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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한스그레텔 님의 서재입니다.

검마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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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그레텔
작품등록일 :
2024.01.23 19:39
최근연재일 :
2024.06.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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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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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내면과의 대화(2)

DUMMY

기녀는 크게 재주를 파는 예기(藝妓)와 몸을 파는 창기(娼妓) 둘로 나뉜다.


몸을 파는 창기와 달리, 기녀는 손님을 상대하기 위해 관리 못지않은 지식과 춤, 그리고 노래까지 모두 엄격하게 배운다.


기루의 매출은 술과 기녀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이는 유화루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유화루의 경우 손님의 질이 타 기루와 차원이 달랐기에, 기녀들 또한 질이 달랐다.


아량 또한 수많은 이들을 상대하면서 춤과 기예, 그리고 지식을 겸비하며 자라왔다.


헌데 눈앞의 사내는 차원이 달랐다.


수많은 무림인과 고관대작을 상대했던 아량조차, 눈앞의 무현이 말한 내용들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들었다.


허세나 만용 따위가 아니다.


눈앞의 사내는 아량이 보기에도, 지금껏 보지 못한 유형에 속했으니.


“···귀인의 가르침이 지고하여 감히 무어라 대답하기 힘듭니다. 부디 천녀(賤女)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배우고자,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런 아량의 반응이 신기했는지, 무현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너는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나?”

“천녀의 삶을 말씀하신다면···.”


무현의 말에 아량은 벙찐 얼굴로 무어라 대답하지도 못했다.


기녀로서의 삶?

여자로 태어나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던 자신에게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준 직업이 바로 기녀라는 직업이었다.


이패(二牌) 급 기녀가 되기 위해 5년 동안 춤과 안무, 그리고 지식을 배워가며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삶이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


아량은 그의 대답에 쉬이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일렁이는 찻잔의 파문만을 하염없이 바라본 채로, 무어라 대답하기 힘든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한편, 어떤 이는 이에 불만을 품어 다른 길로 샌 경우가 존재하지.”


침묵을 깨고 입을 연 무현.


아량은 고개를 들어 무현이 말한 내용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기녀의 삶을 모르지만, 너 정도 되는 기녀라면 필시 인내의 시간을 거쳐 재주와 춤을 팔아 올랐겠지.”

“······.”

“무인도 비슷하다. 정해진 무공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단련하고, 누군가가 정해준 삶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게 보통이지. 이런 놈들은 명문정파의 이대 제자나 일개 무인의 삶에 안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이보다 더 높은 곳을 추구하며 노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런 놈들은 소위 미친놈들이라고 부르지.”


무현은 차로 목을 축인 다음에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 미친놈들 가운데, 제일 미친놈이 바로 협객이다. 이 미친 세상에서 가장 미친놈이자, 개인의 영달마저 저버린 존재. 이 미친 세상에 사는 무인들과는 격이 다르고, 마음가짐이 다르고 삶의 자세가 다른 존재. 그런 이들은 자신의 삶을 깎아가면서 협객이라는 지고의 삶에 도달할 수 있었지.”

“······.”

“그런 이들이 일궈낸 무림은 현재 병들고 썩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자존심마저 저버린 이들이 썩어 넘치고, 소위 명문정파라는 것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 가며 개개인의 탐욕을 채워넣기 바쁘지. 정사마(正邪魔)의 경계가 모호해진 이 미친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협객으로서 살아가야 할까? 아니면···.”


무현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대로 미쳐가야 할까.”

“······.”


아량은 식어버린 찻잔을 하염없이 쳐다보곤, 이내 차를 들어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천녀가 한 잔 드리겠습니다.”


찻주전자를 집어 들어 무현의 잔에 채워 넣고는, 이내 입을 여는 아량.


“개개인의 삶을 논하는 일은 천녀의 입장으론, 쉬이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허나, 제 삶에 대해 만족하시냐고 물으신다면···저는 만족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갈 곳이 없는 제게 있어서 기녀라는 직업은 유일한 구원이며, 먹고 살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몸을 팔고 재주를 팔아 이 자리에 올라왔지만, 먹고 살 수 있는 거금을 손에 넣었으니 만족스럽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량의 대답이 썩 만족스러웠는지, 무현은 찻잔을 내려놓고 대꾸했다.


“네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새로운 기회는 누군가에겐 구원이 될 수 있으나, 천녀에게 물으신다면 전 거절할 것입니다.”

“어째서 말이냐?”

“새로운 기회가 제게 구원이 될지, 혹은 썩은 동아줄이 될지 한 치의 앞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보다 높은 곳을 추구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전자의 경우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사는 한편에, 후자의 경우 한 치 앞도 모르는 정세의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에게 도박을 건다.


아량이 말을 이어 나갔다.


“개개인의 삶을 정하는 건 때로는 타의가 혹은 자의로 선택하는 경우라곤 하지요. 천녀는 전자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썩 만족하고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손님들 가운데 개개인의 탐욕과 변화의 갈망이 도를 넘어선 경우 스스로 몰락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죠.”

“······.”

“많은 이들은 후자를 선택하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전부를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범부가 천재를 넘어설 수 없는 이유이지 않겠습니까?”


범부와 천재의 삶을 가르는 단 하나의 단어.


두려움.


수많은 이들이 변화의 앞에 주저하고, 절망하는 이유가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변화를 바라지만, 실상은 변화를 두려워하여 스스로를 가둬버린다.

이런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 세상의 전반을 이루고 있으니.


“···두려움이라.”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무현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두려움과 비슷한 말은 실패다.

아무것도 얻지 못해 스스로 좌절하는 삶.


범부는 천재가 닦아놓은 길을 걸어가는 것에 안주하고, 천재는 스스로 개척하여 범부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무현은 문득 여인이 적은 공동 벽면의 글귀를 떠올렸다.


어쩌면 여인이 실패했던 이유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만 모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혹은, 여인의 추구하는 변화가 무림인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킬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무림인들이 나선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여인은 변화와 정체의 경계 속에서 몸부림치는 이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을까?


“···천녀의 대답은 여기까지 옵니다.”


아량이 고개를 숙인 채 무현의 대답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끝에.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미세하게 올라온 입꼬리가 무현의 기분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작은 깨달음의 여파 속에서 무현은 생각했다.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

그리고 여인이 왜 실패했는지.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을 감싸 안을 생각만 했지, 격려해 주고 이끌어 주지 못했다는 것을.

범인의 시선으로 봐야 했었던 이들을 천재의 시선으로밖에 보지 않았다는 것을.


검마(劍魔), 아니 소검성(小劍聖) 무현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사아아아아-!!


무현은 그 즉시 가부좌를 틀어 모든 깨달음에 집중했다.


깨달음의 폭풍우 속에서 무현은 실패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변화와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는데 오래 지나지 않았다.


그런 무현의 변화를 눈치챈 아량은 모든 행동을 멈추고, 그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아······.”


무현을 중심으로 뿜어지는 흑백의 기파가 용솟음치며 조용히 방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흑백의 기운은 기라성(綺羅星)처럼 한 대 모여 밤하늘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아량은 저도 모르게 감탄 어린 찬사를 내뱉었다.


“아···!”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깨달음을 수습 중이던 무현이 눈을 뜨면서 기라성처럼 모인 밤하늘의 기운이 모조리 그에게 흡수되고.


콰드드드드득-!!!


유화루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들썩이기 시작했다.


***


쿠구구구구-!!!


유화루 전체가 지진이 나듯 흔들리기 시작하자, 기루 내의 손님들이 일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저, 저게 뭐시여!?”

“누가 저기서 싸우고 있는 건가?”


단 한 사람이 만든 변화를 모르는 손님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기녀들은 달랐다.


‘아량···!’


유화루의 루주 장화(裝花)는 유화루 전체를 진동케 하는 모습을 보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루주의 발 빠른 대처에 모든 손님과 기녀들이 빠져나왔지만, 단 한 사람.

이패 기생 아량만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유화루 전체를 지배하는 흔들림에 눈을 떼지 못한 루주는, 한시라도 빨리 저 진동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악양의 밤을 책임지는 유화루를 찾는 손님들 중 무인도 종종 있었다.

대부분 하나같이 중원 내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저건···차원이 달라!’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지배자의 면모를 지닌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루주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유화루에 울려 퍼지는 진동이 멎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흑백의 세계에서 몸을 일으킨 무현.


과거의 편린을 엿보고 온 무현은 깬 내내 머릿속이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중간중간 잡음 때문에 대화가 들리지 않았지만, 약간의 실마리는 잡은 상태였다.


천산신녀가 마교를 떠났던 이유.


어쩌면 그녀 역시 나처럼 마교에 회의를 느껴 떠난 것일 수도 있다 생각했다.


비록 자신과 다른 방식이었지만···.


‘어쩌면 혼천옥은···.’


자격을 갖춘 이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맴돌았다.


무슨 원리로 시간을 되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순히 시간을 되돌리는 공능을 지닌 물건은 아닐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군.”


흑백의 세계를 엿본 무현의 머릿속에 기억의 편린들이 스며들고 있었다.


무의식에서 깬 검마의 의식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지금은 유화루라는 곳인가.’


그곳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심상을 이루는 세계가 점차 확장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이 모든 일이 어떤 원리로 일어난 것인지 궁금했다.

단순한 인격의 분리라기엔, 과거의 편린을 현재로 끌고 온다?


무당의 양의심공(兩意心功)처럼 의식을 두 개로 분리하는 분심공(分心功)을 익힌 적이 없었다.


의식을 두 개로 분리하는 것이 아닌.

과거와 현재 시간대가 다른 두 개의 다른 의식을 끌고 오는 건 차원이 달랐다.


애초에 시간을 거스르는 물건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고···.


‘설마···?’


순간, 한 생각이 무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혼천옥.”


마교의 신물이자, 천마가 만든 신외지기(神外之器).


“그렇게 된 건가···.”


모종의 이유로 무현과 혼천옥이 반응하면서 회귀했지만, 그 과정에서 과거의 편린이 현재로 계승됐다.


현재 가진 정보만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뭘 만든 거야.”


인격을 분리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편린을 계승시키는 신외지기라니.

한편으로는 천마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일단 이곳에서 나가야겠군.”


자리를 비운 내내 대신 의식을 점거한 검마도 신경 쓰였고, 녀석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도 내심 불안했다.


“······설마 아무나 죽인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심상 세계를 떠나려던 찰나.


쿠구구구구-!!!


엄청난 진동과 함께 심상 세계가 잔뜩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쩌저저저적-!


하늘에 수놓은 균열이 한 대 모여 커다란 상흔을 남겼으니.


균열 사이로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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