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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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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011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23 07:50
조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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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107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호의만 가지도록 약간 건드리기만 했다니.”


주위에 나무만 가득한 숲속 어느 한 곳.

노란 깃털에 푸른 눈을 한 작은 새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에게도 그러더니 결정적일 때는 언제나 거짓을 말하는가.”

“상관없잖아, 어차피 흐리프키르스 상대로 한 거짓말인데.”


아무것도 없던 곳에 루미가 나타나며 답하고는 손가락을 들자

그 위에 자연스레 앉는다.

여타 새와는 달리 눈동자도 어느 한 곳을 향해 멈춰있다.


“자네는 심지어 한 분이신 지프메께도 하지 않았나. 물론 키레시가 시작했다고 해도, 그분을 화나게 만든 건 자네지.”

“이미 충분히 벌 받았잖아. 굳이 얘기하지 마.”

“매번 거짓말하는 걸 보면 별로 안 받은 것 같다만.”


루미가 무뚝뚝한 얼굴로 팔을 팍 털자

새가 여유롭게 날더니 모습을 바꿔 착지한다.


“물론 지프메께서 거짓을 자네에게 주셨다고 해도 심하지 않나 싶어서 말이야.”

“난 받은 걸 열심히 쓸 뿐이야. 네게 그런 말 들을 정도도 아니고.”


손에 해당하는 부분을 털고 우뚝 서는 라에, 아니 아라(시간).


“오히려 난 네 반응이 더 이상한데.”

“왜지?”

“지금까지, 심지어 지프메께 거짓말했을 때도 아무 말 않더니 이제야 문제 삼잖아. 언니가 껴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부정은 않겠네. 그렇다고 그대가 저지른 짓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아라가 키레시나 다른 흐리프키르스를 흉내 내듯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자네는 호의를 가지도록 한 게 아니잖나.”

“내가 뭘 했는지 알아?”

“당연하지. 애초에 자네와 키레시가 나눠 받은 감정을 모두 아는데 모를 수가 있나?”


타인을 향한 호의는 키레시가 받은 마음.

키레시와 반목하는 중인 토루마는 절대 그 마음을 건드릴 수 없다.


“증오. 맞지?”


그래서 상대적으로 호의가 강해지도록 반대에 가까운 감정을 건드렸다.


“서로 증오를 못 갖도록 막아버린 거잖나. 아가씨가 위자드리아누스와 싸운 뒤 쉽게 화해할 수 있던 것도 증오가 아니라 분노에 가까워서였고.”

“문제될 거 있어?”

“없지. 자네 말마따나 흐리프키르스일 뿐인데.”


증오를 억제한 게 아니라 호의를 줬다고 한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흐리프키르스는 빼앗길 때 분노하고 받았을 때 감사하니까.


“그저 난 자네가 힘들어 할까 봐 그러네.”

“그럴 일 없어.”


차갑게 대답하고 위즈와 리나가 향하는 곳의 반대쪽으로 걸어간다.


“우리는 헤즈라야. 감정 따위 가질 리 없잖아.”


그 뒤를 향해 아라가 허리를 살짝 숙이며 말한다.


“부디 그러길 비네.”



******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깜깜해도 앞이 잘 보인다는 것처럼 나무 사이를 걷는 위즈와 달리

리나는 계속 나무 때문에 멈춘다.

그러다가 결국, 나무에 부딪혀 뒤로 자빠진다.


“괜찮아?”


위즈가 다가가서 손을 내민다.


“천천히 가. 깜깜해서 잘 안 보이는데, 여기는 나무도 엄청나게 빽빽하잖아.”

“깜깜하다고?”


정작 위즈는 주위를 둘러봐도 깜깜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조금 더 어두워진 것 같기는 한데.”

“무슨 말이야? 벌써 밤이잖아.”

“어?”


그러고 보니 벌써 달이 하늘에 떠 있다.


“이상하다? 내가 밤눈이 밝은 편이기는 해도 이 정도는 아닌데.”

“왜? 어떤데?”

“깜깜해도 잘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밝아.”


낮의 숲과 전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혹시 루미가 선물이라도 해 줄 거 아닐까?”

“전혀 필요 없는 선물인데.”


밤에 잠잘 때 방해만 될 뿐이다.


“그런데 리나. 그렇게 어두워, 지금?”

“응. 한밤중이야.”

“그렇게 늦었다니. 계획이 살짝 틀어졌네.”

“왜 그런 거지? 위즈가 뭐 실수한 거야?”

“그것도 있지만, 일단 내가 시간을 몰랐으니까.”


적당히 걷다가 괜찮은 시간에 나무 위를 뛰어서 숲 경계까지 갈 생각이었다.


“아직 시간이 남은 줄 알고 그냥 걷고 있었어. 정말로 내일 즈음에나 도착하겠네. 지금 가 봤자 엘렌 성에서 호응해주기도 힘들 테고.”

“그렇게 많이 걷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게. 아무래도 토루마 때문인 것 같아.”

“또 루미 탓하는 거야?”


리나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꾸짖는다.


“아니, 생각해봐. 우리 그렇게 많이 걷지도 않은 상태에서 토루마를 만나고, 다시 얼마 걷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밤중이 되었어. 그러면 당연히 누구 탓이겠어?”

“그런데 루미가 그런 걸 할 수 있나?”

“너랑 루미, 아니 토루마가 말했잖아. 아라(시간)가 같이 있었다고.”


같은 계획을 공유하는 만큼 이런 부탁 정도는 들어주리라.


“그러면 어떻게 하지, 위즈? 여기서 자고 가?”

“그러게. 일단 혹시나 해서 내 침구는 가져왔는데.”


리나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숲에서 잘 수도 있으니 따로 챙기기는 했다.


“여기서 자기에는 이래저래 문제가 많기는 해. 땅바닥에서 자고 일어나면 내일 싸울 때 힘들기도 하고 돌아올 때 식량이 부족할지도 모르고.”


리나를 바닥에서 재우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사슬로 해먹을 만들어줘도 내가 잠들면 사라질 테고. 나무로 어떻게 할 수 있으려나?”

“위즈. 그냥 나 바닥에서 자도 돼.”

“에이. 어떻게 그래.”


리나는 위즈 말을 무시하고 근처 조금 넓은 곳으로 가서 돌을 치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푹신푹신하게 만들려고

주위에서 나뭇잎을 모아다 그 위에 뿌리는데 위즈가 다가온다.


“알았어, 알았어. 일단 나와 봐.”


그리고 짐에서 바닥에 깔 이불을 꺼내 펼친다.


“나뭇잎만으로는 냉기를 막기 힘들어. 자, 여기 덮는 이불. 이거 덮고 자.”


그리고 리나 짐을 빼앗아 나무에 기대놓는다.

리나는 이불과 위즈를 번갈아 보다가 묻는다.


“위즈는? 이거 하나씩밖에 없어?”

“난 없어도 돼. 이런 곳보다 더 험한 곳에서도 지내봤으니까.”

“그래도 어떻게 나 혼자 이걸 써.”


머뭇거리자 위즈가 사슬로 리나를 안전하게 눕히고는 그대로 이불까지 덮어준다.


“빨리 자. 내일은 진짜로 힘든 하루가 될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위즈야말로 가장 힘들 텐데.

리나는 위즈를 계속 보다가 적당히 배낭을 베고 자려는 위즈의 손을 당긴다.


“왜? 뭐 불편한 거 있어?”

“아니. 위즈 내일 싸우잖아. 불편하게 바닥에서 자지 말고 이불 속에서 자.”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마마. 그냥 곱게 편한 곳에서 주무시지요.”


그래 봤자 별로 안 편하겠지만, 하고 말하며 다시 움직이려는데 리나가 놓지 않는다.


“이불이라도 같이 덮자.”


그러면서 몸을 최대한 옆으로 밀어서 자리를 만든다.


“아니, 그렇게 해도 자리가 별로 안 나잖아. 그렇게 자 봤자 불편할 텐데, 이렇게 자는 게 더 낫지.”

“빨리 들어와.”

“괜찮다니까. 나 그냥 여기서······.”

“빨리.”


리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위즈가 리나를 쳐다보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어차피 마지막이니 추억 하나 더 쌓아두는 것도 괜찮겠지, 뭐.”


그리고 리나가 비워둔 자리로 들어간다.

손을 뻗어 가방을 끌어당겨 머리를 벤다.


“히야, 별 밝다.”


나뭇잎 사이로 밤하늘이 보인다.

루미 때문인지 여전히 밤하늘이 한낮처럼 보이는 위즈는

감동 없이 그저 희한한 광경뿐이지만, 리나는 계속 감탄한다.


“이런 것도 해보고 싶었어.”


리나가 나지막이 말한다.


“뭐? 숲 속에서 밤하늘을 보며 자는 거?”

“음, 그것도 있지만,”


그러더니 이내 히힛, 거리며 웃고는 만다.

위즈는 고개를 돌려 살짝 쳐다보고는 다시 하늘을 보며 말한다.


“이건 솔직히 책에 나오는 것처럼 자는 건 아닌데. 책에서는 보통 진짜 맨바닥에서 자니까.”

“그래도 굳이 이불을 치우지는 않을래.”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이렇게 자고도 내일 잘 싸울 수 있어?”

“맨바닥이 더 나을걸.”

“그래도 안 돼. 옆에 있어.”

“정말로 귀에 대고 코 골 거야.”

“괜찮아. 지난번에도 위즈가 귀에 대고 코 골았는데 잘 잤잖아. 옆에만 있어.”


그러면서 위즈 팔을 붙잡는다.


“그런데 위즈가 코 골아서 잠 못 자면 위즈 팔이랑 어깨 깨물 거야.”

“그러지 마. 진짜 내일 싸우다가 실수할 거라고.”


정작 목소리에 걱정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다.


“코골이가 심하면 차라리 옆으로 눕혀. 그러면 코 안 곤대.”

“그러면 그냥 지금 이쪽 봐.”

“싫어. 어깨 아파.”


그렇게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시시덕거린다.


“이렇게 붙어있으면 서로 악몽도 안 꾸겠지?”

“아. 그렇겠네. 리나 네 말을 듣길 잘했다.”

“그런데 위즈랑 나랑 붙으면 둘 다 악몽 안 꾸는 건 왜 그런 걸까? 이것도 루미가 그런 걸까?”

“그렇겠지? 원래 말이 많지 않으니까 일일이 말하지 않았던 걸 거야.”

“정말? 나랑 얘기할 때는 말 많던데?”


위즈 머릿속의 토루마와 리나가 말하는 루미가 서로 다른 존재 같다.

물론 말이 없지는 않지만, 리나가 말하는 정도는 아닌데.


“그냥 위즈가 말이 별로 없어서 루미도 말 잘 안 했던 거 아닐까?”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서로 헤어지면 한동안 엄청나게 힘들겠네.”

“난 괜찮을걸. 네가 준 팔찌가 있으니까. 내가 준 인형에 내 머리칼이라도 넣어 줄까?”

“괜찮아. 위즈가 만들어준 인형인데 효과는 대단할 거 아니야.”


그 말에도 조금 고민하다가 말한다.


“잠깐 팔 들어볼래?”

“팔? 왜?”


리나의 팔목을 살짝 움켜쥐더니 위즈의 손안에서 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온다.


“자. 됐어.”

“어? 뭐야, 이거?”


희미한 별빛 아래에서 자기 팔을 이리저리 살핀다.


“문신? 사슬 모양이네?”

“리나 네가 목숨이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서 날 부르면, 문신이 남아있는 한 그곳이 어디든 나타날게.”


그곳이 숲 바깥이든, 크레센타 황궁이든 상관없다.


“그러면 내가 크레센타에 돌아가서 위즈 부르면 돼?”

“심심하다고 부르면 효과 없어. 간절함이 중요한 요소거든.

“에이. 별 효과 없네.”

“그래도 악몽은 안 꾸게 해줘.”

“그래?”


리나의 깔깔대더니 이내 아련한 표정으로 팔목을 본다.


“그러고 보니까 위즈. 이것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자봤다고 그랬지?”

“응? 응. 나는 학교에서 이런 걸 배웠으니까.”

“그러면 어디 어디에서 자봤어?”

“음, 어디 보자, 산이나 숲은 기본이었고, 사막에서도 자봤지.”

“사막?”


이야기가 재밌는지 리나가 더 달라붙는다.

졸린 지 목소리는 살짝 뭉개졌지만.


“응. 사막은 밤에 엄청나게 추워. 그리고 해변에서도 자봤는데 물과 바람 때문에 고생했고.”

“바위만 있는 곳에서도 자봤어? 나무가 하나도 없는 바위산 말이야.”

“응. 심지어 깎아내린 절벽이라 제대로 잠도 못 잤어.”

“진짜? 안 위험했어?”

“위험했지. 그래서 말이야······.”


그렇게 얘기하길 한참.

어느새 리나가 잠들어있다.

이불을 끌어당겨 제대로 덮어주는데 리나가 뒤척인다.


“으음,”


그러다 이내 위즈 팔을 꼭 붙잡는다.

깜짝 놀라면서도 괜스레 좋아 혼자 웃으면서 리나 머리를 쓰다듬는다.

루미 때문인지 한밤중에도 온 세상이 밝아 리나도 잘 보인다.


“마지막인 만큼 잘 보라고 그런 거였나.”


쓸데없이 고마워할 일이 늘어버렸다.

내일은 전쟁의 날.

정말로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할 날.


어쩌면 리나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


“만신창이가 되어도 꼭 보내줄게.”


그렇게 중얼거려도 보내고 싶지 않아 속에서 뭔가 올라오려 한다.

리나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계속 쳐다보다 새벽이 오기 직전에야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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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화 21.07.10 3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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