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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자 출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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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파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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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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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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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59화 우려(優慮)

DUMMY

한왕의 반정을 제압하고 황궁으로 귀환한 황제의 탁자 위에 한림원 문영각주(내각대학사)가 올린 친정 일지와 공신록이 놓여져 있었다. 황제는 이번 일을 어찌들 생각하는지 궁금했지만, 친정을 나섰으니 일지는 제쳐 두고 공신록을 먼저 살폈는데, 일등 공신에 상선태감 유희태가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뒤를 이어 사례태감하륜, 중군 도독 진사흠, 금의위 통령 남백율이 잇고 있었다.


황제는 곁에 시립하고 있던 상선태감 유희태를 힐긋 보고 입꼬리를 올렸지만, 공신록 일등 공신의 자리에 상선태감을 비롯한 자들이 적힌 것에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환관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고, 이번 친정을 쉽게 마무리 지은 데는 그들의 공이 크다 할 수 있었으니, 공신록 앞자리를 차지한다 한들 누구도 뭐라 하진 못할 것이었다.


황제는 이등 공신에 오른 조정 중신들의 이름을 유심히 살피면서도,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은 채 공신록을 넘겨 갔다. 삼등 공신에 가서야 전공을 세운 장수들의 이름이 올려진 것을 보고는 당시를 회상하는지 가끔씩 눈을 감곤 했다.


등위에 오른 공신록 후미에 작은 공(당하관으로서는 대공)을 세운 장수들의 포상이 열거돼 있었다. 긴 전쟁은 아니었지만 무수히 많은 전투가 있었으니, 전투에서 공을 세운 장수들에게 포상을 하는 것이야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황제는 공신록과 포상록을 모두 살피고는, 몸을 뒤로 해 용상에 기대고는 눈을 감은 채 깊은 상념에 잠겼다.


'한왕의 준비는 생각 외로 대단했었지···.'


'하긴 선황께서 보위에 오르신 당시에도 불만이 컸을 것이니, 그때부터 준비했다면 그만한 힘을 기른 것도 이해가 되긴 하지.'


'밀리던 놈들이 오히려 짐을 잡으려 공세를 펼쳐 올 줄이야···.'


'선봉이 무너지고 중군이 밀렸었지.'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아직도 믿기질 않는구나.'


'한왕과 한왕의 부장들이 중군 군영 앞에 쓰러져 있었다 했던가?'


'상선의 말로는 하륜과 남백율이 야인들의 도움을 청했다 했거늘.'


'어찌 십만 대군이 보위하는 진중에서 한왕을 사로잡아 나올 수 있는가?'


'어디 한왕뿐이던가, 호위하던 부장들도 함께였었지.'


'공신록에는 물론이고 포상조차 없는 것인가?'


조회 중이었으니 황제가 공신록을 살피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자, 모여 있던 중신들의 마음에 혹여 공신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싶은 불안이 피어날 즈음, 상념에서 깨어난 황제는 편전에 모여 공신록의 하회를 기다리던 중신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대로 시행토록 하시오."


"황은에 감복하옵나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


조정 중신들은 황제의 하회에 불안을 거둬 내고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조회를 마치고 상선태감 유희태가 사례감을 찾았다.


"상선께서 어인 일이시오?

공신록 첫 자리에 올랐다 자랑하시려 오신 것은 아니실 것이고?"


"긴히 상의할 일이 있소이다."


사례태감 하륜은 상선태감 유희태의 표정이 밝지 못한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싶었다. 조회 중에 황제가 잠시 상념에 잠겼던 것이야 익히 알고 있었고, 숙부인 한왕의 처리에 황제가 고심했을 것은 당연하기도 했다.


조회에서는 공신록의 하회를 받았을 뿐 한왕은 거론되지 않았으니, 한왕의 처리를 놓고 황제가 고심한 것이라 여겨지자, 사례태감 하륜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말했다.


"한왕의 일이라면 이미 폐하께서 말씀이 있으시지 않았소이까?"


"그도 문제이긴 하오만 폐하의 심려가 다른 곳에 있으신 듯싶소이다."


사례태감 하륜은 한왕의 토벌로 친왕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숙부인 한왕의 처분을 두고 심려한 것이 아니라면 달리 심려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른 곳이라니 그건 무슨 말씀이시오?"


"한왕을 잡은 놈들 말씀이오."


사례태감 하륜은 상선태감 유희태의 말에 깜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세우고 상선태감 유희태를 바라봤다. 수천문 사형제들을 움직인 것이 금의위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계책이었으니, 수천문 사형제들의 문제라면 자신의 책임 아래있는 일이었다.


"그놈들은 어찌···, 혹여 공신록에 빠진 것을 두고 말씀이 계셨소이까?"


상선태감 유희태는 힘없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야인들이니 공신록에 어찌 올리겠소이까, 다만 동창과 금의위, 도찰원에서 올린 놈들의 행적이 폐하의 우려를 낳은 듯싶소이다."


"그놈들의 행적이 말씀이오?"


"하룻밤 사이 한왕을 잡아 중군의 군영 앞에 두고 사라지지 않았소이까?"


"그랬다 들었소이다만?"


"어찌 십만 대군의 진중에서 한왕을 잡았으며, 작은 소란조차 없이 중군의 군영 앞에 두고 사라졌는지 심히 놀라신 모양이외다."


"놀랍긴 하지요. 본관이 계책한 일이지만 그리 쉽게 성사시킬 줄은 예상치 못했소이다. 그놈들의 무예가 뛰어난 줄 익히 잘 알고 있었으니, 한왕을 잡아들이는 것이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일을 만들었소이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아무런 소란도 일으키지 않고 한왕을 잡아 오고, 황거가 모셔진 중군의 군영 앞에 갖다 놓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소이다."


상선태감 유희태는 사례태감 하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그렇게 쉽게 십만 대군의 진영 안에 머무는 한왕을 잡고, 수십만이 몰려 있는 중군의 군영 앞에 아무도 모르게 갖다 놓을 줄이야, 야인들의 능력을 믿고 일을 만든 사례태감 하륜이라 해도 짐작하긴 어려웠을 것이었다.


"세 곳에서 올린 놈들의 동향 보고를 살펴봤소이다. 한왕이 전면전을 택하고 전군을 앞으로 밀어내고서야, 경사에 머물던 놈들에게 전언이 있었소이다. 전장까지는 역참을 이용해도 보름 거리였지 않소이까?


그런데 불과 나흘 뒤 한왕이 잡혀 중군 앞에 놓여졌으니, 누구에게 말한들 믿을 수 있겠소이까? 군졸들 사이에서는 하늘이 폐하의 치세에 천하의 안정을 위해 신선을 보내 도왔다는 말이 돌고 있소이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구려."


"그리 쉽게 여기실 일이 아니올시다."


"쉽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찌 여겨야 한다는 말씀이시오?"


"놈들이 조금은 어렵게 한왕을 잡거나, 적어도 한왕 진영과 중군의 진영에서 누군가는 놈들을 봤어야 했소이다."


사례태감 하륜은 그제서야 상선태감 유희태가 우려하는 일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십만 대군의 진중에서 한왕을 누구도 알지 못하게 잡아들였고, 또 누구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친정군의 진영에 두고 사라졌다.


군졸들이야 신선이 도왔다며 황제의 치세를 찬양하겠지만, 정작 황제가 자신도 한왕처럼 놈들에게,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위해를 당할 수 있다 여긴다면 그것은 큰 문제였다. 더구나 일을 만든 사람이 사례태감 하륜 자신이었다.


조정의 실권을 쥐고 있는 사례태감 하륜에게, 언제라도 황제에게 위해를 줄 수 있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황제라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례태감 하륜은 갑자기 찾아온 두통에 이마를 감싸고 침음성을 내뱉었다.


'쉽게 해결하려다 만장절벽으로 내몰렸구나.'


황제가 수천문 사형제들의 신위를 두려워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관리도 아닌 강호 야인들에게 황제가 불안해하니 목을 내놓으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에 하나 일을 만들다가 수천문 사형제들이 먼저 알게 되는 날에는, 황제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지 모를 일이었으니, 사례태감 하륜은 이마를 짚은 손을 떼지 못했다.


사례태감 하륜은 속이 타자 식어 버린 차를 단숨에 마시고 말했다.


"상선께서도 아시지 않소이까?"


사례태감 하륜의 말은 수천문 제자들을 상선감에서도 파악하고 있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사례감이 동창을 지휘하며 천하를 도모하고 있지만, 황제의 옆을 지키는 상선감에서도 동창 못지않은 정보단을 운영하고 있으니, 수천문 사형제들이 황조에 반하는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을 알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상선태감 유희태도 사례태감 하륜의 물음이 뜻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황제와 관련한 일에 대해서는 동창보다 깊이 파악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지만,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황제의 우려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으니 쉽게 수긍하진 못했다.


"폐하께서는 놈들이 어찌 공신록에 빠졌는지 물으셨지만, 하 태감께서도 아시다시피 그것을 물으신 것이 아니지 않소이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으면 놈들의 동향 보고는 올리지 말았어야 했소이다."


"이미 살피시지 않으셨소이까?"


사례태감 하륜의 말에 상선태감 유희태도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그러니 문제이지요."


"성지를 보내 들라 한들 따르겠소이까?"


"그것을 어찌 모르겠소이까? 아니 문제라 하질 않소이까? 놈들이 따른다 해도 놈들인들 폐하의 우려가 크시니 죽음을 받아들이라 하면 받아들이겠소이까? 따르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폐하의 우려를 더욱 크게 만들 것이니 문제이지요."


황조를 손안에 잡고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두 태감이었지만, 수천문 사형제들의 처리에는 마땅한 방책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황제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수천문 사형제들 모두를 잡아들여 사사(賜死)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었으나, 황군을 동원한들 잡아들일 수 있는지도 문제였고, 일을 벌이다 반발이라도 하게 되면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사례태감 하륜은 금의위 통령 남백율을 불러 논의할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이런 일에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더구나 금의위에는 수천문 사형제인 현무대주가 있으니, 말이 전해지면 불똥이 어디로 튈지 짐작하기도 싫었다.


논의가 이어졌지만 논의라 할 것도 없었다. 두 태감은 한마디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찻주전자를 모두 비워 갈 무렵에서야, 사례태감 하륜의 입술이 떨어졌다.


"이이제이(以夷制夷)가 답 아니겠소이까?"


"이이제이란 말씀이시오?"


"폐하께는 강호 야인들 가운데 그만한 무위를 갖춘 자들이 넘쳐 난다 아뢰고, 그들로 하여 놈들을 치겠다 말씀 올리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그게 가능한 일이오?"


"상선께서도 아실 것 아니시오? 놈들의 사문을 친 놈들 말씀이오?"


"회천맹인가하는 놈들 말씀이시오? 그놈들은 이미 제거되지 않았소이까?"


"남은 놈들이 있지 않소이까?"


"위군자 놈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놈에게 무슨 쓸모가 있겠소이까?"


"상선께서 야인 놈들의 편협함을 모르시니 그리 말씀하시는 게지요. 야인 놈들이 달리 야인이라 불리겠소이까? 몇몇 그렇지 않은 놈들도 있겠지만 질시와 아집으로 뭉쳐진 놈들이외다. 말씀하신 위군자 놈을 이용해 야인들 무리를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 싶소이다."


상선태감 유희태가 사례태감 하륜의 말에 바로 답하지 않고, 그동안 알고 있던 수천문 사형제들과 강호 야인들의 움직임을 되새겨 봤다.


'천하무림대회인가를 봐도 놈의 마지막 위세에 구파일방이란 놈들이 숨을 죽여야 했었지.'


'아직 남은 놈들이 있다지만 회천맹은 존재조차 무색해졌고···.'


'천룡표국주 양모란 놈이 남아 있긴 해도 겁에 질린 꿩처럼 머리만 감추고 있다 했던가?'


'그런 놈에게 놈들을 치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놈이 어찌 강호 야인들의 신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오?"


"그러니 말씀드리는 것 아니오. 야인들의 질시를 모두 안고 있는 놈들이니, 그놈들을 적대하는 놈이 있으면 어찌 감싸지 않겠소이까?"


"그야말로 이이제이가 아니오?"


"홍홍홍

세상 어디에나 같은 일이 있기 마련 아니겠소이까?"


"이이제이의 계책에 이이제이의 계책을 쓰는 놈들이란 말씀이시지요?"


"왜 아니겠소이까?"


상선태감 유희태는 당장 황제의 우려에 해결할 방도는 없었지만, 황제의 질책을 넘길 방도라 여겨지자 사례태감 하륜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이 일은 사례감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말씀 올려도 되겠소이까?"


사례태감 하륜은 상선태감 유희태가 책임을 넘기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황제의 문책을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선선히 받아들였다.


"놈들을 부른 것이 본관이었으니 본관이 처리하는 것이 맞겠지요. 폐하께 말씀 올리고 일을 준비할 시간을 버는 것은 상선께서 수고해 주셨으면 하외다."


"그 정도야 도와드려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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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7화 약조 해지 +1 24.07.06 852 13 14쪽
176 176화 무왕자 +1 24.07.05 930 13 13쪽
175 175화 광동으로 +1 24.07.04 978 10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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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173화 당삼채 (9) 24.07.02 990 13 17쪽
172 172화 당삼채 (8) 24.07.01 990 12 12쪽
171 171화 당삼채 (7) 24.06.30 1,033 13 15쪽
170 170화 당삼채 (6) 24.06.29 1,067 1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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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168화 당삼채 (4) 24.06.27 1,106 13 17쪽
167 167화 당삼채 (3) +1 24.06.26 1,129 15 16쪽
166 166화 당삼채 (2) 24.06.25 1,125 12 14쪽
165 165화 당삼채(唐三彩) (1) 24.06.24 1,222 13 13쪽
164 164화 운남행 +6 23.10.19 2,625 20 12쪽
163 163화 나한진 +3 23.10.18 2,246 26 12쪽
162 162화 소림과 무림맹 +2 23.10.17 2,238 23 13쪽
161 161화 허허롭다는 것 (2) +2 23.10.16 2,292 21 14쪽
160 160화 허허롭다는 것 (1) +3 23.10.15 2,388 22 13쪽
» 159화 우려(優慮) +5 23.10.14 2,337 22 13쪽
158 158화 누구에겐 쉬운 일 +2 23.10.13 2,318 21 15쪽
157 157화 백수촌(白壽村) (2) +2 23.10.12 2,300 24 12쪽
156 156화 백수촌(白壽村) (1) +2 23.10.11 2,296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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