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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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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르기
작품등록일 :
2024.07.0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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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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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화 갈라치기(2)

DUMMY

5화 갈라치기(2)



무학대사는 빙그레 웃고 있는 정몽주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크게 불편하지 않은 사이였으나 이성계가 본격적으로 역성을 추진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물론, 최근에 정몽주가 전향하여 다소 상황이 변하긴 했으나 이렇게 곧장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대사를 만나 보고 싶었는데 이제 기회가 되었소.”

“선생이 노승을 찾아주어 참으로 반갑소만 무슨 일인지 모르겠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그렇소.”


무학대사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듯 엷은 미소를 짓는 정몽주의 머릿속에는 왕이 선위를 거둔 직후 전한 말이 떠올렸다.


-강대한 적과 싸울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새로운 세력을 등장시키는 것이오. 제3의 세력 말이외다.

-고려에 역도들을 상대할 세력이 있사옵니까?

-있지요. 바로 사찰이오. 저들은 불교를 탄압할 것이니 이를 조기에 규합할 수 있다면 상당히 큰 힘이 될 것이오.


크게 감탄할 정도로 정확한 분석이었다. 역도들은 과전법을 단행하여 귀족의 사전을 몰수했으나 사찰의 사원전은 어찌하지 못했다. 그동안 사찰을 권문세족과 함께 만 악의 근원이라고 외치던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이는 어차피 현실 정치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찰 세력을 도발하여 저항을 유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이 대대적으로 저항할 때 제압하고 개혁을 관철할 힘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즉, 현재 기준으로 사찰은 분명히 힘이 있었다. 정치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낼 길이 막혀 있을 뿐이었다. 만일, 이들을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정국은 요동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승려의 수가 20여만 명인 나라다. 절대다수의 백성이 그들의 영향력을 받는다는 걸 의미하는데 불교를 제도적으로 탄압하면 민심이 어찌 될지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바꿔 말해서 아직은 불교계가 힘이 있다는 의미였고,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요. 무슨 말을 하고 싶소? 그러나 역성에 반대하던 선생이 태도를 바꾼 이유부터 듣고 싶구려.”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니 어쩌겠소?”

“하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오?”

“대사. 새 나라가 건국되면 만백성이 춤을 추고 문무백관이 열의에 불타리라고 생각하오? 아니지요. 철저한 권력 다툼이 발생할 것이오. 정도전, 조준, 윤소종 등 오랫동안 역성에 가담한 그들과 겨루자니 내가 버겁소. 그래서 대사를 찾아온 것이오.”


무학대사는 피식 웃으면서 염주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걸 기우라고 하오. 선생에 대한 이성계 대감의 신뢰가 가득한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니 말이오.”

“그건 아직 이 나라의 국호가 고려라서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대사는 왜 이리 여유롭소?”

“말에 뼈가 있군요.”

“대사의 처지라고 하여 다르다고 생각하오?”


염주를 만지던 무학대사의 손이 멈췄고, 가늘어진 눈으로 정몽주를 지그시 쳐다봤다.


“선생. 나는 이성계 대감과 참으로 오랜 세월 함께했소. 한데, 내가 왜 걱정해야 하오?”

“오래 알고 지내면 권력이 나눠진답니까?”

“······.”

“고려의 사원전이 10만 결이지요. 과전법이 집행될 때 누구도 사원전은 건드리지 못했소. 그토록 망국의 씨앗이라고 비판하더니 말이오. 혹시 대사는 이것이 이성계 대감의 배려라고 생각하오?”

“······.”

“내가 장담하지요. 지금은 힘이 부족하여 그냥 두었을 뿐, 차차 뺏을 것이오. 모조리. 그러나 대사가 그저 왕의 벗으로 만족한다면 나는 돌아가겠소. 하지만, 개국의 과실을 취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오. 불교를 대변할 생각이 있으면 대화를 나누겠다는 것이오. 어찌하오?”

“오랜만에 이 노승이 말벗을 구했군요. 고려 최고의 학자라고 불리는 선생의 고견을 청해도 되겠소?”


무학대사는 적극적이었다. 어쩌면 일단 정몽주의 말을 들어보고 판단하겠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대사. 정도전은 성리학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오. 한데, 나는 성리학의 나라를 들어본 적도 없소. 동서고금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나라요. 성리학이 아니라 유학의 나라도 없었소.”

“유학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한 건 오래되었소. 왜 문제가 되오?”

“도구가 아니라 나라를 성리학으로 덮어버리겠다는 게 문제지요. 나는 이와 비슷한 나라를 알고 있소.”

“그 나라가 어디요?”

“법가의 나라, 진나라요.”

“······.”


분서갱유를 떠올린 무학대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학문을 도구가 아닌 국시로 삼은 나라는 다른 학문을 탄압한다는 것이 진나라의 사례로 알 수 있소. 유학자를 생매장하고 경전을 불태운 분서갱유가 새 나라에는 없다고 생각하오? 아니지요. 새 나라에서도 성리학이 주도하는 분서갱유가 발생할 것이오.”

“불교를 탄압하다니. 그러기에는 선생이 말했듯 사찰의 사원전은 건드리지 않았소.”

“그렇지요. 지금 사찰을 건드리는 건 미친 짓이니까. 그러나 역성이 완성된 이후에는 다르지요. 그리고 이미 공격은 시작됐소. 제도는 유불리를 따져야 하지만, 세 치 혀는 아니지요. 정도전과 윤소종은 이미 불교의 이론을 타박하고 있소. 왜 이러겠소? 개국이 완성되고 힘을 가졌을 때 그 이론을 바탕으로 제도를 바꾸겠다는 뜻이외다.”


정몽주는 이미 무학대사의 심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직감했으나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더 노골적으로 손을 뻗을 생각이었다.


“대사. 우리가 살려면 새 나라는 고려와 국호만 달라야 하오. 아니, 다 달라도 불교가 지금의 성세는 유지해야 하오. 어떻소? 나와 함께하겠소?”

“······.”

“대사. 우리 같이 삽시다.”

“이거 선생에게 이런 면모가 있을지는 몰랐소이다.”


지금까지 정몽주는 권력 지향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새 나라의 분서갱유를 언급하는 정몽주는 권력을 향한 강렬한 의지를 표출하고 있었다.


“나는 늦었고, 대사는 소외되고 있소. 그러니 우리가 손을 잡으면 가장 이상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겠소? 저들의 역성을 홀로 막아냈던 나와 불교를 대변하는 대사가 손을 잡으면 판을 흔들 수 있소. 어떻소?”

“소승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속내로군요. 좋소. 하면, 내가 무엇을 하면 되겠소?”

“역성이 완성되기 전에 대사가 취할 건 취해야지요.”

“어떤 걸 취하면 되겠소?”

“왕사가 되어 명실상부한 불교의 대리인이 되는 거요.”


고려는 왕사 제도가 있었으나 정국이 요동치면서 사실상 폐지되었다. 하지만 성리학자들이 조정을 장악한 이상 왕사 제도가 부활하지 않을 가능성도 컸다. 그래서 무학대사는 흡족하게 웃었다.


“한데, 내 입으로 왕사를 청하는 건 모양새가 별로요.”

“하하하. 그렇지요. 내가 나설 것이니 가만히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승낙하면 되오.”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제안의 연속이었소.”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참으로 뜨거웠다.


-----


내가 공양왕이 된 이후 가장 당황한 건 정도전과 정몽주였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두 사람의 우정을 배웠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정도전은 정몽주에게 상당한 열등감이 있었다.


“왕사? 포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사찰이 백성을 어찌 핍박했는지 벌써 잊었나?”


지금 선인전을 울리는 정도전의 말에는 정몽주에 대한 존중은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듣기에 따라서 짜증을 내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표정도 참 별로였는데 이러는 이유는 정몽주가 왕사의 부활을 공식화했기 때문이었다.


“삼봉. 사찰에 죄가 있다고 무조건 배척만 한다면 권문세족 출신은 왜 중용하나? 다 내쳐야지. 내 말이 틀렸나?”

“어디서 그런 궤변을 펼치는가?”

“그들의 잘못만 바로잡자는 걸세. 왕사를 부활시켜 사찰을 잘 관리하게 한다면 어찌 백성이 반기지 않겠는가.”

“뭐? 왕사에게 합법적인 권력까지 부여하자는 것인가?”

“정치권력이 아니라 사찰을 통제하는 것일세.”

“갈!”


결국, 참지 못한 정도전이 고함을 질렀다.


“사찰은 조정에서 통제할 것이네. 한데, 왕사에게 그 권한을 주자니. 어림도 없네.”

“조정이 사찰을 통제할 일이 뭐가 있나? 사원전만 해도 왕사가 있으면 파악하고 관리하는 게 더 수월하다는 게 내 생각일세.”

“바로 그 사원전 때문에 조정이 나서야 한다는 걸세!”

“포은 대감. 삼봉 대감의 말이 맞습니다. 사원전은 많은 백성을 괴롭히는 근간이었습니다. 한데, 이를 승려의 손에 맡기다니요? 우리가 사전을 혁파할 때 귀족들이 얼마나 반대했는지 잊었습니까? 왕사는 절대로 사원전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윤소종까지 등판해서 정몽주를 압박했다. 그러나 정몽주는 꿈쩍도 하지 않고 태연하게 쳐다만 봤다. 결국, 정도전은 내게 공을 넘겼다.


“전하. 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선위를 꺼내서 이방우의 정치적 욕심을 일으켰다. 왕사를 부활시키는 것도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성사해야 한다.


“왕사를 두는 건 일국의 중대사요. 이를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도당에서 잘 상의하시오.”

“고작 왕사의 부활을 결정하는 겁니다. 정몽주의 제안은 없는 걸로 하시지요. 불교는 이미 망국의 종교라는 게 입증되었습니다.”

“이보시오. 나는 이 시중의 생각을 듣고 싶다는 말이오. 한데, 오늘 보이지 않아 도당에서 상의하라고 한 것이오.”


최고 결정권자를 언급하자 정도전은 움찔했으나 쉽사리 물러날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쉬면서 상황을 뒤틀었다.


“나는 이미 선위의 뜻을 밝혔소. 작은 문제는 내가 가볍게 옥새를 찍을 수 있으나 이토록 중대한 건 내가 할 수가 없소. 또한, 나를 왕으로 추대한 건 경들이었소. 경들이 아직도 나를 왕으로 생각한다면 이 난처한 입장을 제발 좀 이해해 주시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반발할 사람은 없다. 슬며시 정몽주에게 물었다.


“한데, 왕사라면 누구를 생각하고 계셨소?”

“승려 무학입니다.”


무학은 당대 최고의 고승이 아니라 이성계의 측근으로서 존재한다.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는 책략이 뛰어난 정치 승려였다. 이 사실을 모르는 성리학자는 이곳에 없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한 마디를 더 꺼냈다.


“난세긴 난세가 맞나 보오. 공명정대한 정몽주까지 이 시중의 마음에 들고자 하니 말이오.”


물러날 왕이었으나 이 정도의 비아냥은 허락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는 말해 줘야 아직도 남아 있는 나와 정몽주를 향한 의심을 걷어낼 수 있다. 즉, 오늘의 비아냥으로 나와 정몽주는 관계가 없다는 걸 공식화한 것이다.


누구도 오해하지 못하게.


“하루라도 빨리 이 난세가 끝나야 할 것인데 내가 참으로 근심이 많소. 도당에 가서 이 시중과 상의하는 김에 양위식도 논의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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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2 yu****
    작성일
    24.07.03 19:59
    No. 1

    하필 왕사에 무학대사..
    이성계가 왕이 되리라 예언한 대사라..ㅋㅋㅋ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42 rb******..
    작성일
    24.07.03 20:39
    No. 2

    리메전 작품도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다시 작가님의 글을 볼수 있어 좋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세계최강천
    작성일
    24.07.04 01:41
    No. 3

    정몽주vs정도전vs무학대사vs이방우vs이성계부인 강씨...흥미진진하네요. 다른 군부나 유학자 들도 합세하면 더 존잼일듯.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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