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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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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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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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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9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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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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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장 성도 격전 (10)

DUMMY

“돌아오셨습니까.”


그림자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퀜달렌을 보고 팔레삭은 그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본래 계획, ‘눈’을 탈취하고 나면 그대로 남은 마수들과 마수 기사 전부를 시간 끌기 및 소모 강요로 쓰기로 했던 것과 달리 최대한 전력을 온존한 채 물러나라고 했으니 궁금한 점이 하나나 둘은 있을 법도 하건만 그는 그런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퀜달렌이 말해줄 것이라 믿었기에, 그리고 말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알 필요가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팔레삭에 필요한 것은 오직 그를 믿고 시키는 대로 따르며 위대한 야성이 강림하는 일이 한 점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 것이었다.


“언제나 한 걸음이 부족하구나.”

“허면?”

“여기가 아니다. 물러난다.”

“예, 퀜달렌님.”


의심 한 조각 품지 않고 그대로 대답한 팔레삭은 고개를 들다 말고 동행이 있음을 깨닫고 다시 물었다.


“저들은 어떻게 대우하면 되겠습니까?”

“동맹이다. 한시적이지만 말이지. 갈 곳은 저들이 인도한다.”

“알겠습니다.”


퀜달렌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휘적휘적 걸어가버렸다.


동시에 그가 떠나며 남은 마수 기사의 통제권을 느낀 팔레삭은 바로 몸을 일으키고 ‘한시적 동맹’이라는 자들을 보았다.


“행선지는?”

“......말이 짧군.”

“존대를 원한다면 그리 하나, 존중은 없을 것이다.”

“흥, 겉치레라도 필요한 예의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지. 그러면 어디로 향하면 되겠소?”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했으나 그 말 역시 백색 교단의 임시 동맹, ‘진정한 로앙’의 수장 알톤에게는 여전히 한참 부족했다.


그러나 이런 걸로 하나하나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이들의 비원 이상으로 알톤은 그들의 비원이 더욱 급했다.


“로앙의 성채, 레이한드로에 간다.”

“레이한드로.”


명칭을 입으로 한번 되뇌이며 확실히 인식한 팔레삭은 곧 손을 휘둘러서 거대한 뱀 마수 몇을 불렀다.


“타시죠. 편안한 여행길이 될 겁니다.”

“그러지.”


몇몇 로앙 기사들은 경계했으나 알톤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뱀에 올랐다. 그에 따라 다른 이들 역시 뱀 마수에 저마다 나눠서 올랐고, 그들이 모두 탄 것을 확인한 팔레삭은 진형 선두에 그들을 보냈다.


이윽고 그들이 맨 앞에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테펠리움!”

“제길, 이번에는 또 뭐야?”


팔레삭의 부름에 근처에서 상태를 살피고 있던 테펠리움이 투덜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생소한 이들이 갑자기 나타나니 경계심이 들어 행했던 일이나, 팔레삭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


“마수 무리를 떼어주마.”

“......빌어먹을. 내 차례인가. 마글리언처럼 말이지.”

“그렇다.”


테펠리움의 반응에 팔레삭은 더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고 여겼을 뿐, 그가 무엇을 생각하거나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필요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약해둘 일이 있기는 했다.


“살아남으면 레이한드로 성채로 와라. 넌 퀜달렌님께서 중히 쓰신다.”

“놀구 있네.”

“불경하다.”

“알 게 뭐야. 여기서 죽일 테냐?”


테펠리움의 말에 팔레삭은 가만히 그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에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그러기에는 아깝지.”


어디까지나 자신을 도구이자 쓸만한 패로 보는 말에 테펠리움은 인상을 팍 일그려트렸으나 그 이상을 하진 못했다.


“난 살아남을 거다.”

“그러면 좋겠군.”


테펠리움의 쓸모는 아직 다하지 않았다 여기고 있었기에 팔레삭은 진심으로 그리 말하며 몸을 돌렸다.


이윽고 팔레삭의 인도에 따라 마수 무리가 움직이며 전체에 비하면 2할 정도에 불과한 마수 무리와 테펠리움만 남겨지게 되었다.


“빌어먹을 놈 같으니.”


멀어지는 팔레삭을 보며 테펠리움은 된소리를 내고 몸을 움직였다.


살고 싶으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



“개문!”

“선두는 케텔이 선다!”


수도에 있는 성벽 안으로 드나들 수 있게 하는 성문.


그 거대한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완전 무장을 하고 말에 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신전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령한 것처럼 선두는 창과 기마를 주특기로 삼고 그 주특기로 인해 근방 평야 정찰과 경계를 맡은 케텔 기사단이었다.


그 뒤를 따르는 건 펠사 기사단이었으며, 그 뒤는 다른 기사단에서 보내어 급조된 임시 기사단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 것은 마티언 로앙을 위시한 아비톨람 기사들 그리고 아톨란 프레기우스가 이끄는 회개자 군단이었다.


“으.”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습니다.”


걱정스럽게 묻는 주블랑의 물음에 아톨란은 엉겁결에 대답하긴 했으나 내심은 전혀 달랐다.


‘안 괜찮은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습니까.’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삼킨 아톨란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알기는 알았다.


들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건 별개였고, 그는 도무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회개자 군단이라. 신전병도 아니고 신관대도 아니고, 참으로 이질적인 부대로군요.”

“그런 만큼 너 같이 걱정이 많은 녀석들에게는 아주 알맞다 생각하지 않느냐?”

“크흠, 저희 걱정은 타당했습니다.”


어느새 다가와서 놀리듯 말을 던지는 마티언의 말에 주블랑은 겸연쩍은 얼굴로 항변했다.


“괜한 걱정이었지. 아레타 녀석을 따라가서 싶어서 하루하루 불안한 게 눈에 보일 지경이더구나.”

“그,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제 보니 너희는 그 녀석에게 함께할 게 아니었지. 실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용서란 본질적으로 가장 고귀한 행동이라 할 수 있으니까.”


감회가 어린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먼 곳을 본 마티언은 다시 아톨란에게 시선을 돌려서 말을 건넸다.


“회개의 수호자, 아톨란이라고 했었던가?”

“예, 예.”


마티언의 부름에 아톨란은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마티언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신께서 그대의 마음을 살피고 부르셨소. 할 일은 의문을 품는 게 아니라, 따르는 일이오.”

“허나 저는......”

“좋은 일이지. 맹목적인 확신이 아니라는 거. 하지만 우리에게는 올바르고 강한 믿음이 필요해.”


그 둘이 무엇이 다른가, 겉으로는 같지 않은가 의문이 들었으나 아톨란은 이를 입에 담진 않았다.


그러나 마티언은 이미 그걸 알았던 모양인지, 빙그레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신께서는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지. 매사에 간섭지는 않으나, 필요한 건 부어주시고. 우리가 세상을 열심히 살고 오기를 바라시오. 자유한 가운데 드리는 믿음이 실로 중하니까. 그러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신을 등지지 않고 살아남아 최선을 다하시오. 그것이 옳은 일이니.”


부우우-


“출발할 때로군.”


진형을 갖춤이 끝나고 이제 달려갈 시간임을 알리는 나팔 소리에 마티언은 즐거운 얼굴로 철봉을 고쳐잡았다.


“아주 좋아. 다시금 나갈 수 있다니, 더할 나위가 없고말고.”


바라던 것과는 조금 다르나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졌다. 대신전에 남을 자, 시간 수호자가 있고 함께 전장에 나갈 수호자인 회개의 수호자도 있다.


실로 마티언으로서는 즐겁고 달가운 일이었다.


“자, 다들 가자고! 이랴!”


움직이기 시작한 행렬을 따라 마티언은 말고삐를 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



“신전 기사들이 출진했습니다.”

“남은 로앙 기사들은 찾았습니까?”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달려온 이들을 제외하면 로앙은 누구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클레하스의 보고에 대신관장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긴 했습니다. 허나 죽음 직전에 모든 걸 내려놓은 그의 아집에 휘둘리는 자가 나오다니, 참으로 세상일이라는 건 알 수 없는 일이군요.”

“죽기 직전에 모든 걸 내려놓았다? 제가 아는 것과는 다른 거 같습니다. 로앙의 말년 행적은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애송아, 사람은 일관적이지 않아. 사람은 잘하다가 실수하고, 실수하다가 잘하는 법이다.”


그가 아는 것과 다른 말에 클레하스는 이해하기 어려운 듯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런 그에게 그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듯 타박하며 다가온 건 바로 프레이뮬이었다.


“프레이뮬 신관님, 벌써 움직이셔도 괜찮습니까?”

“죽을 목숨을 구했는데 어떤 상태라도 괜찮지.”


어떻게 받아들이기도, 대꾸하기도 곤란한 말에 클레하스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그에게 프레이뮬은 찌뿌둥하다는 듯 몸을 이리저리 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으그극, 이거 힘드네. 로앙, 그러니까 초대 로랑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한드로 발렌시아 로앙은 분명히 신실했던 자다. 그리고 늙어가며 죽음을 두려워하기도 했지. 이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야.”

“끝이 아니다?”

“사람은 마지막에 정신이 돌아온다고 하지. 레이한드로 역시 그러했다. 마지막,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


프레이뮬은 그리 말하며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서 멀리, 로앙 기사단 본부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죽음은 아쉬운 일이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아쉬운 일이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을 불태워서 로앙 기사단의 이름을 온전히 하고 신의 부름을 받았지. 마지막 가는 길은 실로 평온했다.”

“그럼 알톤이 말한 것들은, 저들이 주장하는 진정한 로앙이라는 건 대체 뭡니까?”

“죽음에서 회피하는 방법, 영원히 도망치는 방법입니다. 동시에 그건 신의 부름을 평생토록, 영원히 거절하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클레하스의 물음에 대답해진 대신관장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얼굴로 눈을 감았다.


“아직 말년에 보인 광기를 따라가는 이들이 있다는 건 알았습니다. 그래도 알톤과 같은 이들이 그런 걸 따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신실하게 보였으니 말입니다.”


겉보기로는 알 수 없고, 말로는 그 진위를 구별할 수 없다.


경전에 나오는 오래된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경전에 나오는 말을 그저 아는 게 아니라 체감하고 실감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도 진정으로 따르지 않고 섬기지 않은 신전 기사들이 많았다니 말입니다.”


대신관장은 그리 말하며 홀로 몇 마디 작게 읊조리며 기도하더니 눈을 뜨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미 출진하는 이들을 이끌 단장들과 수호자들에게는 그들이 돌아선 이들임을 알렸습니다. 허나 로앙의 이름을 가진 수호가자 셋이나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부디, 이 점을 확실하게 하여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저들이 구분하던 것은 이제 의미가 없고, 대신전과 함께 하는 이들이 바른 로앙임을 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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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8장 로앙의 이름 (5) 22.12.05 64 3 12쪽
97 8장 로앙의 이름 (4) 22.11.28 62 3 12쪽
96 8장 로앙의 이름 (3) 22.11.21 60 3 12쪽
95 8장 로앙의 이름 (2) 22.11.14 59 3 11쪽
94 8장 로앙의 이름 (1) 22.11.07 65 3 11쪽
93 7장 성도 격전 (15) 22.10.31 67 3 14쪽
92 7장 성도 격전 (14) 22.10.24 59 3 12쪽
91 7장 성도 격전 (13) 22.10.17 62 3 12쪽
90 7장 성도 격전 (12) 22.10.10 63 3 11쪽
89 7장 성도 격전 (11) 22.10.03 63 3 12쪽
» 7장 성도 격전 (10) 22.09.26 64 3 11쪽
87 7장 성도 격전 (9) 22.09.19 67 3 12쪽
86 7장 성도 격전 (8) 22.09.12 70 3 12쪽
85 7장 성도 격전 (7) 22.09.05 71 3 12쪽
84 7장 성도 격전 (6) 22.08.29 73 3 12쪽
83 7장 성도 격전 (5) 22.08.22 63 3 12쪽
82 7장 성도 격전 (4) 22.08.15 66 3 12쪽
81 7장 성도 격전 (3) 22.08.08 61 3 12쪽
80 7장 성도 격전 (2) 22.08.01 69 3 12쪽
79 7장 성도 격전 (1) 22.07.25 68 2 13쪽
78 6장 두 번째 기회 (10) 22.07.18 67 3 13쪽
77 6장 두 번째 기회 (9) 22.07.11 60 3 13쪽
76 6장 두 번째 기회 (8) 22.07.04 61 3 13쪽
75 6장 두 번째 기회 (7) 22.06.27 60 3 11쪽
74 6장 두 번째 기회 (6) 22.06.20 54 3 11쪽
73 6장 두 번째 기회 (5) 22.06.13 49 3 12쪽
72 6장 두 번째 기회 (4) 22.06.06 48 3 12쪽
71 6장 두 번째 기회 (3) 22.06.03 53 3 11쪽
70 6장 두 번째 기회 (2) 22.06.02 47 3 12쪽
69 6장 두 번째 기회 (1) 22.05.31 6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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