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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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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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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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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전주 이씨의 후계자

DUMMY

6화 전주 이씨의 후계자



근심과 걱정이 전혀 없는 환한 웃음으로 무학대사를 반겼던 이성계의 얼굴에는 난처함이 자리 잡는 시간은 절대로 길지 않았다. 이와 같은 변화를 무학대사가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포은 선생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과거 이성계는 무학대사가 어떤 말을 해도 부드럽게 수용했다. 실제 집행 여부와 별개로 경청한다는 느낌을 받는 건 절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성계의 태도는 분명히 전과 달랐다.


‘내게도 이리하신다는 건 장차 불교가 현실 정치에 개입하려는 걸 아예 차단하실지도 모르지.’


무학대사가 이성계와 함께 오늘에 이른 건 순수한 감정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불교라는 거대한 집단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 배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무학대사는 처세를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감. 새 나라의 정치는 응당 성리학이 주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백성은 여전히 부처님을 모시지요. 민생을 다독이기 위해서는 소승과 불교의 역할이 필요함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를 역설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물론이오. 어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제할 수 있겠소이까.”

“하지만 오랜 세월 불교는 백성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였지요. 해서, 약간의 틈과 기회를 얻고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좋소. 이 문제는 내가 상의를 해보겠소.”

“소승의 의견을 경청하여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말을 해도 두 번, 세 번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화가 참으로 편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셨소?”

“솔직히 말해도 되겠습니까?”

“언제나 그래도 되오.”

“듣자니 사원전까지 몰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감. 소승이 이건 막아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분명 시작은 승려가 백성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제도의 마련이었으나 몇 마디가 더 이어졌을 뿐인데 거대한 정치적 담론이 언급됐다.


더 흥미로운 건 이성계는 아무런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대화는 무학대사가 주도하고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대감. 승려들의 잘못을 어찌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청하는 것입니다. 개혁의 기회를 주십시오. 가장 낮은 곳에서 백성을 만날 것입니다. 그들에게 역성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여 민심을 살피겠습니다. 만에 하나 성과가 미진할 경우 벌하면 될 일입니다. 그러니 부디 살펴주십시오.”


이성계가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요소는 셀 수 없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군공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무학대사가 가장 유심히 살핀 건 바로 ‘경청’하는 능력이었다. 이성계는 상대와 대화할 때 주장을 앞세우지 않고 경청하고 공감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불교의 진심을 전하고 사원전을 언급하면 필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여겼다.


-----


강씨는 굳은 표정을 한 이성계를 바라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눈이 마주쳤는데 이성계도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에 잔뜩 묻어 있던 어두움을 밀어냈다.


“대감. 무학대사의 청을 거절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음. 하지만 이 일은 여러 사람과 논의해야 하오. 특히 삼봉의 의견이 중요하오.”

“대감. 잊으셨습니까. 고려의 조정이 대감을 외면할 때 늘 찾아 마음을 다스려 준 사람이 바로 무학대사입니다.”

“그렇지만 사사로운 인연을 앞세워 조정의 일을 논하는 건 참으로 어렵소.”

“물론이지요. 설마 제가 사사로운 인연을 앞세우고자 하겠습니까.”


이성계의 난처함을 가볍게 흘리는 강씨의 뇌리 속에는 고려 왕과 나눈 대화가 스쳤다.


-뭐가 되어도 무관합니다. 발의한다면 내가 다 수용하지요.


이번 사안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려 왕의 의지와 약조를 파악하기 위해서 던져보는 건 나쁘지 않았다. 조정의 중론이 갈라진 상황에서 왕사의 채택을 자신이 발의했을 때 고려 왕이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 살피는 건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대감. 모든 백성이 부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한데, 무학대사가 많은 승려를 동원하여 대감을 뒷받침할 제도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찌 탈이 날 수 있겠습니까.”

“음. 부인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저는 늘 대감의 뜻과 같습니다. 심지어 무학대사가 무리한 청을 한 것도 아니니 수용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버님. 소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밖에서 들린 이방우의 목소리에 강씨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갑자기 방우가 왜?’


냉정하게 따져볼 때 이성계의 후계자는 장자인 이방우의 자리라고 해도 무방했다. 만일, 이방우가 권력 의지를 가진다면 막을 명분이나 방법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얼마 전 불미스러운 일로 이방과와 이방원이 이성계의 눈 밖에 나면서 손쉽게 후계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가장 좋지 않은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이러하니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온 이방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강씨는 내색하지 않고 타이르듯 말했다.


“방우야. 이는 일국의 중대사다. 그리 감정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니라.”

“감정적으로 나선 것이 아닙니다. 오랜 생각이었습니다.”

“일국의 중대사이니 말을 삼가야 하지 않겠느냐. 게다가 밖에서 부모의 말을 엿듣다니. 참으로 문제가 많은 행동이다. 오늘은 이리 넘길 테니 자중하거라.”


강씨가 도발적인 말을 했으나 이방우는 오히려 이성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님. 소자는 전주 이씨의 장자입니다. 어찌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겠습니까.”


이방우의 적극적인 모습에 이성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성을 본격화하면서 거리를 두는 장남이었기에 남몰래 속앓이했는데 이리 나서는 걸 보니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말의 옳고 그름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님. 새 나라는 응당 성리학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굳이 왕사를 부활하여 혼란을 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음.”

“또한, 이 일이 아버님과 조정의 심대한 요구가 아니라 한 명의 승려로부터 청탁을 받았다고 알려진다면 여론은 더 악화될 것입니다.”

“방우는 말을 삼가야 할 것이다. 어찌 청탁이라고 말하느냐. 너는 아버님이 그런 부정한 행위를 했다고 여기는 것이더냐. 설령 그토록 짧은 생각을 했을지라도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참으로 문제가 많다.”


다시 강씨가 이방우를 책망했다. 심지어 이번에 언급한 가치는 ‘효’를 앞세운 것이었다. 부친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이방우였기에 이리 덫을 놓으면 더는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탁입니다.”


이방우는 평소와 달랐다.


“그러나 아직 아버님께서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으셨기에 청탁은 미수에 그칠 것입니다.”


강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여태껏 아무런 욕심도 보이지 않았고, 역성에 힘을 보태지도 않았다. 갑작스러운 이방우의 행동은 강씨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방우를 눌러야 한다. 요설로 치부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후계 경쟁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적장자의 등장은 강씨에게 심대한 위협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지금 그녀가 선택한 건 바로 ‘처세’였다.


“대감. 듣고 보니 방우의 말이 또 틀린 건 아닙니다. 살피시지요.”

“부인도 그리 생각하셨소? 나 또한 마찬가지요.”


이성계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방우야. 네가 아우들의 잘못까지 모두 희석시켜야 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느냐?”

“소자가 아버님의 근심을 모두 해결할 것입니다.”


부자의 화기애애한 대화는 길게 이어졌다. 강씨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은 그리해야만 했다.


-----


이방우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은 쉽사리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애쓰셨소.”


뒤에서 들린 탁한 목소리에 흠칫 놀란 이방우는 상대를 확인하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호정 선생.”


엷은 미소를 한 하륜은 참으로 여유로웠다. 진땀을 흘리고 있는 이방우와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시작이 괜찮으니, 앞날도 무탈할 것이외다.”

“······.”

“왜 그러오?”

“내가 뜻을 품었기에 나섰으나 불효를 저지른 듯하여 참으로 마음이 무겁소.”

“······.”


하륜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속내는 아예 달랐다.


‘고작 이 정도도 감내하지 못하니 참으로 걱정이로군.’


다른 자리도 아니고 새 나라의 세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강씨와 약간의 논쟁도 부담스러워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달리 바라볼 때 이런 결단력도 없는 사람이 용상의 주인이 된다는 건 참으로 큰 불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륜이 바라는 건 애초 영민한 군주가 아니었다.


게다가 모든 조건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이런 사람이 세자를 탐하는 것 자체가 기적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마음을 달리 먹은 이유부터 말이다.


‘오히려 좋은 일이다. 어차피 나는 나를 위한 길을 선택한 것이니 말이다.’


하륜이 이방우와 손을 잡은 건 이 땅의 번영과 영광을 위함이 아니었다.


“내가 괜한 말을 했구려. 한데, 선생. 이제 나를 돕는 이유를 알아도 되겠소?”

“궁금하시오?”

“물론이오. 이제 그래도 되지 않소? 오늘의 일은 나를 시험한 것이라고 생각하오. 혹시 내 생각이 틀렸소?”

“······.”


역시 이성계라는 걸출한 무장의 아들이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하여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으나 오산이었다.


이방우의 말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하륜은 무조건 이방우와 한배를 탈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 원래 그가 접근하려고 한 사람은 이방원이었다. 발을 돌린 건 정몽주를 죽이려고만 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진짜 죽였다면 고민하지 않고 다가갔을 것이다. 어쨌든 이방우가 1순위는 아니었기에 시험을 해볼 필요는 있었다.


“줄을 대는 것이지요.”

“줄이라고 하셨소?”


하륜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이미 역성은 대세지요. 한데, 나는 아무런 공이 없으니 어찌 새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겠소이까.”

“해서요?”

“세자 책봉에 공을 세우면 내일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더 머뭇거릴 수가 있겠소.”


하륜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공은 새 나라의 세자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지만 길을 찾지 못하오. 그런데 내가 이 길을 알려줄 수 있다면 일등 공신이 될 수 있으니 어찌 더 머뭇거리겠소이까.”


노골적인 권력욕에 이방우는 거부감이 들었으나 하륜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왕사 부활을 반대했을 뿐인데 단번에 아버지 이성계의 칭찬을 받았으니 말이다.


“설령 왕사 제도가 집행될지라도 공은 손해볼 게 없습니다. 어차피 태어나기를 이성계 대감은 장자이며, 이번 한 수로 사대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무엇을 하면 되겠소?”

“말을 던졌으니, 사람을 규합해야지요.”


하륜의 머릿속에는 이미 모든 게 그려져 있었다.


“불교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이 공을 찾아올 겁니다. 그들을 크게 대우하십시오. 또한, 형제들과의 회합을 도모하여 전주 이씨의 장자로서 위치를 굳건히 하십시오.”


어느새 하륜의 말투가 바뀌어 있었다.


“소생이 공을 주군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내가 목표를 이루는 날 선생을 절대 박대하지 않겠소.”


하륜은 흡족했다.


‘이방우. 권력 의지가 약하여 이방원을 찾아가려고 했으나 이런 정도의 모습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인생을 걸어 볼만 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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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49 Mr.배즙
    작성일
    24.07.04 13:29
    No. 1

    모든 이들이 공양왕을 배제하고 있으니 활동반경이 넓어지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2 yu****
    작성일
    24.07.04 14:06
    No. 2

    조선건국을 허가하는게 아닌 시작부터 방해에, 장자 이방우에게 생기를 불어넣다니..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0 늉냠
    작성일
    24.07.06 22:55
    No. 3

    사실 조선초기 사극 볼 때마다 이방우의 역할이 아쉬웠는데 이렇게 1년 단기직 세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나오니까 흥미로워요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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