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헌킬 님의 서재입니다.

전설급 마녀 아들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헌킬
작품등록일 :
2024.02.05 02:03
최근연재일 :
2024.06.24 22:2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4,708
추천수 :
198
글자수 :
511,350

작성
24.05.30 22:20
조회
9
추천
1
글자
10쪽

물과 기름

DUMMY

화르륵―!


선실 바닥에 작은 불꽃이 솟아올랐다.

불꽃은 나무 바닥에 선을 그리며 번져나갔다.

곡선으로 휘어지듯 이어지며 원형의 불길이 만들어지자, 불꽃은 춤추듯 원의 내부 복잡한 술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선실 바닥에 문신을 새기는 것과 같았다.


쿵!


그레이스는 가볍게 발을 굴러 불꽃을 소멸시켰다.

그러자 선실 전체를 내접하는 원 모양의 거대한 마법진이 드러났다.


“이것이 에페 트라이앵글이다.”


나는 마법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선실 바닥을 가득 채우는 원안에 복잡한 술식이 빼곡히 적혀 있다.

마치 마더 보드에 박혀있는 각종 트랜지스터와 같다.

수천개의 술식 모두 저마다의 역할을 지녔으니.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나는 마법진 양쪽 첨단에 그려진 두 개의 원을 바라보았다.

모든 술식은 그 두 개의 원에 집중되어 설계되었다.

저 원은 CPU나 RAM처럼 술식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분이자, 술자들이 위치하는 곳.


’미라클 듀오’가 두 명의 마법사가 펼치는 융합 마법진이라면, ‘에페 트라이앵글’은 세 명의 마법사가 펼치는 융합 마법진이다.


“이게 에페 트라이앵글···”


기억이 난다.

마법진의 전당에서 보았던 다섯 개의 문.

그중 두 번째 문에 그려진 마법진.


“파이론. 에페 트라이앵글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넌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것이나 다름없다.”

”재밌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지 않는 한 익힐 수 없다는 뜻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전 단계인 미라클 듀오를 익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술식을 외우는 데만 자그마치 한 달이 걸렸고, 푸른 마력 없이는 유지조차 하지 못했다.

그레이스와 감응하는 것도 여러 시행착오가 존재했으니.


“해볼게. 아니, 하겠어.”


어머니의 힘을 가지고서도 어머니의 마법을 못 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걸로 어머니와 좀 더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나는 무엇이 되었든 끝까지 도전할 것이다.


“파이론. 넌 미라클 듀오를 익혔지. 그렇다면 에페 트라이앵글도 익힐 수 있다. 내가 곁에서 도와주겠다.”

”고마워. 그레이스.”


그래.

지금 나는 그때와 달리 혼자가 아니다.

내 곁에는 친구가 있으니까.


---


---


술식을 외우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1위계 라이트 마법으로 선실을 비춰 밤새 암기에 집중했지만.

뇌 용량의 한계는 명확하다.

어느 순간 집중하지 않고 술식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오늘은 이쯤 할까.”


애초에 하룻밤 만에 외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술식의 양을 굳이 따지면 미라클 듀오의 1.5배.

그나마 다행인 건, 에페 트라이앵글이 미라클 듀오의 확장판이라는 점이었다.

기초적인 술식은 전부 미라클 듀오의 계보를 따르고 있었다.

따라서 새롭게 익혀야 할 술식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잠깐 바람이나 쐴 요량으로 선실 문을 열자.

밤하늘에 떠오른 환한 보름달 아래 선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켈베로스가 이스트 대륙에 당도하기까지 남은 시일은 보름 남짓.

한시도 지체할 수 없으니, 선원들은 야간 조와 주간 조로 나뉘어 밤낮을 쉬지 않고 항해를 지속하고 있다.


선장인 에스파다는 아마 잠들어 있을 것이다.

결정권자이니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주간 조에 속해 있다.

그는 원래 선실에서 숙식해야 마땅했지만, 선실에 마법진이 그려지고 나서부터는 나를 배려해 선창으로 내려갔다.


나는 뱃머리로 향했다.

머리를 식히기에는 그만한 장소가 없다.

그곳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은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아쿠아?”


뱃머리 난간에 아쿠아가 홀로 걸터앉아 있었다.

그녀가 배 위에 혼자 있는 것은 드물다.

혼자 가만히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곁에는 항상 아티가 있었으니까.

아티가 잠들 때면 모습을 감추는 데, 내 생각엔 바닷속에서 뛰놀고 있었을 것이다.

물의 마녀인 그녀에게 바다는 생활 공간일 뿐만 아니라 놀이터와 다름없는 곳이니.


어찌 되었든 아쿠아가 홀로 난간 위에 앉아 가만히 있는 모습은 꽤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녀는 가까이 다가온 날 알아보고 말했다.


“파이로온.”


약간은 풀이 죽어있는 목소리.

거기서 대충 짐작이 되었다.

그녀가 기운이 없는 이유는 엑자일 때문이 분명하다.

아쿠아는 엑자일에게 폭언을 듣고 나서부터 표정이 좋지 못했으니까.


“옆에 앉아도 될까?”

”으응.”


미적지근한 반응.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서 대충 얼버무린 느낌이다.


나는 아쿠아를 따라 난간 위에 걸터앉았다.

두 다리 사이로 범선의 선수가 파도를 가르는 모습이 보인다.

약간은 스릴감을 느끼면서도, 다시 아쿠아에게 집중했다.


그녀는 내가 옆에 앉건 말건 뚫어져라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쯤 감긴 눈에서 묘한 슬픔이 느껴졌다.


“아쿠아. 엑자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지 않을래? 괜찮다면.”


아쿠아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


---


엑자일과 처음 만난 날은 60번째 되는 제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선물 대신 한 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를 산책하고 싶다고요.

언제나 블루홀 밖으로 나가는 걸 반대하셨던 엄마는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이 승낙하셨어요.

저는 처음으로 블루홀 밖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와아··· 상상보다 훨씬 넓어어.”


저는 무엇이든지 직접 보고 만지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아요.

그래서 블루홀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비해서 얼마나 작은 곳인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답니다.

이곳은 처음 보는 생물들도 많았어요.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곳이 저는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아가씨. 밑으로 내려가시면 안 됩니다.”

”캬핫! 슬슬 돌아갈 시간이야! 아가씨! 늦으면 오션님께 혼난다고!”


웨델과 샥스핀이 사명감이 투철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말 저기까지만 확인하면 안 되는 걸까요?

엄마에게 조금만 더 구경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면 들어주실 겁니다.

하지만 엄마가 없으니 제 요청이 들어질 일은 없었습니다.


”이런. 아가씨가 사라지셨군요.”

”켁! 하여간 잽싼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저는 그들 몰래 심해로 내려갔습니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심해는 어두웠지만, 그만큼 신기한 생물들도 많았거든요.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유혹하듯 오색 빛을 발하는 조그마한 생물들을 지켜보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더 아래로.

더 깊이.


저는 계속해서 내려갔고, 마침내 바닥에 닿았습니다.

다채로운 생물들로 시끌시끌한 해수면과 달리 이곳은 무척이나 고요했습니다.

산호도 물고기도 정말 거대하고 느려서 완전히 다른 세상에 빠진 것만 같았습니다.


“누구야아?”


저는 그 어둡고 고요한 곳에서 한 마녀를 발견했습니다.

그 마녀는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였습니다.

녹빛의 머리칼과 눈동자는 미역만큼이나 짙고 탁한 빛을 발했습니다.

아이는 저를 보고도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이름이 뭐야아?”


저는 아이에게 관심을 끌어보려 노력했지만 결국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눌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두고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이 아이가 어떻게 이곳에 혼자 남겨진 건지, 누구를 기다리는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이 수수께끼의 아이가 말을 할때까지 기다렸지만···

결국 듣지 못했습니다.

웨델과 샥스핀이 절 찾아내고야 말았거든요.

그 둘은 정말 유능한 것 같습니다.

이 어둡고 깊은 바다에서 정확히 제가 있는 곳을 알아냈으니까요.


“저 아이도 데려가요오.”


저는 아이를 데려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엄마는 곤란해하시겠지만, 제가 하는 부탁이라면 못 이기는 척 들어주시겠지요.

아이를 데리고 블루홀에 돌아오니.

역시 엄마는 곤란해하셨지만 제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모든 마녀에게는 호칭을 비롯한 이름과 성이 존재합니다.

호칭은 마녀의 능력을 상징하고, 성은 어머니에게서 이어지며, 이름은 아버지를 통해 정해집니다.

이 아이 역시 이름과 호칭이 있을 겁니다.

아이가 스스로 밝히거나 혹시 잊어버렸다면, 스스로 기억해 내지 않는 한 아무도 아이의 호칭과 이름을 함부로 지어 부를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블루홀에 와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녀가 벙어리일리는 없었기에 뭔가 사정이 있는 게 틀림없을 겁니다.

시간은 많으니 아이가 편해질 때 스스로 밝혀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도 아이를 무어라 불러야 했기에.

모두들 머리색을 따 녹빛의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긴 광장이고오. 저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호 놀이터야아.”


저는 녹빛의 아이를 데리고 블루홀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아이는 저항 없이 저를 따랐고, 덕분에 저는 블루홀을 소개시켜 줄 수 있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저희는 매일 놀러 나갔습니다.

녹빛의 아이는 처음엔 그저 관망만 했지만, 언제부턴가 제 행동을 따라 하거나 같이 놀이를 즐겼거든요.


“우럭이 자기는 튼튼한 암초에서 사는 게 제일 좋대에. 지금처럼 먹을 것 걱정 없이 사는 게 꿈 이래에.”


저는 물고기와 대화할 수 있습니다.

저의 아빠가 어인이시거든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고 엄마에게 자주 들었습니다.

대양을 누비는 모험을 즐기셨던 아빠는 엄마와 만나 사랑을 나눴고 제가 태어났죠.


“내 꿈은 바다만큼이나 아름다운 세계를 눈으로 보고 만지는 거야아.”


아빠 생각을 해서일까요.

저도 모르게 제 꿈을 녹빛의 아이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녹빛의 아이도 꿈이 있을까요?

저는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녹빛의 아이는 블루홀에 들어온 지 수년이 지나도록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내 꿈은 날 버린 부모 찾아서 복수하는 거야.”


녹빛의 아이의 첫 마디였습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설급 마녀 아들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7 대면 NEW 16시간 전 5 1 11쪽
96 대면 24.06.22 9 1 15쪽
95 대면 24.06.21 9 1 11쪽
94 초월 24.06.20 11 1 12쪽
93 초월 24.06.18 12 1 12쪽
92 레비아탄 24.06.17 10 1 12쪽
91 레비아탄 24.06.15 11 1 12쪽
90 타락의 우물 24.06.14 11 1 11쪽
89 안식의 폭포 24.06.13 10 1 11쪽
88 에테르 24.06.11 11 1 10쪽
87 시행착오 24.06.10 11 1 12쪽
86 원인 24.06.08 11 1 13쪽
85 선상 전투 24.06.07 11 1 12쪽
84 외양 24.06.06 10 1 11쪽
83 고민 24.06.04 11 1 12쪽
82 바다 송곳니 24.06.03 10 1 11쪽
81 크라운 피쉬 타운 24.06.01 11 1 13쪽
80 물과 기름 24.05.31 10 1 13쪽
» 물과 기름 24.05.30 10 1 10쪽
78 다음 단계 24.05.28 10 1 11쪽
77 악연 24.05.27 10 1 10쪽
76 악연 24.05.25 11 1 16쪽
75 대양의 마녀 24.05.24 10 1 11쪽
74 대양의 마녀 24.05.23 12 1 9쪽
73 엑자일 사이러스 24.05.21 11 1 9쪽
72 엑자일 사이러스 24.05.20 16 1 9쪽
71 엑자일 사이러스 24.05.13 16 1 10쪽
70 블루홀 24.05.11 17 1 9쪽
69 블루홀 24.05.10 14 1 6쪽
68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24.05.09 19 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