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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킬 님의 서재입니다.

전설급 마녀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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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킬
작품등록일 :
2024.02.05 02:03
최근연재일 :
2024.06.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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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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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DUMMY

뽀그르르.


거품이 일어나는 소리.

그레이스는 눈을 떴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움직일 때마다 서늘한 액체가 전신의 피부에 느껴진다.

이곳은 물 속이었다.


차갑고 어두운 물속.

둘러보아도 빛 한 점 보이지 않는다.

그레이스는 차분히 팔을 뻗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는, 단단하고 미끄러운 벽이 만져진다.

얼음이었다.


그렇다.

자신은 얼음 속에 갇혀 있다.

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

주변을 이루는 물은 불의 마녀인 자신이 천연적으로 뿜어내는 열기에 녹아내린 것이다.


마녀는 영체이기에 익사 당할 걱정은 없다.

허나 마녀는 존재 자체가 원소.

특히나 불의 마녀는 생명력을 태워 불을 피우는 존재들이다.

불의 마녀들에게 있어 얼음과 물은 생명력을 갉아먹는 독성 물질과 다를 바가 없다.


‘꿈이로군.’


그레이스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일이었으니.

주디스는 자신을 거대한 빙하 속에 가둔 채 설산 정상 밑에 매장시켰다.

어린 시절 그녀가 자신에게 행했던 일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 의도적으로 처한다면 성인 마녀라 할지라도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어린 시절 자신에게 이러한 시련은 무척이나 가혹한 것이었다.


‘이곳에 수년 동안 갇혀 있었지.’


매 순간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소리 없이 스며든 냉기가 자신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갈 것이기에.


그 지옥과 같은 상황 속에서 자신은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


설산 꼭대기에 매장되어 있어 외부 환경에 기댈 수 없다.

오로지 자신의 불꽃만으로 녹여야 하는 상황.

하지만 물속에서 불을 피운다는 것은 이때의 자신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추위와 고독 속에 떨며 생명의 불씨를 잃어갔던 나날.


그레이스는 생각했다.

왜 이런 꿈을 꾸게 된 걸까.


물의 기운.

대양의 마녀가 뿜어내는 그 거대한 기운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

과거의 일은 신경 쓰지 않지만, 물에 대한 트라우마는 몸에 각인되어 있는 것 같으니.


다만, 이 꿈을 꾸게 된 이유가 트라우마 때문만은 아님을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확실히 기억한다. 이때 그분을 처음 뵈었지.’


그레이스는 기다렸다.

곧 나타날 것이다.

이 차갑고 어두운 지옥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 준 존재를.


그리고 단 한 순간.

어둠이 새하얀 빛무리와 함께 사라졌다.

자신을 가두던 빙하와 설산도 빛과 함께 모두 녹아 사라졌다.


고깔모자 아래 길게 늘어뜨린 하늘빛 머리칼.

초췌하게 뜨인 그레이스의 눈동자에 그것이 비쳤다.

푸른 불꽃의 마녀 디메시아.

그녀와 만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자신은 이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수년간 긴장을 늦추지 않은 상태로 지낸 탓에, 갑작스레 긴장이 풀리자 그대로 기절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꿈속.

그때는 볼 수 없었던 디메시아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지고 있었다.


자신을 등에 업고 평지가 되어버린 설산을 걸어가는 디메시아.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그레이스는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이런 느낌이었다.

파이론이 다가올 때마다 느꼈던 감정.

이런 꿈을 꾸게 된 것도 분명 그의 영향 때문이겠지.


기절해 있는 자신에게 디메시아가 무어라 말을 했다.

하지만 그때 자신은 기절해 있었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디메시아는 이때 자신에게 무슨 얘기를 했을까.


자신이 정신을 차렸을 때, 디메시아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주디스는 그녀가 어떤 부탁을 했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그 부탁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을 계기로 자신은 주디스를 떠나게 되었지.


시야가 어둠에 물들기 시작한다.

꿈이 끝나가는 것이다.


다시 눈을 뜨니 자신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좌우로 약간씩 흔들리는 바닥.

물 위에 떠 있는 인간의 배 안이다.

뚝딱거리는 망치질 소리가 밖에서 들리운다.


“마녀님! 정신이 드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밖으로 나온 자신을 알아보고 한 인간이 말을 걸어왔다.

에스파다라는 인간이었던가.


“파이론은 어디 있지?”


자신의 물음에 에스파다는 자신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미지의 바다를 건너 울타리를 넘고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도달해 블루홀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야기.

파이론은 엑자일이라는 마녀와 거래해 대양의 마녀를 만나러 바닷속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자신이 잠든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거슬리는 부분도 있었다.


물의 마녀와 거래를 하다니.


그레이스는 고깔 모자를 고쳐썼다.

파이론을 마중나가기 위해서.


---


---


그레이스가 소환한 사라세니아는 맹독 식물들을 뿌리째 뽑아 짓이기기 시작했다.

맹독 식물들은 독액을 흩뿌렸지만, 사라세니아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칠게 피어나며 맹독 식물들을 비틀고 꺾고 짓밟아버렸다.


엑자일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내가 졌어. 더 이상 공격하지 않을테니 내 식물들을 괴롭히지 말아 줄래?”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채찍을 거머쥔 그레이스.

엑자일은 그 위압감 넘치는 모습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것 같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유리 막대를 소환 해제하고는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엑자일은 나를 돌아보았다.

어떤 감정이 함축된 눈빛이었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는 알아챌 수 없었다.


“파이론. 오션의 거래는 아쿠아를 통해서 해결하도록 해. 그러니 모두 데리고 내 섬에서 떠나.”


돌아서는 엑자일.

어째선가 쓸쓸해 보인다.

방금전까지 우리를 죽이려 들었던 마녀다.

왜 이런 감정이 자꾸만 생기는 걸까.

떠나는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말했다.


“네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난 널 신용하고 있지도 않아. 하지만 나는 너에게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너한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너만 괜찮다면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을래?”


엑자일은 싱긋 웃었다.


“그러기엔 이미 늦었어.”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사라졌다.


---


---


모두 섬을 떠났다.


엑자일은 정적인 실험실의 한 구석에서 홀로 무언가를 작업하고 있었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언제나 그랬지.”


그녀는 자신의 메이트인 ‘스포이드’를 꺼내, 준비해 놓은 사체에 마법을 걸었다.


푸른 불꽃에 반쯤 타버린 베히모스의 일부였다.

거기엔 아직 불씨가 남아 있었다.


“파이론. 사실 넌 필요 없었어. 이미 네 능력은 내 손안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거든.”


파이론이 기절해 있었던 사이, 그의 몸에 흐르던 푸른 마력도 뽑아낸 상태였다.


푸른 불꽃 씨앗이 담긴 베히모스의 살점에 파이론에게서 뽑아낸 푸른 마력을 담고, 스포이드로 휘젓자 비커가 푸른 빛으로 빛났다.


“좋아. 아주 훌륭해.”


엑자일은 비커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포이드를 휘젓자 벽이 움직이며 숨겨진 실험실이 나타났다.

기존의 실험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공간.


이곳에는 크기 상관없이 다양한 종류의 마수들이 유리 진공관에 갇혀 있었다.

그들의 신체에는 빨대가 꽂혀 있고, 검은 진액 같은 것들이 뽑혀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중앙의 거대한 통 안에 모이는 구조였다.


“드디어 내 비밀을 찾아냈구나. 웨델, 샥스핀.”


엑자일은 거대한 통 뒤에 숨어있는 두 명의 마녀를 향해 말했다.


“카햣! 엑자일!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설마 마수의 마력을 연성해 기름을 모으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엑자일.”


두 마녀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엑자일의 앞에 나타났다.

어차피 엑자일은 혼자다.

자신들은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닌 정찰대.

이미 두 마녀의 머릿속에는 엑자일을 오션에게 데려갈 생각으로 가득했다.


“파도잡이의 마녀 샥스핀. 저층류의 마녀 웨델. 당신들의 실력은 잘 알고 있어.”

”그렇다면 아시겠군요. 당신에게 승산은 없다는 것을.”

”순순히 메이트를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샥스핀이 작살을 들어 올리고 웨델도 자세를 취했다.

저항한다면 가차 없이 공격할 생각이었다.


“터그터스.”


엑자일의 부름에 거대한 통이 크게 흔들렸다.

샥스핀과 웨델은 경계하듯 물러섰다.

그 순간 통이 연결된 파이프를 망가트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두 마녀는 알아챘다.


곧 그 안에서 거대한 기름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젤리처럼 몸을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이며 엑자일 옆에 안착한 기름 덩어리.

엑자일은 쩌억 벌려진 기름 덩어리의 입에, 비커에 담긴 푸른 물질을 쏟아부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터그터스야. 마수의 마력으로 짜낸 기름으로 만든 골렘이지.”

”캭! 더러운 기름! 누가 사이러스의 딸 아니랄까 봐!”

”방심하면 안되겠군요. 샥스핀.”


두 마녀는 곧바로 마법을 영창했다.


“텍트! 내려치는 천개의 파도! 테아후포오!”

”텍트. 흘러가는 망자의 강. 인뎁스.”


한쪽에서는 천장까지 솟구쳐 오른 거대한 파도가.

다른 한쪽에서는 주변의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냉기의 물결이 엑자일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두 마법에 직격당한 엑자일.

차갑게 얼어버린 물을 거친 파도가 깨부수며 주변을 완전히 초토화로 만들어버렸다.


“캬핫! 감히 반역을 꾀한 죄다!”

”블루홀을 기름으로 더럽힐 생각을 하다니요.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승리를 확신하던 두 마녀.

그러나 파도가 지나간 곳에는 검은 기름 덩어리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제야 알겠어. 너희들이 왜 어머니를 못살게 굴었는지.”


기름 덩어리 속에서 들려오는 엑자일의 목소리에 두 마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 무슨!”

”···!”


터그터스가 골렘의 형태로 돌아오며 멀쩡한 엑자일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에 샥스핀과 웨델은 믿기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엑자일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두려웠던 거잖아. 기름이.”


촤아아악!


순식간에 펼쳐진 기름이 사방에 퍼져나갔다.

기름은 샥스핀과 웨델의 저항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두 마녀는 그대로 기름에 파묻혀 버렸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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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에테르 24.06.11 11 1 10쪽
87 시행착오 24.06.10 11 1 12쪽
86 원인 24.06.08 11 1 13쪽
85 선상 전투 24.06.07 11 1 12쪽
84 외양 24.06.06 10 1 11쪽
83 고민 24.06.04 11 1 12쪽
82 바다 송곳니 24.06.03 10 1 11쪽
81 크라운 피쉬 타운 24.06.01 11 1 13쪽
80 물과 기름 24.05.31 10 1 13쪽
79 물과 기름 24.05.30 10 1 10쪽
78 다음 단계 24.05.28 10 1 11쪽
» 악연 24.05.27 11 1 10쪽
76 악연 24.05.25 11 1 16쪽
75 대양의 마녀 24.05.24 10 1 11쪽
74 대양의 마녀 24.05.23 12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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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엑자일 사이러스 24.05.13 16 1 10쪽
70 블루홀 24.05.11 17 1 9쪽
69 블루홀 24.05.10 14 1 6쪽
68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24.05.09 19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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