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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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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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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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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본능

DUMMY

7화 본능



정도전은 심사가 너무 불편했다. 백 보 양보하여 무학대사가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설치는 건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길에 정몽주가 힘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은 가볍게 흘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일고의 가치도 없을 일이 조정의 중대사처럼 논의되고 있는 것 역시 모두 정몽주 때문이었다.


그래서 너무 언짢았다.


정몽주.

정몽주.

포은 정몽주.


그 이름 석 자는 아무리 하찮은 논의도 조정의 중대사로 만드는 능력을 갖췄다. 알고 있었으나 새 나라를 준비하는 지금도 그러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이 문제가 이렇게 커질 일인지도 모르겠군요.”


남은이 영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자 정도전은 기다렸다는 듯 성질을 내며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왕사라니. 불교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렇지요. 암. 그렇지요.”


남은의 격한 동조에 정도전은 그나마 기분이 좀 풀렸다.


“한데 대감.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지켜만 본다면 일이 커지기만 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홧병이 날 것 같다는 걸세. 사원전을 몰수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들은 감지덕지해야 하거늘 감히 왕사라니.”

“그 말씀은 포은 대감이 처음부터 불교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뜻입니까?”

“음? 자네 방금 뭐라고 했나?”

“포은 대감이 불교 세력과 손을 잡았다고요.”

“아니 그 앞에.”

“처음부터라고 했습니다.”


남은의 말에 정도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포은이 무학과 손을 잡았다? 아니지. 불교를 대변하며 입지를 강화하려고 한다? 새나라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정도전의 눈알을 본 남은은 의구심을 잔뜩 담아 물었다.


“또 왜 그럽니까. 뭐가 또 잘못됐소?”

“자네 혹시 내가 왜 이 자리에 이르렀는지 아나?”

“그거야 역성의 입안자이니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그건 행위지. 순수한 나의 능력을 묻는 걸세.”

“음.”


남은은 쉽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고려에서 뛰어난 이는 너무 많았다.

정책적 수완이나 내정은 조준, 책략가로서는 남재, 학문은 이색 그리고 정몽주는 열거할 필요도 없는 최고의 문인이었다.


물론 정도전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어떤 것이 특출나다고 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물어봤으니 난처함을 던지고 말했다.


“1등은 못하고 2등은 하는 능력이 있긴 하지요. 참으로 괴이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런가? 그런데 내가 남들보다 유독 뛰어난 게 있지. 바로 감이 아주 좋다는 걸세.”

“예?”

“나는 정치력이 부족하고 학문도 부족하며 정책적인 수완도 부족하지. 그렇다고 하여 책략이 대단한 것도 아니야. 그런데 나는 감이 좋다네.”

“대체 무슨 말입니까.”

“순간적인 현상의 포착? 이런 게 뛰어나다는 걸세.”

“······.”


역성의 입안자가 이런 말을 하니 남은은 황당할 뿐이었다. 혹여 누가 들을까 무서워 손사래를 치며 익살스레 말했다.


“감만 믿고 다니다가 밤에 칼 맞다 죽습니다.”

“하하하! 역성이 이뤄지는 땅에서 내가 왜 칼에 맞아 죽나? 잘 보게. 고려에서도 명줄도 길어서 오늘까지 살았네. 역성이 이뤄지는 땅에서 내가 비명횡사할 리는 없지? 그러니 그동안 나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세.”

“대충 본능적인 감각이 뛰어나다는 겁니까?”

“대충 그리 알아듣게.”

“그래서 그게 대체 왜 중요합니까.”

“포은이 무학과 손을 잡았다는 걸 우연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는가.”

“예?”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걸세. 그런데 말하고 나니까 포은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확신에 이르게 되었네.”

“너무 빠르게 확신한 거 같긴 합니다만. 예. 뭐.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이런.”


정도전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포은이 불교와 손을 잡았다니까? 성리학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경우의 수가 있겠나?”

“포은 대감을 정치적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거군요.”

“암.”

“두 분 가깝다고 들었는데요?”

“대외적으로는 그렇지.”

“예?”

“포은과 관포지교라고 하면 내 이름 석 자가 더 가치 있지 않나?”

“그것도 감이었습니까?”

“감나무였지. 포은은 내게.”

“아. 네.”


정도전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나는 도은과도 가까웠지. 대내적으로 말일세.”

“과거형이군요.”

“앞만 봐도 버거운 시절이 아닌가.”

“그렇긴 하지요.”


-----


조선 건국의 역사적 의미를 한 문장으로 규정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토지의 재분배.


조금 풀어서 말하자면 귀족의 땅을 뺏어서 관리들에게 잘 나눠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귀족의 땅은 모두 뺏었는데 같이 손잡고 백성을 괴롭힌 사찰의 토지는 왜 건드리지 못했는가.


이 또한 쉽게 답할 수 있다.


그냥 저들의 힘이 부족한 것이었다.


신라와 고려까지 더불어 불교는 무려 천년의 세월 동안 이 땅의 사람을 지배하는 종교였다.


이성계의 힘이 아무리 강대하다고 할지라도 불교와 전면전을 치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더불어 불교계는 현실 정치에서 귀족처럼 강대한 힘을 발휘하지 않았기에 일단 눈을 감은 것이기도 하다.


또한, 정치라는 건 결국 자원의 분배를 어찌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 시절에 이성계와 정도전은 귀족의 토지를 몰수하는 것만으로도 건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도 합리적이었다. 만에 하나 사찰의 사원전을 몰수해야만 건국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상황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바꿔 말해서 저들은 힘이 있다면 언제든 사원전을 몰수하려고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오랜 세월 불교는 유학과 공존했으나 유학의 위에 존재했다. 유학자는 절대로 불교를 이길 수 없었다. 아니,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섣부른 도전은 위기를 초래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냉정하게 따질 때 위화도 회군이라는 군사적 움직임이 없이 조선 건국이 도모되었다면 감히 불교의 땅에 성리학적 이상 국가를 세운다는 정신 나간 발상은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불교의 천년은 두텁다.


이번에 무학대사가 전면에 나서게 한 건 이러한 두려움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두려움은 불교계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완전한 승리가 도출되었을 때 과실은 이미 주인이 있다. 과실을 둔 다툼이 가장 치열할 때는 승리가 확정적일 때다.


바로 지금처럼.


저들은 누가 집정 대신이 될 것이며, 군권을 가질 것이고, 세자가 될지로 치열하게 다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는 이제 더 공격적인 수를 준비할 것이다.


“선생. 나와 함께 해주실 수 있소?”

“······.”


나의 물음에 침묵으로 화답하는 사람은 바로 고려의 유종이라고 불리는 이색이었다. 이 사람을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정몽주, 정도전 등 고려를 쥐락펴락하는 성리학자의 스승이었다. 한 마디로 고려 성리학의 총본산이며 사상적 모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색은 역사상 고려의 충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하.”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이 일의 끝에는 무엇이 있사옵니까.”

“모르오.”

“모른다고 하셨사옵니까?”

“일국을 재건하는 대업이오. 어찌 끝을 내가 알 수 있겠소.”

“개혁은 어찌 되는지 그저 궁금한 것이옵니다.”

“하하하.”


이름이 이색이라서 그런지 정말 이색적인 물음이었다. 느닷없이 개혁이라니 말이다.


“개혁이라니. 참으로 한가하오.”

“그렇사옵니까?”

“우리의 대업이 성공할지라도 적폐를 청산하는 데 모든 힘을 사용해야 하오. 이성계만 처리한다고 하여 역도의 흔적이 뿌리 뽑히는 게 아니니 말이오. 그런데 무슨 시간과 힘이 있어서 개혁을 할 수 있겠소?”


이색은 여전히 차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오시면 전하의 대업은 바로 용상인 것이옵니까.”

“실은 그렇소.”

“그래서 고려를 지키고자 하시는 것이옵니까?”

“국호가 바뀌어도 용상이 보존된다면 모를까. 그건 아니지 않소?”

“음.”


이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함께 할 것이옵니다.”

“이건 또 의외구려.”

“신의 대업은 고려이기에 그러하옵니다.”

“왜 그러하오?”

“신념으로는 조국이기에 그러하고, 한 명의 사람으로는 고려의 체제가 가장 적합하고 편안하옵니다. 한 치도 양보하고 싶지 않사옵니다.”

“참으로 좋군요. 한데, 그 솔직함이 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소만.”

“알고 가야 하지 않사옵니까?”


정몽주나 이색이나 공양왕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고려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게 적합한 것 같다. 이유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백성만 바라본다면 저들의 말이 아예 틀리지만은 않을지도 모르옵니다.”

“그렇소?”

“하지만 신은 그저 평범한 백성은 아니기에 참으로 어렵사옵니다.”


참고로 이색은 대지주였다. 그러니 토지를 몰수한 이성계 일파가 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하.”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속내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하도 고려가 아니면 모든 걸 잃을 것이옵니다.”

“그렇소.”

“신 또한 고려가 아니면 모든 걸 잃사옵니다.”

“그렇소?”

“그렇다고 하여 모든 걸 보장해 준다는 저들의 말에 넘어갈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사옵니다.”

“그래서요?”

“그러니 신을 믿으셔도 되옵니다. 신과 전하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니 말이옵니다.”

“허.”


이런 솔직한 사람을 보았나.

막상 이렇게 투명하니 나도 괜히 말을 꺼내봤다.


“내게 충심을 보여 줄 생각은 아예 없소?”

“난세이옵니다. 충심은 곧 이해가 아니겠습니까.”

“······.”

“전하. 누구도 믿지 마시옵소서. 자신의 추악함을 보여 주는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도 믿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의 냉소적인 말은 멈추지 않았다.


“저들은 개혁이라고 하옵니다. 백성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라고도 하옵니다. 하오나 아니옵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사옵니다. 만에 하나 존재했다면 왜 과전법으로 멈추겠사옵니까. 백성을 위해서 이를 악물고 사원전을 몰수했어야지요. 한데, 아니지 않사옵니까. 필요한 만큼의 땅을 확보하고, 할 수 있는 수준만 하고 있사옵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걸 지키고 확장할 뿐이옵니다.”

“저들이 필요한 게 바로 선생의 것이구려.”

“그러하옵니다.”


어쩌면 이색이라는 사람은 나와 아주 잘 맞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신이 정치에 밝지 못하여 저들에게 당했으나 전하께서 이토록 강건하시니 어찌 다시 일어서지 못하겠사옵니까.”

“그래서 내가 선생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내리고자 하오.”

“전하. 참고로 고려의 하늘 아래 신보다 유학에 밝은 이는 없사옵니다.”

“그래서 말한 것이오. 적합할 것이오.”

“무엇이옵니까.”

“이성계의 막내아들이 있소. 그의 스승이 되어 주시오.”


이색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심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겠사옵니다. 신은 그럴 능력이 없으니 말이옵니다. 하오나 이방석의 스승이라. 신이 가장 잘할 수 있사옵니다. 고려에서 신의 가르침을 거절할 이는 없으니 말이옵니다.”

“아주 좋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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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2 yu****
    작성일
    24.07.05 15:22
    No. 1

    장자의 힘을, 막내에겐 어머니와 스승의 힘을..
    이씨 집안 바람잘날일 없겠네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삼한일통
    작성일
    24.07.06 20:28
    No. 2

    이번 작품의 주인공 공양왕은 전생이 노련한 정치인이라서 그런지 정치판의 인간관계를 잘 활용하는 편이군요.
    전생에서도 같은 정당도 다른 정당도 러브콜을 보내는 노련미를 보였는데 고려말에서도
    그 능력을 빛내는게 인상적입니다.
    심지어 고려의 충신을 이성계 막내에게 붙인다!? 캬~!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은소라
    작성일
    24.07.07 07:58
    No. 3

    재밌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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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화 뒤바뀌는 역사 +2 24.07.03 487 22 14쪽
2 2화 공양왕이 되었다 +2 24.07.03 574 31 15쪽
1 1화 두 번째 기회 +12 24.07.03 762 2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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