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천공의노래 님의 서재입니다.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천공의노래
작품등록일 :
2021.04.09 16:55
최근연재일 :
2021.08.02 07:50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8,233
추천수 :
231
글자수 :
613,867

작성
21.07.18 07:50
조회
40
추천
2
글자
12쪽

102화

+와 +사이의 글은 외국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DUMMY

살아있는 게 맞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하루를 꼬박 잔 위즈는

다음날이 되자 거짓말처럼 완전히 회복했다.

리나가 만들어준 죽 남은 걸 완전히 비우고도 부족한지 식량 창고를 털었고,


“위즈. 이거, 이제 진짜로 위험한 거 아니야?”


리나가 위즈 팔을 잡고 말릴 즈음에서야 먹는 걸 그만뒀다.


“그러다 뚱뚱해지겠다.”

“괜찮아. 먹는 거에 비해 그리 많이 살찌지는 않으니까. 거기다 며칠간 밥도 안 먹고 계속 뛰어다녔고.”

“그래도 그러다 체하겠어.”


리나가 떠나 입이 하나 줄어드니 딱히 식량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리나를 데려다주려면 아사르군더니움을 상대해야 하고,

그러면 전쟁이 끝날 테니까 곧바로 식량을 보급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엘렌 성도 식량 없지 않을까? 몇 달 동안 포위되었을 텐데.”

“아.”


그 말을 듣고 몰래 챙기려던 육포를 다시 내려놓는다.


“그나저나 위즈. 정말로 움직여도 괜찮아?”

“응. 왜?”

“어제는 진짜 꼼짝도 못 했잖아.”


리나의 어깨를 베고 잠든 위즈는 도저히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그래서 리나가 억지로 깨워서 오두막으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 으으, 으으으,


낑낑대면서 제대로 움직이질 못했다.


“대체 왜 어제 그렇게 아파한 거야? 어디 아팠어?”

“글쎄. 그렇게 말해도 기억이 안 나는데.”

“머리 붙잡고 죽을 것처럼 막 그랬는데 내 마법은 통하지도 않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머리?”


머리라고 하니 대충 예상은 간다.


‘그러면 기억도 안 남을 정도의 악몽으로 날 괴롭힌 걸까.’


보통 악몽 같으면 리나가 옆에 오기만 해도 깼겠으나 그렇지 않았다고 하니

토루마가 리나도 이기지 못할 정도의 악몽을 선사했던 모양이다.

그 생각을 하니 살짝 웃음이 나온다.


“웃어? 난 엄청나게 무서웠는데?”


리나가 험악한 표정을 지어도 위즈한테는 귀엽기만 하다.


“미안, 미안. 리나 너 때문에 웃은 건 아니야.”

“진짜, 어제 위즈 마법 흉내 내서 끌고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도 많이 늘었다. 넝쿨을 이용해서 날 옮기다니.”


위즈가 사슬 여럿을 솟아나게 한 뒤 움직여서 물건을 옮기듯

리나는 짧은 넝쿨 여럿을 불러서 위즈를 오두막 안까지 옮겼다.

그리고 회복 마법도 걸어보고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생각하는데,


- 으으, 찝찝해.


그 말만 남기고 언제 아팠냐는 듯 씻으러 들어갔다.

말끔해진 뒤에도 피곤한 얼굴 말고는 멀쩡했고

그대로 잘 자라면서 침실로 들어갔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리나 넌 어디서 잤어? 나보다 먼저 일어났잖아. 혹시 아예 안 잤어?”

“아니? 위즈 침대 구석에 밀어두고 옆에서 잤는데?”


리나가 그게 무슨 문제냐는 투로 말한다.


“맞다. 위즈, 코 엄청나게 골았어. 어찌나 시끄러운지 침대가 다 울렸다니까?”

“어? 아, 어. 미안.”


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사과부터 해본다.


“그, 땀 냄새나 그런 건 안 났어?”

“딱히?”


코골이만 문제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은 뭐 할 거야? 나 돌아가기 전까지 심심하게 두지는 않을 거지?”

“물론이지요, 마마.”


위즈가 장난스레 허리를 살짝 숙인다.



******



리나를 데리고 숲으로 나간다.

지금까지 적의 위협 때문에 함부로 나가지 못했던 숲.


“진짜로 나가도 괜찮아?”


몰래 숲에 나갔다가 호되게 혼났던 리나는

위즈의 뒤쪽 옷자락을 붙잡고 주위를 둘러본다.


“막 적이 튀어나오거나 그러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전부 정리했으니까.”


적이 죽는 장면을 리나가 보지 않기를 바라서 같이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이 없는 지금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


“혹시나 잔당이 나와도 걱정하지 마. 내가 곁에 있잖아?”

“그래도······.”

“뭐, 잔당이 날 노리고 덤빌 것 같진 않지만.”


다가와도 위즈가 마력을 뿌린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리나가 보기 전에 사라지리라.

그래도 리나가 계속 무서워하기에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외친다.


“리나, 저기 봐. 토끼야.”

“토끼?”


정말로 하얀 토끼가 뿌리 너머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다.

정원에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숲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 토끼를 향해 다가간다.


“자, 잠깐만!”


리나가 다가오자 토끼는 몸을 돌려 달아나고

리나는 그 뒤를 조금 쫓아 뛰어가다 멈춘다.

아쉽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느리게 뛰어서 잡겠어?”


위즈가 낄낄거리며 다가오자 리나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다.

그게 무서울 리 없는 위즈는 사슬로 작은 토끼를 만들어 리나에게 넘긴다.


“동물을 직접 만지고 그러는 것도 좋지만, 자연은 그 자체로 있는 게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잖아.”


사슬 토끼를 받아들고 머리를 쓰다듬으니 화가 풀리는지 표정이 편해진다.

그리고 위즈는 그런 리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새끼 동물을 만지면 어미가 새끼한테서 나는 사람 냄새 때문에 새끼를 버리기도 한대.”

“정말?”

“나도 그걸 직접 겪은 적은 없지만. 그래서 도망치지 않는 새끼 동물을 봐도 만지지 않아.”


그러다 리나를 보고 잠시 생각하다 이어 말한다.


“아니, 이렇게 쓰다듬고 있네.”


위즈의 말뜻을 알아들은 리나가 주먹으로 옆구리를 가볍게 치지만,

위즈는 웃으며 몸을 팍 튼다.

조금 더 걷다가 나무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마법으로 리나를 올려주고

위즈 자신도 올라가 걸터앉는다.


“자, 물 마실래?”

“응.”


리나가 물통을 두 손으로 들고 물을 마신다.

시원한 바람에 나무 냄새가 들려온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기지개 켜는데 등 뒤로 바위틈에 난 작은 구멍 하나가 보인다.


“어?”


그리고 그 안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 나온다.


“어? 어?”

“왜, 위즈?”


물을 다 마신 리나가 위즈를 보고 위즈의 시선을 따라 다람쥐를 본다.


“어? 다람쥐?”


전에 다람쥐 얘기를 하긴 했는데 정말로 이렇게 마주칠 줄이야.

다람쥐는 잔뜩 굳은 둘을 번갈아 보다가 느긋하게 바위 뒤로 걸어간다.


“······뭔 다람쥐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지?”

“숲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은 위즈 밖에 없잖아.”

“그래도 아사르군더니움도 돌아다니고, 애초에 보통 자기보다 큰 동물을 마주치면 도망 다닐 텐데.”

“신비한 숲이라 동물들도 신비한 거 아닐까?”


사실 위즈나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의 정원 말고는 신비로운 게 없지만.


“그나저나 정말로 바위틈에 사네.”

“정확히는 땅속 굴이지만.”


바위틈 아래에 다람쥐가 파놓은 땅굴이 있다.

리나가 손을 뻗으려고 하자 위즈가 팔을 찰싹 때린다.


“아얏!”

“남의 집 함부로 건드는 거 아니야.”


입을 비쭉 내밀어도 엄한 표정을 풀지 않는다.

흥, 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몸을 바르게 돌리고 허공을 찬다.


“그런데 다람쥐 실제로 보니까 귀엽다. 책으로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그렇지?”

“응. 밥 먹는 것도 한번 보고 싶어.”


저 뒤쪽에서 방금 걸어간 다람쥐가 풍뎅이를 잡아먹고 있다.

굳이 그걸 보여줄 필요는 없겠다 싶어 고개를 젓고

위즈도 다시 몸을 바르게 돌린다.

그런데 갑자기 리나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친다.


“꺄아악!”

“뭐, 뭐야?”


덩달아 놀란 위즈가 엉덩이를 절반만 걸친 채로 리나를 본다.


“머리에, 머리에 이상한 게,”

“머리?”


리나의 하얀 머리칼 위에 조그마한 다람쥐가 올라가 있다.


“다람쥐?”

“응. 한 번 양손을 머리 높이로 올려봐.”

“이, 이렇게?”


리나가 뭔가를 받치듯 손을 펼치고 천천히 올리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다람쥐가 손바닥에 폴짝 뛰어내린다.


“우와!”


깜짝 놀라 다람쥐를 떨어뜨릴 뻔했다.


“위, 위즈. 이거 이렇게 만져도 되는 거야?”

“뭐, 지가 손에 떨어졌는데 어쩔 수 없지.”


리나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다람쥐를 구경하고 다람쥐도 리나를 구경한다.


“그렇게 가까이서 보면 다람쥐가 무섭지 않을까.”


리나가 위즈를 째려보다가 다시 풀린 표정으로 다람쥐를 본다.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는 리나와 달리 주위를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둘러보는 위즈.


‘이렇게 리나가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진다고?’


마치 누가 일부러 다람쥐를 조종하는 것 같은데 딱히 마력이 느껴지진 않는다.


‘아니면 이 다람쥐 일가가 범상치 않은 건가.’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이 살았던 숲인 만큼

리나가 말한 것처럼 신비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는 않다.

저들은 혹시 데스트리아누스 테 살베니움을 알지 않을까.


“아! 도망쳤다.”


위즈가 정신 놓고 있는 사이에 리나를 실컷 구경한 다람쥐는

몸을 돌려 바닥으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마치 이 숲의 주인이라는 듯 유유히 뒷짐 지고 걸어간다.


‘잠깐만, 뒷짐?’


“와! 다람쥐는 뒷짐도 지고 다니네? 신기하다.”

“아니, 그,”


뭐라고 말하려던 위즈는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넘어진다.


“위즈!”

“아야야······.”


다행히 어디 다치지는 않았다.

팔에 묻은 풀과 낙엽을 털어내고 목을 이리저리 움직여본 뒤에 리나한테 말한다.


“괜찮아. 엉덩이를 한쪽만 걸치고 있어서 그래.”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응. 뭐, 떨어진 김에 이제 이동할까?”

“어, 그······.”


살짝 높아 내려오기 무서운지 머뭇거리자 위즈가 사슬로 계단을 만들어준다.


“자, 내려오시지요, 아가씨.”


리나가 천천히 내려오고 손이 닿을 즈음에

위즈가 손을 뻗어 중심을 잡도록 도와준다.


“이제 슬슬 밥 먹을 시간이네.”

“벌써? 들어온 지 그렇게 오래됐어?”

“밥 먹는 곳에 가면 시간이 얼추 맞을 거야.”

“어디서 먹을지 정했어?”

“응. 꽤 머니까 조금만 더 걷다가 마법으로 가자.”


손을 놓고 뒷짐을 지며 걷자 리나도 옆에 서서 위즈처럼 뒷짐을 진다.

그걸 보고 위즈가 웃으며 걷는 속도를 맞춰준다.


“히히힛.”


리나 웃음소리에 위즈도 실실 웃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걸어?”

“그냥 습관이야.”

“밖에서도 이렇게 걸었어?”


뒷짐을 진 채 이상한 표정으로 팔자걸음까지 한다.


“난 지금도 그렇게 안 걷는데.”

“아무튼.”

“어······, 밖에서는 평범하게 걸었지?”


그러고 보면 숲에 들어온 뒤부터 이렇게 걷고 있다.


“나도 모르게 시조님 생각해서 그런 걸까?”

“데스트리아누스를 닮고 싶은 거야?”

“그런 거지. ‘데스트리아누스의 후계자’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그런데 ‘누구의 후계자’라는 말을 들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많던데, 위즈는 안 그래?”

“싫어? 그럴 리가. 오히려 난 좋은걸.”


잠깐이었지만, 오히려 데스트리아누스의 후계자라는 말을

계속 들으려고 노력하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나중에 내가 다른 일을 하면서 명성을 쌓는다면 모를까, 지금은 시조님의 후계자로 불리는 게 엄청나게 영광스럽지.”

“그런데 밖에 안 나가잖아. 명성을 쌓을 일은 없을 텐데.”

“그건 그래.”

“오히려 후계자 칭호를 잃을까 봐 불안해해야 하지 않을까?”

“어······.”


하긴 지금이야 학살 직후라 사람들이 위즈의 무서움을 알지만,

몇 년 더 지나면 위즈는 그냥 숲으로 도망친 마법사 1일뿐이리라.


“그리고 위즈는 말이야, 이렇게 숲에······.”

“리나.”


도저히 못 듣겠다 싶은 위즈가 갑자기 리나의 허리를 팔로 감싼다.


“어, 어? 뭐야?”

“잔소리는 그만하고,”


손에서 사슬이 튀어나와 근처 나무 윗동에 박힌다.


“밥 먹으러 가자.”


그대로 날아가려고 하는데 리나가 위즈의 팔을 움켜잡는다.


“아직 내 말 안 끝났어.”

“그거 굳이 끝까지 해야 해?”

“여기서 막으면 밥 먹을 때 옆에서 계속할 거야.”


조금 더 생각해본 위즈는 사슬을 없애고 리나를 본다.


“배고프니까 빨리 끝내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슬의 학살자와 오두막의 손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8 에필로그 5(마지막) 21.08.02 51 2 15쪽
117 에필로그 4 21.08.01 40 2 12쪽
116 에필로그 3 21.07.31 36 2 11쪽
115 에필로그 2 21.07.30 35 2 12쪽
114 에필로그 1 21.07.29 43 2 12쪽
113 112화 21.07.28 44 2 13쪽
112 111화 21.07.27 30 2 11쪽
111 110화 21.07.26 53 2 12쪽
110 109화 21.07.25 33 2 11쪽
109 108화 21.07.24 38 2 11쪽
108 107화 21.07.23 37 2 12쪽
107 106화 21.07.22 32 2 12쪽
106 105화 21.07.21 35 2 11쪽
105 104화 21.07.20 35 2 12쪽
104 103화 21.07.19 40 2 12쪽
» 102화 21.07.18 41 2 12쪽
102 101화 21.07.17 36 2 12쪽
101 100화 21.07.16 35 3 11쪽
100 99화 21.07.15 41 2 11쪽
99 98화 21.07.14 42 2 11쪽
98 97화 21.07.13 42 2 11쪽
97 96화 21.07.12 37 2 12쪽
96 95화 21.07.11 43 2 11쪽
95 94화 21.07.10 38 2 11쪽
94 93화 21.07.09 38 2 11쪽
93 92화 21.07.08 40 2 11쪽
92 91화 21.07.07 43 2 11쪽
91 90화 21.07.06 43 2 11쪽
90 89화 21.07.05 41 2 11쪽
89 88화 21.07.04 41 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