던 마수들이 그 형체를 잃고 스러지는 게 보였다.


정말로 끝났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집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어가는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가 자신을 걱정하며 옆에서 이것저것 하던 일이 떠올랐다.


콰득


“응?”


기억은 점점 역행해서 집사에 대한 추억을 하나둘 되새기던 그리독은 귓가를 건드리는 이명에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주변을 살피니 조금 전에 테펠리움이 깨버린 비보가 보였다. 이미 깨져서 내용물을 담을 수 없게 되었는데도 아직도 그대로 담겨서 넘실거리는 검은 걸 보고 있자니 절로 오싹함이 들었다.


‘완전히 부숴야 한다!’


그저 직감이 고하는 소리에 따라서 창을 치켜든 그는 곧장 비보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내지른 창이 비보에 닿기 직전 거대한 힘이 그를 막았다.


“뭣!?”


창이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잡혀있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려고 하나 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적이여, 내 생명을 주마!”


무언가 위험하다.


그 생각에 그는 남은 생명력 가운데 여분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니 그걸 넘어서 이제 태우면 안 될 거 같은 것까지 한껏 태우며 전신으로 불길을 피워올렸다.


그러자 막혔던 창이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깬다!’


불가능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을 어리석음이라고 비웃듯 창은 비보 바로 앞에 멎어서 더 전진하지 못했다.


휘이잉


바람이 분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비보에 남아 넘실거리던 검은 것이 회오리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리독은 당황했다.


“어? 어?”

눈앞에서 비보가 사라졌다.


아니, 그뿐 아니라 풍경 자체가 일변했다.


그것이 주변이 변한 게 아니라 그가 거대한 회오리에 날려져 버렸기 때문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



“이런, 다들 물러나라!”


이제 끝났다, 다들 그렇게 여기며 긴장을 풀던 가운데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챈 것은 마티언이었다.


그의 말에 신전병이나 신전 기사들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일단 명령에 따라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백색 교단과 싸우며 상식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누누히 듣고 겪은 일이니 다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라고 간단히 넘기지 않았다.


“끝이 아닙니까?”

“끝이라? 다른 의미로는 그럴 수도 있겠군.”


다가와 묻는 케텔 기사단 단장 아톨리우스의 물음에 마티언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무언가 있는가 싶어 아톨리우스도 시선을 주었으나 보이는 건 없었다.


이는 마티언의 고함을 듣고 상황을 논하기 위해 찾아온 칼롱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보던 두 사람은 도저히 영문을 알 길이 없어 한번 말없이 서로를 보고 대답을 구하듯 마티언을 바라보았다.


“온다! 다들 더 물러나게!”


다행히 대답은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더 대답을 바랄 필요도 없었다.


마티언이 느낀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그들 역시 볼 수 있었으니까.



***



“엎드려!”

“으악!”


강렬한 바람에 몸이 절로 기우뚱거리며 앞으로 끌려 나간다. 발을 조금 지면에서 떼는 순간 그대로 부유하는 감각에 기겁한 프라놀의 등을 누군가 세게 밀쳤다.


“아야.”

“괜찮냐?”

“고마운데 안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에 프라놀은 그렇게 말하며 엎드린 상태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가 한 말에 피식 웃는 가르섹이 보였다.


“그런 헛소리할 정신이 있으면 문제없겠네.”

“대체 뭐야?”

“우리야 모르지. 저분은 아시는 거 같다만.”


엎드려 땅에 바짝 붙은 상태로 용케 마티언이 있는 곳을 가리키니 프라놀은 그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불의 수호자의 경고, 정확하네.”

“정확함에 더해서 해결법도 있으면 좋겠는데.”



***



“방법은 있다.”

“이 현상을 아십니까?”

“비슷한 현상을 알고 있지. 저번 성전에서 있었던 일 가운데 하나와 유사해.”


마티언은 그렇게 말하며 철봉을 고쳐 쥐고 허리띠를 풀어 철봉이 손에서 미끌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매었다.


“마티언 경?”

“성전 마지막, 라렉시안이 이걸 해결했다. 그리고 성전은 끝났어. 우리의 승리로 말이다.”

“마지막? 그러면 이걸 막으면 저들과의 싸움이 끝납니까?”


마티언의 말에 어느새 다가온 회개의 수호자 아톨란은 아리송한 얼굴로 물었다.


아직 경험이 적은 후배의 말에 마티언은 살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다. 전과 비슷하지 완전히 같은 건 아닌 듯해서 말이야. 또한 전과 위험함을 느끼는 건 같으나 불길함은 없구나.”

“그, 죄송하지만 그러면 일단 물러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백색 교단 사람이라고 저 회오리 속에서 살아남기는 힘들 거 같습니다만.”

“그것도 방법의 하나겠지. 하지만 방금 말했듯, 내가 아는 것과 비슷하다면 당장 막는 게 좋다.”

“.....저것이 마하난 평원에서 라렉시안 경이 막았다는 그 의식입니까?”


마티언과 아톨란이 나누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던 칼롱이 끼어들어서 물었다. 그 물음에 마티언은 살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허, 그런 오래된 이야기를 알고 있나?”

“기사단 단장이라면 누구나 저번 일에 대한 기록을 살피고 숙지할 것을 명 받았습니다. 아톨리우스, 너도 알고 있겠지?”

“아니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


칼롱의 말에 아톨리우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그에 이 가운데 가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아톨란에게 마티언에 말을 건넸다.


“마하난 평원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 거기서 저런 현상이 있었다. 저들이 섬기는 존재가 부활하기 위한 의식의 전조이자 마지막 과정이었지.”


마티언의 말에 아톨란은 안색이 흐려지며 회오리를 보았다. 조금 전보다 기세를 더하고 주변에 있는 것들을 마구 빨아들이려고 하는 모습은 확실히 안에서 어떤 기괴한 것이 나와도 이상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저걸 끝낼 방법은 하나, 회오리로 진입해서 중앙에 있을 비보를 부순다.”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언제나 방법은 간단하지.”

“하지만 실제로 하는 건 간단하지 않아. 그리고 그 대가는 결코 소소하지 않았지.”


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말하니 그의 생각을 안다는 듯이 두 기사단 단장이 번갈아 말을 꺼냈다.


그들이 말한 것들 가운데 이해하나 이해를 거부하는 부분이 있음을 자각한 아톨란은 혹시나 하는 얼굴로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더는 말할 생각이 없는 듯 입을 다물고 있는 그들, 그리고 그에 멈추지 않고 이제 할 일을 하러 가겠다는 듯이 걷기 시작한 마티언을 보며 아톨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번에 막은 사람은, 라렉시안 경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라렉시안. 그 친구라면 마하난 평원에서 잘 쉬고 있지.”


마하난 평원에서 쉬고 있다. 언뜻 듣기에는 별일이 없이 잘 지낸다고 하는 거 같으나 아무리 아톨란이라도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순교하셨군요.”

“멋진 친구였지. 가장 처음에 깨어나 마지막까지 싸우고 우리 모두를 지켰어. 이제 그 친구에게 받은 걸 내가 돌려줄 차례야.”


가장 처음에 깨어났다.


그 말에 아톨란은 라렉시안이 전대 강고한 자, 강철의 수호자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이 역시 저 회오리를 돌파하다 신의 부름을 받았다는 건 마티언은 거의 확실하게 죽을 거라는 말로 들렸다.


‘멈추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아.’


잘못을 돌이킬 기회를 찾았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았는데 한층 더 짐을 지고 싶지 않았다.


아톨란은 이를 악물며 각오를 다지고 입을 열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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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8장 로앙의 이름 (2) 22.11.14 59 3 11쪽
94 8장 로앙의 이름 (1) 22.11.07 65 3 11쪽
93 7장 성도 격전 (15) 22.10.31 67 3 14쪽
92 7장 성도 격전 (14) 22.10.24 59 3 12쪽
» 7장 성도 격전 (13) 22.10.17 62 3 12쪽
90 7장 성도 격전 (12) 22.10.10 63 3 11쪽
89 7장 성도 격전 (11) 22.10.03 63 3 12쪽
88 7장 성도 격전 (10) 22.09.26 63 3 11쪽
87 7장 성도 격전 (9) 22.09.19 67 3 12쪽
86 7장 성도 격전 (8) 22.09.12 70 3 12쪽
85 7장 성도 격전 (7) 22.09.05 71 3 12쪽
84 7장 성도 격전 (6) 22.08.29 73 3 12쪽
83 7장 성도 격전 (5) 22.08.22 63 3 12쪽
82 7장 성도 격전 (4) 22.08.15 66 3 12쪽
81 7장 성도 격전 (3) 22.08.08 61 3 12쪽
80 7장 성도 격전 (2) 22.08.01 69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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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6장 두 번째 기회 (4) 22.06.06 4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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