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225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29 07:50
조회
42
추천
2
글자
12쪽

에필로그 1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눈 뜨면 옆에 있어 줄 거라는 물음에 돌아온


- 응. 걱정하지 마.


라는 대답.

물론 죽어서도 옆에 있어 달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죽을 리 없다고, 곁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언제부터인가 당연히 여겼다.


대답하는 표정이 조금 미묘했지만, 그래도 믿고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



저 멀리서 들려오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

조금 먹먹한 걸 보니 아무래도 어디 방 안에 누워있는 모양이다.


조잡하고 딱딱하던 위즈의 침대와는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편안하고 포근한 침대.

다시 잠들 것 같은 베개와 따뜻한 이불.


그리고 위즈가 평소에 그러던 것처럼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는 손.


‘+위즈?+’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할 때 으레 뺨을 꼬집어 아픈지 확인한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죽음을 잠자는 것과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고.


‘+그렇다면 머리 쓰다듬는 손이 느껴지니까 안 죽은 걸까.+’


그 생각과 함께 안도감이 몰려온다.


‘+위즈랑 나, 둘 다 성안으로 들어온 거구나.+’


마지막에 쓴 마법으로 직접 죽인 군단장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 안도감을 버리고 싶지 않다.

마냥 아이처럼, 위즈가 빨리 잘했다고 칭찬해주기를 바랄 뿐.


“+으음,+”


정신이 조금 더 뚜렷해지고, 뻣뻣해진 몸을 움직이려고 힘을 준다.

그러고 보니 얼마나 쓰러져 있었을까.


“+리나?+”


그런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뭔가 이상하다.

분명 손이 같이 멈춘 걸 보면 손 주인과 목소리 주인이 같은 사람일 텐데,

왜 여자 목소리가 날까?


“+리나? 정신이 듭니까?+”


그것도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아······, 어······,+”


오랫동안 일하지 않은 목은 소리를 내뱉지 못하고,

우선 살아있다는 신호만 보낸다.


“+리나! 여, 여기! 어서 의원을 불러오시오!+”

“+어마, 마마?+”


리나가 알아보자 크레센타의 에르나스트라 황후는 침대 위로 엎어지며 리나를 그대로 껴안는다.


“+다행이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어마, 마마, 여기는, 어디······.+”

“+안심해도 됩니다, 리나. 엘렌 성안입니다.+”


생각한 대로 엘렌 성에는 제대로 들어왔다.

의원을 불러 달라는 말을 보면 포로로 잡힌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옆에 있어 주겠다는 위즈는?

잠깐 화장실이라도 간 걸까?


“+저, 어마마마. 혹시······.+”

“마마. 의원이옵니다.”


밖에서 누가 리나 말을 끊자 황후도 고개를 돌린다.


“어서 들어오시오.”


자신보다 유창한 호라 말.

의원은 문을 열고 깊이 읍한 뒤 다가온다.

리나는 몸을 일으키려고 하나,


“+괜찮습니다. 누워있으세요.+”


평소라면 예의를 중요시했을 황후가 리나의 이마를 살포시 누른다.


“황녀 마마. 몸은 어떻습니까?”

“어······, 괜찮은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호라 말로 대답하자 둘 다 놀란다.

그래도 의원은 진찰을 계속하려 이것저것 몸 상태를 물어본다.


“혹시 왜 쓰러졌는지 기억하십니까?”

“마지막에, 마지막에······.”


생각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위즈가 그랬듯,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마지막에 큰 마법을 써서, 마력이 부족해서 쓰러졌을 거예요.”

“그전에는 따로 공격받은 게 없고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일전에 마법을 배우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요. 숲에서 처음 배웠어요.”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갓 마법을 배운 마법사가 한계 이상의 마법을 쓰면 이렇게 오랜 시간 잠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처음 그 마법을 배웠을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나도 그만큼 절박했던 걸까.’


“다른 불편한 점은 없으시고요?”

“네. 괜찮은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혹시나 몸에 이상이 생기시면 바로 불러주시지요. 저는 식당에 가서 마마께서 드실 죽을 준비하라고 일러두겠습니다.”

“저기, 바깥에서는······.”

“곧 성주께서 오셔서 직접 알려주실 겁니다. 지금은 푹 쉬십시오.”


그 말을 남기고 의원은 방 밖으로 사라진다.


“호라 말과 마법을 배웠습니까, 리나.”

“네? 아, +그렇사옵니다, 어마마마. 저······.+”


혹여나 혼날지도 모른다 싶어 조금 움츠리나

황후는 그저 미소지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소원을 이뤘군요.+”

“+네?+”

“+정말로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의 후손한테서 직접 마법을 배웠잖습니까.+”


숲 바로 앞에서 헤어지기 직전에 했던 얘기.

신경 쓰지 않았는데, 정말 그 말대로다.


“+잘 지낸 모양이던데, 이 어미는 안 보고 싶었습니까?+”

“+······보고 싶었사옵니다.+”


물론 오두막을 떠나기 싫었고, 크레센타로 돌아가기 싫었다.

지금까지의 삶이 모두 꿈이었고 위즈와 지내는 생활만 현실이었으면 했다.

그래도 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어마마마. 여기는 어디이옵니까?+”


일단 말을 돌리려고 주위를 보며 말한다.


“+엘렌 성 성주의 침소입니다. 리나를 위해서 방을 내줬지요.+”

“+그렇다면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시옵니까?+”

“+전후 처리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 곧······.+”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큰 목소리가 들린다.


“황후 마마. 블라스투스 테 살베니움 성주가 왔사옵니다.”

“들어오세요.”


다시 열리는 문.

앞에 있는 사람의 외모가 유난히 눈에 익다.

검은 머리칼에 보라색 눈동자와 커다란 키.


“처음 뵙겠습니다, 아에리나 황녀 마마. 엘렌 성의 성주이자 엘렌 지역의 영주인 블라스투스 테 살베니움입니다.”


블라스투스 테 살베니움.

라스.

위즈에게 있다던, 영주 직위의 동생.


“······위즈 동생, 맞죠?”


예의도 잊은 채 내뱉은 말에 스스로 당황해 입을 가리지만,

라스는 그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제 못난 형이 누를 끼쳤을까 두려울 따름입니다.”

“아니요, 오히려 제가 위즈한테 누를 끼쳤지요.”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을 아이가 예를 차리는 모습이 귀여워

뒤에 따라온 현자들도 조금씩 웃는다.


“부족한 형이 마마께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래도 위즈는 절 구해주기도 하고······, 아, 그것보다, 위즈는 어디 있어요?”

“형님 말입니까?”

“네. 깨어날 때 옆에 있어 주겠다고 했는데, 혹시 잠시 쉬러 갔나요? 그래도 제가 일어났다는 걸 알면······.”

“저, 마마.”


라스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리나에게 말한다.


“형님은 이 성에 없습니다.”

“······네?”

“형님은 수배자입니다. 만약 이 성에 들어왔다면 그 즉시 체포해 처형해야 하는 인물입니다.”


위즈가 이 전쟁에서 어떤 공을 세웠건,

일단은 몇 년 전에 가문의 원로들을 학살한 범죄자다.


“그, 그렇다면 전 어떻게 여기에······, 어떻게 이 성안에 들어왔죠?”



******



저 멀리서 적의 진형이 붕괴할 때

라스 역시 케마에르 부대 갑옷을 입고 출정 준비를 했다.


이긴 싸움, 직접 출정해 사기를 올린다면

황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기 더 쉬울 테니까.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는지 확인할 때 저 멀리서 섬광이 번쩍이고,


“성주님! 적의 군단장이 죽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수확에 사기가 오른 정예병들과 함께 숨겨진 문으로 나섰다.

섬광과 함께 군단장이 죽었다는 소문이 이미 퍼졌는지,

창을 꼬나쥐고 지세가 험한 곳으로 달리자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적병의 저항이 약해진다.


“막아라! 저들을 잡아라!”


개중에는 제대로 싸우려고 한 적장도 있었으나,

일격에 케마에르의 창에 꽂힌 먼지가 되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적들이 유난히 몰려있는 곳을 찾았고,


“형님!”


애타게 외치는 목소리에,


“라스! 여기!”


다행히 대답이 돌아왔다.


“진격! 적을 모두 베라!”


라스의 명령에 온전치 못한 갑옷을 두르고 달려온 병사들이

사슬돔을 둘러싸고 공격하던 적병을 모조리 난도질한다.


주위를 정리한 뒤 부하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적병을 막고,


“형님! 제가 왔습니다!”


라스는 말에서 내려 사슬돔을 향해 다가간다.

사슬돔이 열리자 안에 있는 건 형과 처음 보는 크레센타 출신 여자아이.


“이 아가씨가······.”

“크레센타 황녀야.”

“형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어쩌다 보니. 얘도 내 과거 모두 알고 있으니까 내 얘기 안 감춰도 돼.”


그러면서 아이를 라스한테 넘긴다.


“왜 그러십니까? 저는 말을 몰아야 하니 형님이 안고 제 뒤에 타십시오.”

“안 되는 거 알잖아.”

“형님이 마법으로 몸 숨길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즈는 고개를 젓는다.


“내가 어길 법은 널 가주로 삼겠다고 원로들 죽인 거로 충분해. 이미 적들 죽여서 선도 넘었고.”

“선 넘었으니 조금 더 뻔뻔해지시지요.”

“그러면 리나 얼굴을 떳떳하게 못 보는걸.”


잔뜩 지친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품에서 봉인된 편지 하나를 꺼낸다.


“리나는 지금 큰 마법을 사용해서 마력이 부족해가지고 쓰러진 거야. 물론 험한 숲에서 살았으니 진찰을 더 해봐야겠지만.”

“이건 뭡니까?”

“리나가 깨어나면 줘. 리나는 내가 같이 성으로 가는 줄 알고 있으니까.”


편지를 품에 넣는 걸 보며 위즈가 이어 말한다.


“그래서, 다음 계획은?”

“호위할 몇을 빼고 나머지는 북서쪽으로 달릴 겁니다.”

“아직 적은 많고 군단장의 죽음을 모르는 놈들은 계속 저항할 거야. 내가 포위망 바깥까지만 따라갈게.”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지요. 모두 들어라!”


어느새 위즈가 만든 사슬벽 뒤에서 창으로 적을 막던 병사들에게 라스가 외친다.


“여기 이 마법사가 포위망 바깥까지 동행하며 길을 틀 거다. 너희의 목표는 목숨을 걸고 전투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일어나게 해서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라스 품에 안긴 리나의 머리를

당장 울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쓰다듬는다.


“모두 돌아와서 보자. 형님.”

“······그래.”


북서로 떠나는 지휘관이 손을 내밀어 위즈를 뒤에 태우고

그 주위를 다른 병사들이 둘러싸 위즈를 보호한다.


“출발!”

“돌아가자!”


지휘관과 라스의 말에 모두 창을 제대로 쥐고 위즈도 마법을 쓸 준비를 한다.

곧 사슬벽이 사라지면서,


“나중에 뵙겠습니다, 형님!”

“오냐!”


위즈가 시야에서 멀어진다.



******



“그러니까, 저기가······.”

“네. 제가 형님을 마지막으로 본 곳입니다.”


초원이 붉게 빛나는 건 석양 때문일까, 죽어간 이들의 피 때문일까.

적으로 가득하던 초원이 지금은 호라 깃발을 꽂은 천막으로 가득하다.


고집을 부려서 와본 외성 위.

위즈와 함께 싸웠던 곳을 보다 보면 당장에라도 위즈가 옆에서 볼을 찌를 것 같다.


“······전쟁은 어떻게 이겼나요?”


울고 싶은 걸 참으려고 일부러 다른 얘기를 꺼낸다.


“제 명령을 받은 케마에르 부대가 북서쪽으로 달렸습니다.”

“왜 북서쪽이죠?”

“거기에 황군이 있을 것 같아서요. 선조께서 보살펴주신 건지 정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케마에르 부대로 성을 공격한 건가요?”

“아니요. 그저 봉기의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엘렌의 정예부대가 갑자기 나타나니

적은 다른 성들도 함락되어 연락이 없다고 생각했고

백성들은 엘렌 성이 이겼다고 생각해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잠깐의 시간만 필요했죠.”

“시간이 더 걸리면 적이 눈치채니까?”

“네. 그리고 작전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성벽 위에서 경계 중이던 적병은 당황했으며 노역 중이던 백성들은 환호하며 적병의 무기를 빼앗았다.


“그렇게 호라 황군이 엘렌 지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며, 다른 성에서도 황군을 보자 백성들이 일어나서 적병을 붙잡았습니다.”

“왜 그전에는 가만히 있던 건가요? 성주님 말대로라면 굳이 케마에르 부대나 황군이 아니더라도 이길 수 있었던 거 아닌가요?”

“형님 성격을 생각해보면, 마마께서도 아마 아실 것 같습니다만.”


리나가 테르막시아에게 잡혔을 때 위즈가 순순히 무릎을 꿇고 묶였던 이유.


“저들에게는 이 나라보다 더 우선해서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8 에필로그 5(마지막) 21.08.02 50 2 15쪽
117 에필로그 4 21.08.01 40 2 12쪽
116 에필로그 3 21.07.31 36 2 11쪽
115 에필로그 2 21.07.30 35 2 12쪽
» 에필로그 1 21.07.29 43 2 12쪽
113 112화 21.07.28 44 2 13쪽
112 111화 21.07.27 30 2 11쪽
111 110화 21.07.26 53 2 12쪽
110 109화 21.07.25 33 2 11쪽
109 108화 21.07.24 37 2 11쪽
108 107화 21.07.23 37 2 12쪽
107 106화 21.07.22 32 2 12쪽
106 105화 21.07.21 35 2 11쪽
105 104화 21.07.20 35 2 12쪽
104 103화 21.07.19 40 2 12쪽
103 102화 21.07.18 39 2 12쪽
102 101화 21.07.17 35 2 12쪽
101 100화 21.07.16 35 3 11쪽
100 99화 21.07.15 41 2 11쪽
99 98화 21.07.14 42 2 11쪽
98 97화 21.07.13 42 2 11쪽
97 96화 21.07.12 37 2 12쪽
96 95화 21.07.11 43 2 11쪽
95 94화 21.07.10 38 2 11쪽
94 93화 21.07.09 38 2 11쪽
93 92화 21.07.08 39 2 11쪽
92 91화 21.07.07 42 2 11쪽
91 90화 21.07.06 43 2 11쪽
90 89화 21.07.05 41 2 11쪽
89 88화 21.07.04 40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