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224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06 07:45
조회
42
추천
2
글자
11쪽

90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이 아이가 토루마의 계획에 연루되었다.

그 시꺼먼 속이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찼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멀쩡한 계획은 아니다.


“우으······.”


형체를 간신히 알아볼 정도로 탄 침대.

리나가 인형을 끌어안고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의자에 앉은 위즈가 이마에 손을 얹고 쓰다듬는다.


얼굴이 편해지는 걸 보면

리나도 위즈가 머리를 쓰다듬자 악몽을 덜 꾸는 모양이다.


‘방어막 뚫는 법을 알려준 건 분명 토루마다.’


토루마도 위즈가 리나를 거뒀다는 건 알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그걸 알면서도 왜 적에게 모두 알려줬을까.

이것도 다 그 계획이라는 걸까.


‘이번에야 막았다지만, 나중에는 또 어떻게 나올지.’


그나마 위즈처럼 계획 일부는 아닌 모양이지만.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하얀 머리카락.

위즈 냄새가 배어있던 오두막은 어느새 리나 냄새도 섞였다.


“으음, 위즈.”


리나가 몸을 돌리며 잠꼬대하자 깬 줄 알고 눈이 커졌다가 이내 다시 웃는다.

움찔거리다 손으로 허공을 젓는 손을 살며시 잡는다.


‘이 작은 손으로 날 도와주려 했을 줄이야.’


위즈를 위해 방어막을 펼치고 고친 손.

위즈가 힘들어하자 머리를 쓰다듬던 손.


“제발 이 아이만큼은 계획에서 빼줘.”


살짝 딱딱한 표정으로 깜깜한 허공을 보며 중얼거리니

어느새 방 안에 토루마가 들어와 있다.

토루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보라색 눈으로 위즈를 빤히 보기만 한다.


“제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할 말을 위즈가 내뱉는다.

살짝 놀랄 법도 하나 토루마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위즈?”


그에 맞춰 리나가 살짝 깬다.


“아침이야?”

“아직 새벽이야. 더 자.”


리나가 했던 것처럼 눈을 직접 감겨주자,

리나는 다시 숨을 크게 내쉬더니 잠에 빠진다.


인상 쓰지 않는 걸 보면 정말로 머리 쓰다듬는 게 효과가 있는 걸까.

부디 끔찍한 꿈은 안 꿨으면 하며 씩 웃고는 뒷문 밖으로 나간다.


어제와 똑같은 하늘, 똑같은 잔디.

하지만 희미하게 남은 피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토루마.”


깜깜한, 그래도 토루마의 속보다 밝은 밤하늘을 보면서 토루마에게 말을 건다.


“토루마. 당신의 계획이라는 게 대체 뭐야?”


토루마가 듣는 데 방해될까 봐 풀벌레들이 일제히 수다를 멈춘다.

고개를 돌리자 당연하다는 듯이 노파가 무서운 눈으로 서 있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그 계획에 리나를 굳이 끌어들여야 하는 거야? 아니, 리나가 꼭 있어야 하는 계획인가?”


리나 성격이라면 토루마의 계획에 자신도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뻐할 거다.

토루마와 알고 지내면 강한 마법을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겠지.

당연히 토루마에게 직접 마법을 배운 위즈는 어떻게든 리나를 막을 것이다.


한참 노려보자 노파가 대답하려고 입을 여니, 갑자기 숲이 울기 시작한다.

숲에 내려앉은 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어리석은 아이야.”


뇌를 쥐어짜고 가슴을 움켜쥐는 소리.


“위대하신 분의 뜻을 의심하지 마라.”


하지만 위즈도 물러나지 않는다.


“내가 흩뿌린 피로는 부족해?”

“네게 그렇게 큰 가치가 있다고 자부하느냐.”

“그럼 리나한테는 그렇게 큰 가치가 있어?”


그 말에 노파가 노려보더니 천천히 손가락으로 위즈를 가리킨다.


“언젠간 그 말로 네 가슴을 찌를 게다.”


그러곤 큰 바람이 일더니 위즈를 뒤로 날려 넘어뜨린다.

순식간에 느껴지는 풀밭, 그리고 둔탁한 아픔.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워 크게 숨을 내쉰다.

어차피 토루마는 사라졌으니.


어쨌든 필요한 건 들을 수 있었다.

정말로 토루마는 계획을 위해서 리나를 조금이나마 끌어들였다.

물론 엮이는 정도라면 위험하진 않겠지만, 계획을 짠 상대가 상대이니.

최악의 경우 리나를 크레센타로 보내야 하리라.


하지만 리나도, 위즈도 그걸 원치 않는다.

혼자 지내던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이미 리나는 위즈의 생활 일부가 되어버렸다.


행여 리나를 크레센타로 보내는 게 토루마가 세운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위해서 어떤 위협을 가하더라도,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는 안 움직일 거야. 내 삶이니까.”


싸워서 지키면 지켰지 절대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종, 카쿠스 지역 주르나 성의 성주가,”


엘렌 북쪽에 있는 카쿠스 지역 서쪽의 한 성.

한밤중에 성문까지 나온 성주의 목소리가 성벽 위에 은은히 퍼진다.


“토벌군 총사령관을 뵙습니다.”

“인사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소.”

“허나 어찌 제가 이름 높은 장군께 함부로 대하겠나이까.”


호라에서는 줄곧 엘렌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서 그나마 가능성 있는 엘렌 북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장(副將) 무르니수스를 총사령관으로,

참장(參將, 3품) 셋을 각 군사령관으로 삼아 토벌대를 보냈다.


“어이 이곳에 나와 계십니까.”

“잠이 오지 않아서. 그나저나 이곳은 테히칸 산맥 바로 남쪽이지 않소?”


카누악보다 지대가 높아 찬바람이 옷 안까지 들어온다.


“카쿠스 지역은 최근에 아사르군더니움에게 따로 피해를 보거나 하지 않았소?”

“제가 알기론 없사옵니다.”


테히칸 산맥을 경계로 아사르군더니움이 있는 금지된 땅과 맞닿아있어

아사르군더니움이 자주 월경하곤 했다.

가디우나투스 황제도 카쿠스 지역으로 도망쳤을 정도니.


“황제 폐하께서 강경책을 쓰시다 보니 아무래도 카쿠스로 넘어오는 건 포기한 모양입니다.”

“하긴, 적도 최전선을 그대로 뚫으려 하지는 않을 테니까.”

“적이 산꼭대기나 그 부근에 성채라도 세우지 않는 이상 카쿠스가 공격받을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중앙의 카누악이나 서쪽의 테히칸주르, 나렌 지역이 더 위험할 겁니다.”

“성채. 성채라.”


조금 생각해보고 성주를 돌아본다.


“테히칸 산맥 동쪽 끝이라면 적도 세울 수 있지 않겠소? 다른 곳보다 지대도 낮고 바다도 있으니까.”

“설마 적이 그러겠습니까. 성채를 세워 카쿠스를 위협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잖습니까.”

“그거야 그렇기는 하다만.”


성주 말대로 어쩌면 다른 접경 지역이 훨씬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카쿠스 지역의 군사들은 다른 지역 군사들보다 아사르군더니움과 더 잘 싸운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오?”

“다른 지역보다 산세가 준엄하고 백성들의 성질이 거세어 어떤 적이 와도 물리칠 뿐이지, 아사르군더니움이 상대라고 해서 더 잘 싸우거나 하는 건 아니옵니다.”

“그렇다면 카쿠스 지역의 군사를 데려가도 되겠소? 아사르군더니움과 더 잘 싸울 테니 말이오.”

“저희 군사를 말입니까?”

“물론 모두 데려간다는 건 아니오. 아사르군더니움이 카쿠스로 올 경우도 생각해야지.”

“바른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하옵니다.”


성주가 단칼에 거절한다.


“어째서요?”

“카쿠스의 병사들이 적과 잘 싸우는 건 카쿠스에서 싸웠기 때문이지, 태생적으로 잘 싸우기 때문이 아닙니다.”


산을 타고 나무가 많은 곳에서 싸우는 건 잘할 수 있지만, 평야를 달리며 싸울 수는 없다.


“평원이 많은 엘렌에서 싸우려면 기병이 필수일 텐데, 저희는 말을 탈 줄 아는 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짐이 될 겁니다.”

“그런가. 알겠소.”


무르니수스는 굳이 더 요구하지 않고 뜻을 접는다.

저 멀리 전서구가 다른 성을 향해 날아간다.


“그나저나 장군께서는 엘렌으로 진공하실 때 엘렌의 도움은 받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리가. 당연히 받아야 하지 않겠소.”

“엘렌 안으로 들어가는 전서구는 모두 활에 맞아서 떨어진다는데, 어떻게 연락하려고 그러십니까?”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러게 말이오. 나도 방법이 없소.”


보급로도 막혀 힘들 텐데, 전서구 잡는데 쓰는 화살은 안 아까울까.


“그렇다면 어떻게 엘렌과 연락할 생각이십니까? 이대로 황군이 공격해도 결국 막히지 않겠습니까?”


무르니수스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안 그래도 그게 가장 큰 과제요. 협공하기 위해 엘렌 성과 연락하는 것.”

“그러면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황군을 여기까지 보내신 겁니까?”

“우리는 폐하의, 아라의 힘을 모르지 않소.”


황제가 무르니수스를 총사령관에 임명하고

엘렌 수복을 명하며 칼을 내릴 때도 대신들은 반대했다.


그도 그럴 게, 엘렌 지역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 황군을 보내면

피해만 클 뿐이니까.


“그런데 여기 오셨단 말입니까? 폐하께 간언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나도 그래 봤소. 어머, 아니, 황군부 치라께서도 끝까지 반대하셨고.”

“헌데도 뜻을 굽히지 않으셨단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 카쿠스에 가면 모든 길이 열릴 것이다.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소. 그리고 무엇보다 승상 각하가 폐하의 편을 들었고.”

“각하께서도 참······.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야, 폐하를 끝까지 믿어야 하겠지만. 아, 물론 그렇다고 폐하를 따르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완고한 황제와 그 뒤를 밀어주는 승상.

그 둘을 어찌 이기랴.


“그렇다면 폐하께서 계책이라도 알려주셨습니까?”

“아니. 길이 열린다고만 하셨소.”

“길이 열린다니.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비신답니까.”

“성주. 폐하를 의심하지 마시오.”


무르니수스가 조용히 나무란다.


“하지만 총사령관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카쿠스가 엘렌보다 지대가 높다고 해도 병사들이 원하는 대로 막 뛰어 들어가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대가 높아 활로 쏘기 쉽다는 거지, 점령하기 쉽다는 게 아니다.

그리고 카쿠스와 맞닿은 엘렌 지역 성들은

호라 건국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화살 대비를 잘해놓았다.


“황제 폐하께서 훌륭한 군인이시고 그 능력도 뛰어나시어 위대하시다는 칭송을 받는다는 거야 이 미천한 것도 잘 알지만, 의심이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나도 마찬가지요. 폐하의 성격을 잘 알기에 더욱 폐하를 이해할 수가 없소.”


선황의 라그나샤 프리흐타(친위대장)였던 만큼 황제는 뛰어난 장수였고

주변국과의 전투를 직접 지휘해 승리로 이끌었다.

그때마다 놀라운 계책을 사용했으나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난 폐하를 믿을 거요.”

“폐하의 능력 때문입니까?”

“아니. 폐하의 위대함은 능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오. 폐하한테서 나오는 거지.”


이번 일이 아무리 허황하고 어리석어 보여도

지금까지 가디우나투스 황제는 그른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믿을 수는 있으니까.”


가디우나투스 황제 때문에 군인이 된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 또 믿어보자고 속으로 다짐한다.


“엘렌. 테 살베니움의 땅이라.”


먼 과거, 같이 용을 사냥했던 본 에레체인의 시조 니베룬게나이스 본 에레체인과 테 살베니움의 시조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


니베룬게나이스 본 에레체인이 남긴 글을 보면

데스트리아누스가 매를 부렸다고 한다.


“부디 이 부족한 후손들에게 매라도 보내줬으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8 에필로그 5(마지막) 21.08.02 50 2 15쪽
117 에필로그 4 21.08.01 40 2 12쪽
116 에필로그 3 21.07.31 36 2 11쪽
115 에필로그 2 21.07.30 35 2 12쪽
114 에필로그 1 21.07.29 42 2 12쪽
113 112화 21.07.28 44 2 13쪽
112 111화 21.07.27 30 2 11쪽
111 110화 21.07.26 53 2 12쪽
110 109화 21.07.25 33 2 11쪽
109 108화 21.07.24 37 2 11쪽
108 107화 21.07.23 37 2 12쪽
107 106화 21.07.22 32 2 12쪽
106 105화 21.07.21 35 2 11쪽
105 104화 21.07.20 35 2 12쪽
104 103화 21.07.19 40 2 12쪽
103 102화 21.07.18 39 2 12쪽
102 101화 21.07.17 35 2 12쪽
101 100화 21.07.16 35 3 11쪽
100 99화 21.07.15 41 2 11쪽
99 98화 21.07.14 42 2 11쪽
98 97화 21.07.13 42 2 11쪽
97 96화 21.07.12 37 2 12쪽
96 95화 21.07.11 43 2 11쪽
95 94화 21.07.10 38 2 11쪽
94 93화 21.07.09 38 2 11쪽
93 92화 21.07.08 39 2 11쪽
92 91화 21.07.07 42 2 11쪽
» 90화 21.07.06 43 2 11쪽
90 89화 21.07.05 41 2 11쪽
89 88화 21.07.04 40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