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날아오르기 님의 서재입니다.

고려왕이 되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새글

날아오르기
작품등록일 :
2024.07.03 13:49
최근연재일 :
2024.07.08 12:0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109
추천수 :
215
글자수 :
58,377

작성
24.07.03 13:50
조회
485
추천
22
글자
14쪽

3화 뒤바뀌는 역사

DUMMY

3화 뒤바뀌는 역사



선지교의 일이 발생한 직후 구금에서 풀려난 정도전은 이성계의 사가로 달려갔다.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여러 사람이 오갔으나 딱 한 명, 이방원만 보였다. 눈을 부라리며 다가가서 멱살을 잡았다.


“네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숙부님. 진정하십시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개경의 모든 백성이 이성계 대감을 욕하고 있다.”


개경의 심장부인 십자로를 지나칠 때 느낀 싸늘함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정도전은 지금껏 이토록 차가운 민심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었기에 죽일듯한 눈빛으로 이방원을 노려봤다.


‘한심한 놈. 일을 그렇게까지 했으면 정몽주를 죽였어야지.’


일은 정말 지독하게 꼬인 상태였다.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가장 완벽한 양위로서 역성을 도모할 수 있었다. 하루, 아니 고작 한나절도 가만히 있지 못하여 기어이 민심이 고려를 편들게 하였느냐? 고려왕이 양위를 선언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숙부님. 최영을 죽이고 역성을 본격화했을 때부터 민심은 우리 편이 아니었습니다. 어찌 모두 다 가지시려고 합니까.”

“이방원!”

“하면, 숙부님과 책사들의 죽음을 지켜만 봐야 합니까? 어찌 이렇게 탓만 하십니까!”


이방원의 항변에 정도전의 눈에서는 살기까지 감돌았다. 지켜보던 이방과가 황급히 개입했다.


“숙부님. 이 일은 제가 주도한 겁니다. 부디 진정하십시오.”


이에 정도전은 고개를 홱 돌려 이방과를 노려보았다.


“너 역시 칼을 들고 강안전에 갔다지? 십자로의 백성이 쉬지 않고 너희의 일을 말하고 있다. 하. 그리고 나와 동지들을 살리고자 했다는 변명 따위는 집어치워라. 하. 애초에 능력도 안 되는 너희가 주군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역성에 발을 들이밀었던 것부터 문제였으니까.”

“······.”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이성계의 아들들을 보며 정도전은 멱살을 쥔 손을 내려놓은 채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주군께서 자식 농사만큼은 실패하셨구나.”


뼈가 따가울 정도로 신랄한 말이었다.

그리고


“아주 옳은 말이오.”


노기가 잔뜩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삼봉 선생.”

“이르십시오.”

“저 새끼들은 이제 내 새끼가 아니오.”


이성계의 경고에 이방과와 이방원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버님. 방과입니다. 소자들은······.”

“내 귀에 너희 목소리가 또 들리면 사지를 분질러 버릴 것이다.”

“······.”


마치 범과 같이 으르렁거리듯 다시 이어진 경고에 이방과는 결국 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혀를 차던 정도전도 경고를 이어갔다.


“어차피 새 나라에서 왕자의 일은 없다. 물론, 왕자이니 최소한의 부귀영화는 보장될 것이니 더는 나서지 말라. 알겠느냐? 쥐 죽은 듯이 살아야 할 것이다.”

“그저 아버님의 노여움이 풀리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소생도 형님과 뜻이 같습니다.”


노려보며 몸을 돌린 정도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잘 지냈나?”


정몽주가 들어오고 있었다.


-----


왕조를 교체하려는 이성계와 정도전이었으나 어떤 순간도 지금보다 당혹스러울 수는 없었다. 반면, 정몽주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고 있었다. 대화의 주도권이 그에게 있었기에 찻잔이 내려갈 때나 대화가 시작됐다.


“대감. 방원이의 일을 조영규에게 떠넘긴다면 세상 사람들이 비웃을 겁니다.”

“알지요. 내가 어찌 모르겠소. 명백하게 방원이의 실수였소.”

“실수라고 하셨습니까? 소생은 역성에 참여할 의사를 방원이에게 전했으나 철퇴를 휘둘렀습니다. 이게 어찌 실수가 됩니까?”

“포, 포은. 그게 무슨 말인가? 정말인가?”


눈치를 살피던 정도전이 깜짝 놀라서 끼어들었다.


“방원이나 조영규에게 물어보게.”


대질하면 밝혀질 수밖에 없는 일을 정몽주가 거짓으로 꾸며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정도전은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만히 있었으면 포은이 옥새를 들고 왔을 것이다. 모든 게 완벽했을 것이거늘.’


이방과와 이방원의 섣부른 행동이 일을 그르쳐도 크게 그르쳤다. 이성계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쳐 나가 두 아들의 다리를 분질러버리고 싶었다.


분을 삭이는 모습이 역력한 이성계를 흘긋 본 정몽주는 찻잔을 입에 갖다 대며 나직하게 말했다.


“소생은 이 일에 대감이 개입했다고 여깁니다. 대감의 동의가 없었다면 가별초가 강안전을 범하고, 이방원이 백주에 소생을 죽이려고 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포은. 오해하지 말게. 이 일은 대감과 아무런 연관이 없네. 그런데 백성에게 그리 외친 건 과했네.”


정도전의 첨언에 정몽주가 피식 웃었다.


“삼봉. 자네는 이제 협잡꾼이 다 되었군. 하긴. 위화도 회군 이후 자네가 보여 준 건 협잡과 칼부림이 전부였네. 그래. 그러니 내게 죽는 그 순간에도 그냥 조용히 죽었어야 한다고 말하는 거겠지.”

“포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됐네. 내가 자네를 죽이려고 했으니, 자네가 나를 원망하는 건 당연하겠지.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탓하지도 않겠네.”


정도전은 따지려고 했으나 이성계가 만류하자 더 나설 수는 없었다.


“포은 선생. 내가 어찌하면 되겠소? 두 아들을 벌하면 되겠소?”

“마음 같아서는 그리하고 싶으나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누구보다도 혈육을 아끼시는 대감인데 말입니다.”

“선생의 뜻을 따르겠소.”

“조영규를 파직해야겠지요. 소생은 그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러겠소.”


어차피 이성계가 이방원이나 이방과를 영원히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영규는 아니었다. 그가 전주 이씨의 충성스러운 무장이었으나 이런 사안의 책임자로 내치는 건 충분했다.


“선생. 이제 속내를 말해 주시오. 나와 함께하기로 하셨소?”

“소생은 고려의 재상이었기에 최선을 다해서 대감을 막았습니다. 그러니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 어찌 손을 잡지 않겠습니까.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고려 왕가의 존속은 약조해 주십시오. 양위가 이뤄지는 순간 모든 힘을 상실할 것인데 굳이 탄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몽주의 요청에 이성계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하오. 응당 그리할 것이오.”

“한데······.”


정몽주가 정도전을 슬며시 바라보며 말했다.


“양위는 어찌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

“미뤄야지. 지금은 양위가 이뤄지면 찬탈의 형식이 될 것이네.”

“무슨 말인지 알겠네. 하지만, 시간을 끌수록 백성의 동요만 커질 것이네. 차라리 속도를 내어 백성을 살피는 게 좋지 않겠나? 나는 하루라도 빨리 백성을 위한 개혁을 감행하고 싶네.”

“포은. 자네는 그동안 대업을 함께 하지 않았기에 잘 모르는 걸세.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

“······.”


정도전의 날카로운 말에 정몽주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자네 말이 이상하군. 기껏해야 한 달 정도로 무엇을 할 수 있나? 내 말대로 하게.”

“포은. 다시 말해야 하나?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네. 그리고 한 달? 어림도 없네. 몇 달은 더 소모될 것이네. 그러니 더 개입하지 말게.”

“이보게. 삼봉. 내가 하는 말이 다르지 않네. 몇 달이나 한 달이나 뭐가 다른가. 당장 민심이 사나운 건 어쩔 방법이 없네. 그러니 새 왕조를 열어서 속히 개혁을 추진하는 게 옳아. 백성을 살펴야지. 그러니 이 일은 내게 맡기게. 내가 알아서 옥새를 받아오겠네.”


정도전의 볼이 씰룩거렸다.


‘포은이 뒤늦게 끼어들어서 모든 공을 독차지하려고 하는구나.’


이성계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정몽주가 옥새까지 가져오면 대업의 과실은 그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그간 고생한 사람들은 단번에 소외될 것이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생각을 굳힌 정도전은 이성계를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대감. 1년은 필요합니다. 과전법의 성과가 더 커지고, 개혁을 단행하여 민심이 안정되었을 때 만백성이 지지하는 양위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음.”


이글거리는 정도전의 눈동자를 본 이성계는 갈등했다. 하루라도 빨리 지긋지긋한 고려의 하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포은도 내 편이 되었는데 1년이나 미뤄야 하는가.’


대업을 시작할 때 설정했던 목표가 모두 완성됐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 고민으로 인해 찰나 간 스친 정몽주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하하하. 알겠네. 삼봉. 자네가 가장 잘 알겠지. 그래. 하면, 1년으로 알겠네.”


정몽주가 한 수 물리면서 이성계는 속내를 꺼내지 않았다. 정도전과 정몽주 모두 유예를 말하는데, 정치적 야욕을 보인다는 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


딱 하루였으나 나를 죽이려는 사람을 만나고, 정말 죽을 뻔한 누군가를 구한 시간이었다. 한국의 정치 시간과 비교하면 가히 1년의 긴장감이었다. 정말 제대로 된 신고식이고, 자찬해도 될 정도로 성과가 좋았다. 정몽주를 살렸고, 적을 동요시켰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왕이 재상들과 국정을 논의하는 선인전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정몽주와 눈이 마주쳤고, 잠시 상념에 빠졌다.


*****


정몽주는 죽다 살아난 사람답게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역한 피 냄새가 확 올라왔으나 차마 내색할 수는 없었다. 또,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나는 정몽주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고, 정몽주도 내게 무사하냐고 묻지 않았다. 여기서 알 수 있었다. 공양왕과 정몽주는 이성계라는 주적과 싸우기 위해서 성립된 계약 관계라는 걸 말이다.


“전하. 신에게 반드시 살아남으라고 하셨사옵니다. 하여, 신은 전하께 역도를 토벌할 방책이 있다고 여겼사옵니다. 한데, 양위를 선언하셨사옵니다. 신이 이를 어찌 생각해야 하옵니까?”

“우리 서론은 빼지요. 지금 내가 옥새를 내밀면 이성계가 받을 수 있소?”

“당장은 민심을 살피기에 머뭇거릴 것이옵니다. 하오나 그 또한 시간 문제가 아니겠사옵니까.”

“그렇소. 우리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오. 그래야 승산이 있소.”


정몽주는 답변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구체적인 계획을 말해 달라는 의미였다. 애석하게도 공양왕에 대한 신뢰가 별로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포은 선생. 우리 딱 1년만 해 보지요.”

“왜 1년이옵니까?”

“이미 만백성이 삿대질하는 형세는 만들었소. 이때 포은 선생이 투항하는 척하면 1년은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오.”

“1년으로 뭔가 바뀌겠사옵니까?”

“1년으로 2년을 만들 힘을 만들어야지요. 또 2년으로 5년, 5년으로 10년을 확보하면 세상은 지금과 달라질 것이오.”


정몽주는 여전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동자에는 신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실패하면 어찌할 생각이시옵니까?”

“평화롭게 양위할 것이니 나는 살 수 있소. 하면, 죽을 때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려 부흥의 대업을 꾀할 것이오.”


점차 정몽주의 표정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한 가지만 더 여쭤도 되옵니까?”

“물론이오.”

“만일 신이 죽었으면 어찌하려고 하셨사옵니까.”

“선생이 죽으면 고려도 무너지겠지요. 나는 막을 힘이 없소. 그런데 막을 수 없다고 해서 그냥 넘겨줄 생각도 없었소.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자결하여 이성계에게 똥물이라도 던질 생각이었소.”


죽음이라는 걸 다시 경험했기에 내 목소리와 눈빛에 거짓은 없었다.


“신이 한 번 더 전하를 믿어도 되겠사옵니까?”

“사람을 왜 믿소? 오늘 내가 한 말을 이성계에게 전하면 나는 폐위되어 유배될 것이오. 그 뒤 죽겠지요. 모르겠소? 나는 목숨을 선생에게 맡긴 것이오.”

“음. 신이 역도의 편이 될 것이라는 전제를 가정하셨사옵니다.”

“선생이 이성계의 신하가 될 생각이면 최고의 권세가 보장될 것이오. 또한 내 말이 알려지면 고려의 마지막은 그나마 장렬할 것이니 선생은 해볼 만한 일이지요. 물론, 후자일 경우 선생은 내 죽음을 본 뒤 다른 방법으로 고려의 마지막을 빛나게 하겠지요. 어떻소? 군주가 신하에게 이 정도로 속내를 꺼낸 것이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정몽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이 전하를 한 번 더 믿을 것이옵니다.”

“믿지 말고 그냥 보시오. 그러다 보면 믿어질 것이오.”


말은 믿겠다지만 여전히 의뭉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한 정몽주였다.


그래 이렇게 나오는 게 당연한 거다.

그만큼 작금의 왕은 신뢰가 없었으니까.

잠시 정몽주를 바라본 나는 그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러니 선생은 지금 가서 이성계를 만나고 오시오.”


내 말에 정몽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만하면 됐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몽주도 이렇게 고개 빳빳하게 세우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


상념을 거두고 재상들을 내려봤다. 이미 나를 왕으로 보지 않았기에 눈빛들이 참 별로였으나, 이런 분위기를 감내할 수 있기에 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들의 급소를 찌를 것이다. 원 역사에서 저들은 조선 건국 이후 심각한 분열에 휩싸였다. 이건 달리 말하면 조선 건국은 완벽한 이상과 신념의 집결체가 아니라 이권의 다툼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그래. 정치에 신념이 어디 있나.

모두 이권이지.


원래 백성을 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역적이고 간신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나는 아직은 공고한 적의 진영에 분열을 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시작한다.


“선위하겠소.”


나의 고려사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고려왕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주기) 매일 정오에 연재됩니다. 24.07.03 31 0 -
공지 (필독) 본 작품을 읽으시기 전에.... +4 24.07.03 346 0 -
10 10화 북풍(北風) NEW +2 10시간 전 166 16 12쪽
9 9화 분열의 씨앗(2) +4 24.07.07 248 16 12쪽
8 8화 분열의 씨앗(1) +1 24.07.06 282 16 14쪽
7 7화 본능 +3 24.07.05 342 19 12쪽
6 6화 전주 이씨의 후계자 +3 24.07.04 397 24 12쪽
5 5화 갈라치기(2) +3 24.07.03 405 25 11쪽
4 4화 갈라치기(1) +2 24.07.03 421 20 12쪽
» 3화 뒤바뀌는 역사 +2 24.07.03 486 22 14쪽
2 2화 공양왕이 되었다 +2 24.07.03 574 31 15쪽
1 1화 두 번째 기회 +12 24.07.03 761 26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