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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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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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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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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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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갈라치기(1)

DUMMY

4화 갈라치기



사전에 논의하지 않은 선위 교지에 정도전은 기가 찼다. 물론, 선위는 좋은 일이며 목표였으나 왕이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썩 나쁘지 않았다.


‘포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왕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고려 왕의 말을 대변하고 전하는 통로가 정몽주였는데 이번에 붕괴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개국 이전에 정몽주가 가진 최대 정치적 자산이 사라진 것이었으니 내심 즐거웠다.


“대감. 이왕 이렇게 되었으면 그냥 받는 게 어떻소? 내가 속이 터져서 그럽니다.”


남은의 과감한 주장에 정도전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의 마음은 내가 잘 알겠으나 아직은 아닐세. 민심을 더 수습한 뒤 옥새를 넘겨받는 게 좋아.”

“음. 듣고 보니 그게 좋겠군요.”

“사형. 그건 아닙니다.”


남재가 이견을 제기하자 친동생인 남은이 미간을 찌푸리며 타박했다.


“형님. 뭐가 아닙니까. 그냥 가만히 계십시오.”

“너는 될 수 있으면 내 앞에서 말하지 마라.”

“허. 참으로 경박하시오.

”흥.“


남재는 남은을 무시하고 정도전을 쳐다봤다.


“때를 놓칠수록 일은 틀어지기 마련입니다. 포은 사형이 옥새를 들고 십자로를 지난다면 백성들도 수긍할 겁니다. 양위를 수용해야 합니다.”


남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정도전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포은! 포은! 하. 옥새를 왜 정몽주가 가져온다고 생각하지? 이미 왕은 정몽주와 통하지 않거늘!’


지금껏 고생한 사람들보다 마지막에 옥새를 가져온 정몽주가 정치적으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몽주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다. 전의를 상실한 왕이라면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정도전에게는 양위를 더 미뤄야 하는 개인적인 이유도 생겼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으나 분명히 왕이 먼저 양위 의사를 피력했습니다. 사형.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 생각이네. 백성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나? 손가락질할 것이네.”

“백성들의 생각까지 생각할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지요. 하루라도 빨리 정국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아닙니까?”

“내가 몇 번을 말하나? 우리의 역성은 만백성의 지지와 이뤄져야 하네. 고작 1년도 참지 못하여 일을 그르칠 수는 없는 법일세.”


남재가 거듭해서 강하게 주장했으나 정도전은 고개까지 저으며 단호하게 반대했다. 결국, 남재는 말문이 막혔다.


‘1년? 어찌 정치를 이렇게나 모르는가. 민심이든 뭐든 용상을 차지한 뒤에 움직여야 하거늘.’


난세의 정치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고려 왕이 백기 투항했을지라도 고려 왕조가 유지되는 이상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런데 정도전은 이렇게 한가하니 속에서 천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도전은 남에게 설득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민심을 수습하지요.”


점차 격렬해지는 논쟁을 환기하려는 듯 조준이 말을 꺼냈다.


“아직 우리가 해야 할 개혁은 많습니다. 양위가 미뤄졌을지라도 개혁은 멈출 수 없습니다. 그래야만 백성들의 시선도 바뀔 겁니다.”

“우재의 말이 참으로 옳아. 그래. 자네가 애를 쓰게.”


조준은 쓰게 웃으며 남재와 시선이 마주쳤다. 낮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


합의 사항을 어기며 선위를 선언한 건 두 가지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저항 의지가 없다는 걸 다시 각인시키고, 적진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저들은 분명 갑론을박이 발생할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단일대오는 치열하게 전쟁이 진행될 때나 가능한 것이다. 휴전이나 종전이 다가오면 단일대오는 느슨해지고 분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나라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할 때 영양왕의 동생이었던 고건무가 명장으로 활약했으나, 전쟁이 끝나고 왕이 되었을 때는 강경파를 배척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현대 정치에서도 정치인들은 허구한 날 내부에서 싸우다가, 총선 6개월 전부터는 단합을 강조하고 강고한 단일대오가 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권력 투쟁을 시작했다.


이건 절대로 바뀌지 않는 정치의 본질이었다. 그러니 역성파도 다툼이 발생할 것이다. 물론, 민심과 대업과 같은 거창한 슬로건을 꺼내면서 고고한 척을 하면서 말이다. 아직은 표정 관리를 하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효과는 생각보다 빨랐다.


“전하. 부디 선위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성계의 장자인 이방우가 찾아와서 간곡하게 선위를 거두어 달라고 청했다. 원 역사에서 이방우는 고려의 신하를 자처하며 조선 건국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리고 건국 직후 술병 나서 죽었다.


만일, 그가 용상에 욕심을 가졌으면 누구보다도 유리한 위치였다. 왕의 장자라는 건 그런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궁금했다. 이방우는 정말 자발적인 고려의 충신이었을까? 아니면, 타의로 인한 충신일까? 너무 고결한 선비라서 굴러온 옥새를 걷어찬 걸까? 아니면,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을까.


그런데 이방우처럼 호의적인 사람에게는 이런 의문을 길게 가져갈 이유가 없었다. 작업을 하기에는 가장 적합하고 편한 유형이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오래 살게.”

“전하. 선위를······예? 전하. 어인 하교이시옵니까.”

“내가 선위를 하면 새 나라의 세자는 자네가 될 것이네. 그러니 부디 무병장수하라는 말일세.”

“저, 전하.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신은 절대로 역도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이옵니다.”


기겁하는 이방우를 보면서 내심 안도할 수 있었다. 적어도 시대의 양심이라는 걸 조금은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호의적인 상황이었기에 만족스레 웃으면서 말했다.


“이미 고려의 멸망은 한 명의 개인이 막을 수 있는 게 아닐세. 내가 아무리 버틴다고 할지라도 수명이 다했다는 것일세. 아니라고 말하지 말게. 나는 자네의 부친을 막을 힘이 없네.”

“전하······.”

“그러나 내가 망국의 왕이 될지언정 어찌 조종의 릉을 살피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자면 나와 왕족이 살아야 한다네. 이보게. 고려에 충심을 가진 자네가 왕이 되어야만 우리를 핍박하지 않겠지. 그러나 이방과나 이방원이 세자로 책봉되면 고려 왕족은 다 죽을 것이네. 그러니 부디 오래 살게.”


칼로 나를 협박한 이방과와 정몽주를 죽이려고 한 이방원을 언급하자 이방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두 사람 중 한 명이 세자로 책봉되었을 때 고려 왕족을 편히 살게 두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꼭 세자가 되고, 왕도 되어 우리를 살펴주게.”


이방우가 정말로 고려의 멸망을 바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자가 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고려의 존속을 바란다는 것과 조선의 세자가 된다는 건 절대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내가 간곡하게 시대의 양심을 자극하며 부채질하면 이방우의 행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네가 고려의 충신이고 나의 신하라면 고려의 왕족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길을 선택해 주게. 부디 그리해 주게. 그 옛날 한나라 헌제는 조비에게 황위를 넘겼으나 천수를 누렸네. 나는 자네가 내게도 이리해 주길 바란다는 걸세. 내가 과한 욕심을 내는 것인가?”


설득이 이어질수록 이방우는 오열했다. 그러나 아니 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신이 어떻게든 전하를 지킬 것이옵니다.”


결국 이방우가 승낙했다.

사실 이 정도로 설득에 동의한다는 건 떠먹여 주는 세자 자리를 거절할 생각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원 역사에서는 떠먹여 주는 사람이 없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것이다. 하긴. 왕 시켜준다는 데 누가 싫어하겠나. 하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은 선위를 거두겠네. 그리고 자네가 중간에서 잘 전달하게. 가장 적합할 때를 일러주면 내가 선위하겠노라고 말이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시작이 계속 좋다.


그리고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이방우가 건국 직후 술병으로 죽은 건 세자 경쟁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열불 나서 죽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정몽주가 이성계와의 협상으로 확보한 나의 정치적 공간은 사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아예 멀리 나갈 수는 없으나 가까운 거리의 사찰은 다닐 수 있었다. 어차피 망국의 왕을 예약한 상태였으니 이 정도는 허락해 준 것이며, 감시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멀리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사찰을 나의 정치적 공간으로 확보하려면 결국,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성계의 처, 강씨가 자주 다니는 사찰에 방문했다.


“전하께서 오셨습니까.”


요즘 기분이 아주 좋을 수밖에 없는 강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나를 반겼다.


“전하. 용안이 참으로 편해 보입니다. 그나저나 이곳을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실은 부인을 만나려고 온 것이오.”

“신을 말입니까?”


분명 공손한 태도였으나 눈빛이나 어조가 정중하지는 않았다. 이 여인에게 나는 이미 왕이 아니었다. 아니, 자신이 이미 중전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이런 오만 불순한 사람일수록 아귀다툼에 최선을 다하는 법이었다.


“미래의 중전과 미리 만나는 것이지요.”

“전하. 참으로 민망합니다. 아무리 중전이라고 할지라도 아녀자에 불과한데 어찌 이러십니까.”

“허. 부인의 자녀 중 한 명이 세자가 되어 장차 보위에 오를 것인데 내가 어찌 이러지 않겠소?”

“······.”


강씨의 표정이 살짝 경직됐다. 그런데 눈동자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 여인은 이미 자기 친자식을 세자로 책봉할 생각에 아주 바쁘게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러면 대화가 더 간단해진다.


“장자가 있거늘 어찌 신의 자녀들이 세자가 되겠습니까.”

“이런. 내가 실언한 것이오?”

“듣지 못한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합시다.”

“한데, 전하.”


가려는데 강씨가 다시 붙잡았다.


“신의 자녀들은 공이 없습니다. 한데, 세자의 재목이라고 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 어려서 기회가 없었을 뿐, 능력이 없는 건 아니지요. 게다가 부인의 내조가 참으로 큰 힘을 내었다고 들었소. 그런데도 부족함이 느껴진다면 지금부터 공을 쌓으면 될 것이오.”

“마땅한 게 있겠습니까?”

“뭐라도 내민다면 미약한 힘이나마 지지하겠소.”

“이미 태평성대인데 무엇이 부족한 세상이겠습니까.”

“내가 망국의 왕이 될 운명이지만 아직은 왕이지요. 나의 권능은 상당히 큰 힘이 될 수도 있소.”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자고로 정치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본질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을 거창한 대의로 보지 않는다. 조선의 건국은 고려 말에 발생한 막대한 이권의 분배로 발생한 정치 투쟁에 불과하다. 이렇게 접근해야만 정치적 공간이 확보된다.


즉, 이권의 확보를 본질로 바라보면 저들을 분열시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조선 건국이 고려의 이권을 역성파가 모두 취하는 큰 도박판이었다면, 돈을 분배하는 건 세자 책봉과 귀결된다.


이방우와 강씨의 자녀들을 조기에 등판시킬 수 있다면 저들은 조선 건국 이전에 첨예한 대립을 시작할 것이다.


역시 정치는 즐거운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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