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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13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11 07:50
조회
41
추천
2
글자
11쪽

95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으음,”


햇살이 방안을 찌르고 새들이 굉음을 지저귀는 가운데 리나가 잠에서 깬다.

축축해진 베개와 널브러진 이불.

퉁퉁 부은 눈으로 잠시 관자놀이를 누르고 정신을 차리려고 한다.


꼬르륵.

배고픔이 몰려온다.


‘맞다, 나······. 어제 아무것도 안 먹었지.’


천천히 기억이 돌아온다.

어제 위즈와 싸우고 그대로 들어와 침대에 엎드린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아무래도 울면서 잠든 모양이다.


- 너 때문이야.


무뚝뚝하게 비수를 꽂던 위즈.

정작 자기가 내뱉은 말에 찔리는 게 훤히 보였다.


혹시 위즈가 리나를 크레센타로 보내려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간혹 들었다.

엘렌 성 탈환 계획서를 볼 때까지만 해도 안 믿었지만,

이따금 위즈가 혼자 멍하니 있거나 이상한 눈으로 리나를 볼 때마다

점점 의심이 커졌다.


그래도 기분 탓이라 여겼다.

위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체 왜 그렇게 리나를 밖으로 보내려 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결국, 위즈도 다른 어른들이랑 똑같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조금이라도 존중해줄 줄 알았는데.


‘절대 안 떠날 거야. 위즈는 억지로 날 못 쫓아내니까.’


위즈가 지금 오두막 주인인 건 잊어버린 걸까.


그나저나 배에서 계속 소리는 나는데 차마 밖으로 나갈 용기가 안 생긴다.

위즈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오두막 주인인 건 둘째 치고 밥을 만들어주는 게 위즈니

밥을 먹으려면 위즈와 대화는 해야 한다.


위즈가 리나를 아끼는 만큼 리나를 굶기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없이 주는 밥을 얻어먹기도 그렇다.

화해는 아니더라도 뭐라고 말은 해야 할 텐데.


- 나한테 맞춰주고 싶으면 여기서 떠나.


그런 말을 듣고도 위즈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 내 꿈에 시체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알아?


얼마나 나오는지, 리나 때문에 더 늘어났는지 리나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위즈가 저질렀던 짓 때문에 매일 악몽을 꾸는 걸,

그것 때문에 매일 심하게 뒤척거리며 잠도 못 자는 건 안다.

그리고 리나를 지키려고 적을 죽였던 것도 안다.


‘떠나면 위즈가 조금이라도 편해질까?’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리나가 곁에 없으면 위즈는 조금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

지켜야 할 리나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위즈는 내가 쓰다듬어주니까 표정이 편해졌는데.’


이래저래 고민해 봐도 답이 안 나온다.

심호흡하고 천천히 문을 연다.


살짝만 열고 밖을 보는데 이상하게 조용하다.

들리는 건 오직 새소리,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벌레 소리.


‘너무 조용한데?’


바깥을 보면 리나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것도 아니다.

보통 이 시간 즈음에는 위즈도 나갈 준비만 하지, 출발하지는 않는다.


어제 리나가 위즈에게 잔인하다고 하고 몸을 돌려 오두막으로 뛰어왔을 때

위즈는 뒤에서 가슴을 부여잡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무시하고 그대로 왔는데 혹시 아직도 쓰러져있을까 싶어 바깥을 보지만,

그 자리에 위즈는 없다.


‘아니면 내가 보기 싫어서 일찍 출발한 걸까.’


괜스레 또 화가 난다.


부엌에서 풍기는 음식 내음.

비명을 지르는 배를 부여잡고 부엌으로 가 식탁을 덮은 천을 걷자

그럴싸한 한 상이 차려져 있다.


“어?”


천 아래에 있던 종이가 바람에 날려 리나 쪽으로 날아온다.

천을 놓고 그대로 받는데, 위즈 글씨체로 쓴 쪽지다.


- 먹어. 5일 정도 자리를 비울 거야. 찬장과 도랑에 다 준비해뒀어.


그 부분까지 보고 일단 찬장을 열어보자 실온에 둬도 괜찮은 반찬이 놓여있다.


‘그렇다면 도랑에 둔 건 차갑게 둬야 하는 반찬인 걸까?’


일단 도랑은 나중에 가기로 하고 쪽지를 다시 본다.


- 내가 없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준비해둔 것도 있어. 5일 뒤에 내가 돌아오고 이틀 정도 쉬었다가 널 숲 바깥으로 돌려보낼 거야. 적은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닌데.”


이렇게 쪽지까지 남겨둔 걸 보면 위즈는 정말로 리나를 보내려는 걸까.

그제야 마음이 조금 다급해진다.


‘어떡하지? 위즈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나?’


위의 문장들과 조금 떨어진 아래에 마지막 문장이 쓰여 있다.


- 현관 계단 아래에 있는 상자에 네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뒀어. 4일째 되는 날에 열어봐. 꼭 4일째 되는 날에.


리나가 재빨리 현관 밖으로 가서 상자를 열어본다.

위즈가 언제나 다음 날 보낼 편지를 넣어두던 자리에

위즈가 리나에게 남긴 편지가 앉아있다.

리나는 누구 마음대로 4일째에 열어보라는 심정으로 편지를 쥐었다가

이것도 시험이지 않을까 싶어 멈춘다.


구겨지는 종이.

뜯을까 말까 속으로 계속 고민하다가

일단 지금은 위즈를 거스르면 안 되니 다시 집어넣는다.

다시 오두막에 돌아와 식탁 앞에 앉는다.


‘······정말로 먹어도 되겠지?’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 천천히 젓가락을 든다.

꼬르륵.

느린 행동에 배가 불만을 표하자 리나가 급히 밥을 먹는다.


리나가 심심하지 않도록 위즈가 준비했다는 건 새로 번역한 책들이었다.

싸우지 않길 바라서인지 방어에 관련된 마법뿐.


“우와······.”


평소에 위즈가 밤에 계속 뭔가를 하는 건 알았는데, 계속 번역하고 있던 모양이다.

피곤하기도 할 테고 크레센타 말을 전문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니

이상한 문장도 많다.


“‘심장에 힘을 내뱉어 앞으로 당기면서 가다.’라니, 이건 무슨 말이야.”


그래도 앞뒤 문맥으로 해석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무엇보다 위즈가 리나를 위해 밤을 새우며 만든 책이다.


‘역시 위즈는 나한테 싫어하는 짓 못 해.’


싸우고 나서 얼굴도 안 보고 숲으로 갔는데도 리나가 배고플까 봐 밥도 챙겨뒀다.

그냥 알아서 해 먹으라고 내버려 둬도 됐을 텐데.

거기에 심심할까 봐 5일 동안 할 것까지 준비해주는데,

정말로 리나를 내칠 생각일까.


차라리 어제 밉다는 듯이 말했던 것처럼 행동으로도 밉다고 표현하지.

그렇게 했으면 리나도 미련을 안 가졌을 텐데.


‘괜히 더 헷갈리게.’


이대로 크레센타에 돌아가면 지금처럼 바람도 쐴 수 없으리라.

조금이라도 더 쐬려고 오두막 바깥으로 나간다.


‘그러고 보니까 지난번에 위즈가 뭐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


오두막을 고치던 날, 목재가 꽤 많이 남았다.

그걸 보고 위즈는 겨울에 장작으로 쓰기 전에 썩지는 않을까, 하고 고민했고

리나는 목재와 오두막 옆 나무를 번갈아 보다 말했다.


- 위즈. 나무 아래가 허전한데, 뭐라도 만들면 어때?


위즈가 그 말을 듣고는 굳이 그럴 필요 있냐고 고개를 젓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조금 더 고민하고는 괜찮은 생각이 났다며 씩 웃는다.

리나가 무슨 생각이냐고 물었으나


- 나중에. 조금 더 계획을 짜고.


라고 답하기만 했는데 리나가 자는 사이에 만든 모양이다.


나무 아래에 놓인 건 좌우로 긴 의자.

크레센타 밀궁에 있던 리나의 의자와 비슷한 형태.


물론 둘을 비교하면 크레센타 황궁에 있는 게 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여기에 있는 이 소박하고 투박한 의자가 더 마음에 든다.


“히힛.”


그도 그럴 게, 크레센타에 있는 건 의자만 아름답지만,

이 정원에 있는 건 앉을 때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우니까.


정원 어디에서나 숲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이 의자에 앉으니 유독 숲이 더 아름답다.


‘이거 만들 때, 보이는 풍경도 다 생각했겠지?’


의자를 배치한 뒤 앉고 다시 움직이는 위즈를 떠올리자 입꼬리가 올라간다.

바람이 불고 머리 위에 있는 나무가 흔들린다.

눈을 감고 향긋한 풀 내음을 맡는다.


모처럼의 자유.


위즈가 딱히 뭘 하지 말라고 막지도 않고 낮에 자주 숲으로 나가서

평소와 크게 다를 건 없다.

그래도 위즈가 5일 정도 자리를 비우니 느낌이 색다르다.

그렇다고 따로 할 건 없지만.


‘아니지. 한 번 새로운 걸 시도해볼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위즈가 약초를 심어둔 밭으로 간다.

전에는 마법이 익숙지 않아서 밭을 전부 엎었지만, 지금은 다를지도 모른다.


‘혹시 모르니까,’


손을 다른 방향으로 뻗어 가느다란 물줄기를 뿌리고

조금 더 집중하자 물줄기가 넓게 퍼진다.


“히힛, 됐다.”


이제 따로 위즈가 알려준 동작을 하지 않아도 마법을 쓸 수 있다.

리나가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심하게 빠른 성장.


위즈가 알았다면 호들갑을 떨며 천재라고 하고,

지금처럼 억지로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도 눈을 크게 뜨며 리나를 쳐다봤으리라.


이번에도 실수하면 위즈가 쫓아내도 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옆에 위즈도 없으니 밭을 뒤집으면 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러는 중에도 몇몇 풀들은 죽을 테고.


‘그럼, 여기서부터.’


리나의 손끝에서 물이 약하게 흩뿌려진다.

그대로 바로 앞에 물안개가 펼쳐지고,

리나가 조금 더 힘을 줘도 밭이 뒤집히기는커녕 밭 위가 물안개로 덮인다.


“됐다!”

“그러게 말이오, 아가씨. 나는 좀 더 밭이 뒤집히거나 하는 그런 상황을 기대했는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리나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튼다.

물줄기가 세지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제 발에 걸려 뒤로 넘어가려 한다.


“어이쿠, 그쪽으로 넘어갔다가는 위자드리아누스가 가만두지 않을 게요.”


라에가 손을 뻗어 리나를 잡아 자기 쪽으로 당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라에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다.


“감사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오.”


라에가 마치 위즈가 하던 것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살짝 숙인다.

호라의 전통인 걸까?


‘그것보다, 손?’


방금 리나를 잡아 끌어준 ‘손.’

그런데 손이라고 생각하니 이질감이 느껴진다.


“왜 그러시오?”

“예? 아, 아니······.”


리나가 고개를 젓고 화제를 바꾼다.


“저기, 위즈는 없는데요?”

“알고 있소. 나도 딱히 위자드리아누스를 만나러 온 건 아니니.”

“그러면 저를 만나러 오셨나요?”

“그렇기도 하고, 이 정원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말이오.”


중앙에는 오두막, 그 주위에는 나무 한 그루와 우물,

정원 한쪽에는 약초밭,

그리고 그 정원을 가로지르는 작은 시내.

멋지기는 해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아름답지는 않은데.


“그나저나 루미는 같이 안 왔나요?”

“루미? 루미?”


라에가 조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렇소. 아마 한동안 모습을 안 보일지도 모르오.”

“왜요?”

“나와 아주 작은 내기를 하나 했는데 내가 이기고 루미는 졌소. 그 때문에 루미가 못 오는 거요.”


일이라도 시키고 온 걸까.


“그런데 아가씨는 지금 뭘 하고 있었소?”

“아, 그 밭에 물을 주고 있었어요. 전에 물을 뿌리다가 밭을 뒤집은 적이 있어서.”

“저런. 위자드리아누스가 이 밭을 끔찍이도 아낀다는데.”

“정말요?”


라에와 얘기하니 마치 루미와 얘기할 때처럼 맘이 편하다.

숲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도 쏙 들어가고.


“그런데 아가씨.”

“네?”


하지만 리나의 바람과는 달리,


“위즈가 시킨 대로, 짐은 쌌소?”


라에는 그 생각을 굳이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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