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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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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231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04 07:50
조회
40
추천
2
글자
11쪽

88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진즉 바다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기에 있었나.”


오두막과 멀리 떨어진 숲속 어딘가.

토루마가 나무에 앉아 저 멀리서 싸우는 위즈와 리나를 쳐다보고 있다.


“전에는 뒤도 안 돌아보고 호라를 떠나겠다고 그러더니 이젠 아예 눌러앉았구나.”

“그때 그냥 조금 더 기다릴 걸 그랬어.”

“그러게 내 말을 들었어야지.”


테 살베니움이 다시 깨끗해지리라는 말.

시간의 말이니 확실할 텐데도 어둠은 끝까지 듣지 않고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자신의 궁으로 떠났다.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정착하려니 영 힘에 부치네.”

“아예 자네 궁은 버리고 다시 온 건가.”

“응. 뭐, 여기에도 내 궁은 있으니까. 너도 그렇고.”

“다만 나는 여기에만 궁이 있지. 그것보다, 흐리프키르스들은 아직도 자네를 기억하고 있던데 말이야.”


테 살베니움 본가 사당에 나타난 글자와 새 가주 주위를 돌던 매를 보고

저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저버렸던 존재인데도.


“흐리프키르스 기준으로도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고마울 뿐이지.”

“고맙다? 설마 지금 고맙다고 했는가?”


토루마가 뒤를 돌아본다.


“자네도 많이 변했군. 흐리프키르스에게 감사를 느끼다니. 아니, 이건 오염되었다고 해야 할까.”

“당연히 그냥 해본 말이야.”

“알고서 한 소리네.”


창조자가 제 피조물에 감사를 느낄 일이 있을까.


“어쨌든, 자네는 떠나면서도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무슨 말이야?”

“자네가 보고 있는 저 아이 말일세. 호라를 떠나는 날에 선택했던.”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저 아이가 선택받은 거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저 아이는 토루마와 아라의 계획에 들어갔다.

출신 신분이나 자라온 배경 등은 토루마에게 아무 의미 없다.

그저 토루마 앞에 나타난 게 저 아이다.


“거짓말하지 말게. 내, 자네를 얼마나 오래 봤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흐리프키르스가 부끄러움을 감출 때 하는 행동 아닌가.”


조용히 아라를 노려보지만, 아라는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 눈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토루마에게 소리친다.


“분노하지 말게! 그건 나와 자네의 감정이 아니야!”


주위의 나무나 풀들이 갑자기 시들거나 새싹으로 돌아간다.

근처를 지나가던 흐리프키르스가 있었다면

분명 순식간에 늙거나 순식간에 갓난아기가 되었으리라.


“위대하신 지프메께서는 분노를 키레시에게 주셨다. 우리는 그걸 알고 따라야 해!”

“나도 알고 있어. 너야말로 화내지 마.”


맞는 말이라 토루마는 한숨만 내쉰다.


“그래. 솔직히 보험이기는 했어. 네가 한 말도 있고, 데스트와 한 약속도 있으니까.”


- 내가 네 집안을 직접 보살피겠다.


“그래서 최소한의 연결점으로 남겨둔 거야.”

“그런 것 치고는 대우가 너무 박하지 않나. 흐리프키르스 식으로 표현하자면, 양심이 없다고나 할까.”


그렇게 말하고 낄낄대자 토루마가 쏘아붙인다.


“웃지 마. 지프메께서는 환희도 빛에게 주셨어.”


그러자 아라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뚝 그친다.


“알고 있네. 그저 흐리프키르스들을 흉내 냈을 뿐이야.”

“뭐, 그분께서는 아무 신경 안 쓰실 것 같지만.”

“함부로 말하지 마라. 우리가 어찌 위대하신 분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닫겠는가.”

“그래, 그래. 멋대로 세상을 만들고 흐리프키르스에게 마법을 가르친 나와 키레시는 모르겠지.”


토루마가 툴툴거리고 아라는 계속 저 멀리 오두막 방향을 보다가 이어 말한다.


“아무튼, 대우가 박하다고 생각한 건 진심일세.”


어둠은 어디에나 내려앉고, 시간은 어디서나 흐른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둘은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위즈를 본다.


“저 아이를 시험하려는 건가?”

“딱히 시험 같은 건 아니야. 그냥······.”

“그냥?”

“그냥 변덕이라고 해야 할까, 유흥이라고 해야 할까.”


방금까지 골골대던 위즈는 리나가 나타나자 거짓말 같이 살아났다.

예전 같으면 얼마 안 가서 항복하는 척하고 도망쳤을 텐데.


“저 아이가 다시 감정을 되찾으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감상은?”

“별로야. 영 이상하네.”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젓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역시 자네가 말한 그 길이 저 아이의 운명인가.”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지.”

“거짓말하지 말게. 그것도 흐리프키르스에게 옮은 건가.”


리나가 방어막으로 적들을 밀어내고 그 틈에 위즈가 사슬로 일제히 꿰뚫는다.


“걱정돼?”

“그래. 우리의 계획에 억울하게 낀 입장이지 않나, 저 아가씨는.”

“괜찮아. 위즈가 지켜 줄 테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안 그러면 이번에는 자네와 나의 전쟁일세.”

“왜?”

“자네가 그 짓을 저질러서 아가씨가 위험에 빠진 것 아닌가.”

“한낱 흐리프키르스의 안위에 그런 각오까지 하는 거야?”

“흐리프키르스를 생각하는 건 자네를 이길 수 없지. 아직도 그 약속을 붙잡고 있으면서.”


창조자가 제 창조물에 한 약속에 강제성이 있어 봤자 얼마나 있을까.


허나 토루마는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이 죽고 수백 년이 지나도

약속을 잊지 않는다.


“어쨌든 나랑 너랑 싸울 일은 없겠네.”

“확신할 수 있는가?”

“응. 확신할 수 있어. 저 아이는 분명 지프메께 반역한 자들을 모두 없앨 거야.”

“소멸인가. 그렇기에 소멸인가.”


고요에서 나온 소멸이라니,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다.


“저 아이는 자신의 삶이 우리의 도구라는 걸 깨달았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



“헉, 헉, 헉,”


아사르군더니움 소속 궁병 장교 하나가 정원을 나와 숲을 가로질러 뛴다.


‘저게 뭐야, 저게 뭐야, 저게 뭐야!’


전우를 놓고 도망쳤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가슴 한켠을 움켜쥔다.


하지만 저 앞에서 돌격하던 동료들이

어디 한 부분을 잃은 채로 허공을 나는 모습을 보고

멀쩡히 싸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어차피 도망치기 시작할 즈음에 이미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그 좁은 틈에 끼어있었다.

다들 먼저 나가려고 몰리는 통에 몇몇이 방어막에 부딪혔는데

마법을 써서 동료들을 죽이고 빠져나가려 한 걸까,


- 으아악!

- 미, 밀지 마!


마법병 몇이 갑자기 방어막에 붙은 채 타죽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중요한 건 동료 따위가 아니라 뒤에서 다가오는 죽음이니까.


동료들을 밀쳐내고 구멍을 통과해 달린지 한참,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확실히 멀어졌다.


‘설마 여기까지 따라오나?’


몸을 돌려도 보이는 건 빽빽한 나무뿐.

놈은커녕 전우도 보이지 않자 그제야 걷기 시작하고 숨을 고른다.


“대체 저런 걸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나무를 팔뚝으로 치고 숨을 헐떡이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린다.

사단장은 죽고 완벽할 줄 알았던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놈을 잡기 위해 만든 특수조도 몰살당했다던데

이러면 엘렌에 있는 아사르군더니움 모두가 덤벼도 못 이기지 않을까?


‘일단 아군을 만나야 할 텐데.’


분명 전선 이탈로 사형당할 처지나

일단 아군을 만나야 그나마 살 확률이라도 높아진다.

다른 전우들도 명령 위반과 전선 이탈로 사형을 구형받고 싶지는 않을 테니,

다들 사단장이 도망치라고 했다고 말을 맞춰 줄 테고.


지도를 본 적도 없고 이 근처 아군이 모두 몰살당했다는 것도 모르나,

이 장교는 일단 발을 옮긴다.


쿵.


“으악!”


뭔가에 부딪혀 그대로 주저앉는다.

넘어지다가 활을 깔고 앉아 부러뜨려버렸다.


‘뭐, 뭐야? 벽?’


오면서 본 적 없는, 희미하게 보랏빛이 나는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혹시 근처 부대에서 설치해둔 걸까.

호기심에 손을 다시 갖다 대보는데 갑자기 그 벽이 움직이더니

팔을 움켜쥐고 입도 틀어막는다.


“별다른 방법도 없이 마법에서 벗어날 줄 알았어?”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눈을 돌리는 순간, 가슴에 심한 통증이 몰려온다.

가슴을 꿰뚫은 사슬 때문에 온몸이 불타는 것 같다.


“자, 더 고통스러워지기 싫으면 곱게 내가 하는 말에 대답해. 알았어?”


위즈가 장교에게 다가가 어깨동무하고는 조용히 귓가에 속삭인다.

입을 풀어주었는데도 고통에 아무 말 못 하자 사슬로 더 후빈다.


“알았냐고.”

“으, 으,”


억지로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첫 번째 질문. 방어막 없애는 법을 어떻게 알았지?”


고통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죽고 싶지 않아서 대답한다.


“화살에, 쪽지가, 묶여서,”

“쪽지? 누가 방어막 없애는 법을 알려줬나?”


고개를 끄덕인다.


‘이 숲에서, 그것도 쪽지로 알려줄 만한 자라면······.’


토루마. 토루마 밖에 없다.


“컥!”


팔을 풀자 장교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리고 급히 피를 막으려고 가슴을 문지르는데 상처가 없다.


“상처까지 없앴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거로는 안 죽어.”

“뭐, 뭐?”


듣도 보도 못한 마법에 위즈를 빤히 쳐다보다 조심히 물어본다.


“이건, 여기는, 이 방어막은 대체 뭐야?”

“이거? 내가 만든 거야. 내 마력으로.”


방어막이 뚫리고 적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이미 위즈는 조금씩 마력을 구멍 너머로 보냈다.

그리고 적이 도망치기 시작할 때 테르막시아를 상대할 때처럼

자기 마력으로 방어막을 만들었다.


물론 급조한 만큼 제대로 공격하면 뚫렸을 텐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이 장교처럼 당황해서 방어막을 두드리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 뿐.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다 없앴어.”

“뭐?”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든다.

섬멸 마법 쓴 후유증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말했잖아. 살려 보내지 않겠다고.”

“어, 언제······.”


병사의 왼팔이 사라진다.

아까처럼 다시 낫게 해주거나 피를 멈추게 해주지도 않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내가 왜 살려뒀다고 생각해?”


비명에 위즈의 숨이 살짝 거칠어진다.


“정보를 캐내려고? 물론 그 이유도 있어. 너희를 모두 없애려면 정보는 필수니까.”

“제, 제발,”


병사가 애원하자 이번에는 오른팔을 없앤다.


“으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경고야. 너희 아사르군더니움에게 보내는 경고.”


이제 다리로 손을 옮기는데 이번에는 다리 전체를 없애지 않고

발부터 천천히 시작한다.


“감히 시조의 마법을 깨뜨리고,”


양발이 사라진다.


“내 거처를 불태우고,”


양 정강이가 사라진다.


“요정을, 리나를 위협한 죄.”


무릎까지 완전히 사라졌다.


“마지막에 남은 당신으로 당신네 군대에 경고할 거야. 나도 가만히 안 있겠다고.”


위즈가 한숨을 쉬고 허벅지를 없앤다.


“으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팔다리가 없어진 채로 오두막에서 먼 곳에 떨어져 있으면 다들 질겁하겠지?”


성대까지 없애면 당신도 사람들을 못 부를 테고.

벌벌 떠는 병사의 얼굴에 위즈의 손이 다가간다.


“자, 이제 작별이야.”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나 사지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팔다리도 없고 목소리도 못 내는 고통, 한번 느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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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06화 21.07.22 3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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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04화 21.07.20 35 2 12쪽
104 103화 21.07.19 4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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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화 21.07.10 38 2 11쪽
94 93화 21.07.09 38 2 11쪽
93 92화 21.07.08 4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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