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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파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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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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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56화 백수촌(白壽村) (1)

DUMMY

영주에서 홀연히 모습을 감춘 시운학은 한 사람의 뒤를 쫓고 있었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 신혼부부가 방으로 들려 할 때, 시운학은 어디선가 느껴 본 기억이 있는 기감을 느꼈고, 시운학이 느낀 기감을 풍기는 사내를 찾았다.


혼례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무인들이었을 뿐 아니라, 수천문 제자들의 움직임을 살피려는 사람들도 몰려들었기에, 처음에는 그런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 여기고 넘어가려 했으나, 혼례를 마치고 모두들 영주를 나서는 순간까지도 그 사람은 설가장 주위에 남아 있었다.


시운학은 그 사람의 기운을 다시 기억해 냈다. 산문을 나와 처음 악양 신선루에 들었을 때, 별채를 감시하던 자들의 기감이 그 사람과 같았다는 것을 알고는, 사형제들과 경사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바꿨다.


악양 신선루에서 별채를 감시하던 자들은 만화선자와 연결된 자들이었으니, 그동안 찾지 못했던 만화선자의 흔적을 그 사람에게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 사람은 말도 타지 않고 이따금씩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공을 쓰긴 했으나, 돌아가는 길을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이 악양성으로 들어가자 시운학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신선루주 하려려에 대한 믿음도 의문으로 바뀌어 갔다. 만화선자가 악양에 있었다면 신선루주 하려려가 모를 수 없다 여겨진 탓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신선루주 하려려는 만화선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었다.


물론 처음에는 선모라 부르며 죽었다 했고, 회천맹의 개파대전에 모습을 드러냈어도 아는 것은 없다고 했었다. 시운학은 남문으로 들어 북문으로 향하는 사람을 의아하게 지켜봤다. 신선루는 포구와 이어진 시전을 지나는 길에 있었는데, 그 사람은 북문 빈민가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양은 호남의 성도 장사보다도 번화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백성들이 잘사는 것은 아니었기에, 천민들과 빈민들 거기에 죄를 짓고 숨어 사는 자들이 모여 사는 곳, 북문 대로를 벗어나 성벽과 이어진 뒷골목 좁은 수로 양편에 바람만 불어도 무너질 것 같은 움막들이 줄지어 있었고, 이 좁은 수로변에 악양 백성의 절반이 몰려 살고 있었다.


그런 빈민촌에서도 후미진 수로의 끝쯤에 붉은 화등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화등이 걸려 있는 곳은 객점도 주루도 아니었다. 빈민들에게도 욕망은 있었고 그런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곳, 술 한 잔 마시지 않고 동전 몇 푼에 욕구를 풀 수 있는 곳이 그곳이었다.


시운학이 쫓던 사람은 줄줄이 내걸린 화등 사이로 들어갔다. 시운학은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그 사람의 기운이 향하는 곳 가까이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나무 위에 머물렀다. 수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양편으로 겨우 스쳐 지날 정도의 길이 나 있었는데, 그 좁은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포구 시전통 못지않게 많았다.


지저분한 수로는 빈민가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터인 양, 길게 이어진 수로마다 아이들이 없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좁은 곳에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으니 밀집도가 높은 탓이겠지만, 큰 소리가 나고, 그렇지 않아도 건드리면 떨어질 것 같은 문이 터져나가도록 싸움이 일어나도,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시운학을 수로에서 놀던 아이가 보고 소리치자, 시운학은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순식간에 다른 나무로 옮겨갔다. 아이는 이내 관심을 거두었는지 물놀이를 이어 갔다.


시운학은 기감을 넓게 펼쳐 따라온 사람의 기운을 찾았는데, 곳곳에서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시운학은 천지시청술을 펼치다가 바로 멈추고 그곳을 나왔다. 화등이 밝혀진 모든 곳에서 끈적한 비음이 끊이지 않아, 천지시청술로도 따라왔던 사람의 기척이나 목소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운학은 멀리 가지 않고 수로에 묶여 있는 빈 배로 숨어들었다. 겨우 두어 명 탈 수 있는 소선이었지만 비 가리개가 있어 잠시 눈길을 피하기에는 적절하다 여겼다. 빈민촌에 거지가 많을 수밖에 없었지만, 거지들 가운데 개방도가 없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택한 것이었다.


'이목을 피하기엔 참으로 절묘한 곳이로구나.'


'악양을 드나드는 사람은 많아도 이곳은 찾지 않는 곳이고, 누가 들어오더라도 바로 알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이리 가까이 있으려면 차라리 신선루 안에 비처를 마련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굳이 죽음을 가장하고서 이곳에 머문 까닭은 무엇인가?'


'하 루주는 진정 몰랐을까?'


'만약 하 루주가 몰랐다면, 만화선자가 하 루주에게까지 감추려던 것은 무엇인가?'


'강호 정세가 꾸준히 전해졌다는 건 하 루주가 몰랐을 수도 있다는 것이긴 한데, 그것만으로 하 루주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는 없는 일이고?'


'숙왕부의 호위는 마교의 구음백골조를 익히고 있었는데, 이놈은 그보다 오래전 사라진 구유음명심법에 환영보라니, 사해련이 사황의 비고라도 찾은 것인가?'


시운학의 운이 좋았는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배 주인은 오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졌지만, 더욱 붉게 빛나는 화등은 그 작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물론 이 후미진 곳을 찾을 이유야 달리 없겠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발걸음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사람의 오욕칠정은 어디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지붕 아래에서 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는 곳을, 시운학은 책상자를 메고도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뚫린 구멍 아래로 침상도 없이 두터운 거적 위에 벌거벗고 다리를 벌린 여인이, 어디를 보는지 공허한 눈을 위로 두고 있었고, 그 여인 위로 아랫도리만 대충 까 내린 사내가 여인의 하초를 탐하고 있었다.


시운학은 홍등이 내걸린 모든 곳을 살폈지만, 그곳에서는 사라진 사람의 기운을 찾을 수 없었다. 시운학은 적어도 욕망의 도구로 전락한 여인들을 지키는 자들은 있을 줄 알았고, 그들이 만화선자와 연관이 있으리라 여겼었다.


물론 각다귀 놈 몇은 곳곳에 있었지만, 각다귀들에게서는 사라진 사람과 같은 기운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 기운을 갖고 있다면 각다귀 노릇도 하지 않을 것이나, 반 시진이 넘도록 찾아도 찾지 못하자 각다귀 놈들마저 살핀 결과였다.


시운학은 다시 처음 그 사람이 들어간 곳을 찾았다. 붉은 등이 입구를 밝히고 있었는데, 워낙 입구가 좁아 앞을 막아선 사람의 눈길을 피하는 것은 어려웠다. 시운학을 보고 바로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본 그 사람이 뭐라 하기도 전에 시운학은 그 사람의 마혈을 짚어 옆에 앉혀 놓았다.


입구에서 안으로 드는 곳도 따로 없었다. 문도 없는 방에 벌거벗은 여인이 얼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시운학은 방 안에 들어 여인의 수혈도 짚었다. 방안을 둘러보니 어디에도 작은 창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운학은 그 사람이 이곳으로 드는 것을 봤다. 이곳에 들어와 달리 갈 곳이 없는 것도 확인한 시운학은 여인이 누워 있는 곳의 두터운 거적을 여인과 함께 옆으로 옮겼다. 그 아래 문같이 보이는 곳을 열고 보니 지하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화섭자에 불을 붙이고 보니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방향을 생각해 보니 화등이 줄지어 있는 곳과 같이 그 아래로 지나는 것 같았다. 위에서 한 번 살폈으니 그리 멀진 않으리라 여기고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대로 얼마 가지 않아 들어올 때와 같이 위로 향하는 문이 있었다.


시운학은 그곳에도 여인이 누워 있으리라 여기고 빠르게 밀쳐 내며 위로 올라갔다. 처음 든 곳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지만, 시운학은 여인도 각다귀도 그대로 둔 채 밖으로 나왔다. 작은 소란이 일고 바로 뒤쫓아 나온 각다귀는 시운학을 찾지 못했다.


시운학은 처음 들어간 곳으로 와 각다귀의 마혈을 풀어 주고 여인의 수혈도 풀어 준 뒤, 여전히 혼미한 여인이 누워 있던 거적을 끌어당겨, 아래로 향하는 문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모든 방마다 같은 구조라면 어딘가 나가는 길이 만들어져 있을 것이라 여기고, 어둠 속 벽을 두드려 가며 한 걸음씩 옮겨 갔다. 어둠 속이라 특별히 구분되지 않았지만, 만져지는 흙의 감촉이 달랐다.


시운학은 감촉이 다른 부위들을 눌러 갔는데, 어느 곳을 누르자 벽이 뒤로 밀려났다. 밀려난 곳도 다르지 않았다. 조금 더 아래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위로 오르다 밖으로 나가는 문이 보였다.


지하 통로를 나와서 살펴보니 통로가 성벽 아래를 뚫고 밖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온 곳도 성벽 안쪽 빈민촌과 다르지 않았다. 다르다면 수로가 아닌 동정호변이라는 것뿐이었다.


시운학은 어이없어하며 웃고는 나온 입구에 섬서 광인방에서 갖고 온 추적향을 발라 놓았다. 드나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또다시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감쪽같이 뒤를 따랐다 여겼는데, 그 사람이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도 몰랐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시운학은 포구에 모습을 드러내고 신선루 별채로 들어갔다. 별채에 든 시운학은 하녀들에게 운기조식을 한다 말하고 별채 안으로 누구도 들이지 말라 지시했다. 시운학은 별채 대전에 좌선하고 앉아 오감을 극대화시켰다.


모습을 보였으니 살피려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이 지하의 문을 통해 움직였다면 입구에 발라 놓은 추적향을 풍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화혈서가 있다면 조금은 편했을 것이나 육신통(六神通: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먼 거리의 소리를 듣고,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전생의 인연을 살피고, 마음대로 움직이고, 번뇌를 끊을 수 있다는 경지)에 가까이 다가간 시운학으로서는, 모두는 아니나 기감을 높이는 것으로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다.


별채에 들고 어둠이 깃들어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는데, 다음 날이 밝기도 전에 영주에서부터 느껴지던 기운이 별채로 다가서는 것이 느껴졌다. 시운학은 그 사람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광인방 놈들처럼 잡히면 바로 죽을까 염려하여, 그 사람이 정탐을 마치고 돌아가기까지 좌선을 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 사람도 시운학을 잘 알고 있었는지 움직임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별채 담장에 올라 누워서는 아예 귀식대법을 시전하는지 작은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시운학은 그 사람 근처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거의 한 시진을 살피고는 담장 밖으로 스치는 바람처럼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시운학은 순식간에 백여 장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담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북문 빈민촌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시운학은 기척을 조금 드러내 보이며 뒤쫓았다. 화등이 밝혀진 곳에 이르자 먼저와는 다른 곳으로 들어갔지만, 시운학은 잠시 지켜보고는 성벽을 넘어 나오는 통로 끝에서 지켜봤다.


그 사람은 밖으로 나오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작은 배에 올라 동정호 가운데로 나갔다. 시운학은 천안통으로 멀리까지 지켜봤는데, 작은 배는 점으로 보일 만큼 나가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시운학은 배의 위치를 확인해 가며 호변에 난 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대로 계속 오르면 상덕으로 가겠지만, 그렇게 멀리 가기에는 작은 배로는 힘들 것이기에, 잠시 천안통을 시전해도 눈에서 사라지곤 했지만, 시운학은 곧 다시 보이게 되리라 믿고 배가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위로 올라갔다.


동정호를 붉게 물들이던 해가 중천에 떠올라 시운학의 눈길이 미치는 곳이 더 멀리까지 이어졌다. 두 시진 가까이 위로 거슬러 올라가던 배가 수변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운학은 배가 가려던 곳에 이르렀다 생각되자, 배가 다가오는 곳보다 이백 장(600미터) 정도 더 올라가 지켜봤다.


배를 수변에 대고 그 사람이 향한 곳은 배를 댄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제법 큰 마을이었다. 지나는 길에 표석을 살펴보니 백수촌(白壽村)이라 새겨져 있었다.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는 더 이상 살필 필요도 없었다.


시운학이 잠시 둘러본 백수촌에서는 그 사람의 기운과 비슷한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 어디를 가도 있었기 때문이었고, 만화선자가 세를 키우고 감춘 곳이 이곳이 분명했으니, 굳이 뒤쫓던 사람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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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175화 광동으로 +1 24.07.04 977 10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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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173화 당삼채 (9) 24.07.02 988 13 17쪽
172 172화 당삼채 (8) 24.07.01 988 12 12쪽
171 171화 당삼채 (7) 24.06.30 1,032 13 15쪽
170 170화 당삼채 (6) 24.06.29 1,066 12 15쪽
169 169화 당삼채 (5) 24.06.28 1,070 12 12쪽
168 168화 당삼채 (4) 24.06.27 1,105 13 17쪽
167 167화 당삼채 (3) +1 24.06.26 1,128 15 16쪽
166 166화 당삼채 (2) 24.06.25 1,124 12 14쪽
165 165화 당삼채(唐三彩) (1) 24.06.24 1,221 13 13쪽
164 164화 운남행 +6 23.10.19 2,624 20 12쪽
163 163화 나한진 +3 23.10.18 2,245 26 12쪽
162 162화 소림과 무림맹 +2 23.10.17 2,237 23 13쪽
161 161화 허허롭다는 것 (2) +2 23.10.16 2,290 21 14쪽
160 160화 허허롭다는 것 (1) +3 23.10.15 2,386 22 13쪽
159 159화 우려(優慮) +5 23.10.14 2,335 22 13쪽
158 158화 누구에겐 쉬운 일 +2 23.10.13 2,317 21 15쪽
157 157화 백수촌(白壽村) (2) +2 23.10.12 2,298 24 12쪽
» 156화 백수촌(白壽村) (1) +2 23.10.11 2,295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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